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친구의 집에 머물다

– 뉴질랜드의 매력, 팜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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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명성만큼은 아니라 해도, 팜스테이는 뉴질랜드의 주요 관광 상품이다. 오클랜드에서 차로 2시간 남쪽으로 내려가면 있는 해밀턴 시. 이곳에서 팜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루럴 투어Rural Tours를 통해 뉴질랜드 농촌에서 1박 2일을 경험했다.
 “뉴질랜드에서 휴가를 보내고,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고, 상쾌한 공기를 쐬며 진정한 ‘키위’(뉴질랜드인) 식 환대를 받으라”는 선전 문구가 마음을 설레게 했다.

뉴질랜드 농민 데렉과 클레어 부부.
뉴질랜드 농민 데렉과 클레어 부부.
젖소를 방목하는 패덕을 옮기고 있다. 데렉의 아버지가 1950년대부터 일군 목장이다.
젖소를 방목하는 패덕을 옮기고 있다. 데렉의 아버지가 1950년대부터 일군 목장이다.

1박 2일간 뉴질랜드 농가에서 묵기로 했다. 루럴 투어Rural Tours 사무실에서 기다리니 민박집 주인들이 하나 둘 차를 몰고 나타났다. 클레어Clair Finlay는 상냥하게 웃으며 우리 일행을 차로 안내했다.
 이동하는 동안 서툰 영어와 친절한 영어, 어색한 웃음과 자연스러운 침묵이 번갈아 들락날락거렸다.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클레어의 집. 정갈한 정원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앞마당에는 다양한 꽃과 나무가, 뒷마당에는 작은 텃밭이 있다. 채소를 직접 키워서 식탁에 올린다고 했다.

아내는 집안과 정원을, 남편은 젖소를 키운다
클레어의 남편 데렉Dereck은 농민이다. 아버지가 1950년대부터 일군 목장을 이어받아 젖소 100여 마리를 키우고 우유를 생산해 폰데라(우유가공회사)에 납유한다. 아들 에이단Ethan이 아침저녁으로 일을 돕는 것 외에 별도의 인력은 없다고 했다.
 데렉이 암소들을 향해 ‘컴~온~~’하고 크게 소리치자 우르르 몰려오는 소들. 그는 능숙한 솜씨로 소들을 몰아 옆 울타리로 옮겼다.
  “패덕(paddock, 울타리를 쳐놓은 방목지)을 옮기는 중이다. 풀이 너무 많으면 소가 한없이 뜯어먹다 배가 터져 죽기도 한다. 그래서 풀이 적당히 있는 곳으로 옮긴다.”
 데렉이 말했다. 3년 전 아침에 농장에 나가보니 소 다섯 마리가 배가 잔뜩 부풀어오른 채 죽어있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했다.
 농장에는 말리라는 귀여운 개가 있는데, 데렉이 밭을 망쳐놓는 토끼를 사냥해 나무 위에 걸어놓으면 말리가 먹는다고 했다. ‘먹는다’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끔찍한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이내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텃밭에서 가꾼 감자와 신선한 채소, 바싹 구운 뉴질랜드식 돼지고기, 딸기와 크림이 듬뿍 든 케이크와 아이스크림 같은 키위식 저녁식사가 차려졌다. 요즈음 유행하는 여행 프로그램에서처럼, 반갑고 고마운 맛이었다.

데렉은 농장을, 클레어는 집안과 정원을 가꾸며 산다.
데렉은 농장을, 클레어는 집안과 정원을 가꾸며 산다.

뉴질랜드 농민의 취미, 그 품격이란
데렉의 집에는 100년이 넘은 카메라가 여러 대 있었다. 아주 오래된 3D 거울 같은 희귀한 물건도 많았다. 그는 자주 골동품 시장에 나가 카메라를 사고, 틈이 나면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직접 찍은 사진을 보니 모두 멋진 화보들이었다.
 “와!” 우리의 감탄에 기분이 좋아진 덕분인지, 그는 차고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멋진 빈티지 자동차가 떡하니 있었다. 
 “내가 만들었어.” 
  데렉은 자신의 진짜 취미가 오래된 차를 튜닝하는 것이라며 한껏 자랑했다. 그러다 문득 그가 내게 물었다. 
 “취미가 뭐야?”
 “글쎄 딱히 취미라고 할 게….”
 “그러면 안 되지. 삶을 즐겨야 해.”
 뉴질랜드 농민은 이렇게 삶을 즐기는구나. 클레어의 정원을 보자마자 “나는 평생 농사만 지었는데, 이렇게 예쁜 농가에 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리던 일행 중 한 사람이 더욱 안쓰럽고,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변변한 취미 하나 없는 나 자신도 안타까웠다.

데렉이 보여준 100년 된 3D 거울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데렉이 보여준 100년 된 3D 거울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데렉이 튜닝하여 완성한 빈티지 자동차. 농민인 데렉은 사진찍기, 자동차 튜닝 등 다양한 취미로 농촌생활을 즐긴다.데렉이 튜닝하여 완성한 빈티지 자동차. 농민인 데렉은 사진찍기, 자동차 튜닝 등 다양한 취미로 농촌생활을 즐긴다.

외국인 친구의 집에 초대를 받는 것처럼
9시가 넘자, 뉴질랜드인 친구들은 굿나잇 인사를 했다. 전화도 잘 터지지 않는 낯선 농촌의 밤은, 농부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는 노력과 함께 조용히 깊어갔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데렉은 벌써 농장에 나가 있었다. 창밖으로 멀리 에이단이 물을 뿌리며 청소하는 모습이 보였다. 매년 여름 송아지 40여 마리가 태어나면 송아지를 돌보는 것도 에이단의 몫이라 했다.

아침 식사 후 클레어와 차를 마시면서 팜스테이 하는 이유를 물었다.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당신들은 참 여유 있게 삶을 즐기며 농업을 하는 것 같다고 했더니, “힘들다. 나뿐 아니라 농민은 다 힘들다. 대농은 대출금 때문에 힘들고 소농은 수익이 나지 않아 힘들다.”고 했다.
 아들에게 농업을 물려줄 거냐는 다소 의도적인 질문을 했다. 유럽에서 내가 만난 농민들은 하나같이 “물론!”이라고 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런데 “본인이 다른 일을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도록 할 것”이라는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유럽 농민과 온도 차가 느껴지는 답이었다.    

뉴질랜드 팜스테이는 외국인 친구 집에 초대받아 온 느낌을 준다.
뉴질랜드 팜스테이는 외국인 친구 집에 초대받아 온 느낌을 준다.

  외국인 친구의 집에 초대받아 보낸 것 같은, 어색하지만 신선하고 재미있고 또 생각이 많아진 1박 2일이었다.  
  마냥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는 그들에게도 고단한 일상이 있음을, 상식이 충만해 보이는 곳에도 비상식과 불공평 역시 존재함을. 상냥한 미소를 띤 클레어의 옆에 맘이 잠시 머물렀다. ‘진정한 키위식’ 환대에 대한 화답이었다.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