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사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2010년에 이명박 정부는 「농림수산식품·농산어촌 비전 2020」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3대 정책 미션의 하나로 ‘쾌적하고 활력이 넘치는 농산어촌’을 만들겠다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 10년 사이에 농촌 상황은 조금이라도 나아졌는가? 그동안 많은 예산이 투자되어 왔고, 또 여전히 많은 인력이 관여하고 있지만 농촌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과연 누구의 탓인가? 무슨 문제가 있는가?
농촌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은 조금만 다녀보면 쉽게 보인다. 인구 감소를 넘어 초고령화, 양극화, 주민 갈등, 환경 파괴 등 현상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정말 많다. 하지만 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파고들며 근본적 대안을 제시하는 전문가, 농촌 현장 깊숙이 들어와 실천하는 활동가, 농촌 문제가 나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제도를 열심히 개선하려는 공무원을 만나기 쉽지 않다. 전국 방방곡곡에 이런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흩어져 있고, 고립되어 있다. 소위 선진 사례라는 것도 확산되지 못하거나 오히려 후퇴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필자는 2004년부터 인구 3만명이 되지 않는 조그만 자치단체에서 계약직 공무원으로 8년, 마을 만들기 중간지원조직 센터장으로 2년, 총 10년을 근무하였다. 지금은 충남 광역으로 옮겨 6년째가 된다. 참여정부에서 시작하여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의 농촌마을정책을 현장에서 온몸으로 지켜보았다. 때로는 중앙정부에 이런저런 건의도 하고, 소위 선진 사례를 만들어, 이 사례를 보기 위해 견학 오는 사람도 많았다. 글도 쓰고 발표도 많이 했다.
이 글은 이런 경험에서 비롯된 반성이자 변화를 위한 제안이다. 2020년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며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 도발적인 성격의 글이다. 앞으로 토론 재료로 지역에서 널리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농촌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은 조금만 다녀보면 쉽게 보인다. 인구 감소를 넘어 초고령화, 양극화, 주민 갈등, 환경 파괴 등 현상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정말 많다. 하지만 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파고들며 근본적 대안을 제시하는 전문가, 농촌 현장 깊숙이 들어와 실천하는 활동가, 농촌 문제가 나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제도를 열심히 개선하려는 공무원을 만나기 쉽지 않다. 전국 방방곡곡에 이런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흩어져 있고, 고립되어 있다.
‘생산주의 농정’ 프레임에 갇힌 농촌정책
현재의 농업정책은 근대화 과정에서 왜곡된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흔히 ‘생산주의 농정’이라 부르는 것으로 먹거리의 대량생산과 안정된 공급을 기본으로 한다. 이런 정책은 농민보다 도시 소비자를 위한 관점에 가깝다. 이런 관점은 농민운동 속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농업이란 그냥 먹거리 생산이고, 소비자 공급 산업일 뿐이다. 농업과 농촌, 농민을 분리하는 단절적 사고의 탓이 크다.
농식품부에서 농촌정책국을 발족하고 제1국이 된 지 10년이 훨씬 넘었다. 농촌정책국에는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 5개년 기본계획(농발계획),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 지역개발 5개년 기본계획(삶의질계획)을 총괄하는 권한도 부여되어 있다. 그만큼 농촌정책 속에서 농업정책 전체를 포괄하려는 흐름으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의 권위를 부여받고 있는지, 또 역할 인식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지방자치단체로 내려오면 농촌(지역개발)정책은 건설과 산하에 있거나 여러 부서로 흩어져 여전히 독립적인 지위가 없다. 농촌정책이란 것이 아예 없거나 농업정책의 부수적인 영역에 그친다. 농촌정책 전문가는 아예 없고, 그것이 여전히 당연하다고 여긴다. 생산주의 농정이지자체에서는 더더욱 강화되어 있는 셈이다.
농업과 농촌, 농민의 3농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농촌은 농업을 담는 그릇이고, 농업은 농촌사회의 뿌리에 해당한다. 농민은 이를 연결하는 주인공이다. 하지만 농업 근대화 과정이 3농사이의 분단을 강요하였다. 또 정책 칸막이 속에서 더욱 분리되는 악순환이 심해지고 있다. 그러면서 농촌사회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칸막이 프로그램 사업만 남발할 뿐이다. 근본적인 대응은 하지 못하고, 임기응변적 미봉책 사업만 늘어나고 있다. 행정 칸막이는 심지어 민간단체 칸막이까지 확대 재생산하여 ‘연대와 협력’ 문화가 사라졌다. 농민은 보조사업에 길들여져 ‘가진 자가 더 차지’하는 권력 현상이 심각하다.
