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 협력, 상생의 가치를 배우다

전북 정읍 동학혁명기념탑 앞에서 허수종 샘골농협조합장과 함께 Ⓒ대산농촌재단
전북 정읍 동학혁명기념탑 앞에서 허수종 샘골농협조합장과 함께 Ⓒ대산농촌재단

‘좋은 친구’와 함께 하는 농촌의 삶
먼 길을 갈 때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라 한다. 농촌 사람들은 오랫동안즐겁게 사는 방법을 진작 알고 있었다. 동물, 이웃, 자연과 한평생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조금 천천히 걸으며 자연을 아끼고, 이웃을 배려하고, 가축을 건강하게 기른다. 지난 2월, 2박 3일간 다녀온대산장학생 연수에서 배운 ‘농촌이 행복한 비결’이다.

건강의 가치를 지키는 효덕목장
충남 천안시 효덕목장. 목장주인 김호기(53) 씨가 1986년 소 네 마리로 시작했다. 현재 70두를 키우며 유기농 우유를 생산하고, 아내인 이선애(50) 씨가 ‘썬러브치즈’ 대표를 맡아 치즈와 요구르트를 생산하고, 목장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가족농으로 운영하기에 딱 맞는 규모다. 이 대표는 “더 많은 이윤을 욕심내기보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게 행복”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건강과 행복’이라는 가치를 만드는 효덕목장 이선애 대표와 함께 Ⓒ대산농촌재단
‘건강과 행복’이라는 가치를 만드는 효덕목장 이선애 대표와 함께Ⓒ대산농촌재단
장학생들이 이윤보다 사람을 중요시하는 진안마을주식회사 로컬푸드 플랫 폼을 둘러보고 있다. Ⓒ대산농촌재단
장학생들이 이윤보다 사람을 중요시하는 진안마을주식회사 로컬푸드 플랫폼을 둘러보고 있다. Ⓒ대산농촌재단

“저도 처음엔 평범한 농부였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소젖을 짜는 일이 너무 좋은 거예요. 열심히 일하다 보니 치즈 만드는 일에 재미를 붙이게 됐죠. 좋아하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으려면 절대 욕심 마세요.”
젖소와 땅과 사람의 건강을 지키는 데우유를 과도하게 짜지 않은 젖소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3년 이상 화학비료를 치지 않고 소가 먹을 풀을 재배하기 때문에 땅도 건강하게 가꿀 수 있다. 유기 사료를 먹고 자란 젖소에서 난 우유는 ‘명품’이라 불릴만하다.
“몸에 걸치는 명품보다 입에 들어가는 먹거리가 최고여야 해요.”
먹거리만큼은 명품으로 챙긴다는 이 대표의 말간 얼굴이 빛났다. 목장 규모가 작고 우유 생산량이 적을지라도, 효덕목장은 건강과 행복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만들고 있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진안마을주식회사
전라북도 진안에는 이윤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의 로고는 ‘마을’이란 글씨를 이용해 만든 웃는 사람의 ‘얼굴’ 형상이다.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웃는 ‘사람’이라는 철학을 가진 진안마을주식회사 강주현(60) 대표의 작품이다.
강 대표는 마을공동체를 살리기 위해서 주민자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외부 통치자가 아닌 민초들이 나서서 마을의 생존을 모색하는 것이다. 강 대표는 주민자치의 첫째 조건은 경제적 자립이라고 봤다. 마이산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을 잡을 ‘로컬푸드 사업’이 그렇게 시작됐다. 로컬푸드 매장은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그날그날 소포장해서 내놓는다. 매장 외에도 로컬푸드 레스토랑, 바비큐장 등에서 농산물이 판매되고, 판매되지 않은 농산물은 학교급식, 직원급식으로 소비된다.

강주현 대표는 마을이 재생하기 위한 진안군 로컬푸드 사업단의 활동을 소 개하고 지속 가능한 농촌을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대산농촌재단
강주현 대표는 마을이 재생하기 위한 진안군 로컬푸드 사업단의 활동을 소개하고 지속 가능한 농촌을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대산농촌재단

강 대표는 사업을 빠르게 진행하거나 크게 꾸리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소농, 고령농과 함께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소수에게 많은 투자를 받지 않고 마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녔다.

