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작복작 재미지게 사는 ‘준회 씨’

구준회 두지마을 청년회 사무국장

남원역에서 전북 순창군으로 넘어가는 길, 봄비가 자동차 앞유리를 톡톡 두드렸다. 운전하던 구준회 씨가 흐려진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걱정스레 말했다.
  “벌써 비가 오네요. 우리 딸내미가 인형이랑 책 팔려고 장터에 들고 나왔을 텐데.”
  이날은 순창에 귀농, 귀촌한 이들이 중심이 되어 한 달에 한 번씩 진행하는 ‘촌시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서둘러 순창 읍내에 가보니, 사람들이 비를 피해 한옥 처마 밑으로 옹기종기 모여서 물건을 사고팔고 있었다. 굵어지는 빗방울에 장터는 폐장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한곳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촌村시장’에서는 지역민들이 제철 농산물과 먹거리, 수공예품과 가공품, 중고용품 등을 사고판다.
‘촌村시장’에서는 지역민들이 제철 농산물과 먹거리, 수공예품과 가공품, 중고용품 등을 사고판다.

두지마을 청년, 준회 씨
순창 읍내에서 차로 10여 분을 달려 ‘두지마을’에 도착했다. 2013년 10월, 구준회 씨는 8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 시절 농촌활동으로 인연을 맺은 이곳으로 식구들과 다 같이 귀농했다. 그는 지역에서 친환경 학교급식 사업을 추진하고, 농민회 사무국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실무자 역할을 도맡았다. 마을에서는 청년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주민들과 어울렸다.

전북 순창군, 요일부엌 ‘마슬’에 모인 구준회 씨(오른쪽) 가족. 왼쪽부터 아내 전수진 씨, 아들 자민 군과 딸 자은 양.
전북 순창군, 요일부엌 ‘마슬’에 모인 구준회 씨(오른쪽) 가족. 왼쪽부터 아내 전수진 씨, 아들 자민 군과 딸 자은 양.

  “두지마을이 유별난 동네이기는 해요. 청년회 모임을 한 달에 한 번씩 하거든요. 청년회는 마을에서 청년 역할을 하는 귀농, 귀촌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모임이에요. 총 16명이고요. 처음에는 우리가 굴러온 돌이니까 ‘롤링스톤Rolling Stone’이라고 했다가, 이왕이면 박힌 돌이 되자고 ‘파킹스톤Parking Stone’이라고 이름 지었죠.”

두지마을은 2018년 7월 6일 ‘제5회 전라북도 생생마을만들기 콘테스트’ 문화·복지분야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두지마을
두지마을은 2018년 7월 6일 ‘제5회 전라북도 생생마을만들기 콘테스트’ 문화·복지분야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두지마을

  청년회는 마을 행사인 당산제가 사라졌을 때 ‘달집태우기’ 행사를 기획해 진행하고, 오래된 농협 창고를 개조해 주민 쉼터 ‘두레방’으로 만들어 요가교실 같은 문화 프로그램을 여는 등 주민들이 서로 마주할 방법을 다방면으로 고민했다. 코로나19로 모일 수 없었던 지난 정월 대보름에는 구준회 씨의 제안으로 마을 어른들에게 부럼을 나누면서 안부를 묻고 다녔다.
  “제가 처음에 이사 왔을 때는 아저씨라 불렸어요. 저를 외부인이라고 보신 거죠. 그러다가 마을 행사를 준비하면서 아이들이랑 같이 오니까 자은이, 자민이 아빠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뒤에 누군가의 집을 같이 알아보는 과정에서 ‘준회 씨’가 되었어요. 그때 굉장한 전율을 느꼈어요. 드디어 나도 이 마을에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구나!”

두지마을의 이야기를 담은 책 「복작복작 재미지게 산당께」를 기획, 제작한 주역인 구준회 씨와 김선영 씨.
두지마을의 이야기를 담은 책 「복작복작 재미지게 산당께」를 기획, 제작한 주역인 구준회 씨와 김선영 씨.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든 ‘마을 책’
주민 쉼터 ‘두레방’에 가니 도서출판 ‘잇다’의 대표인 김선영 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구준회 씨는 “2014년부터 제안했던 사업이 마을 선배인 김선영 씨 덕분에 결실을 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바로 ‘마을 책’을 만드는 일이다. 2020년 11월, 잇다에서는 두지마을의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담은 책 「복작복작 재미지게 산당께」를 발간했다. 책에는 마을의 역사뿐 아니라 주민 인터뷰, 구술 생애사, 문학 작품, 사진 등 두지마을에 사는 45가구 60명이 ‘복작복작 재미지게’ 지내온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구준회 씨가 꼭 바라던 결과물이다.