농민의 농정 신뢰도 바닥, 정책을 바꾸어야
농촌 현장에서 보자면 농정에 대한 농민의 신뢰도는 거의 바닥 수준이다. 어떤 정책을 내어놓아도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려 한다. 현재의 대의제 선거 시스템에서는 ‘힘센 대농’이 지자체 농정을 좌우한다. 힘없는 대다수 소농은 분열되어 있고, 대변할 수 있는 농민집단도 괴멸 상태다.
그나마 있는 농민단체도 지역사회 전체를 보지 못하고, 지역 주민과 함께 전진하려는 대중 노선에서 멀어져 있다. 그래서 ‘현장 농민의 조직화’를 통해 농정을 변화시키려는 전략은 너무 원칙적이고 현실에 맞지 않다. 세상의 변화는 너무 강력하고, 농촌 현장이 무너지는 속도는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정책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아니 어떤 것을 주장하고 바꾸어야 하나?
중앙정부 농촌정책의 변화를 통해 제도 개선을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지자체 농정의 변화보다 더 쉽고 빠른 것이 중앙 농정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변화는 아닐지라도 ‘좋은 방향에 대한 신호’ 역할은 분명히 한다. 현장 활동가는 이런 신호를 활용하여 민관협치와 자치분권, 균형발전의 가치를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 이런 명분만으로도 협치농정과 제도 개선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새로운 실험을 시도할 수 있다. 다만 문제의 핵심,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아야 정책 변화를 요구할 수 있다. 농민수당과 같이 몇 가지 프로그램 사업을 요구하는 것으로 바뀔 농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4대 근본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앙정부 농촌정책의 변화를 통해 제도 개선을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지자체 농정의 변화보다 더 쉽고 빠른 것이 중앙 농정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변화는 아닐지라도 ‘좋은 방향에 대한 신호’ 역할은 분명히 한다. 현장 활동가는 이런 신호를 활용하여 민관협치와 자치분권, 균형발전의 가치를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 이런 명분만으로도 협치농정과 제도 개선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새로운 실험을 시도할 수 있다. 다만 문제의 핵심,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아야 정책 변화를 요구할 수 있다.
첫째, 정책의 칸막이가 너무 심하고 복잡하다. 행정의 업무 분장이 공무원 직렬 중심이다 보니현장 실정에 전혀 맞지 않다. 수요자 주민의 필요를 반영하지 못한다. 게다가 공무원 순환보직제로 현장 전문성도 떨어진다. 그래서 다양한 종합 계획은 컨설팅기관을 통해 전적으로 수립되고,수립된 정책도 거의 작동하지 않게 되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간은 행정의 업무 조정과 조직 개편, 중간지원조직 설치를 끊임없이 요구하게 된다. 농촌 정책의 전담 부서 신설(지정)과 업무 협조 체계, 순환보직제 단점 극복 장치 도입이 그래서 중요하다.
둘째, 지역 현장에는 ‘일할 사람’이 너무 부족하다. 대규모 정책 사업이 매년 반복적으로 시행되고 있음에도 현장에는 활동가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전문가가 자리잡을 좋은 일자리가 없다. 이런 ‘일할 사람’의 전업적인 활동공간으로서 중간지원조직 설치, 임기제 공무원 채용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 공공성이 있는 민간단체에도 활동가들이 다수 활동할 수 있도록 좋은 일자리를 적극 제공해야 한다. 각종 창업프로그램은 서로 잘 연계되어 원하는 사람에게 적재적소에 제공되어야 한다. 대규모 행정 사업일수록 인건비 투자를 항상 병행해야 한다. 이런 방향으로 지금의 보조사업 방식을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셋째, 민관협치의 제도적 기반이 취약하다. 민간의 주민자치 역량이 부족하다고 탓하지만 사실은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성장 과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년도 단위 사업에 집중하고, 또 민간에 권한을 제대로 위임하지 않은 채 보조사업 방식만 남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은 행정의 고유역할(수비범위)을 명확히 하고, 권한을 민간에 과감하게 이양하거나 중간지원조직에 위임해야 한다. 지방자치의 짧은 역사 속에서 주민자치의 역량은 천천히 성장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성장 과정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 정비가 오히려 더 시급한 것이다.
