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공감 _ 2017년 농農에 대한 담談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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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강주현 진안마을주식회사 대표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유지혜 청년여성농업인CEO연합 회장
윤순자 귀한농부 대표
조원희 상주승곡체험마을 위원장

•사 회 :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업팀장

•일 시 :
2017년 1월 10일(화) 14:00~19:00

•장 소 : 대산농촌재단 세미나실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업팀장: 새해 들어 무척 바쁜 시기인데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좌담은 <대산농촌문화>의 신년 기획으로, 지역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농민들과 ‘농農’을 둘러싼 현안을 짚어보고 공감하는 자리로 마련했습니다. 현안 중에서도 농업보조금의 허와 실, 6차 산업, 농민 기본소득, 청년 농업인 지원과 지역공동체 등을 주제로 이야기 나눠보려 합니다. 먼저 2016년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들어가며_ 2016년의 농農, 치열하거나 참담하거나
조원희 상주승곡체험마을 위원장: 23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데 정말 힘든 한 해였어요. 요즘 농민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해 먹을 농사가 없다”는 거예요. 논농사가 소득이 떨어지니 논에다 포도를 심고 하우스를 지어 오이나 수박을 심는 등 고소득 작물로 전환하거나 혹은 농사의 면적을 늘려서 소득을 맞춰왔는데, 농민들이 돈이 없다보니 빚을 내서 투자하고, 투자를 하니 일이 그만큼 늘어나고, 그 빚을 갚으면서 가족도 돌봐야하니 옆도 뒤도 돌아볼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상황에 몰려 죽어라 일을 해야 하는 자발적 강제노동 상태인 거죠. 농민들에게 적정한 보상과 소득이 되지 않는 기존의 가격정책을 대체할 수 있는 소득정책이 나와야 해요. AI 사태 이후 바로 달걀을 수입하고 있잖아요. 수입개방의 영향으로, 국내 농산물 가격이 올라가면 바로 수입을 늘리는 정책이 너무 잘 되어있어요. 반면 국내에서 생산량이 늘어났을 때 그것을 어떻게 매입하거나 폐기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은 없어요. 농업문제가 생산과잉의 문제라면 생산량이 계속 늘어나야 하는데, 사실 쌀, 과수, 채소의 생산량은 계속 줄고 있죠. 이건 생산 과잉이 아니라 수입과잉의 문제예요. 오늘날 농업 문제가 사실 농촌 현장에서 나온 게 아니고 농업을 희생함으로써 국가적 발전을 꾀한 거대 담론 속에서 발생했잖아요. 이걸 어떻게 바꿔갈지 이야기하고 힘을 모아야 할 때죠.

조원희 상주승곡체험마을 위원장. 상주에서 친환경 사과, 배, 감 농사를 지으며 생협활동을 통해 농민의 가격결정권을 높이고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조원희 상주승곡체험마을 위원장. 상주에서 친환경 사과, 배, 감 농사를 지으며 생협활동을 통해 농민의 가격결정권을 높이고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유지혜 청년여성농업인CEO연합 회장: 제가 있는 김제는 간척지라 쌀 이외에 작목을 하기가 어렵고 이모작을 해야 그나마 소득이 보전돼요. 그런데 3년 전부터 보리 파종 시기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아예 파종을 못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다 갈수록 쌀값은 점점 떨어지죠. 1년만 농사를 망쳐도 4~5년이 힘 드는데 3년간 보리 파종을 못했으니 생활이 굉장히 어려워졌죠. 거기에다 저희 지역은 새만금 배후 지역이어서 외지인들이 와서 논을 사 임대료 이익을 얻어요. 그래서 3년 전 1필지(1,200 평)에 3,000만 원이던 논이 6,000만 원, 1억 원까지 치솟았어요. 젊은 농민이 논을 사기는 너무 힘들죠. 경기가 안 좋아 직거래도 1/3로 줄었어요. 저뿐 아니라 젊은 농민들이 모이면 계속 농사를 지어야 할지 다들 고민해요.

