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 강선아 청년농업인연합회 추진위원장
김훈규 거창군농업회의소 사무국장
이상길 한국농어민신문 논설위원
정은정 농업·농촌사회학 연구자
조원희 상주시농민회 회장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업팀장(사회)
•일시 : 2017년 6월 30일(금) 19:00~20:30
•장소 : 교보생명 계성원 비전홀
“농촌이 도시민, 전 국민을 먹여 살리는 곳이라는 국민농업의 개념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농업농촌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로 도시 소비자들을 자극하고, 농민들 스스로 이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 것도 중요하고요.”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업팀장(이하 신): 패널 분들 모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보생명과 대산농촌재단을 설립한 대산 신용호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축하하고자 연 ‘대산인의 날’ 행사에서는 26년간 재단 사업을 이어오며 인연 맺은 다섯 분을 모시고 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농의 의미, 농의 가치’ 토크쇼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젊은 친구들을 비롯해 도시에 사는 많은 이들이 농을 낯설어합니다. 매일 먹는 밥상이 농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잘 느끼지 못합니다. 농의 의미는 무엇인지, 또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농의 가치가 지속 가능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지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김훈규 거창군농업회의소 사무국장(이하 김): 여태껏 농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 농촌을 모델 삼거나, 한국형 모델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등 논의는 많았지만 한계에 부딪히곤 했어요. 애초에 농업회의소를 반대하는 생각이 많았던 제가 지금은 농업회의소에서 일하고 그 의미를 전파하게 되기까지, 대산해외농업연수를 통해 받은 영감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저도 귀농해서 15년 동안 농사짓고 살았지만, 농촌 현장에서 잔뼈 굵은 분들과 이야기 나누면 제 지식이 얕아 부끄러워요. 훨씬 더 오래 농촌에서 살아온 분들이 갈증을 느끼는 부분을 농업회의소를 통해서 대변해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정은정 농업·농촌사회학 연구자(이하 정): 대학교에서 폐과 2순위가 사회학과인데 제 전공은 거기에 농촌이 붙으니…. 대학원에 농촌사회학 전공하는 지도교수님도 안 계셨고, 농업·농촌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고민이 늘 있어요. 농업·농촌 전공하는 대학생들도 그 길을 갈 생각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이라는 가치가 왜 필요한지는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정작 농민들도 농촌과 음식의 중요성을 잘 모르고 대기업에 먹거리를 의존하게 되는 현실을 고민하며 기업화를 주제로 삼게 됐고요. 부모님이 남양주에서 시설재배를 하셨는데, 바쁘기 때문에 매일 라면과 커피믹스를 먹고 살았거든요. 오히려 전남이나 강원 등 도서지역에 아토피나 암, 식원성 질병의 발병률이 높고 강남·과천·분당은 낮은 통계자료를 보고, 농촌지역의 먹거리 접근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절감해요. 이런 고민 속에서 <대한민국 치킨전>을 쓰게 됐죠.
이상길 한국농어민신문 논설위원(이하 이): 제가 기사 쓰면서 관심 갖는 것은 두 가지, 농정의 구조와 관료예요. 김영삼 정부 때 구조개선 사업에 들어가면서 농민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농민을 농업인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어요. 원래 농민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자기노동을 투입하는 생산노동자였는데 농민을 농업인이라고 바꿔 부르기 시작하면서 대농과 기업농을 농의 정책대상으로 집어넣었고, 그때부터 농촌 양극화가 빚어졌죠. 농업 관련 산업(농약, 자재, 비료) 종사자도 농업정책 대상으로 삼아 총 GDP만 따지고, 더 중요한 농민 개별의 소득은 오히려 뒷전에 두는 잘못을 저질러왔어요.
