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행복을 찾다

김현희 자연농원 따뜻한뿌리 대표

한여름에도 시원한 산 아래 오미자밭에 앉은 김현희 대표와 맏딸 차령 씨, 남편 박상욱 씨, 힘이 넘치는 진돗개 짱이.(오른쪽부터)
한여름에도 시원한 산 아래 오미자밭에 앉은 김현희 대표와 맏딸 차령 씨, 남편 박상욱 씨, 힘이 넘치는 진돗개 짱이.(오른쪽부터)

푸른 나무가 우거진 좁은 산길이 계속 이어졌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첫 장면처럼. 경북 봉화군 소천면 여우골, 자연농원 ‘따뜻한뿌리’는 정말로 깊은 산 속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농원에 다다르니 하얀 진돗개가 뛰어나와 반기고, 산이 품은 보금자리의 주인 김현희 대표와 맏딸 박차령 씨는 맑은 미소로 식사를 권했다. 따끈한 쌀밥, 아침에 바로 뜯어 고소하게 무친 곰취와 곤드레나물, 보글보글 끓는 토종콩 청국장… ‘자연과 완벽하게 동업한’ 밥상 앞에서 마음이 절로 환해졌다.

아침에 캔 산미나리로 부친 전, 직접 띄운 청국장 등 자연과 함께 차린 밥상. 요리솜씨가 좋은 차령 씨는 김 대표의 든든한 힘이다.
아침에 캔 산미나리로 부친 전, 직접 띄운 청국장 등 자연과 함께 차린 밥상. 요리솜씨가 좋은 차령 씨는 김 대표의 든든한 힘이다.

있는 그대로, 자연과 함께 짓는 농사
2003년, 소박하고 생태적인 삶을 꿈꾸며 봉화로 귀농한 김 대표와 가족. 우거진 숲 아래 오래된 집을 구하고 목수인 남편 박상욱 씨가 직접 나섰다. 목수의 손길과 가족의 추억을 입어, 어둡고 추웠던 집은 아늑한 삶터로 거듭났다.
  “우리는 시골의 삶을 전혀 몰라서 오히려 용감하게 내려온 것 같아요. 힘들 때도 있지만, 저는 이곳에만 오면 마음이 편하고 좋아요.”
  유기농업을 다짐했지만 농사의 ‘농’자도 몰랐던 처음, ‘방치농업’부터 시작했다. 마을 농민들을 따라다니며 호미질부터 밭농사까지 열심히 배웠다. 밭농사로 수입이 나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산에서 절로 열리는 산딸기, 오디, 다양한 산나물을 보고 ‘산농사’를 시작했다. 산골에 뿌리내리고 살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칡을 캐다 즙을 내 팔기도 했어요. 칡이 얼면 맛이 없기 때문에 늘 집안에 한가득 칡을 쌓아놓고 때 밀듯이 밤새 씻었죠. 그렇게 1년에 3~4톤 가까이 캤어요.”
  지금은 유기농 오미자와 콩, 고추 농사를 지으며 효소발효액과 장을 담근다. 농업을 하며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자연훼손을 최소화하고 흙을 살린다는 신념을 지키고 있다. 3년 전부터 ‘소천따뜻한뿌리 영농조합법인’을 세워 활동하며 공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가격이 안 나와 오미자를 접는 곳도 많지만, 우리는 수확량이 적어도 계속 유기농으로 짓고 있어요. 직접 일하며 인건비와 농비를 최소화해서, 돈은 안 되더라도 자급자족하며 가진 것으로 사는 거죠. 규모가 작으니 대부분 고정 손님에게 직거래로 팔고요. 그러면서 아이 세 명을 성인으로 키웠으니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해냈나, 싶어요.”

한 때 농원에서 자라던 느티나무와 벚나무는 목수인 남편 상욱 씨의 손길을 거쳐 집안의 가구로 거듭났다.
한 때 농원에서 자라던 느티나무와 벚나무는 목수인 남편 상욱 씨의 손길을 거쳐 집안의 가구로 거듭났다.
3년에 걸쳐 손수 지은 흙집. 직접 만든 로켓 난로를 두고 메주를 빚어 말리거나,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다.
3년에 걸쳐 손수 지은 흙집. 직접 만든 로켓 난로를 두고 메주를 빚어 말리거나,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다.

