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10년’

여린 쑥 잎새가 보이는가 했더니 그 곁에 달래, 냉이가 소복이 자라고 질경이, 민들레, 꽃다지, 씀바귀에 연둣빛 머위순, 원추리 순까지 고개를 들었습니다. 며칠만 지나면 성가신 잡초로 지청구를 들을 이른 봄나물들이 밭둑이며 들판과 산기슭을 뒤덮고 머잖아 진달래며 산벚나무 매화 꽃망울까지 붉어지면 이 땅의 봄은 만개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길어야 석 달, 남녘에서는 두어 달 뒤면 봄맞이의 기쁨을 안게 되겠지요. 신묘년, 토끼해의 아침(元旦)에 농민, 농업인 여러분들의 활기찬 새해맞이를 기원하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작년과 똑같이 새해에도 연말에 시작된 한파와 눈보라가 설날, 입춘까지 이어질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러나 지구의 기후변화가 심각하게 다가오고 있다지만‘비, 구름, 바람의 신선을 거느리고 널리 인간을 도우고자’나라를 열었다는 우리나라는 아직 24절기를 어긴 적이 없는 축복받은 또렷한 4계절의 땅입니다.

신묘년, 2011년은 그러나 또 하나의 새해라는 뜻보다 21세기 들어서 두 번째 맞는‘10년’의 첫해라는 점이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금융위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그 진동의 폭과강도는 정치가들이 낙관하려는 것과는 달리 세계 정치와 경제는 물론 지정학적인 기존 질서까지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세기의 끝 무렵부터 시대의 대세인 것 같던 신자유주의의 흉흉한 기세는 한 풀 꺾인 듯 하지만 세계화의 진로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시작되는‘10년’이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명의 전환방향을 가늠하는 새 세기의 큰 고비를 이룰 것은 확실합니다.

역사의 전환기는 늘 큰 위험을 수반합니다.
이미 그 위험은 세계의 자원쟁탈전으로 모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가장 첨예한 대상은 당연히 에너지와 식량 그리고 물입니다. 지난 세기동안 승승장구 고도성장을 구가해온 잘못된 개발문명의 방향이 자초한과입니다. 인류의 지혜가 과연 이 문명사적인 위기를 어떻게 수습할 지는 예단키 어렵습니다.

식량문제는 국민경제의 암반과 같은 치명적인 존재입니다. 당연하면서도 오랜 기간 외연적인 고도성장에 익숙해 온 우리가 잊고 있는 문제입니다. 앞으로‘10년’, 우리 경제가 국제 환경의 격변에 불구하고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서는 성장을 지속하든, 혹은 안팎의 난제에 부딪혀 상당기간 제자리걸음을 하든 간에“농업”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중심과제로 등장할 것입니다.

식량문제, 농업의 문제는 지구환경의 문제와 더불어 이제 더 이상 경제의 문제가 아닌 국제 정치의 문제가 되기 십상입니다. 지구상에는 여전히 8억 5천만 명의 절대기아인구가 있고 아시아, 아프리카의 기후변화, 사막화의 진행으로 지구상의 경작가능 농지는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세계 곡물 무역을 장악한 5개미만의 국제 곡물메이저는 초거대 규모의 단작 농업으로 세계 농업환경을 악화시킬 뿐 기아문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세계가 더욱 치열한 자원경쟁으로 내몰릴 때 식량은 가장 심각한 국제적 다툼의 대상이 될까 두렵습니다.

식량문제는 국민경제의 암반과 같은 치명적인 존재입니다. 당연하면서도 오랜 기간 외연적인 고도성장에 익숙해 온 우리가 잊고 있는 문제입니다. 앞으로‘10년’, 우리 경제가 국제 환경의 격변에 불구하고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서는 성장을 지속하든, 혹은 안팎의 난제에 부딪혀 상당기간 제자리걸음을 하든 간에“농업”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중심과제로 등장할 것입니다.

너무 오래 우리 농업은 방치돼 있었습니다. 정책당국자들은 성장률에 급급하여 비교열위산업인 농업을“산업으로서 포기”해 왔고 국민들 다수는 농업과 농촌은‘으레 그런 것’으로 소가 닭 쳐다보듯 해왔습니다.농업은 그러나 오랜 기간 투자와 노력이 있어야 제 모습을 지탱하는 1차 산업입니다. 지금의 우리 농업 역시 한 세대도 더 전인 1970년대, 중화학공업을 통한 고도 성장기에 진입하기 위한 전제로 경지정리와 관개수리시설에 새마을 운동을 더한 천문학적인 물적·인적 투자를 퍼부은 농지기반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들 농업기반이 농지에서부터 농업 경영의 주체인 농민들까지 급속히 허물어지고 쇠락하고 있습니다.
그 위에 더러는 농업구조까지 이치에 맞지 않게 뒤틀려 있습니다. 이를테면 비대할 대로 비대해진 우리축산업이 그 전형입니다. 오랜 노력으로 우리는 주곡(쌀,보리)자급을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곡물 자급률은 26%, 국내 곡물소요량의 4분의 1에 불과합니다. 해마다 옥수수 900만 톤, 밀 250만 톤, 콩 130만 톤을 수입해야 하는데 그 중 대략 1천만 톤의 곡물이 소, 돼지, 닭의 사료용입니다. 우리 축산업은 한 마디로 국내 부가가치가 전혀 없는 대규모 공해산업일 뿐입니다. 우리의 축산 규모는 그 배설물(축분)이 모두 국내농업에 퇴비로 순환 투입, 소화될 수 있는 선을 상한으로 한 유기 축산으로 줄여야 할 것입니다. 유럽의 선진 축산국들은 이런 총량 규제를 넘어 이미‘동물 복지’기준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습니다.
줄어드는 농지와 노령화한 농민의 문제는 훨씬 더 무겁고 심각한 농업기반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닥쳐오는 세계 환경의 대전환기를 맞아 적어도 한 세대 뒤를 염두에 두고 국민적인 지혜를 모아 우리 농업의 장래를 위해 당장 해야 할 일들을 논의하고 찾아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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