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 농업교류협력에 거는 기대 –
한반도 평화, 봄이 온다
가히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변화다. 불과 4개월 전만 해도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던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에 5월 말 내지 6월 초 북미정상회담이 이어지면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주변정세에 거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비록 정부 당국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행여나 사라질까 조심하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의 급격한 진전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변화가 지난 10년 동안 완전히 중단되었던 남북경협과 농업협력을 비롯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남북교류협력이 재개되는 국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기대를 반영하듯 예전 남북교류협력의 경험을 가진 민간단체와 지방자치단체 등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대북 접촉, 방북 신청 등을 타진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남북경협, 농업협력을 비롯하여 민간단체와 지방자치단체가 기대하는 남북교류협력은 아무리 빨라도 북미정상회담 이후에나 가늠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실제로 지난 3월 개성공단 기업들의 방북 신청을 통일부가 정상회담 이후로 미루었고, 애초 3월 말에 예정되었던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표단의 방북도 연기되었다. 강원도가 신청한 평양국제마라톤대회 참가도 허용되지 않았다. 정부는 4월 27일 예정인 남북정상회담의 의제를 정치·군사적 분야에 집중하겠다고 일찌감치 밝혔다. 남북경협 및 농업협력을 비롯하여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의 교류협력에 관한 사안을 일단 남북정상회담 이후로 미루어두겠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5월말 내지 6월초에 열리게 될 북미정상회담이 일정한 성과를 거둔 이후에야 상황을 봐서 남북교류협력을 진전시켜 나가겠다는 의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북미정상회담의 성과에 따라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정부가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한시라도 빨리 농업협력 재개를 바라는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있을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북미정상회담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고 남북관계가 빠르게 진전되는 상황을 기대한다면 지금 바로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향후 농업협력의 큰 그림을 그리는 시간으로 알차게 채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어쩌면 때에 따라서는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남북교류협력의 속도와 범위가 훨씬 더 파격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농업 분야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별로 비상설 협의기구가 설치될 수도 있고, 나아가 남북 공동의 상설기구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때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남북 식량 교역, 쌀을 나누자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그림은 쌀을 중심으로 한 남북 식량 교역인데,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한 부분이기도 하다.
쌀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부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생산조정제의 실적이 예상보다 저조하다고 한다. 정부는 약 5만ha 규모에 쌀 대신 타 작물 재배를 추진하고 있지만 대략 1/3 정도의 실적에 그치고 있다. 쌀 생산조정제가 계획대로 추진되지 않으면 최근에야 겨우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고 있는 쌀값이 다시 하락세로 돌아설 수도 있고, 정부는 쌀값 안정을 위해 재고관리 및 변동 직접지불로 또다시 막대한 재정 지출을 부담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쌀의 식량 교역은 생산조정제의 실패를 보완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다. 쌀 공급과잉 해소 및 수급 안정, 정부의 재고관리 부담 및 변동 직불금 지출 부담 대폭 감소, 쌀값 안정 및 농가소득 안정 등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대안이 생산조정제와 남북 식량 교역을 연계하는 것이다. 약 5만ha 목표에 해당하는 생산조정 면적을 타 작물 재배로 대체하지 못하고 남는 면적만큼의 쌀 생산량을 북과의 식량 교역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언급한 바 있듯이 남측의 쌀을 북으로 보내고 북측의 다른 농산물이나 식품 혹은 광물자원을 받는 방식이다. 교역 품목과 물량 그리고 가격을 당국 간 협상으로 정하고, 민족 내부 교역으로서 국영무역 방식을 준용하면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식량 교역은 북측의 필요성에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유엔 국제식량농업기구 세계식량계획(FAO/WFP) 등의 보고서를 종합하면 최근 몇 년간 북한의 식량생산량은 대략 503~517만 톤 수준으로 증가하여 91~94% 정도의 식량자급률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보다 식량 사정이 크게 개선되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북측은 지난 2016년 국가경제발전전략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식량 자급 실현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울러 최근 몇 년간 북의 농업정책은 곡물 위주의 식량 생산을 강조하던 것에서 벗어나 축산, 과수, 채소, 특작 등 다양한 농업생산을 강조하는 질적인 변화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와 같은 긴급구호 혹은 인도적 지원으로서 식량 지원 방식의 필요성과 효용성을 크게 낮춘다.
