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농촌문화상 수상자회
유난히 건조한 날이 계속되고 있다. 도로변 나무의 바스러질 것 같은 앙상한 가지를 보며, 눈이 속절없이 내리던 초겨울 날이 떠올랐다.
토요일 아침이었다. 눈을 떴는데 창밖 세상이 온통 하얬다. 펑펑 내리는 눈은 그대로 차곡차곡 쌓였다. 평소 같으면 반갑게 즐겼을 풍경이지만, 머릿속이 하얘졌다. ‘큰일이네.’ 휴전선과 가까운 포천에서부터 저 아래 제주까지 전국에 퍼져 있는 사람들이 서울로 오기로 한 날. 오늘 오지 못하겠다는 연락이 빗발치리라.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반가운 얼굴이 속속 광화문 교보빌딩에 도착했다. 산 넘고 물 건너, 비행기 시간을 바꾸고, 막힌 길을 돌아 어렵게 왔노라는 증언들이 이어졌고, 그래서인지 더욱 더 따뜻한 인사가 오갔다. 2018년 11월 24일, 대산농촌문화상 수상자회(회장 박광호) 제20회 정기총회 날 풍경이다.
업적은 나누고 친목은 다진다
“제2회 수상자 정진석입니다.” “육백마지기에서 채소농사 짓는 이해극입니다.” “포천 평화나무농장 김준권입니다.” 1993년 2회 수상자(아쉽게도 이번에는 제1회 수상자 중 참석자가 없었다)부터 2018년 27회 수상자가 함께한 자리.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어 2018년 활동을 돌아보고 재능기부사업 성과와 2019년 사업계획을 보고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2018년 수상자 3명이 자신의 업적을 공유하는 세미나도 이 자리에서 있었다.
대산농촌문화상 시상식에는 수상자 부부가 함께 단상에 오른다. 농업과 관련하여 배우자의 헌신과 도움이 없이 혼자 업적을 이룰 수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수상자의 배우자도 자연스럽게 대상회 회원(준회원)이 되어 정기총회와 선진지 견학 등에 함께 참여한다.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람들은 오랜 친구, 동지의 만남처럼 친숙하고,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은 따뜻한 분위기에 자연스레 동화된다. 어차피 모두 ‘농農’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니까.
대상회, 재능을 사회에 나누다
대산농촌문화상 수상자회(이하 대상회)는 1995년 12월에 발족됐다. 1992년 제1회 수상자가 나왔으니, 4회 수상자까지 창립 멤버가 되는 셈이다. 당연히 회원은 매년 늘었고 대상회는 회원 간 교류를 중점으로 하며 명맥을 유지했다.
대상회 발족 20년을 앞두고, 대상회 안에서 뭔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자는 공감이 커졌고, 드디어 2013년 11월 보성 우리원에서 있었던 제14회 정기총회에서 대상회 임원진이 새롭게 재편되고 방향도 재설정되었다.
“명색이 ‘대한민국 농업계의 노벨상’이라는 대산농촌문화상을 받은 사람들인데, 단순히 만나 친목만 도모하고 상호교육에 그친다면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재능을 사회에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봅시다.”
2014년 4월, 제15회 정기총회에서 성진근 제3대 회장(충북대 명예교수)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첫 번째로 박광호 한국농수산대학 교수가 개발한 ‘종자 철분코팅 기술’을 활용해 벼 직파 재배 기술을 전파하는 재능기부사업을 시작했다. 박 교수가 책임을 맡고 박종산(구례군), 박선재(익산시), 이양일(거제시) 전 농업기술센터 소장들이 현장 교수로 농민 지도를 맡았다. 그해 가을, 전남 보성, 벌교, 득량 지역 농가 시험재배를 한 결과 생산비와 노동력은 90% 줄었고 수확량은 줄지 않았다. 여름내 먼 거리를 하루에 10시간 이상 이동하고 농민을 교육하는 강행군의 성과였다. 이 사업은 계속 진화, 확대되며 고령화, 노동력이 부족한 농촌에서 농업으로 지속 가능한 방법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대산농촌문화상의 이름과 무게
2018년 제27회까지 대산농촌문화상 역대 수상자는 121명, 이중 고인이 되었거나 고령, 건강 악화 등으로 활동이 어려운 분들을 제외하면 현재 70~80명이 자신의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대산농촌문화상 때문에 내 어깨가 더 무거워졌어요.”
현장에서 만난 수상자들은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참 반갑다. 대산농촌문화상이 특별한 이유는, 업적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농에 대한 부채감’이 자발적으로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이 그 부채감을 기꺼이 짊어지고 나아간다는 점이다.
『대산농촌문화』 창간호부터 ‘수상 그 이후’를 취재하면서 줄곧 수상자들을 만났다. 그런데 대상회를 통해 자신의 업적을 사회와 나누는, 개인이 아닌 공동의 ‘수상 그 이후’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각각 다른 업적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시너지. 그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글 신수경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