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농촌 정착, ‘긴 호흡’이 필요하다

 

2015년 9월 삼선배움과나눔재단 주최로 서울시 청년허브 다목적홀에서 열린 제2회 농촌지역청년포럼. 삼선배움과나눔재단은 ‘지역청년활동가 인턴십’ 사업으로 농촌지역의 청년들을 응원하고 있다. ⓒ삼선배움과나눔재단
2015년 9월 삼선배움과나눔재단 주최로 서울시 청년허브 다목적홀에서 열린제2회 농촌지역청년포럼. 삼선배움과나눔재단은 ‘지역청년활동가 인턴십’ 사업으로 농촌지역의 청년들을 응원하고 있다. ⓒ삼선배움과나눔재단

열정은 혈기가 아니라 스펙으로 증명하라?
요즘 흙수저 청춘들의 현실을 실감나게 그렸다고 해서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쌈, 마이웨이>. 충남 서산에서 상경해 백화점 인포데스크 안내원으로 일하는 여주인공 최애라(김지원 분)의 꿈은 원래 방송국 아나운서였다. 꿈을 놓을 수가 없어서, 오랜 망설임 끝에 아나운서 시험에 도전하지만, 그녀는 면접장에서 아무 질문도 받지 못한다. 먹고 사는 데 치여 남들만큼 채우지 못한, ‘초라한’ 이력서 탓이다.

면접관 : 25번. 저 친구들이 유학 가고 대학원 가고 해외봉사 가고 그럴 때 25번은 뭐했어요?
             열정은 혈기가 아니라 스펙으로 증명하는 거죠.
최애라 : 저는 돈, 벌었습니다.
면접관 : 네?
최애라 : 유학가고 해외봉사 가고 그러실 때 저는 돈, 벌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녀는 남몰래 눈물을 훔친다. “누구보다 빡세게 살았는데, 개뿔도 모르는 이력서 나부랭이가 내 모든 시간을 아는 척하는 것 같아서. 분해서, 짜증나서….”

2007년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가 처음 등장한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청춘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유례가 없는 고스펙 열풍 속에 돈이 없으면 취업 준비도 어렵다는 ‘유전취준有錢就準’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은, 아무리 ‘노오력’ 한다고 해도 반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미래에 절망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방을 떠나는 청년들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다양한 청년고용대책이 추진됐고, 여기에 매년 수조 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정부 조치들은 먹히지 않고 있다. ‘청년 체감실업률 34%, 대졸 신입사원 취업경쟁률 35.7대1’이라는 최악의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4차 산업혁명이 논의되고 있는 시대, 어쩌면 이제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임금을 지급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더 이상 불가능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지방의 청년들은 여전히 서울로, 수도권으로 이주를 감행하고 있다.
최근 한국고용정보원 김준영 부연구위원이 발표한 ‘청년인구의 지방 유출과 수도권 집중’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청년층 인구가 가장 많이 유출된 지역은 농업도시인 전남이다. 5~9세 인구(1995) 대비 25~29세 인구(2015) 비율이 66.4%에 불과하다. 1995년 전남에서 살던 5~9세 아동 3명 중 1명이 전남을 빠져나갔다는 얘기다.
지방 청년인구 이탈의 가장 큰 이유는 대학진학과 취업. 실제 대학진학연령인 20~24세가 되면 서울, 인천, 경기를 제외한 비수도권 전 지역에서 청년인구 규모가 큰 폭으로 감소한다. 병역 의무를 마친 남자와 대학 졸업자 다수가 첫 취업을 하는 시기인 25~29세가 되면 지방의 청년인구는 더 줄어든다. 지방소재 대학을 다니던 학생들까지 졸업 후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이주하기 때문이다.
비영리단체 <전주 청년들>의 오윤덕 연구팀장은 “전주에 살면서 진로를 계획하는 2030 청년의 80% 이상이 취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원하는, 혹은 그들을 고용할 수 있는 지역의 사업장은 없다”며 “턱없이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로환경 탓에 욕구 수준이 높은 청년들은 대도시나 산업시설이 있는 곳으로 떠나고, 남은 청년들은 결국 서울의 청년들처럼 현실의 불안을 일상에 갈아 넣는 공시생이 된다”고 말했다.
도시에는 청년이 넘쳐도 일자리가 없고, 농촌에는 청년이 필요하지만 그들을 유인할 전략도 기반도 부실한 셈이다.

순창귀농귀촌지원센터는 지난 6월 ‘도시청년, 시골청년을 만나다’를 주제로 올해 처음 청년학교를 열었다. ⓒ순창귀농귀촌지원센터
순창귀농귀촌지원센터는 지난 6월 ‘도시청년, 시골청년을 만나다’를 주제로 올해 처음 청년학교를 열었다. ⓒ순창귀농귀촌지원센터

부작용만 양산하는 급조된 정책은 그만
지난해 11월 농식품부는 ‘귀농·귀촌 지원 종합계획(17~21)’을 발표하면서 ‘청년의 꿈이 실현되는 활력 넘치는 농촌’을 만들겠다고 했다. 5년간 청년(2030세대) 귀농 창업 1만 가구를 육성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도 내놨다. 현재 40세 미만 농가 인구가 고작 1만 1천 명(전체 농가의 1.1%)에 불과한 현실을 감안하면 청년 인구의 유입은 농업·농촌에 매우 절박한 과제임은 분명하다.