북한은 전반적인 식량 사정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제1 식량(주식)인 쌀의 생산·공급은 여전히 많이 부족한 편이다. 논 면적이 약 56만ha 정도로 쌀 자급에 필요한 재배면적을 더 늘리기 어려운 조건 때문이다. 따라서 남측의 쌀과 교역을 하는 것은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을 통해 쌀, 콩, 옥수수 등을 수입하기보다는 남측의 쌀과 자신들의 농산물, 식품, 지하자원 등을 거래하는 호혜성 남북교역은 지난 2007년 합의한 10․4선언의 유무상통有無相通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반적인 식량 사정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제1 식량(주식)인 쌀의 생산·공급은 여전히 많이 부족한 편이다. 논 면적이 약 56만ha 정도로 쌀 자급에 필요한 재배면적을 더 늘리기 어려운 조건 때문이다. 따라서 남측의 쌀과 교역을 하는 것은 북측으로서도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 같이 중국이나 베트남을 통해 쌀, 콩, 옥수수 등을 수입하기보다는 남측의 쌀과 자신들의 농산물, 식품, 지하자원 등을 거래하는 호혜성 남북교역은 지난 2007년 합의한 10․4선언의 유무상통有無相通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이런 방식으로 남북의 식량 교역이 이루어진다면 그 이후에는 식량 교역의 규모를 확대하고, 교역을 정례화하고 제도화함으로써 남북 민족의 식량 주권을 위한 공동협력으로 진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가칭)남북공동식량계획이라는 담대한 구상이 실현되어 미래 한반도 농업공동체의 토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농민 통일 경작지, 밥상을 잇자
우리가 지금 그려볼 수 있는 또 다른 그림은 농민들이 직접 경작하는 통일 경작지를 매개로 남북 동포의 마음을 밥상에서 이어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그 이전까지 활발하게 이어져 오던 남북 농민교류와 농업협력은 2009년부터 모두 중단된 상태로 얼어붙은 남북관계의 추운 겨울을 지나왔다. 하지만 교류가 중단된 10년 동안 농민들은 두 손 놓고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힘으로, 시민사회와 십시일반으로 전국 곳곳에 통일 쌀 경작지를 조성하여 따뜻한 봄날 평화와 통일의 나비가 다시 힘찬 날갯짓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 왔다. 2017년 기준 전국 약 47개 지역에 조성된 통일 쌀 경작지는 농민과 시민이 함께 모내기, 벼베기도 하면서 남북이 다시 교류하는 날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통일 쌀 경작지를 민간이 주도하는 밥상 나눔으로 이어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남북 식량 교역이 정부 차원에서 대규모로 진행되는 정책적 과제라고 한다면, 통일 쌀 경작지를 통한 밥상 나눔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농민과 시민 등 민간단체가 주도하는 운동으로서 남북이 서로 쌀과 농산물을 나누는 밥상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측의 통일 쌀 경작지에서 수확한 쌀을 북측으로 보내고, 북측에서는 농산물이나 특산물을 남측으로 보내는 것을 상상해 보자. 전국 곳곳에 조성된 통일 쌀 경작지 주변의 시민, 학생, 어린이가 함께 모내기도 하고 벼를 같이 베기도 하며, 메뚜기와 잠자리를 잡는 등 통일 쌀 경작지를 매개로 한 작은 참여와 체험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디딤돌을 놓는데 기여할 것이다. 북측에서 보내온 농산물이나 특산물로 농민과 시민, 우리 이웃들이 함께 밥상을 차려 나눈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의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비록 남북의 모든 동포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통일 쌀 경작지를 매개로 밥상을 잇고 먹거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공동체라는 공감대를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을 것이다.
