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실용연구로 시작된 유채에 대한 호기심
전국여성농민회 회원인 아내로부터 대산농촌재단의 농업실용연구지원 공모 사업에 지원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2016년 ‘생산자가 주도하는 농민가공과 학교급식 연계방안 마련’이라는 주제로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진주에서 로컬푸드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지역에 농가가공품이 별로 없어 연구를 진행하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경남 거창과 의령에 있는 농가가공센터를 돌아보고, 완주에 있는 로컬푸드 농가가공센터에도 방문했다. 완주에 갈 때는 지역 학교 영양사 선생님들과 함께 다니며 학교급식에 농가 가공품을 공급하는 방안에 대해 폭넓게 논의했다. 학교급식은 진입장벽이 높아 소규모 농가 가공품이 들어가기 매우 어려운 구조였기 때문이다.
현장 연구인 점을 고려하여 한 가지 정도 직접 가공농산물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마침 로컬푸드 매장에 식용유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점에 주목해 유채 열매로 기름을 짜서 식용유로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국내 식용유 시장의 원료 대부분이 GMO 농산물인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더욱더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GMO 없는 건강한 식용유를 학교급식에 공급할 수 있다면
참기름, 들기름처럼 동네 방앗간에서 짜면 될 줄 알았던 유채기름은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참기름을 짜는 기계로 유채를 짜면 기름구멍이 막혀 고장이 나니 별도의 착유기가 있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토종 유채에는 에루스산Erucic Acid이라는 독성 물질에 있어 해당 성분이 없는 종자가 필요했고, 튀김 등 고온 사용이 가능하려면 정제 작업도 충분히 이뤄져야 했다.
유채 재배의 경우에도 10월 중순경에는 파종을 해야 하는데 그해 가을비가 너무 많이 내려 적기에 파종하기가 불가능했다. 억지로 11월 중순에 파종하긴 했지만 예상대로 농사에 실패했다.
흔히 볼 수 있었던 유채는 생각보다 재배가 쉽지 않았고, 소규모 농가에서 제대로 된 유채 기름을 만들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 연구를 하는 동안 사회적으로 GMO 문제가 이슈화되었다. 2015년 말 GM작물개발사업단에서 추진하던 GM벼 상용화사업에 반대하며 결집된 전북도농민회 등 농민단체 소속 농민들과 내가 참여하고 있는 ㈔자치와협동 회원들이 GMO 반대운동 활성화와 GM식품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국내 식용유에 관한 문제의식이 유채유 생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이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생산자 조직 결성을 결의하게 되었다.
2016년 1월 WTO 정부조달협정이 개정되어 정부조달 방식으로 급식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 국내산 농축산물을 우대하는 급식조달이 가능하도록 하는 예외조항이 신설되었고, 학교급식과 공공급식에 국내산 농축산물을 공급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2017년 11월 서울시와 농림부가 Non-GMO 가공식품의 학교급식 공급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2018년 3월에는 지속가능한 공공급식과 도농상생 정책 실현을 위한 농림축산식품부-서울특별시 업무협약이 체결되었다. 이로 인해 국내산 Non-GMO 유채유 판로가 확보되어 수입 GMO 식용유를 대체할 계기가 마련되었고, 2018년 2월 8일 한국유채생산자연합회가 창립되었다.
한국유채생산자연합회는 농민들이 출자하여 만든 가공공장에서 유채유를 생산함으로써 농민가공을 실현하고, 새로운 동계작물로 유채를 육성하여 농가소득 증대와 국내 농업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유채연합회는 110년 전통의 친환경 유채유 생산 업체로서 전량 일본 생협에 납품하고 있는 ‘히라다 산업’과 기술제휴를 맺고 공장을 견학하는 등 국내산 유채를 원료로 한 Non-GMO 식용유 생산에 노력하고 있다.
수입산보다 높은 가격이 부담이기는 하지만 현재 1조 원 규모인 국내 식용유 시장의 10%만이라도 국산으로 대체한다면 우리 농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대산농촌재단의 지원으로 시작한 소규모 농가가공을 실천하기 위한 연구가 GMO 반대 운동을 하던 농민들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생산자 조직을 결성하고 국산 유채유를 생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농민들의 손으로 재배된 유채와 유채유가 학교급식 및 소비자에게 공급되어 어린 학생들과 국민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필자 남성민 : 한국유채생산자연합회 사무총장. 1999년부터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며 진주우리먹거리협동조합 진주텃밭에서 이사를 맡고 있다. 2016년 대산농촌재단 농업실용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생산자가 주도하는 농민가공 활성화 방안’을 연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