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국가와 공동체의 책임을 묻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가 좀처럼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4월 17일 10시 현재 전 세계 확진자는 220만 명, 사망자는 15만 명에 육박한다. 작년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원인불명’ 폐렴 환자가 집단으로 발생했다는 보고가 나온 지 불과 넉 달 만이다. 바이러스의 급속한 확산에 공산국가인 중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말했던 도시 봉쇄와 외출금지령이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시행되면서 수십억 인구의 일상은 ‘멈춤’ 상태가 됐다. 
  유례가 없는 전 지구적 재난은 그동안 우리가 ‘선진국’이라 믿었던 나라들의 무능과 무질서를 드러냈고, 지난 40여 년간 진행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위험한 민낯을 알렸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고 있다. 개개인의 삶에 대한 국가와 공동체의 책임은 무엇인지, 코로나19 이후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우리는 어떤 선진국을 향해 가야 하는지. 

유례가 없는 전 지구적 재난으로 수십억 인구의 일상이 ‘멈춤’ 상태가 됐다.
유례가 없는 전 지구적 재난으로 수십억 인구의 일상이 ‘멈춤’ 상태가 됐다.

초강대국 미국과 복지국가 유럽의 민낯
“많은 이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지난 3월 12일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더 이상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방역을 포기하고 집단면역을 기다리겠다는 선언이었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겪어야 했던 황망한 슬픔과 분노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까. 예기치 못한 가까운 이들의 집단적 죽음을 이렇게 담담히 예고하는 국가 지도자의 발언은 너무도 비정해서 비현실적이었다.
  물론 이같은 영국 정부의 ‘집단면역’ 구상은 사망자가 수십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며칠 후 전면 수정됐지만,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4월 17일 현재 영국의 확진자는 10만 명을 넘었고, 누적 사망자는 1만4000여 명으로 확진자 대비 치사율이 13.4%에 달했다. 존슨 총리도 지난달 27일 확진 판정을 받아 세계 정상 중 첫 감염자가 됐다.
  유럽 국가 중 가장 먼저 폭발적으로 감염이 확산된 이탈리아의 사망자 수는 같은 시간 2만2000명을 넘어선 상태다. 2월 21일 첫 사망자가 나온 후 불과 두 달여 만이다. 치사율은 13.1%. 사망자 수에서 그 뒤를 이은 스페인(1만9000여 명)과 프랑스(1만8000여 명)의 치사율도 10%를 넘는다. 
  미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감염자 수는 70만 명을 향해 가고 있고, 누적 사망자는 무려 3만4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술을 가졌다는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나라가 됐다. 미 연방 50개 주 전체가 재난지역으로 지정된 상태.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감기에 불과하다, 미국은 문제없다”고 했던 트럼프는 지난 4일 “1, 2차 세계대전에 견줄 매우 참혹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고 없는 불운일까, 예견됐던 인재일까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게 둘 것인가.’ 무상 의료가 실현되는 복지국가, 유럽의 의료진들이 이같은 극단적 선택에 내몰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프랑스의 시사잡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4월호 한국판에 실린 ‘예견됐던 의료시스템의 악화’ 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에 대해 ‘정치적 선택’의 결과라고 짚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 각국이 강력한 긴축정책을 채택하면서 수년째 의료 부문 예산을 축소시켰고, 그로 인해 공공의료시스템의 환자 수용력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실제 프랑스의 병상 수는 1980년 11개에서 2017년 기준 6개로 줄었고, 이탈리아는 3.2개, 스페인은 3개, 영국은 고작 2.5개에 불과하다.(인구 1000명당 병상 수) 유럽 국가 중 상대적으로 치사율이 낮은(3%) 독일이 8개, 우리나라는 12.3개다. OECD 평균은 4.7개로 일본(13.1개)의 병상 수가 가장 많다.(OECD 보건의료통계 2019 자료)  
  의사이자 건강 불평등 연구의 세계적 대가인 마이클 마멋(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건강형평성연구소 소장)도 긴축재정을 계획한 보수 내각 정책결정자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고에서 “2010년 선출된 정부와 2015년 선출된 보수 내각이 전면적으로 내세운 재정긴축으로 인해 영국의 공공지출은 2009~2010년 국내 총생산의 42%를 차지했으나 2018~2019년 35%로 축소됐다”면서 “정부의 긴축정책은 결과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고, 금융위기로 잠시 주춤했던 최상위 1% 부자들이 더 많은 부를 쌓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꼬집었다. 실제 영국의 아동빈곤율은 2009~2012년 28%에서 2015~2018년 31%로 증가했고, 지역 내 보육원과 아동시설 1000여 곳이 정부의 공공지출 감소로 문을 닫았으며, 소득수준 하위 10% 가구 비율은 10년 전 28%에서 2016~2017년 38%로 치솟았다.
