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장 없는 작은 가게, 쓰레기를 수거하는 농부
“모두를 위해 포장을 풀자”
플라스틱 포장재를 없앤 상점, 독일 OU
독일 베를린시에는 특별한 가게가 있다. 오유OU. 독일어로 ‘오리기날 운페어팍트Original Unverpackt’라 부르는 이곳은 ‘포장하지 않는’ 작은 상점이다. 채소와 과일, 식품 가공품을 비롯해 술, 화장품, 세제 등을 플라스틱 포장재 없이 판매하고, 사람들은 용기를 가져가 원하는 만큼 담는다. 2012년,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끊임없이 생산되는 플라스틱을 쇼핑에서 없애자는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다가 2014년 크라우드 펀딩으로 연 첫 상점이다. “모두를 위한 포장 풀기Unpacked for all”를 표방하는 OU는 현재 온라인 쇼핑몰도 운영하고 있다.
알고 보면 OU는 이제 ‘특별한’ 가게가 아니다. 실제로 ‘플라스틱 포장 없는 가게’ 는 독일, 영국을 비롯해 유럽의 여러 나라와 스위스, 미국, 호주 등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렇듯 일상에서 불필요한 쓰레기를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은 의식 있는 시민사회에 계속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 포장지 없는 가게 ‘더 피커’
2019년 4월, 국내 최초 ‘포장지 없는 가게’로 지난 2016년에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더 피커the picker를 찾아갔다.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 있는 분이 많아요. 그런데 무농약, 유기농을 찾는 분들이 깨끗한 플라스틱 상자에 담긴 것만 찾더라고요. 이 포장 때문에 결국 먹거리의 질이 떨어질 텐데, 뭔가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피커의 송경호 대표는 말한다.
이곳에서는 쌀, 고구마, 양파, 토마토 등 다양한 유기농산물을 팔고 있다. 생산부터 포장까지, 환경을 생각하는 농부들의 ‘작품’이다. 농민은 농산물을 종이상자에 넣어 더 피커로 보낸다. 채소와 과일이 ‘포장’되어 있지 않으면, 소비자는 어떻게 믿고 물건을 살까. 송 대표는 “판매자와 소비자가 소통하면 된다”고 말한다.
“포장 폐기물이 많이 나오는 건 사실 현대 사회에서 소통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예요. 대화가 없으니, 포장하지 않은 물건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소비자에게 말을 걸고, 소비자에게 생산, 유통, 소비의 전체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저희 회사의 목표입니다.”
어떤 농부가 어떤 종자를 어떤 방식으로 길렀는지, 어떻게 요리하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설명하고 소비자와 대화하면서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취향을 알게 된다.
“자신의 취향을 알면 낭비가 줄고, 그렇게 삶 자체를 정돈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송 대표는 의식 있는 소비자의 실천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꼭 저희 가게를 찾으실 필요는 없어요. 동네 채소가게에 가서 장바구니에 담아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 안 된다고 해도 한번 졸라보라고 권하죠. ‘여기 담아주세요’라고 하면, 분명히 가능할 거예요. 실천하는 분들도 얘기해요.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다가도 ‘저 사람 또 왔네’ 한다고 해요. 판매하는 분들도 서서히 환경에 대해 인식을 하게 되겠죠.”
더 피커는 친환경 식자재와 이를 활용해서 요리한 건강식을 파는 그로서란트(상점과 레스토랑을 합친 신조어, Grocery+Restaurant)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데, 4월에 영업을 종료하고 재정비 시간을 거쳐 새롭게 문을 열 계획이다.
“앞으로는 지역의 채소가게, 과일가게, 정미소, 제분소 등과 협업하는 형태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더 피커 이후, 이와 비슷한 가게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제로 웨이스트샵 지구는 식료품과 일상용품을 팔면서,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제로 웨이스트 매거진 쓸SSSL에 따르면 국내 제로 웨이스트 카페는 지난해 10월 기준 총 20여 곳에 이른다. 환경을 생각하는 판매자와 소비자의 실천이 유통과 판매 시스템을 바꿀 수 있을지 주목하게 된다.
쓰레기 수거업체를 운영하는 농부 김강진 씨
경남 거창군에서 6년째 사과 농사를 짓는 김강진 씨는 귀농해서 처음 마주했던 농촌의 모습에 무척 당황했었다고 고백한다.
“수확이 끝난 땅은 엄청난 비닐을 토해내요. 무더위가 시작될 즈음에는 농약병으로 쌓은 산을 보게 되고, 가을이 되면 인근 사과밭은 온통 은박비닐로 뒤덮여요. 사과 빛깔을 좋게 하기 위해서죠.”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부들이 도리어 땅을 해치고 있는, 아이러니한 광경이었다.