“논농사가 소득이 떨어지니 논에다 포도를 심고 하우스를 지어 오이나 수박을 심는 등 고소득 작물로 전환하거나 혹은 농사의 면적을 늘려서 소득을 맞춰왔는데, 농민들이 돈이 없다보니 빚을 내서 투자하고, 투자를 하니 일이 그만큼 늘어나고, 그 빚을 갚으면서 가족도 돌봐야하니 옆도 뒤도 돌아볼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상황에 몰려 죽어라 일을 해야 하는 자발적 강제노동 상태인 거죠. 농민들에게 적정한 보상과 소득이 되지 않는 기존의 가격정책을 대체할 수 있는 소득정책이 나와야 해요.”

강주현 진안마을주식회사 대표: 농지를 줄여서 생산성을 낮춰 농산물 가격을 유지하겠다는 정책은 매우 위험해요. 결국 수입농산물 가격에 모든 시장이 좌지우지되게 만드는 겁니다. 안타까운 것은 정부에서 쌀 우선지급금도 다시 토해내라고 하고 수매가격을 내리는 상황인데도 농민들이 투쟁하거나 항의하기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정부에 항의하고 투쟁할 수 있는 농민은 그래도 희망과 비전이 있다고 봐요. 그런데 진짜 어려운 농민들, 투쟁조차 하지 못하는 농민들이 많아져요. 소농, 고령농의 수익을 보전하는 길을 찾아보겠다고 나선 것이 진안마을주식회사인데, 요즘에는 대농이나 소농이나 다들 어렵다고 포기해버리니까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숙제입니다.

강주현 진안마을주식회사 대표. 소농·고령농·가족농이 주체가 된 로컬푸드사업단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의 주체는 주민이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행정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형 농촌사회 모델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강주현 진안마을주식회사 대표. 소농·고령농·가족농이 주체가 된 로컬푸드사업단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의 주체는 주민이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행정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형 농촌사회 모델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윤순자 귀한농부 대표: 농산물 가격이 생산단가와 수급비용을 고려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 문제지요. 14년째 친환경농업을 하고 있고 친환경인증 받은 농지가 3만 평이 넘는데, 올해처럼 농산물 가격이 널뛰는 걸 보면 현실적으로 친환경 농사를 접어야하나 싶어요. 땅값이 비싸 땅 사서 농사짓는 건 불가능하고 빚의 연속이니 너무 어렵죠. 소비자는 ‘모양도 예쁘고 값도 싸고 맛있는 것’을 찾아요. 올해 경기도 급식에 유기농 귤 납품을 처음 시작하면서 놀란 게, 매입단가는 높지만 요구하는 조건이 굉장히 까다로워요. 유기농이지만 질기지 않고 모양이 예뻐야 하고 크기도 균일해야 하고…. 유기농인데 어떻게 안 질길 수 있나요?(웃음) 아이들보다 영양사들이 먼저 아이들이 먹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차단한다는 거죠.

“정부 정책이나 보고서에 나오는 농민의 화려한 성공사례는 극히 일부고, 대부분 농민은 농사를 지어서 수익을 낼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농산물 개방농정 이후로 보조금의 규모가 상당히 늘었지만 계속 사업위주로 보조금을 지원하여 성과를 뻥튀기 하고 있어요. 게다가 전체 농가의 83%에 달하는 2헥타르 미만 소농들은 농업정책이 아니라 복지정책으로 다뤄지고 있는데, 80%를 복지정책으로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농정예산의 절반은 농민들에게 직접, 고르게 나눠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저희도 지역에서 급식 이야기를 많이 하고 농림부의 학교급식표준모델 개발 등 관련 연구를 하며 영양사분들도 많이 만났었는데, 그래도 좋은 농산물의 판로를 안정적으로 개척할 수 있는 길은 이제 학교급식, 병원과 기업체 등의 공공급식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강: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면 농민들이 좋아하는데, 그걸 좋아하면 안 된다고 봐요. 이렇게 가격이 널뛰어서 결국 피해 보는 것은 우리 농민이에요. 농산물 가격이 급격하게 올라도, 내려가도 안 돼요. 안정적인 가격 유지가 되어야만 예측 가능한 농사를 지을 수가 있죠.