또 최근 고용노동부에서 사회적 기업을 통해 일자리 창출하는 방식으로 농정을 하면 안 된다고 봐요. 지원을 받은 사회적 기업들은 수익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거짓 장부를 만들고, 지원이 끊기면 살아남을 수가 없죠. 현재 사회적 기업들은 전부 정부가 해야 하는 복지 일을 대신 하고 있기 때문에 수익을 낼 수 없는데 수익을 바라는 게 말이 안 됩니다. 청년들을 그런 사회적 기업·협동조합에서 3~5년 지원금 받고 일하게 하면 그 이후 지원금이 끊기고 조직의 존속이 불가능할 때, 나이를 먹은 청년들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죠. 농협과 농정에서 농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문제의식을 갖고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조원희 상주시농민회 회장(이하 조): 서울에서 학교 마치고 30년은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24년째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제가 중심에 두려는 활동은 농민회 활동이에요. 가장 필요하면서도 사람들이 하지 않으려는 활동이니까요.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농촌사회가 급격하게 무너지는 과정을 직접 느끼고 있고, 그 해결의 답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2009년부터 7~8년 귀농귀촌일을 해보니 농촌 문화, 복지, 교육, 청년…. 다양한 영역이 열리더라고요. 이걸 지역에서 어떻게 접근하여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지역주민들의 삶에 변화를 만들 것인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 이상길 위원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통상개방국가로 가기 위해 농업 구조조정을 해온 지난 40년간의 설계주의, 생산주의 농정은 실패했으니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가야 해요. 농정을 수행하는 주체가 농민, 농촌에 사는 주민이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죠. 농민을 오히려 계속 객체화 시켜왔고, 그러니 돈은 돈대로 써도 농촌은 망가지고 대안을 만들지 못했어요. 마을과 지역에 기반을 둔 농민이 주체적으로 농정, 농협, 농촌의 변화 같은 거대담론의 몸통을 흔들 힘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강선아 청년농업인연합회 추진위원장(이하 강): 저는 청년농업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현재 1~2년 정도 된 4개의 청년농업인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4-H, 전남 청년농민들이 직접 유통을 해보자고 만든 협동조합 지오쿱ZIOCOOP과 농협에서 청년여성농업인을 육성하고자 만든 청년여성농업인CEO연합회, 그리고 통합적인 네트워킹을 위해 만든 청년농업인연합회까지. 단체를 통해 만난 청년농업인들이 서로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굉장히 친해요. 그만큼 서로 많은 공감대를 이루고, 네트워킹이 중요하다고 봐요.
금수저라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스스로를 ‘금호미’라고 소개해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덕에 친환경 농사를 가까이 배웠기에 농사도 빨리 익히고, 주목을 많이 받을 수 있었어요. 금호미가 금수저와 다른 건, 금수저는 밥만 떠먹으면 되는데 금호미는 어쨌든 “밭을 매야 한다”는 거죠. 처음에는 승계농 청년농업인들이 잘한다는 응원과 지지를 많이 받았지만 요즘은 부모 잘 만나서 쉽게 농사짓는다는 비난도 많아요. 부모님의 도움도 컸지만 청년들이 직접 밭에서 일하고 농촌에서 길을 만들며 고생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걸 많이 알리고 싶어요. 청년농업인 내부에서도 계급화와 선입견, 상대적인 결핍감, 부모세대와의 갈등을 느끼는 문제에 대한 고민도 많고요. 농촌인구 감소의 중요한 대안이 결국 청년농업인이기에, 청년들의 고민을 들어주셨으면 해요.
농과 먹거리
조: 정은정 선생님이 정작 농촌에서 먹거리 문제에 큰 관심이 없고, 농민들이 농촌을 잘 모르는 것이 문제라고 하신 말씀에 공감이 갑니다.
김: 대산농촌재단의 도농공감지원사업 ‘안전한 밥상 만들기’가 주로 도시 소비자들이 농촌에 와서 먹거리와 농에 관한 배움을 얻어가는 프로그램인데, 정작 농촌에서 아이 키우는 농민은 건강한 먹거리 교육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어요. 또 정확한 정보가 없어 도시 소비자들이 농과 먹거리를 많이 왜곡하고 있죠. 예를 들면 도시 소비자들이 막연하게 기대하는 크고 예쁜 농산물을 만들기 위해 농민이 어쩔 수 없이 농약과 호르몬제를 많이 투입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요.
조: 안전한 밥상에서 제일 중요한 핵심은 생협이에요. 생협에서 오랫동안 먹거리 교육의 저변을 넓혀왔죠. 농촌에도 건강한 먹거리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면 많은 것이 바뀔 겁니다.
정: 지역에 놀이문화가 없으니 게임에 빠지는 농촌 청소년들의 인스턴트·육식위주 식단으로 인한 비만·당뇨 문제도 심각하고, 농촌에는 먹거리를 챙겨줄 부모가 없는 조손가정도 많다보니 농촌지역에 건강한 공공급식이 절실해요. 유일하게 농촌을 지탱할 수 있는 희망이자 먹거리 문제의 해결책은 공공급식이라고 봐요. 가정에서 아무리 열심히 밥을 해먹어도 1년에 쌀 한 가마를 못 먹는데, 하루에 쌀 서너 가마를 쓸 수 있는 게 학교급식이니까요.