  우리나라 주요 보수신문과 경제지 등은 지난 몇 년간 틈만 나면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경제개혁 성과(?)를 끌어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비난해왔다. 2017년 5월 문 대통령과 비슷한 시기에 취임한 마크롱은 문재인 정부와 달리 과감한 친기업·친시장 정책을 펼쳐 일자리를 문제를 해소하고 유럽의 병자인 프랑스를 탈바꿈시켰다는 게 칭찬의 골자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3월 12일 코로나와 관련한 첫 번째 대국민 담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걸어온 지난 10여 년의 행보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번 세계적 유행병은 소득이나 경력, 직업을 떠나 온 국민이 누릴 수 있는 무상의료시스템은 비용이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재산이며, 운명이 우리를 강타할 때 반드시 필요한 자산임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 세계적 유행병은 시장의 법칙에서 제외시켜야 하는 재화와 서비스도 있음을 드러냈다. 우리의 음식, 우리의 안전, 우리의 삶의 틀을 관리할 능력을 다른 이에게 양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는 모든 통제권을 되찾아야 한다.”

바이러스는 가난한 이들에게 더 가혹하다
바이러스는 누구나 감염될 수 있지만, 가난한 이들이게 훨씬 가혹하다. 초강대국 미국의 코로나 상황은 이 사실을 어렵지 않게 증명한다.
  현재 미국의 의료보험 미가입자는 2700만여 명이 넘는다. 미국 인구의 9%가 의료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셈이다. 개인파산 원인의 62%가 의료비 때문이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지난 3월 말 미국의 한 코로나 확진자가 자신의 SNS에 공개한 청구서에 따르면, 진단 검사비로 907달러(약 110만 원), 치료비로 3만4927달러(약 4400만 원)가 청구됐다. 
  3월 13일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고 18일 ‘가족 우선 코로나바이러스 대응법(FFCRA, Families First Coronavirus Response Act)’이 통과되면서 코로나 진단검사는 보험이 없어도 무료로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이 법안에는 치료비에 대한 논의는 빠져 있는 상태. 미국의 비영리 보건단체 ‘카이저 패밀리 재단(KFF, Kaiser Family Foundation)’은 폐렴 환자들의 입원 치료비를 근거로 미국의 코로나 치료비용이 약 9763달러(약 1183만 원), 합병증이 있을 경우 약 2만292달러(약 2460만 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 코로나 사망자의 상당수가 흑인 공동체에 집중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 간 격차, 만연한 불평등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뉴스사이트 버즈피드는 지난 4월 10일 ‘왜 미국 전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큰 비율로 흑인들을 죽이나(Why The Coronavirus Is Killing Black Americans At Outsize Rates Across The US)’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흑인 커뮤니티에 건강 불균형은 항상 존재했지만,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그들은 더 불균형적으로 고통 받는다”고 지적했다. 흑인 인구 비중이 30%인 시카고에서 코로나 사망자 중 흑인 비율은 70%에 달한다는 것. 위스콘신주 밀워키(26%:66%)를 비롯 루이지애나주(32%:70%), 미시간주(14%:52%), 미시시피주(38%:71%) 등 다른 지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버즈피드는 이처럼 미국에서 코로나 피해가 흑인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이유로 먼저 생계를 위해 위험 속에서도 일터로 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꼽았다. 상당수 흑인들이 버스기사나 청소부, 상점 직원, 간병인 등 대중과의 접촉을 피할 수 없는 서비스 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일을 그만두면 당장 생계가 어렵기 때문에 증상이 있어도 감기약을 먹고 일터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에 당뇨병이나 고혈압, 비만, 천식 등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사례가 많고, 건강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을 뿐만 아니라, 병이 나도 격리가 불가능한 최악의 주택에 머물고 있다는 점도 이유로 꼽았다.