유지혜 청년여성농업인CEO연합 회장. 전북 김제에서 대를 이어 쌀과 밀농사를 짓는 2세대 농업인으로, 우리 쌀과 밀로 빵과 쿠키를 만들어 ‘바람난 농부’ 상표로 판매하며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유지혜 청년여성농업인CEO연합 회장. 전북 김제에서 대를 이어 쌀과 밀농사를 짓는 2세대 농업인으로, 우리 쌀과 밀로 빵과 쿠키를 만들어 ‘바람난 농부’ 상표로 판매하며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박: 그래서 전농(전국농민총연맹)에서는 최저가격보장제를 계속 주장하고, 전남과 제주 등은 관련된 지역 단위 조례와 기금도 만들고 있는데 실행이 잘 안 되고 있어요. 법적 근거는 충분하지만 정부에서 미국 같은 농산물 수출국가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개입하지 않으려하죠. 일본은 지자체에서 전문기관을 통해 최저가격보장제를 하는데, 자유시장에서 중앙정부가 농산물가격에 대해 최저가격 보상을 해준다면 어느 농산물을 대상으로 할 거며 가격은 어느 수준으로 할지를 놓고 굉장한 논쟁이 있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요. 그래서 단기간에는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시행은 해야 하는 정책이죠.

농업으로 살다: 농업소득과 보조금의 허와 실
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얼마 전 발표한 조사를 보면 10명 중 6명의 소비자가 농업·농촌을 지지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답했고, 농촌을 위해 세금을 더 내겠다고 답한 소비자도 절반 이상으로 농업·농촌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농업·농촌은 아무리 쏟아부어도 소용없는 ‘밑 빠진 독’이라고 보는 관점에서는, 농민이 세금 먹는 하마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현재의 농업·농촌 관련 각종 보조금과 지원정책은 정당하고 적절한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박: 정부 정책이나 보고서에 나오는 농민의 화려한 성공사례는 극히 일부고, 대부분의 농민들은 그렇지 않아요. 농민들에게 계속 허황된 꿈과 욕망을 불어넣어주는 게 아닌가 싶죠. 대부분 농민은 농사를 지어서 수익을 낼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농산물 개방농정 이후로 57조니 117조니 하며 보조금의 규모가 상당히 늘었지만 계속 사업위주로 보조금을 지원하여 성과를 뻥튀기 하고 있어요. 게다가 전체 농가의 83%에 달하는 2헥타르 미만 소농들은 농업정책이 아니라 복지정책으로 다뤄지고 있는데, 80%를 복지정책으로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농정예산의 절반은 농민들에게 직접, 고르게 나눠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직불금을 계속 면적 단위 기준으로 주니까 농민들은 계속 면적을 키우는 데만 목표를 두게 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50가구 농가가 100마지기를 경작했다면, 지금은 2~3가구 농가가 100마지기를 경작하다 보니 나머지 사람들은 잉여가 되어버려요. 농업과 연계되지 않는 소득을 농촌에 지원하지 않는 이상 농촌에서 계속 사람이 빠져나가고, 고령화로 농촌에 사람이 남지 않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어요. 모든 농민에게 동일한 금액을 주고 친환경농업을 하는 농가에 인센티브를 주는 형식으로 가야합니다.

윤순자 귀한농부 대표. 제주에서 감귤, 한라봉 등 친환경 농사를 지으며 고령농, 해녀 등이 생산한 지역농산물 유통을 함께하고 있다. 서울의 마르쉐@를 비롯해 다양한 농민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소비자와 소통하고 있다.
윤순자 귀한농부 대표. 제주에서 감귤, 한라봉 등 친환경 농사를 지으며 고령농, 해녀 등이 생산한 지역농산물 유통을 함께하고 있다. 서울의 마르쉐@를 비롯해 다양한 농민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소비자와 소통하고 있다.