강: 청년농업인들이 서울시 친환경급식담당관, 희망먹거리네트워크와 함께 토론회를 하며 서울시 먹거리 정책에서 청년농업인의 역할이나 아이디어를 논의한 적이 있어요. 그 토론회에서 친환경 농가는 적극 논의하고 반기는 반면 관행농가는 혼란스러워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더라고요.
정: 먹거리가 유기농이나 친환경에 방점이 찍혀버리면 수입 유기농산물이 더 좋은 것이라고 소비자들이 착각하기 쉬워요. 건강한 먹거리를 이야기할 때는 뭘 먹으면 병난다는 식의 웰빙, 신체 담론으로만 빠지지 말고 지역을 지탱하는 친환경 농업을 지지한다는 의의에 방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 GMO나 친환경 먹거리를 산업적으로만 접근해버리면, 영양학 전문가가 GMO 문제없다고 했을 때 답이 없어져요. 생태계 순환의 고리를 해치는 GMO는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해도 농업·농촌의 지속을 위해 제한해야 합니다.
이: 지금 정부는 GMO가 안전하다는 입장이에요. 건강한 땅을 지키고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GMO는 안된다고 말하면, 일반 사람들은 피부에 와 닿지 않아요. 그래서 GMO는 건강에 좋지 않다, 그렇게 ‘항암 단체’가 되어서라도 자극적으로 GMO의 위험성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정: 농민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GMO 씨앗을 심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 문제예요. 그래서 더욱 친환경 먹거리를 먹는 이유를 안전성보다 농업농촌의 공간적 가치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소비자로서, 아이 키우는 주부로서도 경제적 어려움 앞에서는 건강한 먹거리를 먼저 생각하기가 쉽지 않긴 하지만요.
이: 이런 부분은 정부가 나서야 하는 일이라고 봐요. 교과서에 먹거리의 가치, 농업·농촌의 가치를 넣어 장기적으로 뜻을 공유해야 합니다.
농민과 농촌공동체: 농민이 이끄는 농정
김: 농업 성격상 피할 수 없는 소득의 불안정성, 농사상황의 불확실성 때문에 농민의 스트레스가 극심하고 농촌의 흡연·음주·발병률이 높아요. 그래서 농민 기본소득이나 월급제는 소득뿐만 아니라 농촌 삶의 질 개선 측면에서도 꼭 고려해야 해요. 농업인 월급제는 지금 계약재배 형태로 실시하고 있지만 복지 측면에서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고 봐요.
지금 농협 지점의 역할이 농약 판매상이나 금융창고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지역 복지정책과 주민자치센터·농협 지원사업을 보면 중복도 많고 지원이 편중된 경우가 많고요. 농협이나 지자체, 지역 중간지원조직이 권역사업에 직접 참여하며 면 단위 삶의 질과 관련된 지원사업을 리스트업해서 지역발전계획에 반영해야 해요. 실적평가를 위해 보여주기식 사업이나 내용 없는 사업을 MOU부터 맺고 보는 것도 지양하고요.
조: 말씀하신 것처럼 농협이 시장가격을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구조예요. 그래서 농협이 나서서 산지 생산자, 품목별 연합회를 조직해야 한다고 봐요. 이를 통해 농민이 가격을 결정할 수 있게 하고, 일정 가격 이하로 가면 출하금지를 하거나 계약재배에서 손실이 나면 보장해주는 것이 농협의 진짜 역할이죠. 그러지 않으면 농협이 대형마트와 다를 게 없어져요.
신: 독일에서는 86%의 국민이 농업농촌을 위해 세금(보조금)을 내는 것에 찬성한다는 공감대가 있습니다. 독일은 2차 대전을 겪은 후 농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정부에서 농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홍보하며 적극 키운 반면, 한국은 다른 산업을 키우기 위해 농업을 희생시켰죠. 농업을 모두를 위한 공공재로 보는 유럽 국민처럼 농을 어떻게 공공의 영역으로 가져올 것인가, 농이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임을, 농에 내 세금을 내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정: 농촌의 ‘존엄한 소멸’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상 자연스러운 소멸을 선택할 주체권을 농업농촌에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농촌을 그대로 두면 자연스럽게 살다가 사라졌을 것을, 컨설팅 회사가 주도한 불필요한 개발 과정이 오히려 농촌에 갈등을 빚고 있는 것처럼요.
