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을 만나고, 농업에 눈 뜨다
대산농업전문언론장학생이 되기 전 2년 동안 농산물 유통도 하고, 도시형 장터 매니저로도 일했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일한다고 했지만, 내 삶은 지속되지 못하고 있었다. 농업의 문턱이 높아 나조차 농업이 낯설고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농업 관련 학과를 전공하지도, 후계농도 아닌 나는 늘 내 존재가 불안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경계를 맴도는 느낌이었다. 바로 그때 대산농촌재단은 아무것도 없던 황무지에 이정표가 되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수없이 방황하던 지난날,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만약 그때 농업을 그만두고, 뒤돌아섰더라면 나는 영영 농업을 오해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배움과 깨달음은 전에는 알 수 없던 것들이다. 재단을 통해 바라본 농업은 일하며 마주한 농업과는 달랐다. 장학생 연수를 통해 제대로 된 농업현장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연수를 다니며 만난 분들은 농부, 연구원, 기획자 등 다양했다. 지역에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농업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나’ 혼자 살아남는 방법이 아닌 ‘우리’가 함께 잘 사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누리는 많은 것들이 선도 농업인들이 오랜 시간 힘써온 결과였다.
‘나도 이들처럼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은 용기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하지만 그간 보고 배운 것을 토대로, 가다 보면 언젠가 나의 길에도 닿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다. 언론 장학생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앞서 걸어간 이들이 길을 터놓은 것처럼, 나도 내 뒤를 걸어올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남겨 놓으면 좋을지 다음을 고민하고 있다.
다양한 농업 현장, 행사, 사람들을 만나다
나는 세명대저널리즘스쿨 대학원에서 운영 중인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에서 지역농촌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평소 토종씨앗에 관심이 많아 관련 책도 읽고, 영상도 찾아본다. 한마디로 ‘토종 덕후’다. 토종과 관련된 일은 어디든 찾아간다. 토종씨앗은 농업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전남 곡성에서 전국 토종씨앗 농가 지도를 만드는 ‘씨드림’ 변현단 대표를, 올해는 강원도 양양에서 토종작물로 꾸러미를 만드는 ‘토종이 자란다’ 김혜영 선생을, 경기도 고양시에서 토종벼를 기르는 우보농장 이근이 농부를 취재했다. 이들은 대산농촌재단의 농업실용연구 지원을 받아 토종씨앗의 미래를 그려가고 있는 분들이다.
지난 8월부터 몇몇 활동가와 함께 경기 가평을 찾아 토종씨앗을 채종하는 할머니를 조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촘촘히 기록하고 있다. 올해 여름은 110년 만의 폭염과 긴 가뭄으로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농가 피해가 컸다. 토종씨앗도 이런 상황을 비껴가지 못했다. 눈으로 보지 않고는 그 심각성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결국 올해는 농작물이 가물어 토종씨앗을 채종할 수 없게 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한두 농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집집마다 농민의 깊은 한숨이 들렸다. 취재하며 토종씨앗이 영영 사라져버리는 건 아닐지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지구온난화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이미 기후변화는 시작됐고, 토종씨앗의 설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이런 농업의 상황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알릴 수 있을까?
다가오는 12월. 여러 활동가와 함께 가평의 토종씨앗 현장을 기록한 사진, 글, 그림을 담은 전시회를 연다. 토종씨앗과 함께 해온 농부들의 삶을 기록하고 기사로 잘 풀어내는 게 목적이다. 토종씨앗을 매개로 어떤 이야기가 꽃이 필지 기대가 된다. 토종씨앗의 가치는 지켜온 이들과 지켜가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에서 빛을 발한다. 토종씨앗을 오래된 미래라고 부르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글 짓는 농부, 김미나입니다’
선조들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짓는다’고 표현했다. 밥을 짓고, 옷을 짓고, 집을 짓는다. 짓는 행위는 거저 주어지는 결과가 없다. 노력과 정성을 다할 때 비로소 열매를 맺는다. 농사를 짓는 것도 글을 짓는 것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글 짓는 농부’라고 명명한 이유도 농촌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농민의 마음으로 농업을 생각하며 글을 쓰자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다. 봄이 오면 냉해를, 여름이 되면 태풍을, 가을에는 풍년과 흉년을 모두 걱정 하는 농부처럼, 농민과 함께 내일을 고민하겠다는 다짐이다.
재단 덕분에 농업에 제대로 활착할 수 있게 됐다. 뿌리가 없어 주변의 작은 변화에도 쉽게 흔들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추운 겨울이 와도 뿌리가 들떠 말라 죽을 일도, 강한 비바람에 흔들릴 일도 없다. 다만 앞으로 어떤 결실을 보느냐는 나에게 달렸다.
아직은 섣불리 먼 미래를 그리지 못하고 있다. 농업전문언론인으로서 부족한 점이 많아 실력도 지식도 하나씩 쌓아 나가는 단계다. 때가 되면 내 글이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서두르지 않는다. 농업은 그만큼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곳이니깐. 속도보다 내가 가야 할 길의 방향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며칠 전, 단비뉴스에서 ‘이 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그동안 지역농촌부에서 기사를 수없이 써왔지만 정치, 환경, 사회 관련 기사에 밀려 제대로 주목 한번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농업의 가치를 알리고, 농민의 목소리가 사회에 더 많이 들리도록 노력했다.
많은 사람이 ‘지역농촌부’에서 상이 나온 것을 내 일처럼 축하해줬다. 농업전문언론인을 꿈꾸며 먼 길을 가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방향을 잃지 않고 가다보면 금세 목적지에 닿아있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내 길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야겠다.
※필자 김미나 : 인천가톨릭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에서 저널리즘(농업기자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현재 대학원에서 운영하는 비영리대안매체 단비뉴스 지역농촌부 기자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