윤: 친환경직불금도 폐해가 심해요. 친환경직불금은 유기 인증을 받은 땅이 300평 이상이면 인증 면적이 300 평이든 3만 평이든 똑같이 100만 원만 받아요. 친환경 농장은 규모가 클수록 비용과 노동력이 많이 필요해 친환경직불금은 오히려 면적 단위 지불로 가야하는데 그렇지 않죠. 직불금도 현금으로 직접 주는 게 아니라 자재를 구입해야만 쓸 수 있어요. 또 유기인증을 받으려면 고시된 퇴비와 자재만 사서 써야하고, 농민들은 정보가 빈약하니 지자체 단체장이 미는 업체에서만 구매하게 돼요. 퇴비·자재 값만 1년에 1,500만원이죠. 단지 유기인증을 받기 위해서, 실제 농사에는 도움도 되지 않는 자재를 큰돈 들여 사야하는 거예요.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인문·사회과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농촌과 농민 기본소득, 도농교류, 토종 씨앗 보급 등을 주요 분야로 연구하고 있다. 특히 최근 ‘농민 기본소득’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다.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인문·사회과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농촌과 농민 기본소득, 도농교류, 토종 씨앗 보급 등을 주요 분야로 연구하고 있다. 특히 최근 ‘농민 기본소득’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다.

조: 2015년도 OECD국가 농업보조금 지원 실태를 보면 한국의 농업인 1인당 지원보조금액은 618달러인 반면 일본은 8,196달러, 스위스는 31,153달러로 한국이 OECD 국가 중 꼴찌예요. 보조금의 목적이 농가소득 보장이 아니라 농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미명 아래 몰아주는 방식이기에 받는 사람만 계속 받게 되고요. 그래서 농촌 내부의 갈등도 굉장히 심해지고, 간접지원 방식이다 보니 불필요한 것들이 투입되지요. 직불금 규모를 절대적으로 늘려야하고, 내용과 방식을 손보지 않으면 지금의 농업·농촌문제를 해결하긴 어려울 거예요.

강: 정부정책의 초점이 전부 생산성 향상에 맞춰져 있어요. 고소득 작물, 억대 농가를 키우겠다는 것이죠.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이 정책이 바뀌질 않아요. 예산을 세울 때부터 보조금의 대상과 목적을 분명하게 분리해서 세워야 해요. 농업보조금이라는 두루뭉술한 이름으로 광역과 기초단체에 내려가니 그것을 보조금 사냥꾼들이 계속 독식하게 되죠. 이걸 위해 제일 먼저 필요한 게 농업인 인증제예요. 농협의 농지원부는 농지 임대 계약서만 있어도 농업인이라고 할 만큼 부실한 제도라 농업인 인증제를 만들어 중농업인, 대농업인, 유기농업인 등의 자격을 확실히 하고 보조금 지급 규정을 분리해야 되요.

농민이라는 이름에 ‘자격’을 _ ‘농민 인증제’
강: 우리나라 농업보조금을 일본처럼 확대하면, 원래 농민들은 다 죽고 정보력 있는 귀농귀촌인들이 다 가져간다는 말이 있어요. 그래서 필요한 게 농업인 인증제죠. 농업이라는 업종에 들어오려면 그만한 준비와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게 맞지 않나요.

신: 독일 등 유럽에선 농민이 되기 위해서 ‘농업학교’를 나와 일정한 절차를 거쳐 ‘농민자격증’을 받아야 합니다. 이들 대상으로 국가에서 농업보조금을 주고 65세가 되면 노후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체계화되어 있어요. 농민 교육이 정규 교육이죠. 귀농인이 농민이 되려면 기초과정부터 꾸준히 농민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아야 하더군요.