김: 컨설팅 회사들은 실적을 만드는 데 집중하느라 놓치는 것이 많아요. 농촌 노인들은 계속해서 실적 만들기에 동원 되고, 그 실적은 컨설팅 회사가 고스란히 가져가는 느낌이 들죠. 한 번은 마을교육선정사업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 갔는데, 강의 중간에 같은 자리에서 현수막을 바꾸고 주민들 옷을 갈아입히는 거예요. 계절별로 강의했다고 거짓실적보고를 하기 위해 그런 거죠. 주민들도 이 사업을 꼭 해야 된다는 생각에 거기 합의한 것이고요.
신: 선진국의 농업정책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에도 이미 있는 정책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거든요. 비슷한 정책이 한국에서는 제대로 효과를 얻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조: 목표가 다르니 결과도 달라지죠. 우리는 농촌을 낙후된 지역으로 보고 소득을 만들기 위해 외부에서 뭔가를 투입하죠. 가격을 높이 받아야 소득이 보장되게끔 가격정책과 소득정책을 일치시키고, 돈을 많이 버는 농민에게 정책자금과 인센티브를 몰아주는 게 고착됐고요. 농업농촌을 공간적, 문화적인 삶의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산업적인 관점으로만 받아들이기에 세금을 농업에 쓰는 것에 아까워하는 겁니다.
김: 제가 지역 권역사업에 자문위원으로 들어가는데, 교수가 저보고 대학원 진학을 해서 박사학위를 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야 농촌에서 힘을 갖고 일할 수 있다고. 그 뜻은 곧 학위가 없는 지역민은 주도권에서 밀려나기 쉽다는 거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고학력 컨설팅업자가 퍼실리테이터로 들어와서 농촌을 장악할지 걱정스러워요. 농촌이나 그 지역을 잘 모르는 외부 인력이 컨설팅업자로 들어와서 일자리 창출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봐요.
조: 현장에서 마을 사업을 하다 보니 이런 문제점을 피부로 느껴요. 그래서 우리 마을은 컨설팅을 하라고 해도 잘 안하죠.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는 것도 농민들에게 필요한 부분이지만, 그 도움은 몇 개월짜리 단기사업을 받은 컨설팅회사들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보다는 농업·농촌과 지역에 대한 애정이 사업의 성공을 좌우한다고 봐요. 그런 걸 할 수 있는 지역밀착형 중간지원조직이 생겨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행정과 민간이 함께 가야 합니다.
강: 6차산업 지원센터에서 해마다 6차산업 대전을 열어 시상을 하는데, 전남에서 작년에 저희 우리원을 추천하고 싶다고 보러왔어요. 그런데 현재 쌀 생산량이 줄어 매출이 감소하고 있는 걸 문제 삼아 안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우리원이 38년 동안 유기농사 지으며 알려온 가치는 보지 않고 정량적인 수치만 기준으로 수상자를 선정하고 심사하는 거죠. 마찬가지로 농업·농촌, 청년농업인을 바라볼 때도 정량적인 수치를 기준으로만 판단하고 있지 않았나 싶어요. 오랫동안 지역에서 제대로 농사지어온 진짜 농민보다 석사학위가 있는 사람이 더 우대받는 경우를 보면서도 그런 걸 느끼죠. 진짜 농민들이 이런 평가로 상처받게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김: 농민들은 끊임없이 가르쳐야 하는 대상이고, 외부 전문가가 농촌에 들어가야 하고, 행정이 견인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실제로는 외부에서 농업농촌을 이용할 것 다 이용하고 난 후에 도와주겠다고 하는 것이 모순적이지요. 농촌이 도시민, 전 국민을 먹여 살리는 곳이라는 국민농업의 개념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농업농촌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로 도시 소비자들을 자극하고, 농민들 스스로 이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 것도 중요하고요.
조: 농민들이 농업이나 자기 지역에 대한 책임감이 약한 것은 사실이나, 여태까지 그럴 기회나 자기결정권을 갖지 못해본 탓도 큽니다. 농민은 외부에서 이미 결정된 것을 항상 받아서 할 수밖에 없게 만든 기존의 농정 방식이 문제라고 봅니다. 토론회에서도 교수나 학자들이 기조 발제를 다 하고 현장의 농민은 고작 5~10분 정도 사례발표나 코멘트 하는 것이 전부이지 않나요. 농민이 바라는 농정체계를 주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교수, 관료, 지방 공무원을 토론자로 앉히고 농민이 기조발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경험에서부터 농민이 자기 지역과 농업에 대한 역량과 책임감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 봐요. 실제 지방농정에 필요한 정책을 농민들이 직접 함께 짜는 거죠.