마을
책 「복작복작 재미지게 산당께」에 실린 마을 사람들의 인터뷰.

  “사실 이번에 책이 나오고서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셨어요. 앞으로 10년 뒤에 마을 어르신들이 어떻게 되실지 알 수 없어요. 그러면 그분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게 되는 거잖아요. 두지마을이라는 공간과 공동체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게 서글프더라고요. 우리 아이들에게 아빠가, 할아버지가,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료로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생애 구술에 참여한 장순금 여사(가운데)와 글을 쓴 김선영 씨, 사진을 찍은 구준회 씨.
생애 구술에 참여한 장순금 여사(가운데)와 글을 쓴 김선영 씨, 사진을 찍은 구준회 씨.

  마을 여성 3명의 구술 생애사를 맡은 김선영 씨는 책을 준비하는 내내 밤낮없이 녹취를 풀었다고 했다. 어떤 날에는 논에서 피를 뽑으면서도 녹음한 내용을 들었다. 처음 하는 일이라 무엇 하나 쉽지 않았지만, 그는 “결과적으로 뿌듯하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우리보다 어머니들의 삶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출판기념회를 하고 어머니들께 책을 안겨드리니까, ‘내 인생에 꿈과 같은 일이 생겼다’며 정말 좋아하시더라고요. 살면서 어떤 공적을 내세운 것도 아니고, 여자분이니 하다못해 면장, 이장 같은 ‘장’자 하나 붙인 적 없는 촌로로 살았는데, 본인이 책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에 감동하시더라고요.”
  구준회 씨가 “대표님, 다음 책은 언제 나와요?”라고 슬쩍 물었을 때만 해도 대답을 피하던 김선영 씨는 소감 말미에 “(마을 책 만드는 것을) 계속해야겠네”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순창농협 하나로마트 로컬푸드 매대.
순창농협 하나로마트 로컬푸드 매대.

‘로컬푸드 꾸러미’에 담아내는 가치
구준회 씨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순창농협 하나로마트다. 그는 2020년 3월부터 이곳에서 로컬푸드 관리를 맡았고, 그해 6월부터 ‘울엄마한소쿠리’라는 이름으로 로컬푸드 꾸러미를 구성하고 발송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꾸러미는 격주마다 보내고 있는데, 회차당 70개 정도 주문이 들어와요. 그중에 40개 정도는 재구매고요. 제가 순창에 와서 2014년부터 5년 동안 순창군여성농업인종합지원센터에서 ‘순창산골선물꾸러미’를 보내는 사업을 했거든요. 잠시 쉬었다가 조합장님 제안으로 여기서 다시 시작한 거예요.”

순창농협 하나로마트 로컬푸드 매대에는 생산자의 이름과 사진이 붙어있다.
로컬푸드 매대에는 생산자의 이름과 사진이 붙어있다.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쑥된장국과 돗나물무침’ 모둠, 가는 봄이 아쉬워서 구성한 ‘봄나물과 버섯된장국’ 모둠 등 구준회 씨는 회차마다 꾸러미의 콘셉트를 정해서 도시민에게 홍보한다. 그때마다 농가 또는 농민의 이름을 빼놓지 않고 꼭 적는다.
  “생산자 중에서 설순덕 씨라는 70대 아주머니가 있거든요. 매일 고사리, 두릅, 시금치 같은 것을 보따리에 한가득 싸서 버스를 타고 오세요. 그분은 왔다 갔다 하는 데만 1시간 반이 걸리는 거예요.”
  구준회 씨는 이런 농민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지역의 작은 농민들도 농사를 지속할 수 있게끔,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시 남원역으로 돌아가는 길, 구준회 씨는 지역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에 대해 “만족한다”며 웃음 지었다. 마을이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는 그가 허허, 웃는 소리에 이 말이 함께 들리는 듯하였다. “두지마을에서 어르신들이랑 아이들이랑 다 같이 복작복작 재미지게 산당께!”

글·사진 이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