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총행복과 농정개혁

최근 한의사를 만났더니 보약이 팔리지 않아 힘들다고 했다. 무엇으로 돈을 버냐고 하니, 다이어트 약을 판다고 한다. 하루 세끼를 제대로 먹지 못하던 절대적 빈곤을 경험한 나로서는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우리나라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 것이다. 문제는 언제부턴가 경제는 성장하는데 국민의 행복은 증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유엔이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등 국제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성장과 행복의 괴리’가 매우 크고, 행복지수가 하위권에 속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960~70년대 개발독재 이래 우리 사회를 지배한 이데올로기는 경제성장지상주의다. 정부는 국민에게 경제가 성장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니, 경제성장을 위해서 다른 것들은 희생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잘살아보세’라고 노래하며 새벽종을 울리던 새마을운동, ‘100억 불 수출 – 1,000불 소득 – 마이카, 대망의 1980년대!’를 외친 유신독재 이래 우리는 모두 경제성장의 포로가 되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던 절대빈곤 시대에 만들어진 경제성장 지상주의는 1997년 말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를 계기로 도입된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우리 몸속에 체화되고 심화되었다. 농업은 성장지상주의의 희생양이 되었다. 모든 것을 GDP(국내총생산) 증대에 대한 기여도로 평가하는 성장주의에서 농업은 보잘것 없는 산업이었다. 더욱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광풍 속에서 농업은 급속히 설 자리를 잃어갔다. 농업과 농촌이 지닌 다양한 가치와 국민의 행복한 삶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 등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농업의 가치는 오로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만으로 평가되었고, 그 비중이 급속히 낮아지면서 농업과 농촌은 무시해도 좋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더는 고도성장은커녕 저성장조차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경제가 성장해도 국민이 행복하지 않고, 더욱이 성장제일주의로도 경제성장조차 안 된다면 이 나라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 경제시스템을 바꾸고, 정치도 바꾸어야 한다. 우선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비록 경제가 성장하지 않더라도 더불어 행복할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경제성장에서 ‘국민총행복’(GNH)으로 전환해야 한다. 국민총행복은 모든 국민의 행복, 특히 ‘아직 행복하지 않은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경제성장지상주의는 농정분야에서는 경쟁력 지상주의로 나타났다. 경쟁력 지상주의는 생산주의 농정의 극단적 표현이다. 생산주의 농정은 농업구조조정과 농업생산 투입재 지원으로 농업생산성을 높여 농업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러한 생산주의 농정은 농산물시장개방이 본격화하면서 ‘국제경쟁력 있는 농업만이 살길’이라는 경쟁력 지상주의로 강화되었다. 경쟁력 지상주의에 기초한 역대 정부의 농정은 막대한 재정투자에도 불구하고 농업과 농촌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과잉생산과 수입농산물의 급증 등으로 농산물가격이 폭락하여 농업소득이 감소하고, 농가부채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국가 농정의 기본 틀부터 바꾸겠다. 경쟁과 효율만 강조하고 추구해온 농정에 대한 국가 철학과 기조를 근본부터 바꾸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어떠한 개혁 방안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사회의 패러다임을 경제성장에서 국민총행복으로 전환하는 것에 발맞추어, 농정의 패러다임을 경쟁력 지상주의에서 ‘국민총행복의 증진에 기여’하고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다기능 농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농업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는 안전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소비할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농업은 식량생산과 함께 농업생산으로부터 파생되는 경제적, 사회문화적, 환경적으로 다양한 기능(multifuctionality)을 수행한다. 이러한 다기능 농업에 기초하여 농촌은 단순한 식량생산 공간이 아니라 생활공간, 경제활동 공간, 환경 및 경관 공간, 문화 및 휴식 공간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농업과 농촌의 다기능은 건강한 식품의 안정적 공급, 자연자원과 환경의 보전, 생물다양성의 증진, 전통문화의 계승발전, 공동체의 증진, 휴양과 교육 공간의 제공, 지역사회의 유지 등을 통해 국민총행복에 기여한다.
  1729년, 부탄 법전은 ‘백성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선언했다. 농민이 행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 다가온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서 농업분야를 희생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47-※필자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충남발전연구원장을 역임했다.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를 만들어갈 지역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탄을 네 차례 다녀온 후 『부탄 행복의 비밀』(2017,한울아카데미)을 집필하였고, 국민총행복의 관점에서 농정개혁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