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중계] 대산인의 날 – 대산의 100년, 농을 잇다
농農, 대산을 만나다
– 대산장학생들이 말하는 농農 이야기
재단은 1992년부터 26년간 차세대 농업인재로 활약할 대산리더장학생을 선발하여 농업·농촌의 가치와 현황, 비전을 제시하는 국내 농업 선진지 연수와 전문가 멘토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해왔다. 2009년부터는 농업전문언론장학생을 함께 선발하여 농업·농촌의 중요성을 알리는 언론인으로 양성했다. 대산장학생은 2017년 현재 총 22기, 370여 명에 이른다.
지난 6월 30일, 대산 신용호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대산인의 날. 우리 농업계의 주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선배 대산장학생과 후배 장학생이 만나 농農을 주제로 나눈 이야기를 담았다. 이 자리에는 강혜원 영광포도원 대표(대산장학생 1기),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대산장학생 2기), 이재덕 경향신문 기자(대산장학생 15기)가 함께했다.
이재덕 경향신문 기자(이하 이): 대산농촌재단과 인연을 맺어 이곳에 계신 분들 모두 제 가족, 동지 같아서 더욱 반갑습니다. 저는 2010년에 농업전문언론장학생으로 선발되었고 현재 경향신문 기자입니다. 오늘은 각자 다른 자리에서 활동하는 대산 장학생 선후배가 만나 농農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강혜원 영광포도원 대표(이하 강): 저는 22년째 전북 완주군에서 유기농 포도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1992년 대산장학생 연수에서 생생한 농업 현장을 보며 농업을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틈날 때마다 하우스 공사 현장에 가서 시설농업을 공부하며 포도재배교육을 받았어요. 그리고는 빚을 내서 포도 시설재배를 시작했습니다. 시작만 하면 금방 잘 될 줄 알았는데 포도가 생각처럼 자라지 않더군요. 오랫동안 빚에 쫓기고 태풍, 폭설에 피해를 보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포도 재배에만 매달렸어요. 대산농촌재단을 통해 훌륭한 농민들을 많이 만났기에 힘들 때마다 저도 그분들처럼 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지금은 그 결실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이하 박): 저는 충남에서 농민 기본소득, 농민 인권, 중국 농촌, 3농 혁신 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 농촌에서 자라며 농민이 빚에 시달리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왜 우리 아버지처럼 열심히 일하는 농민들도 가난한 걸까’, ‘사람들이 농촌을 왜 떠날까’ 의문이 깊어진 끝에 농업·농촌·농민에 대해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농대에 진학했습니다. 평생 논밭을 일구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에 마침 대산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지요. 저는 대산이 지금의 저를 이끌어줬다고 생각합니다.
현장 농민에게서 제대로 배운 농업
학교에선 배울 수 없는 경험과 지식
이: 아시다시피 대산장학생 연수는 일정이 알차기로 유명한데, 선배님들께서는 연수에서 어떤 만남이 가장 인상적이셨는지 궁금합니다.
강: 연수를 통해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지요. 저는 1992년 첫 연수에서 장수사과를 만드신 故 송재득 선생님을 뵌 게 기억에 남아요. 그분을 만나 농작물의 성장 원리에 눈을 뜨게 됐고, 이후 제가 포도 재배의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도 그때 배운 원리를 통해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었어요.
박: 저도 장수사과시험장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농민의 고충을 잘 아는 현장 농민의 기술개발과 보급 사례, 왜성대목을 이용해 사과밀식재배를 성공시키고 지역에 보급한 송재득 농민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던 농업현장의 경험과 지식을 많이 얻었어요.
12년간 150종 포도 재배,
억대 농부가 되겠다는 욕심 대신
땅을 살리는 풀 농업으로 유기농 포도 생산
이: 예전에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청년들을 농업에 끌어들인다고 ‘억대 농부’를 많이 소개하고 홍보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모두 실패했죠. 강혜원 선배님은 FTA로 칠레나 페루 등지에서 포도가 많이 수입되는 와중에도 농업인의 경쟁력을 잃지 않고 계시고, 누구보다도 농업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현장에서 많이 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강: 저도 사실 억대 농부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실제로 농사를 시작해보니 빚을 내서 하우스를 지었는데 이자도 못 낼 정도의 수익이 나오더군요. 그때 굉장히 좌절했고 이걸 어떻게 헤쳐 나갈지 많이 고민한 끝에 제가 얻은 답은,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12년이란 세월을 포도 재배와 품종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150여 종의 포도를 재배해봤는데, 전 세계에 약 6천 종의 포도가 있고 아프리카에서 러시아까지 많은 지역에서 포도를 재배해요. 그런데 포도를 제대로 생산하는 기술은 전 세계에 몇 군데밖에 없는 거죠. 우리나라도 포도를 재배하곤 있지만 완벽한 상품으로 만들어서 90% 이상 출하하는 사람은 전체 포도 농가의 10%도 안 됩니다. 그만큼 재배기술이 중요해요. 저는 우루과이라운드가 막 체결될 때, 이제 살아날 길은 기술 농업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남들이 다 하는 거봉 대신 유럽에서 들여와 여태 맛보지 못한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해서 20년 가까이 품종과 재배기술을 연구한 끝에 FTA 개방 후에도 전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 유기농 포도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땅을 살리는 방법으로 풀을 키워서 12년째 퇴비나 영양제 없이도 맛있는 포도를 만들고 있고, 8년 전부터는 와인전용 포도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도 갖췄어요. 결국 스스로 연구해서 방법을 찾고, 훌륭한 멘토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요즘은 농업 후배들에게 강의할 때 대산농촌재단을 두드려서 훌륭한 멘토를 찾으라고 조언하죠. 농업이 진정한 블루오션이라고 보고, 지식인들도 농업계에 많이 들어오면 좋겠습니다.
