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 2020년 7월 2일(목) 13:00~18:00
• 장소 : 대산농촌재단 세미나실
• 참석자
공석진 공씨아저씨네 대표
박은주 언니네텃밭 봉강공동체 실무자
송정은 농업회사법인㈜)네니아 전무이사
전민철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 생산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사회)
신수경(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 어려운 시기에 귀한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먹거리 생애 최종 단계인 ‘소비’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먹거리가 어떻게 소비되고 있고, 소비되지 않은 농산물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 먹거리는 어떻게 소비되는가?
친환경 학교급식 농산물 꾸러미
먹거리 대책 마련할 ‘식량위기관리본부’ 필요
정은정(농촌사회학 연구자): 요즈음 친환경 학교급식 농산물 꾸러미 사업이 이슈잖아요. 전북 완주군은 ‘제육볶음 키트’처럼 꾸러미를 구성해서, 학부모 입장에서 우리 아이가 평소에 뭘 먹는지 알 수 있게끔 했더라고요. 그런데 경기도 남양주시 중학교에 다니는 둘째 아이 앞으로 쌀 10kg이 덩그러니 배달된 걸 보고 ‘이게 뭐지?’ 싶었어요. 며칠 전 경기도 여주시 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 큰아이 앞으로는 쌀이랑 감자, 당근 정도에 참치, 스팸 햄 같은 것들이 왔더라고요. 엽채류 같은 일일채소 농가 상황이 안 좋으니까 신선채소를 소비하자, 이런 취지에서 완전히 벗어난 거죠. 다시 한번 소비자 중심으로 간 거예요. 학부모 수요, 취향을 조사하면서 대기업의 가공품을 채워 넣은 ‘CJ 꾸러미’, ‘오뚜기 꾸러미’가 등장했고요. ‘먹거리 정치’가 한국 사회에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인 것 같아요.
송정은(농업회사법인㈜네니아 전무이사): 서울시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어요. 서울시는 농산물 2만 원에 축산물 또는 수산물 1만 원, 가공품 1만 원 중에 하나를 골라 총 3만 원 꾸러미를 구성하고 나머지 금액은 농협몰에서 쓸 수 있게 했어요. 학부모회, 영양사회, 교장 등 급식 관계자들로 팀을 꾸려서 결정한 내용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행정에서 가장 편리하게 일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닐까 생각해요. 학교급식 꾸러미에 즉석 카레, 즉석 짜장, 참치와 통조림 햄을 넣어달라고 요청하고, 교육청에서는 “학부모들이 원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해요.
박은주(언니네텃밭 봉강공동체 실무자): 지자체에서 꾸러미 사업을 하는 게 어디인가, 고맙다 싶으면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어요. 중학생, 초등학생 자녀를 두었는데 똑같은 꾸러미 2개가 온 거예요. 게다가 아이스박스에 담아 보냈더라고요. 환경 면에서 아쉬움이 들기도 하고, 초·중·고 학년별로 순차적으로 받았으면 좋았겠다, 학교든 어디든 학부모가 직접 가서 받으면 아이스박스 사용을 줄일 수 있었겠다,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더라고요.
송정은: 학교급식 꾸러미 이야기가 나올 때 학교에서 도시락이나 반찬을 만들고, 엄마들이 학교에 직접 오거나 몇 군데 거점을 정해서 가져가도록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는데 전면 거부 당했어요. 교육부에서는 급식법으로는 안 된다고 하고, 영양사들은 학교에서 만든 음식을 학교 외부로 내보내는 것은 불법이며 품질 또한 책임질 수 없다고 반대했죠. 전쟁에 준하는 굉장히 큰 재난 상황인데, 행정은 행정대로 영양사는 영양사대로 각자의 생각과 입장에서 자기 목소리만 내는 거예요. 이럴 때 누군가 전체를 통솔하고 가장 적절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19에 대응하며 질병관리본부에서 이렇게 하자, 하면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것처럼 재난 상황에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식량위기관리본부’가 필요해요.
