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혜 바람난 농부 대표
그녀의 이름 앞엔 늘 “언젠가 대표”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부모님의 뒤를 이어 신나라농산을 언젠가 물려받을 언젠가 대표 유.지.혜. 서른셋 청년 농부가 내미는 명함 속엔, 그렇게 미래가 담겨있다.
유지혜 씨는 전북 김제시 진봉면에서 부모님과 8만 평 규모로 쌀농사와 밀농사를 짓는다. 아담한 체구지만 이앙기며 지게차를 능숙하게 다루는 그녀는 지역의 유명인사다.
“6월 초에 밀을 수확하고 나면 그 자리에 벼를 심고 또 10,11월에 벼 수확을 하고 나면 밀이나 보리를 다시 심어요. 5,6월이 제일 바쁘죠, 한쪽에 밀, 보리 베고, 또 한쪽에서는 논 갈고 모심고…. 거의 동시에 이루어져야 해요. 아버지는 콤바인으로 밀을 수확하고 저는 이앙기로 모내기해요. 그렇게 하면 제 인건비가 남는 거죠.”
밀 수매하는 날, 400여 톤의 밀을 창고에 차곡차곡 쌓느라 오전 내내 지게차 운전을 했던 지혜 씨는 말갛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농부다, 당당한.
스물일곱 살, 중국 유학에서 돌아와 2년여 사회의 쓴맛을 본 그녀는 농사를 짓기로 결심한다.
“처음엔 누가 직업을 물어보면, 대충 얼버무렸어요. 그런데 교육을 받으면서 희망과 자신감이 넘치는 농민들을 보며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농사짓는 게 되게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농사를 하면서 주체가 되는 느낌을 받아요. 뿌듯하기도 하고요. 지금은 어딜 가서도 당당히 말하죠. 저 농사지어요.”
바람난 농부, 빵을 만들다
지혜 씨는 빵을 만든다. 우리밀과 쌀로. 상표도 만들었다. ‘바람난 농부’. 만날 교육을 받으러 돌아다닌다고 지인이 붙여준 별명인데, 친근하고 재미난 느낌이 들어 상표로 정했다. 시작은 떡케이크였다. 배운 대로 만들어 SNS에 올렸더니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
“그때 느꼈어요. 아, 내가 농사지은 거로 만들면 가치가 있겠구나!”
지난 5월 보리축제를 앞두고 우리밀로 빵을 만들어 SNS에 올렸는데 맛을 본 사람들이 “달지 않고 맛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축제 시작 전에 단팥빵 500개 주문이 들어왔다. 유지혜 씨는 ‘바람난 농부’라는 브랜드로 단팥빵, 소보로, 밤과자, 쌀쿠키 등을 만들어 직거래로 판매한다.
“농사가 주업이고 빵 만드는 것이 부업이지만 대충하고 싶진 않아요. 웬만하면 제빵 계량제나 베이킹파우더를 안 넣고, 마가린이 아닌 좋은 버터를 사용해요. 안전한 먹거리 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팥이랑 호박, 고구마도 심었어요.”
앞으로 빵만드는 체험도 준비 중이다. 지금은 주문을 받아 만들지만 머지않아 일주일에 한두 번, ‘빵 만드는 날’을 정해 그날만 판매하고 싶단다. 유럽의 소농처럼.
농부님은 왜 농사를 지어요?
얼마 전 지역의 한 중학교에서 유지혜 씨에게 강연을 요청했다. ‘사람책’이란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직업의 강연자 6인 중 한명으로 참석한 자리였다. 그곳에서 한 학생이
“산업화와 노령화가 가속화 되는데 농부님은 왜 농사를 지어요?”라는 질문을 했단다. 지혜 씨는 “농업은 사명감과 책임감이 없으면 절대 하지 못한다, 돈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또 묻더라구요. 자신은 아무런 희망이 없는데 농부님은 무슨 희망으로 사느냐고요. 조금 당황스러웠는데, 이렇게 답했어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다 보니까 내가 바라던 꿈 쪽으로 가고있더라고.”
지혜 씨의 진심 어린 강의가 그 ‘무서울 것이 없다는’ 중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후에 선생님이 전했다.
“바라던 꿈이 뭐냐구요?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사람 앞에서 강의하는 일이랍니다. 앞으로도 농업에 대한 이야기는 기회가 되는 대로 많이 할 거예요. 사람들에게 농업을 제대로 알리고 농업의 중요성을 공감하게 하는 일이잖아요.”
청년 농부 유지혜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산다. 꿈이 가까워지는 것은 기적이 아니다.
글 신수경 편집장 / 사진 김종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