강: 우리도 최소 몇 년의 교육 이수가 포함된 인증과정이 있어야 돼요. 한국의 농민들이 천대받는 이유 중 농업이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잘못된 고정관념도 커요. 농업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인증하는 제도가 있어야 해요.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업팀장. 23년간 대산농촌재단에서 일하며,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의 가치를 드높이고 전파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업팀장. 23년간 대산농촌재단에서 일하며,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의 가치를 드높이고 전파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모든 농민에게 공평하게:농민 기본소득
신: 그렇다면 요즘 뜨거운 이슈이기도 한 농민 기본 소득에 대한 이야기를 더 발전시켜 가볼까요? 현재 충남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농민 기본소득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박: 성공한, 규모 있는 농민 분들은 막상 기본소득제보단 최저가격보상제에 더 관심이 있어요. 오히려 정치인들이 관심이 많더라구요. 현재 80%에 육박하는 2헥타르 이하 소농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최근 기본소득에 관심 있는 대선 예비후보와 참모들을 만나 함께 논의했고 청년 기본소득, 아동과 노인 기본소득, 농민 기본소득 이렇게 3대 공약을 만들겠다는 말을 들었어요. 제가 계속 농민 기본소득제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이 왜 필요하냐면 기본적으로 농촌에는 농민만 사는 게 아니거든요. 농가소득의 3분의 2 이상이 농외소득이고 앞으로의 농촌 공간은 다양한 직업과 세대가 어울려서 살아야하는 곳인데, 농촌에서 농민들이 떠나게 만드는 기존의 구조조정이나 규모화 정책은 이제 맞지 않아요. 농민 인증제를 통해 농민의 자격도 만들어야겠지만, 농민과 농촌 거주민이 농촌에 있기에 가능한 여러 가지 공익적 기능이 있기 때문에 그분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보조금을 직접 주고, 사업 지원은 기반 있는 중·대농에게 해야 농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충남에서 시범적으로 진행한 ‘기본소득제도’는 지자체 추가 지원 직불금과 비료지원금을 합쳐 전체 농가에 1/n로 지급하자고 제안한 겁니다. 소농이든 중대농이든 지역에서 함께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해 합의가 됐죠. 불필요한 개발 사업이나 쓸데없는 농자재를 지원했던 보조금을 기본소득으로 바꿔 전체 규모를 늘려야 해요. 불필요한 사업예산을 전환해 농가당 최소 월 10만 원은 지급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는 최소 20~30만 원, 많으면 30~40만 원까지도 지급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면 정부 기본소득과 지자체 기본소득을 합쳐 월 50만 원 정도의 소득이 보장되면 농민들은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작물을 기를 수 있습니다.

돈 되는 작물만 좇던 현실에서 벗어나 다양한 토종작물 등을 재배할 수 있으니 생태계 다양성도 회복하고, 귀농귀촌자의 정착도 돕고, 농업도 살고 농촌사람들도 살 수 있는 방향으로 갈 수 있지요. 기존의 복지체계가 가지는 맹점은 본인의 가난을 입증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였지만 기본소득은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해주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겁니다.

농민에게 요구하는 6차 산업과 해썹HACCP 인증
유: 저는 집에 조그만 공방을 차려놓고 우리밀과 쌀로 빵을 만들어요. 예전엔 집에서 고추장이나 된장 다 만들어 먹었는데 문제 없었잖아요? 그런데 2018년부터 제조업 등록한 소규모 농산물가공체도 무조건 해썹HACCP 인증을 받아야 해요. 정부 기준 인증을 만족시키려면 1억이 들고요. 판로도 구하기 어려운데 1,000원 짜리 빵을 팔기 위해 몇 천만 원짜리 시설비를 마련해야만 하는 거죠. 전통식품이나 소규모 가공은 농가 단위의 가공을 인정해주어야 하는데 해썹 인증 받으려면 시설비가 엄청나게 들어가다 보니 시작하질 못해요.

강: 법을 풀어놓으면 누군가 규제를 피해 농촌에 와서 안 좋은 음식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정부의 말도 일리는 있어요. 그러니 완주의 거점농민가공센터같은 곳이 필요해요. 진안에 유정란을 생산하는 소규모 산란계 농가가 많아요. 이 사람들이 불법으로 달걀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에요. 시중 유통 계란은 멸균 소독을 해야만 팔 수 있는데 이 멸균 소독기 하나가 제일 싼 게 4천만 원이거든요. 닭 200마리 키우는 소농이 하루에 달걀 100개 팔겠다고 4천만 원짜리 멸균 소독기를 살 수 있겠어요? 그래서 마을기업에서 이 멸균 소독기를 사서, 소농들이 소독기를 공동으로 이용하도록 지원하려고 합니다.

윤: 저희가 친환경을 하면서 제주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귤칩과 귤 효소를 만들면서 버리는 것을 최소화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지금 인증이 너무 까다로워 제가 생산한 유기농 귤을 제가 썰어서 말린 건데도 판매를 못 하고 있어요. 마을에 완주처럼 거점농민가공센터를 만들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6차 산업 장려 시책과 식품 안전성 규제가 서로 상충되고 있어요. 엄격한 시설규모와 위생 상태, 세무 등 농민이 다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제도고요. 그렇게 해서 겨우 가공으로 뭔가를 만들면 또 대기업의 같은 품목과 경쟁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어요. 가공과 유통의 부가가치를 어떻게 1차 생산자에게 돌려주는가가 6차 산업의 핵심입니다.”

