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농農을 위한 농정 개혁

2017년 7월 18일, 국회에서는 농민 수백 명이 참석한 ‘농정개혁과 개헌’ 국회-농민 대토론회가 있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 채 100일이 되지 않은 때였다. 이날 문재인정부의 농업개혁 실현 가능성에 대한 질문과 함께 현장투표를 했는데, 참석한 523명 중 ‘제대로 된 농업개혁을 할 것이다’가 40%로 가장 많은 응답률을 보였다. 새로운 정부에 대한 제법 큰 기대치였다. 반면 ‘관료의 벽을 넘지 못할 것이다’ 35%, ‘말뿐인 농업개혁일 것이다’ 23% 등 58%는 부정적인 시각이었다.

농업개혁의 신호탄, 농정개혁위원회
이날 7월에 새로 취임한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 장관이 참석해서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농식품부에 농정개혁위원회를 만들고, 현장의 입장에서 많은 분야를 개혁하겠다” 고 강조했다. 행사를 주최했던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은 이날의 내용을 기사화하면서 농정개혁위원회 설치에 대해 기대감을 드러냈다. 전농은 “장관의 발언은 농업부문에서도 개혁의 신호를 울린 것으로, 농민들의 박수를 받을 만했다”고 환영하면서도 “새 정부에 농업개혁에 대한 신호가 아직 없어 농민들은 말로 그친 개혁이 아닐까 우려감도 표시하고 있다”는 보도자료1)를 배포했다.
  그리고 더 큰 기대감에 젖었던 지난 시간을 잠시 반추해본다. 농식품부 장관 내정자가 확정되고 청문회를 기다리던 시기에 농민단체들은 앞다투어 인사 결과와 기대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김영록 장관 후보자 및 김현수 차관에게 단기적인 농정현안뿐만 아니라 중장기과제 역시 일선 농업인의 입장에서 슬기롭게 해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성명을 냈고, 농축산연합회는 기자회견까지 열어 “현장 중심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로 기대하며 현장 농업인의 염원을 담아 진심으로 장관 내정을 환영한다”며 인사청문회가 김영록 후보자의 농정철학을 점검하도록 해야 한다고 청문회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위기의 한국 농업을 바야흐로 제대로 세워보자는 절박함이 담겨있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토론회 현장에 모인 농민들의 생각과 농민의 대표조직인 전농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어쩌면 우려 이상으로 엄중한 농정체계의 퇴보와 불안한 농정 컨트롤타워의 현실을 재차 직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둘러 장관을 임명하고 장관 후보자가 농업의 컨트롤타워로서 백척간두에 있는 대한민국 농업을 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숱한 농민단체들은 지금 그 허탈감을 표현할 길이 없을 것이다. 지난여름에 환영하고 지지했던 입으로, 이 봄에는 분노하고 울분을 토하는 중이다.

2017년 9월 26일 열린 농정개혁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 쌀 수급안정, AI 방역 대책 등을 논의했다. ⓒ농림축산식품부
2017년 9월 26일 열린 농정개혁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 쌀 수급안정, AI 방역 대책 등을 논의했다. ⓒ농림축산식품부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 새 정부 농업 정책에 대한 기대
중요한 것은 이 분통이 농식품부 장관 개인에게 닿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작년 4월, 한 농업인단체가 초청한 자리에서 가장 먼저 언급한 이름이 백남기 농민이었다. 고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도록 그 진상을 소상히 규명하겠다 했다. 또한 농업예산이 줄어듦을 안타까워했으며 농가소득, 도농격차 등을 거론하며 농農에 대한 이전 정부의 무관심, 무책임, 무대책의 3無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농업 분야 4대 불안요소(시장·소득·경영·재해)를 지적했으며, 농업은 국민생명산업, 식량 주권을 지키는 안보산업이라 천명했다. 그리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대통령 직속 농어민특별위원회 설치를 약속했고, 농업비서관 임명을 약속했다. 농민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농정의 7대 방안을 제시했으며, 이를 하나하나 거론할 때마다 농민들은 역시 박수를 보냈다.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입으로 현재 직면한 농업문제에 대해 소상하고 적극적인 입장표명을 들으니 그 자리에 있던 농민들은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대통령이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중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절박하고 자족적인 농민의 선의善意가 확산되었다.

의미 있는 신호였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현장의 입장에서 개혁하겠다’는 취지에 맞게 회의장에서 장관은 가급적 발언을 자제하고 듣겠다고 했으며, 다소 미흡하지만 내부적으로 적폐TF팀을 가동하겠다는 계획까지 제출되었다. 농민 대표조직, 학계, 전문가 등을 비롯해 현장에 기반을 둔 활동가까지 각계에서 농정개혁위원들이 추천·위촉되었다.