정은정: 경기도 교육청 급식 담당 주무관이 “어떻게 농민만 살리느냐”고 하더라고요. 교육청과 학부모는 소비자일 뿐이다, 친환경농산물을 소비하느라 얼마나 손해를 많이 본 줄 아느냐, 그동안 우리는 농민을 아주 많이 배려했다고 말합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 이들은 농민을 식자재 공급자로만 여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송정은: 학교급식에 공급되는 농산물은 180개 품목이 넘는데, 꾸러미에는 대여섯 개 품목만 집중적으로 나가요. 나머지 품목 생산자들은 혜택받기가 굉장히 어렵죠. 저희 같은 친환경 먹거리 가공 업체도 마찬가지고요. 이건 학교급식 자체의 생존이 걸린 문제거든요. 학교급식이 문을 닫으면 급식실, 영양(교)사, 조리사, 관련 공급업체, 농수축공산 생산자 할 것 없이 약 5조 원에 달하는 먹거리 시장이 문을 닫아야 해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모두 머리를 맞대야 하는 상황이 된 거예요.
> 소비의 양극화 심화와 해소 방안
‘가치’를 소비하는 소비자 늘어
다양한 세대를 대상으로 체계적인 먹거리 교육이 이뤄져야
박은주: 언니네텃밭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친환경농산물을 팔고 있는데, 소비자 성향이 양극화되고 있다고 느껴요. 원재료가 싼 가공품을 찾는 사람도 많지만, 자신의 식단을 까다롭게 챙기는 사람도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제철, 친환경, 토종을 찾는 사람들이죠. 6월 초부터 ‘채식 꾸러미’를 시범적으로 보내고 꾸러미의 구성이나 물품에 관해 꼼꼼하게 피드백을 받고 있는데, 어느 소비자가 채소에 딸려 들어간 배추벌레를 자신의 화단에 옮겨주며 “잘 가렴”이라고 말하는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줬어요. 꾸러미가 단순히 식재료를 사고파는 것 이상으로 그 의미가 상당히 확대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석진(공씨아저씨네 대표): 양극화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198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합쳐 일컫는 말. 편집자 주)의 소비 패턴 중 하나가 ‘미닝 아웃Meaning out’이에요. 사회적 가치,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소비를 뜻하죠. 10년 전만 해도 채식 식당을 열면 무조건 망할 것 같았지만, 지금은 큰돈은 못 벌어도 먹고살 수 있는 정도가 되었죠.
박은주: 오랜 고객이나 젊은 여성층 사이에서 포장재를 줄여달라는 요구가 늘고 있어요. 부추를 비닐에 담지 말라고 해서 신문지를 사용하고, 풋고추 같은 건 포장을 하지 않고 보냈더니 아주 흡족하다며 연락이 왔어요. 팩에 넣을 수밖에 없는 두부를 안 받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자신의 구매 행위로 새로운 플라스틱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한대요. 이런 소비자가 전체 꾸러미 회원 중에 2~3%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공석진: 저도 최대한 쓰레기가 나오지 않게 과일을 포장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다보면 운송 과정에서 한두 개 터질 때가 있어요. 이의를 제기하는 소비자도 물론 있지만, 어느 정도 여러 번 거래를 하면, 이런 경우에 이해하고 넘어가는 소비자가 대부분이에요. 요즈음 친환경농산물의 가치를 알고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죠. 그런데 유기농 점박이 감귤을 처음 봤다며 깜짝 놀라는 분들도 있어요. 사과에 점 하나만 박혀 있어도 당황하고요. 복숭아 안에서 벌레가 나와서 아이가 울었다는 연락도 와요.