지난 6월 9일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개최된 ‘청년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청년토론회’. 최근 전국의 청년단체들을 중심으로 청년문제 해법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김선아
지난 6월 9일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개최된 ‘청년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청년토론회’. 최근 전국의 청년단체들을 중심으로 청년문제 해법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김선아

하지만 마을에 살아본 적도, 농사를 지어본 적도, 가진 자원도 별반 없는 청년들이 혼자 힘으로 농촌에 정착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가 지원하는 농업창업자금(3억 원)이나 주택구입자금(5천만 원) 지원도 경제력 없는 20~30대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받는다고 해도 3~5년 내 소득을 올리기 어렵기 때문에 큰 규모의 부채나 대출금리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연유로 지난해 농식품부가 추진한 ‘청년 농산업 창업지원사업’은 큰 기대를 모았다. 일본의 신규취농급부금제도를 벤치마킹, 청년 창업자 300명에게 2년간 매월 80만 원의 생활안정자금을 주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갑자기 사업계획이 바뀌는 바람에 많은 청년 농민들의 원성을 샀다. 당초 2년이었던 지원기간은 1년으로 줄었고, 특히 지원자금의 사용용도를 소모성 농자재 구입 등으로 제한, 귀농 초기 안정적 정착을 위한 소득보전이라는 본래의 사업 취지는 사라졌다.
최근 행정자치부가 인구 급감에 따른 ‘지방소멸’을 막겠다며 내놓은 ‘청년희망뿌리단’ 사업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19~45세 이하 청년 50명을 모아 합숙 교육(2박 3일)과 현장 컨설팅을 거친 후 희망하는 지역에 내려가 3개월간 창업이나 지역 봉사활동을 하도록 한다는 게 골자다. 일본의 <지역부흥협력대> 사업을 벤치마킹했다는 이 사업도 청년 활동가 인건비 등 예산 확보 없이 시작해 대상자 선정에도 애를 먹었다.
충남연구원 구자인 박사는 “보내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받을 지역도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데 왜 사업부터 벌이고 보는지 모르겠다. 제도나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이 가더라도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며 “이렇게 급조해서 사업을 추진해놓고 나중에 실패의 책임을 개인이나 지역 탓으로 돌리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꼬집었다.

청년들의 지속가능한 시골살이를 위해 꼭 해결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집’이다. 산내마을 청년 모임 ‘작은자유’ 친구들은 ‘장쟈크의 움직이는 집’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제 손으로 주거문제 해결에 나섰다. ⓒ작은자유
청년들의 지속가능한 시골살이를 위해 꼭 해결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집’이다. 산내마을 청년 모임 ‘작은자유’ 친구들은 ‘장쟈크의 움직이는 집’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제 손으로 주거문제 해결에 나섰다. ⓒ작은자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너를 응원하겠다
지리산 자락, 남원 산내마을에 가면 <지리산청년활력기금>이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산내의 뜻있는 어른들이 십시일반 모은 기금으로, 산내에서 새로운 길찾기를 하는 청년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최소 1년간 월 50만 원의 활동비를 지급하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산내에서 커뮤니티 밥집 ‘살래청춘식당 마지’를 운영하는 두 명의 청년들이 기금을 받고 있다.
그 중 한 친구는 본인이 기금 덕분에 얻은 건 “시간”이라고 했다. “생계유지를 위해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잠시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시간. 멀리 있지만 함께 걷는 동지를 만나고, 내 안의 충만함을 다시 채우는 시간.”
이 프로젝트를 맡은 <지리산 이음>의 조양호 대표는 “비록 큰 금액은 아니지만, 산내의 청년들이 지리산에 살면서 해보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볼 여유를 주고 싶었다”며 “청년들의 다양한 시도와 실험이 살아있어야 마을에 활력이 생긴다. 산내에서 시작해 지리산권으로, 전국으로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10년부터 ‘지역청년활동가 인턴십’ 사업을 추진, 청년들의 농촌 정착을 돕고 있는 삼선배움과나눔재단의 이미화 국장은 “충남 홍성의 홍동마을이나 전북 남원 산내마을처럼 지역 공동체가 살아있고, 청년들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좋은 어른이 있어야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다”며 “청년층의 농촌 진입과 정착을 도울 수 있는 보다 긴 호흡의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춘들이 더 이상 꿈꾸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어 놓고, 왜 너희는 꿈이 없냐고 나무라서는 안된다. 프로 농사꾼도 농사짓기 어려운 농촌을 만들어 놓고, 용기 있게 도전해보라고 부추기는 것은 무책임하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대통령의 약속이 농촌 현장에서도 꼭 지켜지기를 고대한다.

글 김선아

31-1※필자 김선아: 한국농어민신문 기자. 1995년 첫 직장으로 한국농어민신문에 입사한 후 편집부, 국제부, 전국사회부 등을 거쳤다. 지방자치, 로컬푸드, 사회적 경제, 도농이 함께하는 삶에 관심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