  농민 백남기를 직접 거론한 대통령의 의중을 신임 장관은 간파했을까? 장관 역시 농민에게 큰 환호를 받으며 설치를 약속한 농정개혁위원회의 초대 공동위원장으로 백남기 농민투쟁의 상징적인 인물이자 지도자였던 정현찬 가톨릭농민회 회장을 위촉했다. 의미 있는 신호였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현장의 입장에서 개혁하겠다’는 취지에 맞게 회의장에서 장관은 가급적 발언을 자제하고 듣겠다고 했으며, 다소 미흡하지만 내부적으로 적폐TF팀을 가동하겠다는 계획까지 제출되었다. 농민 대표조직, 학계, 전문가 등을 비롯해 현장에 기반을 둔 활동가까지 각계에서 농정개혁위원들이 추천·위촉되었다. 필자는 거창군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이전 축산업 종사 경험 및 관련 단체 활동, 포괄적 현장여론 수렴과 조정 역할을 하는 지역농정협의체인 농업회의소 사무국장이라는 직책을 고려해서 농식품부 주무부서의 직접 위촉을 받고 농정개혁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와 같은 역할과 활동을 기다렸다는 듯이 동의하고 참석한 것 같다. 새 정부의 출범과 동시에 진행되었던 일련의 과정에서, 또는 그 이전부터 고민하고 동참해왔던 농정시스템의 구조 속에서 안타깝고 아쉬움이 컸던 터라, 이참에 근본적인 혁신과제를 제안하고 마땅한 대안을 만들어가지 않고서야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냐는 주제넘은 생각도 넘실거리고 있었다.

‘농農’ 컨트롤타워가 무너졌다
하지만, 농정개혁위원회에서 “주로 듣기만 하겠다”던 장관이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현장 분위기에 맞춰 농식품부의 담당자들은 형식과 내용을 배치하느라 분주했다. 식량, 축산, 농정 3개의 분과위원회는 당면 현안에 대해 정부 입장과 대책을 듣고 질의하며 이해하는 시간으로 채워지는 모습이 흡사 통상적 좌담회와 같았고, 매달 한 번 장관이 직접 주재하는 본회의는 할 말이 있는 위원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거들고 나면 서울의 제법 비싼 식사 한 끼 잘 대접 받고 돌아가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무엇이 당면한 농정의 적폐인지, 구체적 사례를 발굴하고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이야기를 누가 어떻게 꺼내야 하는지, 그 하나를 위해서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할 사안은 없는지, 현장에서 마냥 초조하게 농사에만 전념하는 농민들에게 속 시원한 한마디를 전해줄 것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농정개혁위원회 스스로가 또 다른 적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중심에 두고 고민해야 하는지를 찾지 못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소위 개혁위원이라 자처하고 무수히 서울을 오르내리며 쏟아부은 시간이 아깝고 부끄러울 뿐이다.
  2018년, 농정개혁위원회는 그간의 활동을 보고하고 현장의 이야기를 담고자 농식품부의 책임 있는 공무원을 대동하고 전국의 광역 단위를 모조리 순회하며 현장과 만나고 있다. 숱한 곡절이 많아서 계획된 시간대로 진행은 잘 안 되었지만 어느 광역 지역 하나 빠뜨리지 않으려 일정을 조율하는 것이 보였다. (이 원고가 책으로 나올 즈음엔 이미 마지막 보고대회까지 마무리됐을 수도 있겠다.)
  애초에, 장관과 공동위원장이 전국 순회일정을 마치면 서울의 넓은 장소에서 농식품부 담당자들과 관련 기관 관계자, 농업 관련 단체와 농업인이 대규모로 참석해 현장의 의견을 바탕으로 문재인 농정의 1년을 평가하고, 제대로 된 혁신을 위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자리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대통령, 혹은 청와대의 농업비서관이라도 직접 참석하여 그간의 노고도 인정하고 현장과 행정의 시선이 만나는 순간순간의 절박함이 국정의 최고 책임자에게 전달되고, 그에 따른 희망적인 메시지가 전해지길 기대한 바 크다. 농정 분야 중 사안의 경중에 따라 대통령이 직접 관여하고 책임지는 긍정적인 실천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고할 책임자, 보고 받을 당사자가 누구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는 상태이다. 무거운 책임을 진 인사 중에 누구 하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없다. 컨트롤타워는 무너졌고 현장과 국정운영의 조타수 간 소통이 되는 최소한의 장치도 사라져 버렸다. 함께 해보자고 장관이 위촉한 수십 명의 농정개혁위원은 책임자가 떠나고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 ‘떠날 때는 말 없이’라더니 간다는 말 한마디, 마지막 전체회의 한번 소집하지 않고 떠났다. 염치도 예의도 없는 처신이다. 개혁과 혁신의 대상인 관료집단에게 그들의 수장으로서 마지막 당부만 남기고 떠난 것이다.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라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기다리면 대통령의 특단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까? 선거 결과를 담담히 기다려야 할까? 새로운 장관을 점치며 또 다른 희망을 품을까? 어떤 개혁적 인사가 청와대 깊숙이, 대통령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 이런 형국에서 이런저런 제안과 시도가 가당키나 한 것인지를 여전히 탄식하고 있을까? 차라리 기대를 접고 새로이 농민들을 모아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 현장의 농민에겐 가장 잘 어울리는 처신일까?
  진중히 다시 생각해 보자면, 결국 농정의 컨트롤타워는 농식품부가 될 수 없다는 것부터 확인해야 할 듯하다. 일관된 개방농정의 책임을 농식품부에만 물을 수 없다. 급변하는 남북의 분위기와 교류에 따라 통일 농정의 실마리를 마련하는 것이 농식품부 자체의 판단과 역량으로 가능할 것인가? 현저히 불안한 농촌 구조와 농민 삶의 문제를 빈약한 농식품부의 정책과 예산으로 어찌 감당할 것인가? 대통령이 매진하고 있는 일자리 문제를 농촌 지역에서 풀려 할 때 누가 어떤 시스템을 주축으로 하여 실험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인가? 대다수 국민이 위기감을 느끼며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진 먹거리 안전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와 지역 푸드플랜의 구축을 호기로 여겨볼 만하지만, 이리 차이고 저리 치이는 학교급식과 공공급식의 문제를 도대체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 것인가?

