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홍기원
지난해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중국에서 절정의 인기를 끌자 삼계탕 앞에는 드라마 주인공을 맡은 송중기의 이름이 붙어 중국 관광객들에게 집중적으로 소개됐다. 그 이전부터 삼계탕은 농림축산식품부가 기대를 건 수출 품목 중 하나였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국정기조에 맞춰 농림축산식품부가 준비한 FTA체결에 따른 농식품 수출, 국가식품클러스터, 할랄시장 진출 등 굵직한 사업에 삼계탕은 빠짐없이 들어갔다. 박근혜, 창조경제, 농림축산식품부, 농식품 수출, 육계 계열화회사를 ‘엮는’ 연결고리가 바로 삼계탕이다.
기대가 집중된 삼계탕 수출의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이다. 고온에서 가열하는 삼계탕은 바이러스에 안전하지만 소비 심리상 시장 진출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닭고기, 오리고기, 계란 등 가금 관련 신선제품의 수출은 삼계탕보다 AI 발생에 더 큰 직접 피해를 본다.
그래서 농림축산식품부는 AI 청정국 지위 지키기에 줄곧 촉각을 곤두세워 왔다. AI는 구제역과 달리 세계동물보건기구OIE 동물위생규약에 따른 조건만 충족하면 자체 선언으로 청정국 지위를 얻을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AI로 인한 가금류 도살처분 이후 3개월 동안 재발생하지 않으면 어김없이 청정국 선언을 하고 지위를 회복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2월에 AI 청정국 지위 회복을 선언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 달인 3월 경기도 이천 종오리 사육농가 예찰검사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며 청정국 지위를 잃었다. 잔존 바이러스가 발생 원인이었던 걸로 추정된다. 4월을 끝으로 AI가 발생하지 않자 농림축산식품부는 8월 다시 자체 청정화를 선언했다.
도살처분 보상금 삭감, 추정에 근거하다
여기까지가 가금류 3,000만 수 이상을 도살처분한 이번 AI 발생 전까지의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16일 농가에서 AI 의심축을 신고하고 18일 확진 판정이 나오며 청정국 지위는 100일 천하(8월 18일 선언 이후 93일)로 끝났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초동방역이 부실했고 신속한 도살처분이 이루어지지 않는 등 방역시스템의 총체적 실패라는 언론의 평가에 수십여 건의 설명자료를 배포해 반박했다. 이 자료들엔 부족한 현장방역 인력 확충을 위해 ‘관계부처 등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거나, 검사기관이 검사하기에 부적합한 분변 시료를 수령하지 않아 ‘방역사들이 오래된 분변을 채취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라거나, 11월 16일 검역본부에 검사를 의뢰한 수리부엉이 시료를 11월 23일에 확진한 게 ‘검사 기간은 7일로 늦은 것은 아니다’라는 해명 등이 실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AI 발생을 최초로 확인한 2003년 이후 13년이란 시간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설명 중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지방자치단체와 농가에 방역책임을 묻는 방법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자체 방역 책임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도살처분 보상금을 지자체와 분담(국비 80%, 지방비 20%)하고 있으며 농가 방역 책임성 확보 차원에서 AI 발생농가의 도살처분 보상금은 20% 감액해 지급한다고 했다.
방역 조치가 미흡한 농가의 도살처분 보상금을 감액하는 안에는 현장농가들도 대체로 수긍한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방역 조치를 했는데도 AI가 발생했다면 감액 조치가 부당하다는 볼멘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가축질병 예방은 농가의 의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농가에서 철새의 접근을 차단하고 농가 안팎에 대한 철저한 소독과 외부 차량과 사람에 대한 소독 등 차단방역을 철저히 해 농가 내 바이러스 유입을 차단한다면 AI 발생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2월 9일 양성농가 317곳 중 10곳이 방역규정 위반 혐의로 조사 중이라며 해당 농가는 보상금 추가 감액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럼 나머지 307곳은 왜 AI 바이러스가 검출된 걸까?
취재에 따르면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차단방역을 제대로 하지 않은 농가가 AI에 감염된 후 계절전파요인에 의해 주변지역으로 전파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도 “농장에 어떤 요인으로 유입됐는지는 조사 중이며, 농장주의 책임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검역본부의 농가 역학조사는 항상 추정으로 결론짓고 있다. 즉, 농림축산식품부는 추정에 근거해 농가의 책임을 보상금 삭감이란 방법으로 묻고 있다.
