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군청 마을만들기팀
첩첩산중에 자리한 농촌마을은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면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맥을 놓고, 고단한 삶으로 지친 노인처럼 생기를 잃었다.
질펀하고 왁자지껄한 풍경들이 사라지면서 마을은 늘 앙상하고 건조한 겨울이었다.
전라북도 진안군 역시 그랬다. 아니 상황은 더 심각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오지로 꼽힐 만큼, 철도도 고속도로도 없어 접근성도 열악한데다 80% 이상이 산지였고, 용담댐 건설로 수몰되어 그나마 좋은 농지의 대부분이 사라졌다.
그렇게 쇠락하여 정적이 감돌던 마을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 2001년부터다.
소멸과 쇠퇴의 공간에 다시‘삶’을 불어넣다
2001년, 진안군은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관 주도가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 자신의 마을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민하고 제안하는 이른바 마을만들기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다. 2003년 ‘으뜸마을가꾸기’라는 명칭이 새롭게 붙여지면서 진안군의 마을만들기 사업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으뜸마을가꾸기 사업은 지역주민들이 제안한 사업을 전문가가 자문하고 행정에서 지원해주는 시스템이다.
2008년부터는 한발 더 나아가서 그린빌리지 사업에서 출발하여 우수마을로 선정되면 참살기 좋은마을가꾸기 사업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이렇게 으뜸마을가꾸기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마을은 녹색농촌체험마을, 산촌생태마을 및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단계별 사업추진체계를 갖추었다.
진안군청 마을만들기팀은 조금 특별하게 구성되어있는데, 공무원 조직 안에 민간인 전문가를 영입하여 사업을 진행한다. 곽동원 계장(46)을 필두로 이호율 씨(44), 임홍택 씨(34)가 핵심 구성원이고 외부 전문가인 구자인 박사(46)가 곽 계장과 함께 팀을 이끈다.
마을만들기는 사람만들기
“마을을 만들려면 사람이 있어야지요. 지금 있는 사람의 역량을 키우는 방법도 있고, 또 좋은 사람을 받아들일수도 있습니다. 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게 하여 사람들과 융화하게 합니다. 그래서 마을만들기는 사람만들기, 마음만들기라고도 하지요.”
곽동원 계장의 말이다. 앞으로의 농촌은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어떻게 농촌을 잘 살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드는가. 방법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고민으로 단계별 사업 체계 이외에 귀농인 중심의 마을간사 제도를 운영하고 주민자치센터의 평생학습지도자 제도, 마을문화조사단과 농촌마을 전체를 ‘지붕없는 박물관’으로 여기는 에코뮤지엄 구상을 꾸준히 하는 등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아있는,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새롭게 도전해왔다.
“사회가 건전하게 성장하려면 민간조직들이 많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들이 풀뿌리 활동을 많이 해야하지요. 농촌이 힘들었던 이유가 농업에만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삶의 질, 행복감을 느끼기 위한 문화가 부족했었지요.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내고 조직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귀농귀촌한 사람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들이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능력과 특기를 농촌 안에서 계속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그들의 바람대로 진안군뿌리협회, 진안군마을축제조직위원회, 마을간사협의회 등 많은 민간 조직들의 풀뿌리 활동이, 마을만들기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사람과 자연이 만나고 어울림
마을만들기팀은 농촌자체가 볼거리이자 체험거리, 휴식장소로서 지붕 없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라는 의식으로 진안군 내에 있는 농촌자원을 매력적으로 알리고자 노력해왔다.
165km에 달하는 진안 마실길도 만들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진안의 자연과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길로 한국의 에코투어리즘 사례에 들기도 했다. 이 마실길을 걸으면서 진안으로 귀농귀촌한 사람들이 올곧이 제2의 고향을 느끼고 배운다.
지난 해 열린 3회 진안군 마을축제는 진안군 내 30개 마을이 참여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이 마을축제 역시 마을주민들이 각기 고유한 특색의 마을잔치를 준비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손님을 위한 행사라기보다는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 즐기는 행사라는 것.
이를 계기로 마을만들기가 진안군 전략산업의 하나로 인정받았고, 또 연간 전국 지자체등 각계각층에서 100개 팀 2,000여 명 이상이 벤치마킹을 오는 등 전국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마을만들기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농촌창업지원사업이 있는데, 개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업을 받아 지원해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귀농한 건축회사 대표가 집짓기 매뉴얼을 책으로 냅니다. 농촌을 사는 사람도 농촌에서 집 짓는 것이 쉽지 않은데 기존 농민들도 필요함과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귀농인들이 원래 가지고 있는 것을 지역사회에서 기여할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저희의 일이지요.”
동향의 학선리 마을 박물관 또한 진안의 자랑거리다. 폐교를 활용해서 주민들이 가져다 놓은 생활유품들을 갖고 마을에 기여하여 박물관을 만든 것. 이런 것은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지역사회기여사업으로밖에 할 수 없다는 것. 곽동원 계장은 이렇게 차곡차곡 만들어지는 마을이 애틋하고 자랑스럽다.
농부는 장인이다
“농촌에 있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몇 대째 가업을 이어오는 사람을 ‘장인(匠人)’이라고 하지요? 우리나라 농업은 5천 년의 역사를 가졌어요. 농업을 지키는 사람이 진정한 장인 아닙니까?”
곽동원 팀장은 우리 농촌이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이어가기 위해선 사람들이 농촌과 농업에 대한 생각과 인식이 달라져야한다고 생각한다. 농민들이 패배의식이나 자괴감을 딛고 스스로 자긍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를 위해 마을만들기팀이 할 일도 많다.
요즘 진안군을 찾는 사람이 참 많다. 농촌에 뜻을 갖고 오는 귀농귀촌인을 비롯하여 마을조사를 위해 찾아오는 교수와 대학생들. 아예 진안군의 사례로 논문을 쓰겠다며 한 달 이상 상주하는 대학원생들, 다른 지역의 정책자들과 농민들. 찾아오는 이들도 다양하다.
“진안군의 브랜드가 그만큼 유명해졌다는 거고, 또 파급효과를 생각하면 반갑게 맞아야 하죠.”
웃으며 말하지만 그들을 맞이하느라 맡은 일하랴, 또 일을 만들랴 마을가꾸기팀 사람들의 하루는 늘 정신없이 흐른다. 마을을 만드느라 정작 아이들과 휴가 한 번 변변히 가보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사연 역시 그들에겐 일상이 된다.
2009년 진안군청 마을만들기팀은 대산농촌문화상 농촌발전부문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제 2011년 마을만들기가 시작된 또 하나의 10년을 시작한다. 그들이 앞으로 만들어낼 마을이 더욱더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