통일 쌀 경작지를 매개로 한 남북의 밥상 나눔은 우리 국민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민간 통일 운동이 될 것이다. 남북관계의 진전과 더불어 평화와 통일의 한반도를 만들어가는 생각과 실천이 국민의 일상과 의식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는 순기능을 발휘할 것이다. 정부 주도의 식량 교역과 민간 차원의 통일 쌀 교류가 서로를 보완해 주면서 민족 공동의 식량 주권과 밥상공동체를 향한 역사적인 진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농업협력지구, 농사도 함께 지어보자
남북이 함께 농사짓는 공동영농 사례는 예전에도 있었다. 통일농수산사업단이 금강산 및 개성 지역에서 했던 남북공동영농사업,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경기도가 평양 인근 당곡리협동농장에서 했던 농업협력사업, 경남통일농업협력회와 경남도가 평양 인근 장교리협동농장에서 했던 농업협력사업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직접적인 식량 지원보다는 북측의 자체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영농기반 강화, 농업기술 개선, 농장소득 증대 등과 같은 농업개발협력 차원에서 시행했다. 그 과정에서 벼농사, 밭작물, 과수, 시설원예, 축산 등 다양한 분야별 교류협력이 진행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해당 사업들이 중단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경험과 지식은 남북 양측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특히 함께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면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서로 협력했던 분야별 전문 인력도 양측에 모두 있다. 그 경험과 지식 그리고 인력을 다시 활용하면 농업개발협력을 재개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개성과 금강산 그리고 평양은 남북관계의 조건 아래 가장 접근하기 쉬운 지역이다. 개성공단 재개와 연계하고, 예전 개성 지역 공동영농사업의 경험을 되살리면 가능하다. 금강산관광 재개와 연계하고, 예전 금강산 지역 공동영농사업의 경험을 모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 지역을 (가칭)남북농업협력지구로 지정하여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에 준하는 수준의 통행, 통신, 통관을 정부 당국이 합의한다면 예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더욱 큰 규모로 남북 공동 농업개발협력을 수행할 수 있다. 평양 인근 지역에서의 농업개발협력도 마찬가지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와 같은 농업개발협력은 다른 분야의 경제협력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개성 지역 농업개발협력의 성과로 농업 생산성이 높아진다면 이 지역에서 유휴 농업노동력이 발생하는데, 이 유휴노동력이 경제협력에 필요한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아울러 농업개발협력을 통해 생산된 농산물을 개성공단 내 식당의 식재료로 공급함으로써 생산성 향상이 소득증대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경제협력과 농업협력의 상호보완적 선순환 관계는 금강산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개성과 금강산 그리고 평양은 남북관계의 조건 아래 가장 접근하기 쉬운 지역이다. 개성공단 재개와 연계하고, 예전 개성 지역 공동영농사업의 경험을 되살리면 가능하다. 금강산관광 재개와 연계하고, 예전 금강산 지역 공동영농사업의 경험을 모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 지역을 (가칭)남북농업협력지구로 지정하여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에 준하는 수준의 통행, 통신, 통관을 정부 당국이 합의한다면 예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더욱 큰 규모로 남북 공동 농업개발협력을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개성 지역 농업개발협력의 성과를 개성-해주-사리원을 잇는 서부권 농업협력 벨트로, 금강산 지역의 성과를 금강산-세포-원산을 잇는 동부권 농업협력의 벨트로 확대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도까지 진전이 이루어진다면 남북 정부 당국이 공동기구를 통해 단계적으로 한반도의 작부체계를 재구성할 수도 있고, 한반도의 농산물생산 지도를 다시금 그릴 수도 있다. 식량을 비롯하여 농업생산에서 남북이 서로 역할을 분담하고 민족 내부 간 거래를 통해 교역함으로써 상호보완적 농업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 이러한 상호보완성을 지속해서 확대·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곧 한반도 농업공동체를 실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농업생산에서의 역할분담뿐만 아니라 후방산업인 영농자재 산업의 공동투자협력, 전방산업인 유통 및 가공 분야에서의 상호협력도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남북 농업교류협력, “가을이 왔다”를 준비하자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5월 말 혹은 6월 초 예정된 북미정상회담 이후에는 어떤 형태이든 남북 농업교류협력이 재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상황에서 과거의 농업교류협력을 복원하는 수준에 그칠 것인가. 10년의 중단된 세월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디뎌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담대한 구상과 세밀한 접근법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은 원대한 구상과 무제한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또한 현실의 조건에 맞게 한 걸음씩 내디딜 수 있는 치밀한 접근법도 필요하다. 올가을에는 남북 농업교류협력 분야도 “가을이 왔다”는 말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 장경호 :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소장, 건국대 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남북 농업협력의 목표와 단계 및 우선순위에 관한 연구」(2006년)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1년부터 지금까지 통일농수산사업단 정책실장을 맡고 있으며 금강산 지역 공동영농사업(2004~2008) 및 개성 지역 공동영농사업(2007~2008)을 담당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