박광호 교수는 첨단산업과 1차산업을 융합한 샘SAM 농업을 비롯해 우리 농 업기술의 발전상을 소개했다. Ⓒ대산농촌재단
박광호 교수는 첨단산업과 1차산업을 융합한 샘SAM 농업을 비롯해 우리 농업기술의 발전상을 소개했다. Ⓒ대산농촌재단

“집에 혼자 있으면 심심한데 앞뜰 가서쭉정이 좀 뜯고, 냇가 가서 미나리 좀 뜯어서 매장에 놀러 오시라고 했지요. 매장에서 포장하면서 한나절 얘기하고, 집에 돌아가면 ‘띵동’ 핸드폰 알람이 울려요. 천원, 이천원 돈이 들어오는 거죠. 재미가있죠. 이렇게 1,000여 농가가 모였어요.”
강 대표에게 농업은 이윤을 내야 할 ‘산업’이 아니라 ‘삶의 토대’였다. 그는 농업을 토대로 마을 공동체가 살아날 방법, 이웃이 함께 행복해질 방법을 찾았다.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보다도 중요한 건 농촌에서의 삶이 행복해지는 거예요.” 농업정책을 펴는 행정 관료들이 모르고 지나쳤을, 마을 주민으로서 그의 바람이다.

편히 짓는 친환경 벼농사, 샘SAM농법
박광호(59) 한국농수산대학 교수는 헬기와 로봇 등 첨단산업과 1차산업을 융합한 샘SAM, Smart Agriculture Movement 농법의 선봉장이다. 1995년 그는 ‘복토멀티시더’를 개발해 벼농사의 혁신을 가져왔다. 모내기하는 대신 볍씨를 직접 논에 뿌려 노동력을 혁신적으로 줄이면서 쌀 생산량과 품질을 우수하게 유지했다. 철분으로 볍씨를 만들면 무게가 있어 잘 가라앉는다. 새의 피해도 줄일 수 있다.
복합멀티시더로 볍씨가 있는 부분에만 비료를 뿌려 비료 사용량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었다. 이후 무인헬기와 드론을 이용한 직파기술을 개발하고, 현재는 카이스트와 협력해 농업용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사물인터넷과 센서, 인공지능이 가미된 자율주행 오리 로봇을 개발해, 제초제를 이용하지 않고 물리적으로 잡초를 없애는 방안도 마련했다. 친환경 비료와 생분해되는 필름개발 등 인간과 환경을 모두 살리는 연구가 그 핵심이다.
“들판에서 ‘모내기’와 ‘제초제’를 없애는 게 제 꿈이에요. 지금 추세로 가면 땅이 오염돼서 농사를 못지어요. 여러분 세대만이 아니라 다음, 그다음 세대도 잘살아야죠.”
박 교수의 연구는 소농과 고령농이 많은 농촌 현실에서 노동력과 생산비를 줄이면서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주목받는다. 농촌이 간직한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와 과학적 정밀 농업이 조화를 이루면 농민의 수고는 줄어들고, 농촌 삶의 질은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보았다.

농촌의 삶을 도시에도 전할 수 있을까
도시인의 일상에서 농사와 농촌이 잊힌 지 오래다. 많은 도시인이 밥상에 오르는 먹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애써 생각하지 않는다. 국산 농산물은 외국산 농산물의 가격 경쟁력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고, 쌀값은 2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농부는 고된 농사일에 대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해왔다.
하지만 농촌에 들어가 바라본 농촌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창의적인 대안을 내놓고 있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웃과 자연과 기술과 ‘상생’할 방법까지 찾아냈다. 농민은 좋아서 시작한 일을 계속하기 위해 이윤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마을 지도자는 생산성이 높지 않은 소농이나 고령농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민했다. 과학자는 농민들이 편하게 농사지으며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할 방법을 찾았다.
농촌에서 도시를 바라보니, 도시의 삶은 삭막하고 외롭다. 살아남기 위해 끝없이 경쟁하고, 주변 사람을 돌아볼 여유는 없다.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효율성과 생산성의 가치를 중시하고, 사람 냄새는 잊혀 간다. 농촌이 지닌 상생과 협력의 가치를 도시에까지 전할 수는 없을까? 농촌의 따뜻한 공동체 문화가 도시에까지 퍼질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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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영주: 대산농업전문언론장학생,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3학기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