강: 청년농업인 내부에서는 4차 산업, 스마트팜, ICT 같은 것에 굉장히 회의적이에요. 스마트팜에 대해서도 정부에서 광고하는 막연한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정확한 정보가 공유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지금 농민들이 정책 제시를 할 수 있는 공식적인 루트가 있나요? 인맥을 통해 개별적으로 만나 요청하는 정책이 아니라, 모든 농민들 누구나 제안을 할 수 있는 투명한 정책제안의 길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청년농업인연합도 정책국을 두어 청년농업정책을 우리가 직접 연구하고 발의하기 위해 노력중이에요.
농의 미래, 청년농업인
강: 최근 저희 청년농업인들이 계속 미디어에서 조명 받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조: 귀농귀촌센터를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청년귀농사업이었어요. 그만큼 세대가 단절되어 있고, 청년들이 농촌에 관해 갖고 있는 정보가 굉장히 관념적이거나 부족하기도 해요. 청년들의 감각적인 특성이 기존의 농민들과 달라서 갈등을 겪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20~30대 귀농인은 농촌에 들어올 경제적 기반을 만들기 어려운 게 문제입니다. 농촌도 자본화 되어서 초기 자본이 많이 필요하고, 진입장벽도 높아진 반면 청년들은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농촌 안에서 내부 양극화가 심한 문제의 영향을 청년들도 그대로 받고 있는 것 같아요. 부모의 농업을 이어받은 승계농과 그런 기반 없이 온 청년은 하늘과 땅 차이죠.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청년농민 내부의 양극화를 해소할 동반 성장, 동반 행복의 방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정부는 청년농업인을 키워야만 하는 상황에 와있기 때문에, 농민 기본소득을 얘기할 때도 청년농민부터 시작할 것 같은데 이때 청년들이 주체성을 갖고 농촌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 봅니다.
이: 청년들이 농업을 이끌어간다는 다큐가 나올 만큼 대세이고, 그럴 필요도 있으나 일부의 스타 농부들 성공사례만 침소봉대하고 아이돌처럼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강: 말씀하신 대로 청년의 가장 큰 약점이 자본이 없다는 겁니다. 뭔가를 해보려할 때 기반이나 자본이 없기 때문에 큰 단체에 소속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아요. 청년농업인연합도 단체에 소속되지 않고 자체 회비로 운영해보려 하는데 걱정이 많습니다. 또 청년들을 위한 공간과 자원이 절실해요. 전남에서도 청년농업인들이 회의를 하려고 일이 끝난 뒤 만나면 그때부터 지역에 있는 카페를 다 뒤져요. 카페들이 보통 밤 10시~11시면 문을 닫는데 우리 회의는 그때 안 끝나니까 공간을 찾다 술집에서 회의 하기도 하고요.
조: 홍성 풀무학교, 젊은협업농장처럼 지역마다 일하고 판매할 수 있는 거점공간을 만들어서 청년들이 2~3년 지역을 알아가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지역에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상주에서도 그런 준비를 하고 있고요. 지금 농촌에 정착하려는 청년들은 원하는 것이 훨씬 다양하고 복잡해 그만큼 다양한 지역사회가 받아줘야 합니다. 지역은 개인의 활동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고, 개인은 지역사회와 함께하려고 노력하면 훨씬 정착이 수월해질 거라 봅니다. 청년농 사이의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청년과 지역의 네트워크도 중요하게 다루면 공간과 자원은 지역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강: 청년단체 사이에서도 서로 견제하거나 다른 계급에 대한 위화감이 아직 남아있어 지역과의 연대까지 가기에는 아직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차후에는 지역별로 네트워크를 활성화 시키려고 합니다.
신: 먹거리부터 농민이 주체가 되는 농촌, 귀농귀촌과 청년농민까지 뜻깊은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농은 계속 우리 삶의 뿌리죠. 대산 신용호 선생님이 26년 전 대산농촌재단을 설립할 때 이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도 농이 가지는 근본적인 가치는 변함이 없습니다. 대산농촌재단은 앞으로도 계속 농의 가치를 이어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대산인의 날 공감토크쇼와 토크쇼 사전모임 내용을 종합하여 재구성한 글입니다.
녹취·정리 유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