김 씨는 농약병을 모아 수거함이 있는 마을회관 앞으로 가져갔지만, 수거함은 이미 꽉 차 있었다. 수거업체에 전화하니 “수거 기간을 통보하면 그때 버리라”고 했다. 가까운 곳에 폐기물 처리장이 있지만, 분리수거가 잘 되지 않아 방치된 쓰레기장이나 다름없었다. 주위에 조언을 구해도 “쓰레기는 태우면 되는데 뭘 걱정하냐”는 답만 돌아왔다.
김 씨는 고민 끝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태우려고 모아둔 영농 폐기물을 재활용 업체에 가져다주는 것이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았던 일이다. 이러한 그의 활동은 지역에 반향을 일으켰다. 김 씨의 활동에 힘입어 마을 주민자치위원회에서는 농촌 환경미화원 고용을 추진하고 있다.
“도시에서는 쓰레기를 종량제 봉투에 넣어 집 앞에 두면 알아서 수거하잖아요. 농촌에도 영농 폐기물을 수거하는 사람이 필요해요. 농촌 환경미화원은 특히 청년 귀농인에게 좋은 일자리가 될 것 같아요. 주민자치위원회를 통해 안정적으로 급여를 받고, 영농 폐기물을 수거해서 보상금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또 지역의 구석구석을 알 수 있고, 환경과 공익을 위한 일이니 지역민과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죠.”
최근 김 씨는 조금 더 본질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농사짓는데 비닐을 안 쓸 수는 없을까?’ 기술은 계속 발전하는데, 농사짓는 방법은 점점 환경을 파괴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라는 명목 아래 산을 깎고, 흙을 엎어요. 으레 있어야 하는 풀들은 제초제로 사라지죠. 시도 때도 없이 농약이 날아들고, 이름 없는 곤충들이 이유 없이 죽어가요.”
스스로를 ‘가난한 농부’라 칭하는 김 씨는 먹고살기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농사를 지었다고 했다.
사과 알을 굵게 하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영양제를 주고, 예쁜 색깔을 내기 위해 사과밭에 은박필름을 깔았다. 사과가 병에 걸릴까 봐 꼭 치지 않아도 되는 약까지 뿌렸다. 잘 팔리는 사과를 키워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3년 전 직거래를 시작하며 재배 방법을 완전히 바꿨다. 소비자 덕분이었다.
“내가 키운 사과를 누군가 바로 먹는다고 생각하니, 영양제도 농약도 함부로 칠 수 없었어요. 생김새보다 건강한 농산물을 찾는 소비자 덕분에 색깔을 억지로 만들어내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고요. 농사짓기도 편해졌고, 덕분에 쓰레기도 많이 줄었어요.”
쓰레기는 어디로 가는가
2018년 4월 ‘쓰레기 대란’. 작년 이맘때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중단하자 국내 재활용 업체가 폐비닐 수거를 거부하면서 일어난 혼란이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아침마다 만나는 깨끗한 도로와 주변 환경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불편하고 지저분하고 더 이상 쓸모없어진 것들을 깨끗이 치워준 덕분이었던 것임을 어렴풋이 깨달았고, 정말 많은 쓰레기가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진다는 사실도 실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든 그 많은 쓰레기는 어디로 가는 걸까. 매일 생산되는 쓰레기의 양은 이미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8년 11월 환경부가 파악한 전국의 쓰레기 산은 모두 235곳, 이중 불법 폐기물의 양은 총 120만3000t이다. 지난 7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한 쓰레기 더미가 현지 시민단체에 적발됐다.
환경부는 지난해 5월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내놓으며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의 발생량을 50% 줄이고, 70%는 재활용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카페 안에서는 일회용 컵을, 대형마트에서는 일회용 비닐봉지를 쓸 수 없게 되었다. 쓰레기를 줄이자는 시민 차원의 자발적 움직임은 이런 규제보다 앞서서 활발하게 일어났다. 여러 시민단체들이 행사에서 일회용품 줄이기 캠페인을 이어가고, 텀블러, 장바구니, 손수건 등을 외출 필수품으로 챙기며 동참하는 적극적인 소비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편리함과 인력 부족 등 다양한 이유로 일회용품 사용이 계속 되고, 마케팅과 비용 절감을 위한 과대 포장이 만연하며, 농촌의 많은 지역에선 여전히 쓰레기가 태워져 공중으로 날아간다.
“매년 8백만 톤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들어간다.
트럭 1대 분량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1분마다 바다에 버려지는 셈이다.”
독일 OU의 홈페이지 첫 화면에 있는 경고 문구는, 비닐봉지와 플라스틱을 잔뜩 먹고 죽은 고래와 바다거북, 비닐을 덮은 채 날아가는 새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지구를 살리자”는 숭고하고 거대한 사명의 완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과 마을, 동네의 환경을 돌보고 쓰레기를 줄이려는 의식과 실천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원래부터 쓰레기였던 것은 없다.
글·사진 신수경, 이진선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