農과 食┃먹을거리와 우리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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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귀촌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들이 부모나 조부모로부터 도시가 좋아서 농촌의 삶을 접고 떠난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더러는 농촌생활이 어려워 견디다 못해 떠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또 일부는 조상 대대로 도시서 태어나 도시생활이 지겨워 농촌을 동경하다가 돌아온 이들도 있다. 귀농, 귀촌하는 이들은 농촌이 좋아서 돌아온 것만은 사실이다. 돌아와 성공해서 돈 버는 이들도 있으나 농촌은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돈은 도시에 모여 있지 농촌에 모여 있지 않다.
귀농인들은 돈을 벌어 도시에서 호화롭게 사느냐 농촌에서 가난하고 검소하게 자연과 즐기며 건강하게 사느냐 하는 선택에서 가난하고 검소하고 자연과 즐기며 건강하게 사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므로 귀농을 해서도 도시에서처럼 똑같은 생활을 즐기려면 안 된다. 그것은 농촌의 현실이나 사회구조가 그렇게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귀농 귀촌을 선택한다고 해서 당장 가난하게 살지 않아도 되고, 검소하게 살지 않아도 되고, 자연과 즐기지 않아도 좋다. 귀농선택의 우선순위는 다만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건강하게 사는 것은 누구나가 아는 이야기다. 공기 맑고 물 맑고 좋은 음식 먹고 살아야 한다.
이 세 가지를 다 갖추려면 도시에서는 불가능하다. 물론 출세하고 돈 벌려면 도시에서 살아야 한
다. 출세하고 큰돈 벌고 난 그 다음이 문제다. 큰병을 얻고 나면 결국은 한평생 모은 돈을 병원에
다 갖다 주고 포도당 5% 맞다 죽는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난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면 병이 나지 않으니, 즉 임종할 때 유기농 포도 한 송이 먹으면서 죽자는 이야기다.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한다 해도 곡식과 채소를 만들어 먹을 수 없는 일이다. 만들어 먹고 산다 해도 건강한 삶을 살 수는 없다. 있다 해도 인류가 그 길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인류의 생명을 유지하려면 농촌이 있어야 하고 농민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려면 유기농산물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한다 해도 곡식과 채소를 만들어 먹을 수 없는 일이다.
만들어 먹고 산다 해도 건강한 삶을 살 수는 없다. 있다 해도 인류가 그 길을 선
택해서는 안 된다. 인류의 생명을 유지하려면 농촌이 있어야 하고 농민이 있어
야 한다. 그리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려면 유기농산물이 있어야 한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선천성 장애인은 없었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으로 태어난 이들은 별로 없었다. 그나마도 부잣집에 가끔씩 있었지 가난한 집안에는 없었다. 나는 조선시대(1910년 이전)사람들과 같이 살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살면서 다치거나 매를 맞거나 하여 잘못된 이들은 있어도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이들은 가난한 집안에는 없었다고 본다.

일제 때는 나병 환자가 많았다.
지금은 나병은 근절되어가고 있다. 제일 젊은 층이 환갑을 맞이하고 있다. 나병이 없어진 것이
아니고 있기는 있어도 치료할 수 있는 의술이 발달한 것뿐이다. 크게 염려 안 해도 된다.

8·15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는 폐결핵 환자가 많았다.
폐결핵 환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각 면단위마다 보건소가 생겨났다. 결핵환자들 사진 찍고 약 주고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어서 결핵환자들이 없어졌다. 그 이유인즉 폐결핵은 못 먹어서 생긴 병이고 70년대 들어서 잘 먹게 되니 자연스럽게 없어진 것이다. 또 다시 폐결핵이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가 결핵사망률이 1위라는데 지금 새로 발생한 결핵은 먹을 음식은 많으나 골고루 먹지 못하고 몸을 차게 하는 음식을 즐겨먹는 데서 생겨난 병으로 본다.
아무튼 1970년대에는 우리 국민이 무척 건강했다. 이때가 단군이래로 제일 건강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건강할 때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1980년대에 갑자기 생겨난 병이 관절염이었다.
관절염은 의사들의 판단으로는 잘 안 고쳐지면 신경성으로 판단한다. 신경을 많이 쓰니까 관절염에 걸린다고 한다. 신경을 많이 써서 관절염에 걸린다면 6·25때는 전 국민들이 관절염 환자였어야 한다. 80년대 광주시민들은 전 시민들이 걷지 못 해야 했다. 그때를 나도 살아 보았으나 6·25 때나 5·18 때는 국민들의 발걸음이 더 빠르고 더 뛰어다녔다.

다음으로 일을 많이 해서 관절염에 걸린다고 한다. 일을 많이 해서 관절염에 걸린다면 옛날 사람들은 걷지 못했어야 한다. 지금은 옛날에 비해 힘쓰는 일을 1/3도 안 한다. 일을 많이 해서 관절염이 걸린다는데 전혀 일하지 않고 머리로만 사는 이도 관절염에 걸리는 것을 보게 된다. 또 퇴행성이라 해서 관절을 오랫동안 사용해서 걸린다고 하지만 옛 노인들에게는 이런 병이 없었다.