신: 2000년대 중반 낙농 농민들과 독일로 유가공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독일 오스트리아에서는 농민이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수준의 소규모 가공, 전통가공을 허가하는 정책이 있어 농민이 치즈, 요구르트를 만들어 자기 집에서 판매할 수 있잖아요. 연수 후에 우리 농민들이 농림부에 농가 유가공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건의했어요. 현재는 우리나라도 농가 유가공이 허용되었죠. 이런 것이 정말 중요한 성과라고 봐요.

강: 농민이 혼자 고민하지 말고 지역에서 토론하고 공론화시키는 문화를 만들어야 해요. 20년 전에는 25억 매출 미만 회사는 운영비가 워낙 많이 들어가 해썹 시설을 만들지도 못했는데, 이후 소규모 해썹 만들라고 계속해서 목소리를 냈고 그래서 법이 바뀌었어요. 결국 적절치 못한 규제를 바꿀 수 있는 것은 계속 목소리를 내고 여론을 만드는 겁니다.

조: 6차 산업 장려 시책과 식품 안전성 규제가 서로 상충되고 있어요. 엄격한 시설규모와 위생 상태, 세무 등 농민이 다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제도고요. 그렇게 해서 겨우 가공으로 뭔가를 만들면 또 대기업과 같은 품목으로 경쟁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어요. 가공과 유통의 부가가치를 어떻게 1차 생산자에게 돌려주는가가 6차 산업의 핵심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생산자 조직화가 중요하고 조직화를 통해서 개별농가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을 텐데, 정부가 6차 산업을 굉장히 단편적으로 접근하면서 6차 산업이 결국은 가공업자들의 판이 되어버렸어요.

강: 행정가들이 머리 아프게 고민 안하고 제일 쉽게 할 수 있는 게 바로 시설 규제예요. 지난번 전북에서 아이들이 식중독에 걸린 적이 있었는데, 김치에서 식중독균이 나왔어요. 그때 이후로 급식 김치는 해썹 시설이 아니면 납품 못하게끔 만들었어요. 그런데 해썹 시설 인증받아서 납품 가능한 대기업을 보면 김치 재료 어디 것 쓰나요. 다 중국산이예요. 또 급식은 우수한 식자재를 납품하라고 하면서 거래방식은 최저가 입찰제니 앞뒤가 안 맞죠. 이런 것을 자꾸 여론화 해서 이것이 왜 나쁘고, 이것 때문에 농민은 어떤 피해를 겪는지 전하면서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농촌에서 누리다: 마을과 지역공동체가 사는 길
신: 농촌이 단순 생산의 공간이 아니라 온전한 삶을 누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할텐데 지역에서 어떻게 이런 공간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강: 복지라는 이름으로 돈만 주는 게 아니라, 마을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해요. 제가 마을 만들기를 하면서 제일 먼저 주장했던 게 우리 마음을 돌려놔야한다는 거예요. 산업화시대의 물질만능주의와 가진 자만 독식하는 글로벌 경제 마인드를 우리 마음에서 조금씩 덜어내는 인간적 회복이 필요해요.

조: 공동체성의 회복이 돈으로, 논리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칠곡금남오이마을에 갔을 때 그곳 분들이 참 행복하다고 하셨는데 그 비결이 마을에 많은 시설이 투자됐다거나 유명한 관광마을이어서가 아니었어요.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준 다음에 이것을 개인이 갖든 공동체를 위해 쓰든, 주민이 자율적인 자치를 만드는 힘을 기르게 해야 개발 위주로 획일화된 마을 만들기의 폐해를 줄일 수 있어요.”

어르신들이 마을에서 글을 배우고 시를 쓰고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존감이 높아지게 된 거죠. 우리가 농촌공동체를 얘기하면서 놓치고 있는 중요한 것은 인문학적 소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문학적 활동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 알아가면서 배려하게 되고, 그 과정이 재밌어서 또 모이고, 모이니까 새로운 것을 해보게 돼요.