유럽은 농업을 공공재로 봐
경쟁력 있는 소수 농가 지원보다
농민 기본소득 도입으로 지속 가능성 확보해야
이: 강혜원 선배님은 농민 스스로 기술을 연구하고 길을 개척해야한다고 말씀 주셨고요, 박경철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 이제까지의 농업은 산업적 측면이 강했어요. 기술 농업을 활용해서 소득을 창출하는 농가가 많이 나오면 좋겠지만, 사실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 강혜원 선배님이 20년을 해도 쉽지 않은데 보통 사람들이 농촌에 와서 기술 농업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울 거라 봅니다. 반면 유럽은 농업을 산업보다 공공재로 보는 인식이 강해요. 유럽의 농촌이 깨끗한 정원처럼 아름다운 까닭도 국민의 가치관, 삶의 철학과 농이 밀접하게 이어져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국정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농업을 다룬 적이 없지만, 유럽은 1·2차 대전으로 국토 황폐화와 식량 위기를 겪으면서 농업·농촌을 지키는 것이 곧 자신의 생명과 미래를 지키는 것임을 깨닫고 가장 우선시해온 거예요. 국민이 이에 기꺼이 동의하여 농업재정의 절반 이상을 농민에게 직접 보조하는 체계가 있고, 농민들의 자부심도 커요. 농업이 가치를 창출해서 시장경제를 통해 판로를 개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은 그럴 경쟁력이 있는 농가만 지원하다 보니 그 외의 많은 농가는 소외되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은 대부분이 소농이기 때문에 중소농가도 농촌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경쟁력 있는 소수의 농가만 지원했다가는 농촌에 점점 더 사람이 없어지고 농업이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그런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제기된 것이 농민 기본소득입니다. 모든 농민에게 농촌에서 살 수 있는 기본소득을 지급한 후에, 기술을 개발해 농업의 가치를 높이는 농가는 추후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추가로 지원하는 체계를 만드는 겁니다. 농민은 식량안보와 안전을 책임지고 국토의 정원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공공적 역할에 대한 지원체계가 있어야 해요.
“유럽의 농촌이 깨끗한 정원처럼 아름다운 까닭도 국민의 가치관, 삶의 철학과 농이 밀접하게 이어져 있기 때문이죠. 유럽은 1·2차 대전으로 국토 황폐화와 식량 위기를 겪으면서 농업·농촌을 지키는 것이 곧 자신의 생명과 미래를 지키는 것임을 깨닫고 가장 우선시해온 거예요. 국민이 이에 기꺼이 동의하여 농업재정의 절반 이상을 농민에게 직접 보조하는 체계가 있고, 농민들의 자부심도 커요.”
이: 서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취재를 하다 보면 농촌에 활력이 없다는 게 많이 느껴집니다. 보조금이 농민들을 농협이나 정부 정책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로 만든다는 비판도 있지요. 강 선배님은 농민 스스로 개척하며 기술력을 높여야 한다는 이야길 해주셨고, 박 선배님은 제도적 측면에서 농민의 활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기본소득을 말씀해주셨는데 이 두 가지가 함께 가야 우리 농촌 사회에 활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 요즘 현장실습교육WPL 현장교수 등 교육할 기회가 많이 생겼는데, 항상 하는 이야기가 “농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거예요. 4차 산업·ICT, 6차 산업이란 말에 휩쓸리기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1차 산업, 우수한 1차 농산물을 만드는 거죠. 농업을 선택한 청년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저도 열심히 강의하고 있고 대산농촌재단에서도 이 청년들을 위한 네트워크와 토대를 잘 마련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선 것도 대산의 큰 밑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니까요.
박: 연구자의 능력은 ‘생각의 힘’에 있습니다. 제가 농민 기본소득, 농민 인권 등을 앞서 연구한 것도 남들이 하지 않는 고민과 실천이 곧 연구자의 생명이자 가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장자의 말처럼 제가 재능이 아주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뜻이 변치 않았기에 지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우리가 뜻을 갖고 모여 산을 지킬 때 우리 산, 우리 농업이 아름답게 이어지고 모두에게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농촌에 대한 빚, 대산에 대한 빚, 그리고 대자연에 대한 빚을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 갚아나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대산인의 날 ‘미래를 여는 대산인의 만남’과 패널 인터뷰 내용을 종합하여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