정부 방역시스템부터 돌아보라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짚는 문제가 있다. AI 대책은 농가 차원의 문제를 이미 넘어섰다는 점이다. 한 수의학과 교수는 “AI는 농민의 손을 떠난 바이러스다”라며 “소독약을 뿌려도 큰 효과가 없다. 겨울철엔 4℃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많아 소용이 있겠냐”고 했다.
농가 방역 조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독은 만능의 해결책이 아니다. 검역본부 소독제 효력시험지침을 보면 ‘소독액 희석액과 혼합한 뒤 4℃에서 30분간 처리’하는 것을 표준시험조건으로 설정하고 있다.
한국동물약품협회 관계자는 “소독제를 뿌린다고 바이러스가 다 죽는 게 아니라 감소시키는 것”이라며 “충분한 접촉시간이 있어야 효과를 본다”고 말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소독제에 접촉해도 바이러스가 남는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거점소독시설부터 소독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농장에서 나온 차량은 무조건 거점소독시설을 거쳐야 하는데 이 시설은 세척과 소독 중 하나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거점소독시설은 세척 단계가 없다. 남은 소독단계도 충분한 접촉시간을 보장하지 않는다. 원칙대로라면 세차하고 소독약을 뿌리고 수십 분간 세워놓은 뒤 출발해야 한다. 거점소독시설이 오히려 바이러스 확산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계속 나오는 이유다.
지속 가능한 축산을 목표로 가축전염병 방역시스템 구축해야
AI 발생은 박근혜 정부와 농림축산식품부의 삼계탕 수출 전략에도 적잖은 타격을 입힐 전망이다. 2012년 삼계탕 수출액은 1,260만 달러였으나 박근혜 정부 동안 한 번도 연 1,000만 달러를 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현재까지 중국 수출액은 81만 6,000달러에 그쳤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보다 면밀한 예찰 및 역학조사부터 실시해야 한다. 동시에 현장 농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대책을 만들 게 아니라 정부, 전문가, 농가에 환경단체까지 포괄해 지속 가능한 축산을 목표로 한 가축전염병 방역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방역은 제2의 국방’이다.
검역본부 관계자는 “대규모 가축사육방식은 가축전염병을 예방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AI뿐 아니라 살모넬라, 마이코플라즈마, 와구모 등에 많은 지적이 있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질병을 제어하고자 여러 백신, 항생제, 약품 등을 사용해야 하기에 결국 면역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대규모 사육에 맞춰 질병대책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의 대책 발표엔 이런 근본적인 고민은 결여돼 있다. 떠올려보니 농림축산식품부의 행보엔 물음표만 한가득 붙는다.
농가 차단방역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농가 시설현대화 정부보조비율은 왜 낮추었나? 계열화 회사에 방역책임을 묻는다면 어떻게 갑을 관계에 묶인 가금농가에 2차 피해가 가지 않도록 막을 것인가? 표준계약서 작성으로 계열화 회사의 갑질을 막을 수 있는가? 삼계탕 수출에 환호하는 동안, 삼계탕용으로 사육되는 백세미의 방역관리는 어떻게 해왔는가? 종계장에 만연한 난계대질병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나?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하고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까.
이 상태로는 청정국 선언은 그 의미를 찾기 힘들다. 지금의 논쟁이 다시 청정국 선언에 묻히고 삼계탕 수출만 바라보다가 다시 겨울이 되면 악몽을 되풀이하는 악순환은 끝나야 한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보다 면밀한 예찰 및 역학조사부터 실시해야 한다. 동시에 현장 농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대책을 만들 게 아니라 정부, 전문가, 농가에 환경단체까지 포괄해 지속 가능한 축산을 목표로 한 가축전염병 방역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방역은 제2의 국방’이다. 정부는 가축전염병이 사회재난이란 점을 전제로 근본대책을 수립해 꼭 실천해야 한다.
※필자 홍기원: 한국농정신문 한돈․가금부문 담당기자. 농민단체, 협동조합에 이어 지난해 축산으로 출입처를 옮겼다. 농업전문지에서 좌충우돌하며 농업과 국민이 만나는 접점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