송정은: 농산물이 맛있으면 벌레가 나올 수 있다. 벌레가 좋아하는 과일은 달고 맛있고, 오히려 건강하다. 이런 소비자 교육이 기본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농림부를 비롯한 모든 행정 공무원, 학교 선생님들에게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먹거리 교육을 해야 해요.
정은정: 요즘 학교급식 현장에서 90년대생 교사들이 민원인으로 등장했대요. 돈가스 나오면 좋아하고 채소 나오면 쓱 버리는 세대인 거죠. 공교육 체계에서 식생활 교육이 공식 수업으로 채택이 안 되어있잖아요. 학교에 ‘급식이 교육이다’라는 슬로건은 있지만, 실제로는 학생들 밥 먹이는 것에서 끝나는 거예요. 먹거리 교육에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초등학교 6학년까지 ‘내가 다룰 수 있는 채소 요리 10가지’를 배우게 하고, 중학교에서는 좀 더 심화과정을 교육하는 거죠.
전민철(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 연합회 생산자): 우리는 미래 세대에 투자해야 해요. 어린이는 커서 공무원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도 될 수 있죠. 우리가 돈을 들여서라도 농업과 농촌을 알려야, 그들이 나중에 우리 편이 될 수 있어요.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도시 태생이잖아요. 도농 교류 차원으로, 시골에 친척 집을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할머니네 한번 놀러 와라, 해서 농산물을 직접 따보고 먹어보게 하는 거죠.
정은정: 교육은 확실히 힘이 세요. 제가 대학 다닐 때 학교에서 농촌활동을 1학점씩 인정해주었어요. 1학점을 받기 위해 농촌에 오는 학생은 사실 드물죠. 그래도 학생들이 농촌에 대한 기억을 계속 가져가게 하는 중요한 플랫폼이었다고 봐요. 그렇다면 우리의 고민을 단박에 해결하는 방법은, 농촌에 몇 번 다녀왔는지 학생부종합전형에 넣으면 된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곤 해요. 기존의 교육 체계에 농農과 식食을 어떻게 포함할지 고민해야 해요.
‘착한’ 소비는 없다. ‘적정한’ 소비로
지자체의 ‘농민 돕기’ 운동은 ‘착한’가
경쟁구조 속에 놓인 농민 그리고 생협
정은정: 이번에 강원도가 코로나19로 어려워진 농가를 돕는다며 감자, 아스파라거스에 이어서 토마토를 시중가의 반의반도 안 되는 가격에 팔았어요. 사람들이 얼마나 몰렸는지 ‘감자 고시’, ‘아스파라거스 고시’라는 신조어까지 나왔죠. 그러면 그 사람들이 다음부터 제값을 주고 살까요? 너무 비싸다, 이 소리가 저절로 나올 거예요. 농산물의 가격을 끌어내리는 악효과가 생기는 거죠.
공석진: 농민과 소비자 사이에 계급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돕기’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순간, 소비자는 농민을 도와주는 존재로, 농민을 자기 아래에 둘 수밖에 없는 거예요. 누군가 페이스북에 “저희 어머니가 농사를 짓는데 이번에 양파를 땅에 묻게 생겼어요”라고 말하면 여기저기서 한 박스씩 보내 달라고 하죠. 얼마 전에는 펭수까지 나와서 복숭아, 자두 농가를 돕겠다고 했어요. 전체 시장을 봤을 때 해서는 안 되는 판매 전략인데, 아직도 이런 ‘신파’가 고정 레퍼토리로 쓰이고 있어요.
전민철: 작년 여름에 한살림 양파가 무지하게 남아돌았거든요. 한살림이 가격안정기금으로 양파를 싸게 팔겠다는 거예요. 차라리 그 돈을 가지고 폐기하라고 했더니, 농민이 열심히 농사지은 건데 어떻게 폐기하냐고 하더라고요. 팔리지 않는 농산물은 과감하게 폐기해야 해요. 절대적인 양이 줄지 않으면 그 물량이 시장에 깔리잖아요. 정상적인 가격에 팔 수 있는 농산물값도 폭락하게 됩니다.
