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을 아는 발명가,
트랜스포머 농기계를 만들다

김중호 대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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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전 장흥 농촌에서 태어난 7살 소년의 부모님은 농사일로 늘 바빴고, 돌봐주던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소년은 항상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어느 날, 바닷가에서 혼자 놀던 그에게 제각기 다른 모양의 경운기 엔진을 달고 공사를 하러 온 덤프트럭들이 눈에 들어온다. 폐차된 부품으로 개조한 트럭을 보며 그는 기계를 관찰하고 직접 개조하는 일에 빠져들었다.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워 11살 때부터 능숙하게 농기계를 운전할 만큼 재주가 좋았기에, 소년은 트랙터를 고쳐 부모님의 고생을 덜어줄 농기계를 만들어봐야겠다고 결심한다. 고등학생 때 트랙터부착용 콤바인을 개발하여 전국발명품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고 이후 그는 초광폭 써레, 오리발 써레, 한우 복토기 등 농민의 고충을 더는 다양한 농기계를 개발하며 인정받았다. 소년에서 청년이 된 그는 기계 하나로 트랙터, 로더, 지게차, 굴착기 등 5가지 농기계를 대신하는 세계 최초 다기능 트랙터를 발명하기에 이른다. 로보랙터를 개발한 김중호 대호㈜ 대표(41, 제25회 대산농촌문화상 농업기술부문 수상자)의 이야기다.

김중호 대표는 오리발 써레, 초광폭 써레 등 농민의 악성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유용한 농기계를 개발해왔다.
김중호 대표는 오리발 써레, 초광폭 써레 등 농민의 악성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유용한 농기계를 개발해왔다.
트랙터 로터리 작업 중인 로보랙터. 울퉁불퉁한 논에서도 로터리 깊이가 일정하도록 조절하고, 좁은 농로에서는 운전석만 돌려 후진주행이 가능하도록 설계해 농민의 편의를 높였다.
트랙터 로터리 작업 중인 로보랙터. 울퉁불퉁한 논에서도 로터리 깊이가 일정하도록 조절하고, 좁은 농로에서는 운전석만 돌려 후진주행이 가능하도록 설계해 농민의 편의를 높였다.

로보랙터,
농기계의 한계를 뛰어넘다
“농민들이 농사에 필요한 농기계를 사면 평생 그 기계 값을 갚기가 어려워요. 농지와 집 모두 빚에 저당 잡혀 열심히 일해도 재산이 하나도 없는 경우도 많고요.”
농사를 위해 여러 농기계가 필요하지만, 기계값을 감당할 여력이 없는 농민들에게 트랙터 한 대로 로터리, 로더, 지게차, 굴착기 작업이 모두 가능한 로보랙터의 기능은 더욱 빛을 발한다. 로보랙터의 제자리 선회 기술은 한국 농경지의 특성상 협소한 논과 밭에서도 작업이 원활하게 만들어 2016 대한민국발명특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작업의 피로를 더는 회전식 운전석, 트랙터를 잘 못 다루는 농민을 위한 음성방송 기능 등 로보랙터의 기술 혁신은 계속되고 있다.
“농번기가 끝날 때마다 정기 점검을 나가고, 로보랙터를 쓰는 농민들과 매년 워크숍을 열어 피드백을받아요.”
적극적으로 현장을 다니며 세심하게 농민의 필요를 살피는 김중호 대표의 노력은 로보랙터의 다양한 혁신 기능 속에 녹아들어 있다.

쉽게 탈부착 가능한 굴착기로 논두둑 만들기부터 배수로 정비까지 로보랙터 한 대로 모두 가능하다.
쉽게 탈부착 가능한 굴착기로 논두둑 만들기부터 배수로 정비까지 로보랙터 한 대로 모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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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신한 아이디어는 꼼꼼한 메모와 치밀한 설계, 끊임없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농민의 고충을 더는 농기계로 거듭난다.
참신한 아이디어는 꼼꼼한 메모와 치밀한 설계, 끊임없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농민의 고충을 더는 농기계로 거듭난다.

고정관념을 딛고
기술로 농민을 지킨다
“로보랙터는 소량생산이라 대기업처럼 대량으로 부품을 발주할 수가 없어요. 대신 자동차 수리용 부품을 사서 쓰다 보니 로보랙터 고장 원인을 보면 대개 부품 불량 문제죠. 부품업체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게 큰 숙제인데, 중소기업으로서 참 어려워요. 중소기업이 어떻게 완성차를 만드냐는 편견과 선입견을 넘기가 힘들었죠.”
몇 번의 좌절. 그래도 로보랙터 기술의 업그레이드와 안정화에 매진했다. 그 결과, 지난 6월에는 중소기업청 혁신 기술개발(R&D) 과제에 선정되어 연구과정을 지원받게 됐다. 과제의 핵심은 트랙터 현가장치(완충장치)와 자세제어 장치에 대한 연구다. 현가장치는 트랙터 운전 시 노면에서 받는 충격이나 진동을 완화해 운전자의 승차감과 안전성을 높이는 장치로, 김 대표는 이 연구가 로보랙터의 기술 안정화에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한다.
“경운기 한 번이라도 타봤다면 아실 거예요. 그 충격이 엄청나서 긴 시간 일하는 농민들 허리를 다 못쓰게 만들죠. 그래서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가 중요해요. 여태까지는 사비를 들여 개발했는데 앞으로는 국책과제를 받아서 기술을 높이려고 해요.”
대기업 연구소에 주로 돌아가는 국책 R&D과제를 수행하는 일이 중소기업의 규모와 인력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 김중호 대표에게는 큰 동력이 된다.

현장에서 직접 농민들을 만나며 농민이 원하는 농기계 개발과 지속적인 기술 개선에 힘쓰는 김중호 대표.
현장에서 직접 농민들을 만나며 농민이 원하는 농기계 개발과 지속적인 기술 개선에 힘쓰는 김중호 대표.

참신한 상상이 발명이 된다
“현실적인 조건과 장벽을 넘어, 재밌는 상상을 멈추지 말아야 해요.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대를 뛰어넘는 상상 속의 발견이 곧 발명을 만들죠.”
혁신적인 발명을 이어가는 김 대표의 중요한 동력은 참신한 상상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시뮬레이션과 현장 테스팅을 통해 그 상상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집념에 있다.
“로보랙터 개발은 고정관념을 넘지 못할 수도 있고 많은 투자비용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시작했어요. 그럼에도 시작한 이유는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저 스스로 개발의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그 결과가 농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후회가 없죠.”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여러 고비를 넘어 오늘도 바쁜 하루를 이어가는 김중호 대표. 그의 오늘에, 보다 나은 농민의 내일이 함께 겹쳐 보였다.

글·사진 유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