  사회적 약자가 위험에 더 노출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사실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어디든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프다.”(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도 그랬다. 경북 청도 대남병원이나 대구 제이미주병원, 한사랑요양병원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밀접 접촉이 불가피한 집단수용시설을 중심으로 감염이 빠르게 확산됐고, 오랜 병실 생활로 신체 기능이 퇴화된 이들 중에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생필품 사재기가 계속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생필품 사재기가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선진국이 될 것인가
한때 코로나 확진자가 중국에 이어 2위를 기록했던 우리나라는 지금 ‘코로나 방역 모범국’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됐다. 광범위한 검사와 신속한 진단, 끈질긴 추적과 격리조치로 국경 봉쇄나 이동제한 없이 코로나 확산을 효과적으로 저지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등에 차분하게 협조하면서 생필품 사재기 등을 하지 않는 우리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세계가 찬사를 보내고 있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4.15 총선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한국의 민주주의에도 경의를 표했다. 
  우리 정부에 의료장비 지원과 임상치료 경험 공유 등을 요청하는 세계 각국 정상들의 전화가 쇄도하는가 하면 진단키트를 비롯 각종 의료물자 수출이 늘면서 일각에선 새로운 ‘방역 한류’에 대한 기대감마저 나오고 있다. 
  “하루빨리 후진국을 탈피해 선진국에 진입하는 것을 민족적 사명으로 여기며 늘 서구 따라잡기에 골몰”해 온 시절을 살아 온 많은 한국인들에게 이러한 ‘낯선 경험’은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한민국은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자만이 아니라, ‘진정한 선진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다. 
  김종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인문한국(HK) 연구교수는 그의 책 <선진국의 탄생>에서 “한국사회는 지난 반세기 동안 줄곧 ‘선진국 진입’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향한 긴장감 속에 살아왔다”면서 “박정희 시대 이후로 발전주의자들은 선진국 문턱에서 자칫 잘못하면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부추기며 ‘조금만 더 참고 노력하면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논리로 국민들의 희생을 정당화해 왔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사회가 쫓아온 선진국은 우리의 희망사항들을 투영한 표상일 뿐, 실제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국가들의 현실은 한국 사회가 상상하는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하고, “이제 한국 사회는 발전주의자들이 만들어 낸 선진국을 넘어서,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반영한 ‘다른 선진국’을 상상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개인의 삶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함께 연대하고 돌보지 않는 나라는 아무리 경제대국이어도 선진국이 아니다. 기업의 생존과 경제 성장을 지상과제로 노동자·농민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실패자로 낙인찍고, 재난의 위험으로부터 지키지 못하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 자국 우선주의에 빠져 다른 나라 사람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가 어떤 선진국을 만들어갈지, 이제 우리 손에 달렸다.

15※필자 김선아: 한국농어민신문 기자. 1995년 첫 직장으로 한국농어민신문에 입사한 후 편집부, 국제부, 전국사회부, 기획부 등을 거쳤다. 지방자치, 로컬푸드, 사회적 경제, 귀농귀촌문제 등에 관심을 두어 왔으며 지금은 농업부 데스크로 농정 전반을 살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