결국 농정의 컨트롤타워는 농식품부가 될 수 없다는 것부터 확인해야 할 듯하다. 급변하는 남북의 분위기와 교류에 따라 통일 농정의 실마리를 마련하는 것이 농식품부 자체의 판단과 역량으로 가능할 것인가? 현저히 불안한 농촌 구조와 농민 삶의 문제를 빈약한 농식품부의 정책과 예산으로 어찌 감당할 것인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논의 구조를 마련하고 전 부처의 협력으로 국민적 공분을 저버리지 않는 대통령 직속 농업특별기구 마련이 의심의 여지 없는 대안이 되어야 한다.

  위기 상황을 맞아 국무총리 직속 TF팀을 가동하는 신속한 대응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논의 구조를 마련하고 전 부처의 협력으로 국민적 공분을 저버리지 않는 대통령 직속 농업특별기구 마련이 의심의 여지 없는 대안이 되어야 한다. 그런 구조 안에서 장관은 일상적으로 자문하는 위원회나 협의회를 구성하여 적절하게 운영할 수 있다. 한정된 체계와 계획 안에서 농정 적폐를 발굴하거나 개혁을 주도한다는 것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농정을 대통령이 직접 책임지는 것이 맞다. 민간 농업계와 진짜 협치를 통해 그런 구조를 제대로 다시 짜야 한다. 전혀 새로운 제안이 아니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스스로 약속한 정책과 공약을 이행만 하면 되는 것이다.
  30년 만의 개헌으로 재조명하여 헌법에 담을 농업적 가치를 기록으로만 남길 것이 아니라면, 전체 국민의 먹거리 안전성과 식량 주권의 회복, 통일 농정을 예견하고 농민과 국민 삶의 질 전반에 새로운 ‘백년지대계’를 마련하고자 한다면, 인적·제도적으로 전혀 새로운 판을 짜야한다. 미련 없이 가혹하게 도려내고 헤집어야 한다. 그 기수는 바로 현장의 농민에 기반을 둔 국정의 최고 책임자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현장은 전적으로 농정에 신뢰를 보낼 수 있다. 많이 늦었지만 새 정부는 이제 시작 아닌가!

12※필자 김훈규: ㈔거창군농업회의소 사무국장. 2002년 거창으로 귀농해서 농사를 짓다가, 거창군 지역농정협의체인 거창군농업회의소에서 6년째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지역의 폐교를 활용한 마을 문화공동체인 하성단노을생활문화센터의 사무국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2017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 농정개혁위원회 위원과 2018년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평가자문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1) 한국농정신문 기사 「김영록 장관 ‘농정개혁위원회’ 만든다 – “농민들의 목소리 가장 가까이서 듣겠다” 전농 주최 국회 농민 대토론회서 ‘공언’」 (2017.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