송정은: 말씀을 듣다 보니, 지금의 소비 구조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한살림과 같은 생협은 이제 잘나가는 일반 유통기업들과 경쟁해야 할 거예요. 과거 생협 소비자들은 이 생산물을 누가, 어디서, 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공동 생산자’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건강한 먹거리를 사기 위해 생협을 찾는 분들이 더 많아요. 게다가 요즘은 가격 비교하기 너무 쉽잖아요. 마켓컬리에 들어가서 밤 11시까지 주문하면, 친환경 채소부터 과일까지 온갖 것들을 다음날 새벽에 받을 수 있어요. 살아남기 굉장히 힘든 경쟁구조예요.
정은정: 생협이 과연 친환경농산물의 주요 소비처로 기능할 수 있을까요? 소비자는 마켓컬리를 써도 되고 SSG를 이용해도 되는데, 생산자들은 갈 데가 없어요. 붕 떠버리는 거예요. 전체 생협의 생산자들이 위기감을 공유하는 자리가 반드시 필요해요.
> 로컬푸드·생협·꾸러미 등 먹거리 대안 운동
먹거리 대안 운동, 시장을 자극하는 역할
먹거리 문제는 공공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박은주: 언니네텃밭은 지역에서 자라는 친환경, 제철 농산물에 적절한 의미를 담아 판매하고, 그 과정을 알아주는 소비자들과 소통하면서 유지하고 있어요. 월 4회든, 월 2회든 우리가 보낸 꾸러미가 회원들의 밥상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긍지를 가져요. 함께 작업하는 어머님들의 자부심도 많이 높아졌고요. 할머니 이름으로 된 통장으로 수익금이 입금되는데, 오랫동안 농사지은 분들이 노동의 결과를 자신의 계좌로 확인하는 과정은 신세계죠.
정은정: 언니네텃밭은 여성 친화적인 프로그램이죠. 여성들이 텃밭이라는 비경제적, 비가시적 공간을 다시 경제적 공간으로 바꾼 거잖아요. 비즈니스 차원에서 키울 수 없어요. 돈과 연결 지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고요. 주류 시장은 어차피 가락동 도매시장 시스템이에요. 그래도 언니네텃밭과 같은 대안이 시장을 자극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봐요.
송정은: 언니네텃밭이 계속 움직여주는 것처럼, 누구든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걸 계속해주면 좋겠어요. 모든 공간과 여건 속에서 전방위적으로 움직여야 사회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네니아 매장은 소규모 생산자들의 농산물을 벌크로 받아서 팔기도 해요. 사실 어떨 때는 제품이 엉망으로 오기도 해요. 생산자가 다음번에 좋은 걸 보내줄 때도 있고, 우리가 손해를 볼 때도 있어요. 그래도 이게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누군가 또 이 일을 계속할 거니까요.
정은정: 이런 상상을 해요. 독거노인, 독거중년, 독거청년이 집에서 밥 해먹기 어려운 시스템이라면 급식 시설을 활용하는 거예요. 학령기 아이들이 줄어들면 학교라는 공간은 텅 비거든요. 가장 최신식이고, 위생적이며, 안전한 학교급식 시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핵심인 것 같아요. 시골에 아이들은 없어도 노인들이 계시잖아요. 학교가 거점이 되어서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최소한 반조리 형태로 만들어 어르신들께 공급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전민철: 저도 지역에 공공급식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혼자 계신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모여서 밥을 드세요. 같이 먹으면 반찬을 한 가지라도 더 하게 되니까요. 그러면 영양 상태도 개선이 되고, 병원에도 덜 가게 돼요. 어르신들의 먹거리를 확보하는 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국가적인 손실도 줄이는 거예요.