귀농하니까 ‘사람’이 됐다
2009년, 김 대표는 봉화군의 ‘귀농인 간사(멘토) 제도’의 귀농간사로 선발됐다. 6년간 귀농정책 행사에 참여하고 매달 귀농인 학교에서 강의하며 예비 귀농인의 정착을 도왔다. 김 대표는 바깥일을 도맡고, 남편은 묵묵히 집안을 돌보며 일을 분담했다. 간사직을 내려놓은 지금도 지역의 귀농교육 강의는 꾸준히 나가고 있다.
  “예비귀농인은 주로 뭘 하면 빨리 수익이 나는지 듣고 싶어 하지만, 저는 늘 ‘버리라’는 말을 해요. 도시에서도 벌기 힘든 돈을 왜 농촌에 와서 벌려 하냐고 되묻죠. 여태까지 도시에서 열심히 살았으니까, 1년 정도는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돌아보며 하고 싶은 걸 선택하시라고 해요.”
  귀농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지만, 그 양상은 많이 달라진 것 같다는 김 대표. 예전에는 자연친화적으로 살고 싶다는 사람이 많았다면 요즘은 귀농도 사업으로, 자본을 갖고 접근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좋은 결과를 빨리 얻고 싶어 귀농 후 섣불리 큰돈을 투자했다가 실패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귀농해도 힘든 일은 많아요. 자연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사고도 잦죠.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농민들은 그런 걸 그냥 예사로 넘겨요.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으면, 나이 들어서도 꾸준히 일할 수 있고 도시처럼 답답하지 않게 살 수 있어서 좋은 곳이 농촌이죠.”
  김 대표는 농촌에 와서, 사람답게 살게 됐다며 웃는다.
  “전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뭐든 그냥 사 먹었는데, 농촌 사니까 먹거리를 뿌리부터 알게 됐죠. 귀농하지 않았으면 내가 삶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살았겠구나, 싶어요.”

직접 키운 오미자와 산에서 나는 좋은 풀을 그냥 두기 아까워 발효액을 담그기 시작했다. 발효액을 담그고 남은 찌꺼기는 우려내어 다시 밭에 준다. 버리는 게 하나도 없는 자연의 순환이다. Ⓒ김현희
직접 키운 오미자와 산에서 나는 좋은 풀을 그냥 두기 아까워 발효액을 담그기 시작했다. 발효액을 담그고 남은 찌꺼기는 우려내어 다시 밭에 준다. 버리는 게 하나도 없는 자연의 순환이다. Ⓒ김현희

미래를 꿈꾸며, 함께 만드는 작은 숲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혜원처럼, 열심히 살아도 자꾸만 소진되는 서울의 삶에 회의를 느껴 봉화로 돌아온 차령 씨. 요리부터 그림, 자수까지 손재주가 좋아 지역 청년 카페를 준비하며 수제품을 만들어 장터에 나가는 등 다양한 삶의 그림을 그려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부부가 둘이서 바쁘게 농원을 꾸려왔다면, 이제는 농사를 잇기로 마음먹은 차령 씨가 있으니 생산뿐만 아니라 가공에도 탄력을 받는다. 든든함과 함께, 이어온 농업에 대한 책임감도 한층 깊어진다.
  “우리는 이대로 살다 떠나도 문제없지만, 아이들에게 뭔가 물려주려면 농원이 정체돼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산양삼과 유기농 사과도 새로 심었고, 집 밑의 연못과 밭을 가꿔 정원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집 뒤편에 아름답게 보존된 숲의 길도 다듬고요. 10년쯤 더 고생해서, 아이들이 오면 새롭게 꿈꿀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싶어요.”

욕심을 내려놓고, 아늑한 산속에서 한 가족이 자연과 벗하며 사는 곳. 숲에서 딴 당귀며 산딸기를 한 움큼 권하는 김현희 대표로부터 다정하고 명랑한 삶의 기운이 전해진다. 언제든 다시 마음이 조급해질 때, 그 기운이 계속 떠오를 것 같다. 한가득 털어 넣으니 입안에 내내 남아있던 산딸기 향기와 함께.

김현희 대표가 키우는 산양삼이나 산열매를 재료로 차령 씨가 지역 청년 카페에서 파스타 메뉴를 개발해보는 등, 다양한 협업을 상상하는 모녀의 웃음이 밝다.

글·사진 유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