나는 무슨 병이든 음식과 병을 연결 짓는 버릇이 있다. 관절염 역시 1970년대 이전에는 없었던 병이다. 그렇다면 1970년대 이전에는 없었는데 음식을 1970년대 갑자기 많이 먹게 되고 수시로 식탁에서 꾸준히 먹게 된 음식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간단하다.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우선 3일을 굶자. 물만 마시고 굶자. 그래도 쑤시면 5일을 굶자. 굶고 나면 안 쑤신다. 그다음 하루 한 가지 음식만을 먹어보자. 그 다음날 또 다시 그 한 가지 음식을 바꾸어 먹어보자. 우선 굶었으니 채소부터 시작해서 담백하게 먹는 거다. 이렇게 먹어보다 쑤시고 통증이 있으면 그 음식이 관절염의 주범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주범이 될 수 있는 음식을 몰라서 이렇게 지면 없애가면서 시간 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알고 있었고 직접 가르쳐 주었어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겨우 30년 동안 터득해 낸 방법이 이 방법뿐이다. 욕심내지 말고 굶고 한가지씩 먹어 보자. 못 고친 사람도 없었다. 물론 유기농 자연식이어야 한다.

1990년대는 암 이야기가 등장한다.
암 역시 공통점이 있다. 유의태가 암으로 죽었다고 꾸몄으나 그 암과 지금 암과는 다른 병이다.
한문자에 암(癌)자가 있는 것을 보면 옛날에도 암이 있긴 했으나 이는 혹이나 사마귀를 말한다. 지금 암은 그 암이 아니고 악성 종양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 아무튼 악성 종양이 신체 어느 부위에 생겨나서 번지고, 전이되고 고치기 힘든 병이다. 그러나 참 이상한 병이다. 우리 집에서는 공동생활을 30년 동안 했다. 식구가 많을 때는 45명 정도 되었고 지금도 20명 정도 같이 산다. 그러나 아직 암 환자는 없다.

내가 2011년까지 회장으로 있었던 정농회라는 환경농업단체가 있다. 1976년에 창립 했고 회원수는 회비만 내는 사람이 많으니 잘 모르겠고 회지 발간할 때 소비자들까지 5,000부 정도 발간한다고 한다. 아직까지 36년 동안 앞으로 죽은 회원이 없었다고 떠들고 다녔는데 한 명 죽었다고 한다. 36년 동안 암 사망률 한 명이란다.

이제는 귀농학교가 점점 늘어난다. 지방마다 천주교 교구에서도 하고 도시텃밭 가꾸기도 생겨나서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 2만 명이 넘었다. 15년이 넘도록 2만 명 이상의 귀농인들에게 가족을 포함하여 암으로 죽은 사람 있느냐고 알아 봤으나 아직 암이 걸려서 등록하는 이들은 있어도 귀농학교 수료하고 새로 암 걸린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귀농인들 농사짓는 것 보면 너무 엉터리다. 그리고 좁은 면적에 수확도 기대하기 어렵다. 고생은 몇 배나 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농사짓고 더욱이 유기농업을 하고 나니 암환자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지금 세 가지 단체에서 암환자가 나오지 않는 것은 유기농산물을 먹고사는 단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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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통계 또 하나 있다. 나에게 건강에 대한 문의들이 너무 많아 가끔씩 모여서 건강강의를 하게 되었다. 우선 감리회 교육원에서 1년에 6회, 기간은 3박 4일 동안 숙식을 같이하는 건강교실이다. 상주에서 1년에 4번씩하고 양산, 부산에서도 하고 있다. 내가 의사가 아니라서 병을 고칠수도 없고 처방이나 치료도 할 수 없다. 다만 유기농산물 먹는 연습을 하고, 어쩌고 하면 고쳐졌다는 반가운 연락을 많이 받는다. 죽었다는 소식보다는 고쳐졌다는 소식이 30배 혹 60배, 100배 더 들린다. 사실은 암환자들이 암으로 죽는 것보다는 암은 고치고 죽는다. 일단 암에 걸리면 수술하고 항암제 맞는데, 항암제를 맞으면 암세포는 모두 죽는다. 다만 항암제 독 때문에 구토하고 머리 빠지고를 반복하다 음식을 못 먹어서 죽게 된다. 이때마다 항암제 독을 해독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항암제 독을 해독시키고 다시 암이 발생할 수 있는 음식을 안 먹는다면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지금보다 훨씬 낮아질 것 같다. 병원치료 받으면서 이렇게 하면 더 빠르다.

내가 의사가 아니라서 병을 고칠 수도 없고 처방이나 치료도 할 수 없다. 다만
유기농산물 먹는 연습을 하고, 어쩌고 하면 고쳐졌다는 반가운 연락을 많이 받
는다. 죽었다는 소식보다는 고쳐졌다는 소식이 30배 혹 60배, 100배 더 들린
다. 사실은 암환자들이 암으로 죽는 것보다는 암은 고치고 죽는다. 일단 암에 걸
리면 수술하고 항암제 맞는데, 항암제를 맞으면 암세포는 모두 죽는다. 다만 항
암제 독 때문에 구토하고 머리 빠지고를 반복하다 음식을 못 먹어서 죽게 된다.

