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삶과 바꿀 수 없는 것

권성현 좋아서하는농사 대표

전북 장수군, 포도가 탐스럽게 열린 덩굴 아래서 권성현 씨와 아내 김아영 씨, 아들 이랑 군.
전북 장수군, 포도가 탐스럽게 열린 덩굴 아래서 권성현 씨와 아내 김아영 씨, 아들 이랑 군.

사박사박, 7살 이랑 군이 포도 하우스에서 맨발로 뛰어다니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니, 천장을 가득 메운 포도 넝쿨이 아이를 포근히 감싸고 있는 듯했다. 이랑 군은 아직 덜 익은 포도송이 하나를 입에 물고 다가와 카메라 앞에서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아이를 바라보던 어른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포도송이를 다듬는 권성현 씨. 그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올해 첫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포도송이를 다듬는 권성현 씨. 그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올해 첫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4년 차 농민의 ‘좋아서 하는 농사’
2017년, 도시에 살던 권성현 씨는 아내와 아들의 손을 잡고 전북 장수군으로 귀농했다. 이듬해부터 유기농 미니단호박으로 첫 농사를 시작하면서 ‘좋아서하는농사’라는 농장 이름도 지었다. 그는 “나에게도 남들에게도 이로운 농사를 짓기 위한 굳은 각오를 담았다”라고 설명했다.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에서 7년 동안 근무했어요. 생산자가 어려워하는 부분, 소비자가 원하는 부분을 현장에서 많이 봐왔으니까, 나는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 거라는 약간의 자만심이 있었어요. 지금은 우르르 다 깨졌죠. 이런저런 작물을 많이 심었는데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저보다 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꿋꿋이 농사를 지어온 선배들이 진짜 대단해 보여요.”

캡션
권성현 씨가 1년 반 동안 키운 포도나무.

  권성현 씨는 올해 처음으로 머루포도(MBA)를 수확한다. 그는 1년 반 동안 충북 옥천군에 있는 유기농 포도 작목반을 오가며 포도 농사법을 배웠다. 꽃이 피기 전에도, 포도알을 솎기 전에도 농사 선배들을 만나러 갔다. 4년 차 농민 권성현 씨에게는 하루하루가 배움의 연속이다.
  “작년에 갑자기 내린 우박에 잘 자라던 단호박이 벌집이 된 거예요. 잎사귀도 열매도 다 찢어졌는데 줄기를 새로 유인하니까 얘네들이 살아났어요. 강인한 생명력에 감동했죠. 자연에서 이렇게 또 배워요.”

미니단호박의 품질을 올리기 위해 비닐하우스 외골조에 그물망을 씌워 열매를 공중에 매달아 기르는 권성현 씨.
미니단호박의 품질을 올리기 위해 비닐하우스 외골조에 그물망을 씌워 열매를 공중에 매달아 기르는 권성현 씨.

  농사가 재미있다는 권성현 씨는 “사실, 온전히 농사에만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넌지시 이야기했다. 그는 수확한 농산물을 생협에 납품하고, 소비자와 직거래도 하지만, 판매할 곳이 늘 부족하다고 했다. 농민 혼자서 판로를 걱정하고 패키지 디자인, 택배 발송까지 맡는 것이 버거울 때도 있다.
  “단호박을 직거래하는 소비자가 200여 명 돼요. 저희를 꾸준히 찾는 분들이 ‘감사하게 잘 먹고 있다’, ‘귀한 농산물을 보내줘서 고맙다’는 피드백을 보내주세요. 어떤 분들은 직접 요리한 것을 사진 찍어서 보내주기도 해요. 홍보에 활용하라고요. 이런 분들 덕분에 농업을 지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권성현 씨는 직거래 소비자에게 농산물을 보낼 때 “제가 짓는 농사를 통해서 저와 관계 맺는 여러분의 생활에도 건강한 변화가 생기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함께 전한다.
권성현 씨는 직거래 소비자에게 농산물을 보낼 때 “제가 짓는 농사를 통해서 저와 관계 맺는 여러분의 생활에도 건강한 변화가 생기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함께 전한다.

