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칼스루에시市
도심 한복판. 아담한 오두막이 있고, 계절에 따라 다른 꽃과 채소가 자라는 텃밭과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간이 공존하는 정원 수백 개가 모여 커다란 시민 공원이 되었다. 독일사람 절반을 행복하게 한다는 클라인 가르텐(Klein Garten, 작은 정원)이다.
작은 정원이 모여 시민 공원이 되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 주 칼스루에Karlsruhe시. 1921년에 문을 연 하그스펠더 알레Hagsfelder Allee 클라인 가르텐 단지 입구에 도착하자,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이 먼저 눈에 띄었다. 작은 정원이 500개 가까이 모여 있는 이곳에는 입구마다 표지판이 있다. “위급 시 출동한 소방관이나 의료진이 정원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게”라고 칼스루에 클라인 가르텐 협회장인 알프레드 뤼틴Alfred Lüthin 씨가 말했다. 높지 않은 철망 울타리 너머로 주인의 개성이 돋보이는 정원이 죽 펼쳐진다. 형형색색의 꽃과 나무, 잘 정돈된 잔디밭과 다양한 채소들. 노인이나 장애인이 경작할 수 있도록 턱을 높여 놓은 밭도 있었고, 텃밭의 형태도 다양했다.
때마침 웃통을 벗고 일하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는데, 스스럼없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든다. 약 80여 개국 사람들이 모여 있다더니,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국기도 구경할 수 있었다.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고 농산물 판매는 금지한다
개인이 가꾸는 정원이지만, 클라인 가르텐에는 까다로운 규칙이 있다. 정원은 작은 집과 텃밭, 놀이터 등 세 구역으로 나눈다. 도시마다 규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칼스루에시의 경우 집의 크기는 16㎡를 넘지 못하고, 여기에서 주거할 수 없다. 울타리는 누구나 정원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낮게 설치한다. 물은 지하수를 이용하는데, ‘사람이 펌프질로 뿜어 올릴 수 있는 깊이’만큼만 파야 한다. 또한 이곳에서 생산한 채소나 과일은 판매하지 못한다. 1년 임대료는 45유로이고 여기에 회비와 전기, 수도 사용료 등 연간 약 350유로(약 45만 원)를 내면 정원을 빌릴 수 있는데 자녀가 많으면 우선권을 준다.
“회원은 자기 정원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관리할 의무가 있어요. 정원을 잘 가꾸지 않고 방치하면 협회에서 경고하고, 그래도 달라지지 않으면 강제 퇴출하기도 합니다. 개인 정원이지만 전체로 볼 땐 시민 공원이니까요.” 뤼틴 씨가 덧붙인다.
“채소가 주말에만 자랍니까?”
클라인 가르텐은 걸어서 15분 거리 이내, 유모차를 끌고 갈 수 있고 오가다 들를 수 있도록 주거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성된다. 마음먹고 차를 타고 가야 하는 대부분의 ‘주말농장’과는 차이가 있다.
“풀이 자랄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와야 합니다. 주말에만 삐쭉 얼굴을 내미는 농장에선 생물이 온전하게 자라지 않아요.”
다양한 생명체가 사는 바위를 치우지 않고, 녹비작물로 땅심을 키워주며, 물이 스며들도록 바닥은 시멘트로 깔지 않는다. 노인과 장애인이 경작할 수 있도록 턱을 쌓아 밭을 만들고, 다양한 꽃과 채소를 키운다.
“농약을 치지 않기 때문에 시의 담당 부서와 협회에서는 해충을 막아주는 식물을 혼작하도록 표를 만들어 교육해요. 채소 하나만 계속 심어서도 안 되고, 꽃만 키워서도 안 돼요.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잡초도 해충도 없다, 생명이 서로 공생한다는 것이 클라인 가르텐의 철학입니다.”
도시의 재생, 영리한 공적 토지 활용
27만 명이 사는 칼스루에시는 클라인 가르텐이 가장 활발한 도시 중 하나다. 1921년 클라인가르텐협회가 만들어진 이후 현재 약 250~300㎡의 작은 정원 7,800여 개가 총 79개 단지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주 정부 소유지에 12개 단지, 시유지에 67개 단지 등 모두 공적 토지다.
클라인 가르텐은 정원이 없는 사람들에게 도심 속에서 휴식과 치유, 자연을 접하는 공간으로서도 유용하지만, 도시 재생 면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클라인 가르텐은 먼지를 줄여주고 공기를 맑게 해주는 도시의 허파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화학 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멸종위기의 생물이 살아나고 생태계가 복원되는 사례가 많이 보입니다. 여름철 습도와 온도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하지요.”
뤼틴 씨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다양한 직업, 다양한 나이, 다양한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사회 통합 기능 면에서도, 클라인 가르텐은 정책적으로 주목할 만한 사례다.
독일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개발 계획을 수립할 때 클라인 가르텐 부지를 일정 부분 확보하도록 연방 건축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햇볕에 나가 맑은 공기를 마시며 푸른 채소를 키워라”
150여 년 전, 의사 모리츠 슈레버 박사Schreber, Dr. med. Daniel Gottlob Moritz (1808-1861)는 자신을 찾아온 환자들에게 똑같은 처방을 했다. 도시화로 공기가 탁해지고 운동 부족이 질병의 원인이라 생각했던 그는 특히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염원이었다. 그의 사위 하우스 쉴트 박사가 그 염원을 담아 어린이를 위한 슈레버 광장을 만들었고, 이후 교사 게셀이 어린이 정원과 가족 정원을 조성한 것이 오늘의 클라인 가르텐의 시작이다. 클라인 가르텐은 1차 대전 후 피폐해진 독일에 중요한 식량 공급처였고, 이후 도시민의 건강과 휴식, 여가 선용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 병원에 다 주고 간다”는 말이 있다. 슈레버 박사의 처방전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더 유효하다. 뿌연 공기, 잿빛 하늘 속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어버린 서글픈 도시민은 몸과 맘이 쉴 수 있는,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따뜻하고 맑은 ‘작은 숲’을 꿈꾼다. 개인의 소소한 행복이 모이면 사회를 건강하게 지탱하는 힘이 될 것이다. 클라인 가르텐처럼.
글․사진 / 신수경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