2000년대 들어서 우리나라 수술 환자 중에서 1위가 치질이라 한다.
치질은 옛날에도 있었다. 부자도 있고, 가난한 이들도 있었다. 다만 가난한 이들의 치질과 부자들의 치질은 원인이 다를 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치질은 먹을 것이 없어 먹지 못해 변비가 심해서 똥을 눌 때마다 똥구멍이 찢어지면서 그 곳에 상처가 나고 상처 난 자리가 치료되지 않아서 생긴 것이 요즘 변비성 치질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먹을 것도 많은데 웬 변비가 이리도 많이 있는가. 그것은 위나 장이 좋지 않아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없어 적게 먹고 생긴 변비다. 이나마도 음식이라도 골고루 먹으면 다행이련만 편식마저 하게 되니 변비가 생긴다. 고구마 많이 먹으면 변비 고쳐지고 고구마보다는 마 가루를 먹으면 더 잘 고쳐진다. 요즘 봉교(프로폴리스)도 잘 낫는다.

다음은 부자들의 치질이다. 이 역시 관절염처럼 3일 굶으면 피똥 안 싼다. 그 다음 하루 한 가지
씩 먹어보자. 그리고 피똥 싸는 그 음식을 안 먹으면 고쳐진다.

또 한 가지는 피곤해서 생긴 치질이다. 자기의 피로가 항문으로 나타나 치질이 생긴 것이다. 그보다 더 예민한 곳이 여성의 자궁이다. 피로해서 혈뇨나 자궁 출혈 없었던 사람이 있는가. 사람이 병을 나누면 못 고친다. 병을 합해서 병명을 한 가지로 이름 지으면 고치기 쉽다. 모두가 주로 피곤한 데서 생긴 병이다. 피곤하지 않으려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10시 이내로 하면 해결된다.

동양인 병과 서양인 병 치료법은 다르다.
내가 10대 때 최홍종 목사님이라는 80세 넘으신 노인 밑에 살았다. 그분은 의학을 하셨다. 배탈이 나니 약을 안 드신다. 70세 넘으신 노인들이 약을 가르쳐 드린다. 막무가내로 듣지 않으신다. 나를 조용히 부르시더니 “너 지성인이니 잘 들어 두어라. 쟤들과 나는 음식이 달랐고 쟤들은 일 많이 했고 나는 놀았다. 쟤들이 가르쳐준 약이 틀린 것이 아니고 경험상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먹으면 안 고쳐진다.” 이때부터 나는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상체질도 팔상체질도 다르다.
옛날 이제마 시대에는 사상체질이 정확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신분도 없어지고 음식도 같이 먹으니 체질이 제각각이다. 이제마 선생이 환생하셔도 분별 못하실 것이다. 그래도 체질은 감별해서 음식과 약을 가려서 먹고 써야 한다. 역시 그 당시 비료나 농약이 없었고 성장촉진제가 없었다. 성장촉진제 많이 먹고 부은 살을 보고서 이제마 선생은 태양인이라 할 것이나 그런 사람 몸 중에 냉한 사람 많다. 또 그 당시는 비닐이 없고 저온저장고가 없어서 정확히 계절음식을 먹었다. 또 교통수단이 없어 생채소가 30리 길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지방음식이 정확했다. 지금은 요구르트 한 개를 마시려면 지구를 4바퀴는 돌아야 한다. 우유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유산균도 유럽에서, 딸기는 칠레, 향은 마닐라, 색소는 중동에서, 포장재도 중동에서……, 이런 음료 마신 사람을 이제마선생이 사상 체질 감별 못한다.

내가 거짓말이지만 염라대왕과 타협을 보았다. 건강한 사람들은 1/3 정도 외식하고 살아도 봐주기로. 그러나 큰 병을 진단받은 사람들은 정확히 유기농산물 먹어야 살려준다고.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여라. 잘 못 먹고 잘 못 마시면 목숨을 잃게
된다.”
지금 예수가 재림하시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필자 임락경: 시골교회 목사, 1980년부터 강원도 화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장애인과 ‘안장애인’이 섞여 사는 집 시골교회(집)에서 유기농 콩을 심어 된장과 간장을 만들고, 직접 꿀벌을 친다. 돌파리(突破理), 즉 ‘이치를 돌파한 사람’이라 말하는 그는 정농회 회장, 북한강유기농업운동연합 초대회장, 화천군 친환경농업인연합회 초대 회장, 상지대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또 감리회 제2연수부에서 ‘임락경의 건강교실’을 10년째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돌파리잔소리』(삼인),『 촌놈 임락경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삼인),『 먹기 싫은 음식이 병을 고친다』(들녘),『 흥부처럼 먹어라 그래야 병 안난다』(농민신문사) 등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