강: 진안의 마을만들기 사업은 40개 마을에 기본사업 지원금으로 조건 없이 250만 원씩 주고, 이 돈을 마을이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합니다. 이 40개 마을 중 5개 마을을 선발하여 2천만 원씩, 그리고 다음 해 심사를 거쳐 2개의 으뜸마을을 뽑아 약 5천만 원씩 지원합니다. 여기까지 마을이 만 2년의 과정을 거쳐야 정부나 광역단위에서 하는 마을 사업을 신청할 수 있어요. 이 단계적인 과정을 통해 마을 안에서 공부하며 경험을 쌓고 같이 협력하는 방법을 배우게 돼요. 그 결과 큰 마을 사업을 했을 때 다른 지역보다 실패율이 훨씬 낮습니다.

박: 처음에 250만 원을 조건 없이 주지 않나요.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준 다음에 이것을 개인이 갖든 공동체를 위해 쓰든, 주민이 자율적인 자치를 만드는 힘을 기르게 해야 개발 위주로 획일화된 마을 만들기의 폐해를 줄일 수 있어요.

농촌의 미래, 청년농업인
유: 제 친구는 부모님이 유기농업 9년째 하시고 사회적으로 존경받으시는데도 자식에게는 농업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하세요. 청년여성농업인들도 농사짓는다고 말하면 직장이나 대학을 못가고 할 게 없어 그런 게 아니냐는 인식이 있어요. 농사를 직업으로 여겨주지 않는 거죠. 이런 인식을 어른들부터 좀 깨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강: 40년 전 맨발로 다니며 강냉이죽을 얻어먹던 시절을 산 사람 중에 내 자식 농업 시키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촌에서 먼저 나간 사람들은 출세하고, 농촌 사람들은 버려졌다고 느껴요. 내가 농촌을 못나간 게 한인데 누가 자식을 농사를 시키고 싶겠어요. 그렇지만 10년만 지나도 이런 인식은 많이 바뀌어 있을 거예요. 농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귀농 귀촌한 사람들의 생각이 10년 후에는 자리를 잡아 우리 농촌의 생각이 되지 않을까요. 그 때는 농업을 대하는 가치가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 봅니다.

농민의 목소리 – 2017년의 ‘농農’
신: 2017년, 우리 농업과 농촌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요?

강: 2017년도는 진통의 해가 될 거예요. 갑론을박의 장이 만들어졌고, 지금의 격동을 겪고 나면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내는 것의 중요성을 느끼지 않을까요. 많은 것이 하루아침에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미래에는 좋은 영향을 끼치는 해가 될 거라고 봐요.

윤: 이제 농업을 배제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갈 시기가 됐다고 봐요. 우리는 우리 자리를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하지 않을까요.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문제고, 그게 곧 농업이에요. 저는 계속 친환경 농사지으며 여기 계신 훌륭한 분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조: 농민은 농사만 열심히 지어도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1987년을 보면서 지금까지의 30년을 버텨왔다면, 2017년의 촛불을 보면서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은 것 같아요. 농민은 소수지만 중심의 역할을 해냈고, 함께 노력하는 사람과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희망을 봐요. 2017년은 정치와 사회, 경제 구조를 바꾸는 일에 힘써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유: 최근 쌀 우선지급금 반환 관련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보신 분들이 이전까지는 세금을 왜 농민들에게 주는지 몰랐는데 제 글을 읽고 이해가 됐다고 하셨어요. 그걸 보면서 제가 해야 할 일이 뭔지 깨달았어요.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농업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더 많이 알리려 해요. 아직 농업의 길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대안을 보여줄 수 있는 공부를 많이 해서 농업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요.

박: 작년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이제 생산주의·친일·친미의 박정희 패러다임은 끝났다는 걸 보여준 거예요. 기존 개발과 사업위주의 농정 패러다임이 앞으로는 지역과 농촌이 함께 사는 방향으로 바뀌어가길 바랍니다.

신: 오늘 함께한 담론이 2017년 농업 농촌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지점에서, 선명한 목소리로 다시 이야기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긴 시간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녹취·정리 유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