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프WWOOF로 체험하는 농가 여행
농촌 출신도, 농업 관련 전공생도 아닌 내가 대학에 와서 뒤늦게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현재는 대학 졸업 이후 유기농장에서 일손을 거들고 숙식을 제공받는 우프WWOOF를 통해 여러 농가를 여행 다니고 있다.
대학시절 경험한 책과 수업, 도시텃밭, 장터매니저 등의 활동은 큰 가르침을 주었지만 동시에 큰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이러한 간접경험으로 농업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내 상상력은 너무 부족했다. ‘불가해한 이 세계에서 과연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가?’라는 의문을 항상 품어왔지만 농업만큼은 직관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좀 더 농업을 가까이 느끼고 더 잘 알고 싶었다. 하지만 자본, 지식, 기술, 각오 그 어떤 것도 없는 상황에서 귀농은 무리일 것 같아 여러 방법을 고민하다가 우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지난 반년간의 여행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당초의 목적 설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우프를 통해 경험하는 ‘농사일’과 농촌에서 농부로 살아가는 ‘농업’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농사일’은 경험할 수 있는 일이지만 ‘농업’은 그런 차원이 아니다. 하지만 목적 설정은 잘못되었을지언정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있다. 좋은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과 함께 지내는 일상은 아주 행복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충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 여행이 내가 살아오면서 내린 결정 중 정말 잘한 결정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 결정에 영향을 준 많은 것을 헤아리다 보면 대산농촌재단을 빼놓을 수 없다.
농農으로 이어지는 인연
재단의 장학생으로 참 많은 것을 받았다. 장학금뿐 아니라 장학생 연수와 추천도서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치열하게 삶으로 살아내는 분들이었다. 땅과 사람을 생각하는 깊은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눈동자가 빛나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러한 분들과의 만남을 통해 농업을 더욱 멋진 것으로 느낄 수 있었다.
졸업 이후에도 여전히 많은 것을 받고 있다. 본래 우프 농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재단을 통해 대산농촌문화상 수상자이신 김준권, 원혜덕 선생님의 평화나무농장에서 2주간 머무를 수 있었다. 김준권 선생님께서 땅, 농작물, 동물 등 농장 안의 만물을 사랑으로 대하시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또한 원경선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구자분께서 우리나라에 유기농을 도입할 때 지니신 문제의식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였다는 말씀을 들었다.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인간의 인지를 넘어선 섭리를 상정하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참 인간적으로 그리고 지혜롭게 느껴졌다. 원혜덕 선생님께서는 실습을 마치며 2주간의 경험이 많은 공부가 되었으리라 확신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두 분의 철학과 삶으로부터 빚어져 나오는 그 자신감이 너무도 멋있었다. 이전에 다양한 유기농을 접하며 ‘유기농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던 중 재단이라는 디딤돌을 통해 만난 평화나무농장에서의 가르침은 스스로의 지향점을 확실하게 해주었다.
재단 장학생이기에 받을 수 있었던 많은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농업과의 강력한 유대관계라고 표현하고 싶다. 농업에 관심을 갖고 나름의 활동을 하면서도 이따금 나를 괴롭혔던 생각은 나와 농업의 연결고리가 참 약하다는 것, 농업 영역에서의 나의 정체성이 참 모호하다는 것이다.
장학생일 때도, 졸업한 후에도 내가 재단의 장학생이라는 것이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물론 이때 가장 앞서는 감정은 그러한 의미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따르는 송구스러움이다. 하지만 동시에 좋은 책임감이 든다. 나는 분명 부족하지만, 나의 ‘무엇’을 보고 장학생으로 뽑아 그 ‘무엇’을 길러낼 수 있도록 많은 가르침을 주신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스스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정해진 것 아닌가. 그 이후에는 농업과 나의 연결고리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굉장히 배은망덕한(?) 일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한동안은 이 여행을 계속 하려고 한다. 장학생으로서의 경험, 우프를 통한 반년간의 축적된 경험과 이에 더해진 평화나무농장에서의 배움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한 꺼풀을 벗어던진 느낌이 든다. 일정 계획은 없지만 고민의 계획은 있다. ‘어떤 철학과 삶 속에서 농사를 지을 것인가’ 라는 물음이다. 자아가 강해질수록, 소유욕, 성취욕, 명예욕, 집착이 강해질수록 만물과 나 자신의 연결고리는 약해지지 않는가라는 고민이 든다. 하지만 전前자아적인 해결방법은 불가능할뿐더러 옳지 않은 것 같다. 좋은 농업을 통해, 좋은 관계를 통해 건강한 자아를 유지하는 길을 더 배우고 싶다.
※필자 허재성: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생활을 하며 농업과 농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산농촌재단 장학생, 도시농부장터, 도시텃밭 등의 경험 속에서 농업의 중요성을 느꼈고 현재는 농업을 더욱 직접적으로 경험하기 위해 여러 농가를 여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