시골에서 맨발로 뛰어노는 아이들
1997년, 초등학생이었던 권성현 씨는 귀농하는 부모님을 따라 전북 진안군으로 이사를 했다.
“농촌에 오기 싫어서 한참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래도 금방 ‘촌놈’이 되어서 시골 생활에 적응했어요. 두 살 터울 남동생이랑 논에 빠지고 뒹굴면서 신나게 놀았어요. 자연이 놀이터였죠.”
  어린 권성현 씨가 특히 좋아했던 순간은 가족이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때였다. 그는 “도시에서 살 때는 부모님이 너무 바빠서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은 적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친환경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삶이 되게 고단해 보였거든요. 그래도 부모님은 저희에게 ‘행복하다’고 자주 말씀해주셨어요. 이런 삶을 택해서 너희와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요. 그리고 진실되게 땀을 흘려서 먹고사는 것이 값진 일이라고 하셨어요. 그게 참 자랑스러웠던 것 같아요.”
  권성현 씨는 아버지의 제안으로 충남 홍성군에 있는 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에 지원하였고, 그의 표현에 따르면 ‘운 좋게’ 합격하였다. 권성현 씨는 3년 동안 지역에서 농사짓는 선배들을 만나거나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으면서 지속 가능한 농업, 더불어 사는 삶, 가치 있는 사회 등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엇보다 부모님의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두 분이 왜 친환경 농업을 선택하였고, 거기서 어떤 것들을 얻으면서 살아가는지 정리를 한 거죠. 멋진 일을 하시는구나, 생각했고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졌어요.”

권성현 씨는 “아이가 자연을 놀이터 삼아 신나게 놀 때 시골살이 선택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권성현 씨는 “아이가 자연을 놀이터 삼아 신나게 놀 때 시골살이 선택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제는 권성현 씨가 땅을 일궈 농사를 짓고, 자연의 품에서 아이를 키운다. 그는 농촌에서의 삶이 도시에서 지내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했다.
  “농촌에서 아이를 키우는 만족감이 커요. 도시에서 키즈카페를 가는 것과는 다르죠. 제가 밭에서 일할 때 아이가 옆에서 맨발로 다니면서 놀기도 해요. 5분도 채 안 되지만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아이는 단호박이 어떻게 크는지, 이 벌레가 무슨 벌레인지 하나씩 배워가요.”
  권성현 씨는 가족과 농촌에서 함께하는 삶이 “너무 행복하다”며 환히 웃었다. 그의 부모님이 수십 년 전에 아들에게 이야기했던 것과 똑같은 말이었다. 

권성현 씨 가족은 농촌에서 ‘소소하지만 가치 있는 즐거움’을 찾고 있다.
권성현 씨 가족은 농촌에서 ‘소소하지만 가치 있는 즐거움’을 찾고 있다.

건강하고, 재밌게 노는 우리
권성현 씨가 사는 지역에는 학부모들이 ‘놀자, 날자 계북마을학교’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방과 후 아이들을 돌본다. 권성현 씨도 기회가 될 때마다 지역에 재능을 나누고 있다.
  “작년에는 아이들과 기타 치면서 노래 부르는 수업을 하고, 올해는 벽화를 그려보자고 이야기했어요. 이와는 별개로 교육협동조합 마을학교에서 제안을 받아서, 최근에는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웹툰 수업을 하고 있어요. 재미있는 과정이에요. 농촌에 인구도 줄고 인력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걸 조금씩이라도 나눌 수 있어서 좋아요.”

인린 ⓒ대산농촌재단
중국 광저우 인린생태농장에서 찍은 2019년 대산해외농업연수팀 사진. ⓒ대산농촌재단

  권성현 씨는 2019년 대산해외농업연수를 통해 중국(화남), 대만을 방문했을 때를 떠올렸다.
  “슈미생태학교, 인린생태농장 등을 방문했을 때 농촌에 있는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어서 아이들을 교육하고, 요리를 활용한 체험을 하고, 여러 가지 워크숍을 진행하는 모습을 봤어요. 농업과 관련한, 또 농업에서 파생된 것에 대해 즐겁게 공부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그런 것들을 주의 깊게 봤어요.”
  권성현 씨는 지역에서 ‘건강하게 잘 노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재미있게 농사짓는 방식을 찾는 모임도 상상해보고, 지역민들이 작은 축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모습도 그려본다.
  “내가 하고 싶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과 두루두루 해내면서 조화롭게 살고 싶어요.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야, 어느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야, 이렇게 정해놨다면 생각하기 어려운 삶이죠. 제가 만들어갈 그림이 앞으로 더 다양하고 풍부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글·사진 이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