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이에른주 농촌마을 괴리스리트, 발트
괴리스리트의 ‘자연 산책길’
독일 바이에른주의 작은 지방자치단체 괴리스리트Görisried에 도착했을 때, 전통 복장을 하고 우리를 맞아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지자체의 장, 테아 바인슈타이너Thea Barnsteiner였다.
4개의 기초 단위가 모여 총인구 5000명. 마을의 역사는 700년이다. 바인슈타이너는 전 지자체장의 비서관 출신으로, 실무 경험이 풍부하고 지역의 사정을 잘 알아 지역주민들의 신뢰를 얻어 2선째 지자체장을 맡고 있다. 작고 소박한 그의 집무실에는, 세월의 흔적을 담은 낡은 의자가 눈에 띄었다.
바인슈타이너 씨는 직접 마을을 안내해주었는데, 깔끔하게 단장된 유치원 앞에서 “오늘 두 명이 아파서 결석했습니다”라고 말해주었다.
그가 안내한 ‘자연 산책길’. 숲길을 걷다 보면 그 숲에 사는 동식물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자연친화적인 안내판과 자연 학습장, 놀이터 등을 만난다. 화려하고 인공적인 시설이 아니라, 숲, 바람, 곤충, 물소리 등을 더 잘 듣고 알 수 있는 작은 장치, 바람과 물의 힘으로 동력을 만들었던 과거의 역사도 담고 있는 이곳은, 건축가로 은퇴한 허브 레오Herb Leo 씨가 중심이 되어 마을 주민들이 돈을 모아 2009년부터 하나씩 천천히 만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마을의 한 식당에서 점심 식사 후 우연히 레오 씨를 만났다. 마을의 역사와 사정을 잘 아는 그는 “살아있는 사전”이라 불린다. 바인슈타이너가 그렇게 소개하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나는 그저 들은 것을 전달할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자연 산책길에 대해서 묻자, “내가 이전에 경험한 것들, 전기, 휘발유가 없이 살았던 과거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라고 말했다.
발트의 ‘마을 박물관’
바이에른주의 또 다른 지방자치단체 발트Wald. 이곳 역시 6개의 기초 단위가 행정의 편의와 비용절감을 위해 연합해있다. 주민은 1200명 정도인데, 사격, 수영, 낚시, 연극, 의용소방대 등 주민들은 18개의 자발적인 단체에서 활동하며 연간 활발한 공동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관광과 농업, 생태의 삼각지대로 불리며, 독일 알고이 지역의 경관을 잘 보존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특별한 마을 박물관이 있다. 1870년대에 지어진 농기구 창고를 허물게 될 상황이 되자, 2005년 마을 주민 햅 에드문트Happ Edmund 씨와 요한나 푸어쉬케Johanna Purschke 지자체장이 마을로 옮겨 2006년 마을 박물관으로 세웠다. 박물관 안에는 1만5000년 전 매머드 화석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다양한 농기구, 벼락을 맞아 불에 탄 종탑까지 그야말로 마을의 유물이 가득했다.
푸어쉬케 씨의 안내로 마을 박물관을 둘러보고 있을 때, 에드문트 씨가 도착했다. 그는 유쾌하고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마을의 ‘위대한 유산’을 자랑했다. 그리곤 아코디언 연주를 하기 시작했고, 이내 익숙한 듯 처음 듣는 듯한 흥겨운 음악에 모두 하나가 되었다. 이곳에서 결혼식도 이루어진다고 했다. 사라질 뻔한 오래된 것들이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 덕분에 마을의 역사로, 또 미래로 이어진다.
2019년, 지역 소멸의 위기가 화두다. 이를 막기 위해서 정부와 지자체는 도시의 청년을 농촌에 유입하기 위해 많은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정작 농촌을 묵묵히 지키며 살아온 이들에 대한 대접은 소홀하다.
‘미래가 있는’ 농촌의 비결
독일의 작은 농촌, 괴리스리트와 발트는 공통점이 많다. 다양한 네트워크 활동이 활발하며, 유치원과 학교 등 교육환경에 정성을 기울인다. 마을 의용소방대 등 주민 자치 체제가 잘 형성되어있고, 이를 토대로 환경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지역을 활성화하는 산업을 유치했다. 수력이나 바이오가스 등으로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며 생태와 환경을 보존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마을에 존경받는 ‘어른’이 있다는 것이다. 바인슈타이너나 레오, 푸어쉬케, 에드문트 같은. 이들은 오랫동안 마을을 지키며 미래 세대에게 아름다운 자연과 전통, 삶의 지혜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노인 한 사람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많은 경험과 지혜를 지닌 지역의 어른과 의욕이 넘치고 역동적인 청년이 함께 삶의 균형을 맞추어가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마을에는, 어른이 필요하다.
글 신수경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