넷째, 읍면 주민 생활권 단위의 공간계획도 미비하다. 그래서 농촌정책이 주민들의 ‘필요’를 반영하지 못하고, 정책 융복합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한국사회 기초자치단체의 규모가 유럽나 미국, 일본에 비해 너무 크고 마을 주민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직접 반영되기 어려운 현실임을 충분히 인정해야 한다. 읍·면 행정 단위가 원래 지방자치단체였고, 직접 민주주의가 실천될 수 있는 기초 단위인 셈이다. 이런 역사적 현실도 반영하여 시·군의 권한이 읍·면으로 과감하게 이양되어야 한다. 또 민간의 주민자치(위원)회를 실질적인 주민자치의 대표조직으로 전환하여 다양한 정책사업이 현장에서 융복합되도록 해야 한다.
행정과 민간이 함께 협력하여 농촌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민관협치 관점은 이제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대세로 자리잡았다. 행정은 서비스 제공자로서 민간의 주장을 귀담아들어야 하고, 민간도 학습 과정을 거쳐 합리적 주장을 해야 한다. 또 지방으로, 민간으로 권한을 과감하게 이양해야 한다는, 그래서 읍면동 주민자치회 권한을 강화하려는 자치분권의 흐름도 매우 중요하다. 현장 전문가와 활동가, 지역 리더들이 모여 농촌정책을 ‘우리 스스로 만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제는 농촌정책이 대답을 해야 할 때다
농촌사회의 지속 가능성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나? 여기에 대한 답변은 분명 쉽지 않다. 한 가지 답만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필자는 일본 유학 시절 박사학위 논문에서 ‘지역의 자치력自治力과 자급력自給力’을 강조한 바 있다. 농촌에 살면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가려는 자치의 힘, 그리고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이 주도하여 지역 내부에 성장 동력을 축적하려는 자급의 힘. 일본 농촌사회의 변천 과정을 탐구하면서 근현대사에서 잃어버렸던 가장 큰 보물, 그래서 다시 복원해야 하는 농촌 고유의 힘으로 이 두 가지에 주목했던 것이다.
필자가 앞에서 제시한 4대 근본과제는 현장 경험에서 추출한 것이다. 결국은 농촌사회가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자치력과 자급력을 잃어버린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지역으로 권한(자치권, 예산권, 계획권 등)을 이양하고, 책임도 요구할 때 평가가 공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쉽지 않다, 시간이 걸린다, 너무 빠르다, 우리 힘만으로 안 된다 등 핑계를 찾는 동안에 농정에 대한 신뢰도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중앙정부도 지자체도 농촌정책이 현장의 질문에 대답해야 할 때다. 주민 탓을 하면 답이 없다.
2020년, 이제 ‘새로운 10년’이 시작된다. 앞으로 지향해야 할 농촌정책 시스템은 무엇보다 ‘민관협치(거버넌스)’에서 찾을 수 있다. 행정과 민간이 함께 협력하여 농촌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민관협치 관점은 이제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대세로 자리잡았다. 행정은 서비스 제공자로서 민간의 주장을 귀담아들어야 하고, 민간도 학습 과정을 거쳐 합리적 주장을 해야 한다. 또 지방으로, 민간으로 권한을 과감하게 이양해야 한다는, 그래서 읍면동 주민자치회 권한을 강화하려는 자치분권의 흐름도 매우 중요하다. 현장 전문가와 활동가, 지역 리더들이 모여 농촌정책을 ‘우리 스스로 만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초기에는 시행착오가 많을 수밖에 없겠지만 훈련 과정을 반복해야 주민자치 역량도 성장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정책 동향과 선진 자치단체 정책 시스템 분석을 통해 [그림]과 같은 10대 핵심과제로 요약하여 제시한 바가 있다.1) 지면 부족으로 하나하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산적한 현장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에서 농촌정책이 대답해야 할 숙제의 키워드는 분명 될 것이다. 작년 4월에 발족한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도 “농정의 틀을 바꾸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웠고, 작년 12월 본위원회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의결도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어느 정부나 거버넌스를 강조하고 추진 체계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번만은 꼭 변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향후 10년이 농촌 살리기의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필자 구자인: 충남연구원 부설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 센터장. 1980년대 말부터 풀뿌리 주민자치운동의 일환으로 마을 만들기 방법론에 관심을 가지며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일본 유학을 통해 농학박사 학위를 받고 농촌으로 돌아왔다. 2004년부터 현장을 지키며 계약직 공무원으로, 또 활동가로 지자체 농촌마을정책에 관여해왔다.
1) 보다 자세한 내용은 「농업 농촌의 New Wave, 르네상스는 올까?」 81~106쪽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