송정은: 학교급식 시설처럼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것을 활용하자는 제안에 절대적으로 공감해요. 그리고 이러한 공공시설에서 국내산 농산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겠고요. 초등학교는 많이 나아졌지만 중고등학교의 경우에 된장, 고추장은 수입산 재료로 만든 대기업 제품을 쓰는 경우가 많아요. 두부도 대부분 수입산을 쓰고요. 참기름, 들기름 이런 건 말할 것도 없어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두, 빵류, 소시지에도 수입산 원료가 아주 많이 섞여요. 우리밀 빵이라고 적어놓고 정작 우리밀은 5%만 들어 있는 경우도 있어요.
전민철: 우리 공동체는 매년 초등학교에 유기농 쌀을 무상으로 줘요. 한 10년 넘었어요. 우리가 쌀을 공급하니, 영양사들이 급식실에 내려온 쌀값을 가지고 장류를 친환경으로 바꿨더라고요. 그런 긍정적인 변화를 우리 눈으로 본 거죠. 그리고 이게 보편화된다고 생각해보세요. 농민들이 어렵다고 이야기할 때, 어? 우리 애들 도와준 사람인데? 하면서 다들 관심 가지겠죠. 농민단체에서도 지역과 함께 가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해요.
정은정: 농민들이 스스로 지역사회에서 사각지대를 발굴해 도움을 준다는 게 되게 멋진 일인 것 같아요. 구조만 바꿔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요.
재난지원금과 농민기본소득
재난지원금, 새로운 집단 실험의 성과
농민기본소득에서 농촌기본소득으로 논의 확장되어야
전민철: 이번에 나온 재난지원금, 정말 고맙게 잘 썼어요. 이번에 마늘종 뽑는 걸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랑 한우를 먹었어요. 4~5명이 직판장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으면 20만 원은 나오는데, 평소 같으면 못 먹죠. 이게 나라의 역할이구나,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판장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으면 20만 원은 나오는데, 평소 같으면 못 먹죠. 이게 나라의 역할이구나,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송정은: 저희 매장도 정육 판매율이 굉장히 늘었어요. 소비자들이 아무래도 평소에 못 먹던 고기를 더 많이 드시는 것 같아요. 사람의 경험이 60일 정도 지속되면 습관이 형성된다고 하더라고요. 소비자들이 대형마트에 가던 발걸음을 전통시장이나 지역의 오프라인 매장으로 슬슬 돌리는, 새로운 습관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해요. 이게 국민들에게 안착이 되면 좋겠고요.
정은정: 이번에 재난소득을 통해서 시민들이 낙수효과의 허상을 알았잖아요. 그동안은 재벌에게 돈을 주면 우리에게 뭔가 떨어질 거라고 했는데, 아무것도 안 왔잖아요. 고용도 창출하지 않고, 환경은 환경대로 훼손하고요. 우리한테 돈을 주면 우리는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쓰는데 말이죠. 그걸 깨닫는 중요한 집단 실험을 어느 정도 해냈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람들이 기부를 하지 않은 것도 어떤 면에서는 통쾌했어요.
전민철: 농민기본소득이 재난지원금처럼 나온다면, 저도 뼈 빠지게 죽으라고 농사짓지 않을 거예요. 사실 힘들거든요. 오늘도 서울 오기 전에 새벽 5시에 나가서 풀 베고 왔어요. 집사람은 저녁 8시면 잠이 들고요. 체력적으로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코로나19 이후 조직 토론회에서 소농, 생태 보전, 토종 종자와 같은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잖아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 사람들의 생계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거예요. 소농 복합농, 이론은 좋아도 망하기에 가장 빠른 길이거든요. 1500평 농사지어서 평당 1만 원을 벌어도 1500만 원이잖아요. 농사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빼면 남는 게 없어요.
박은주: 제가 단호박 100평 농사짓고 이렇게 저렇게 팔아서 80만 원의 수입을 올린 적이 있는데, 저희 작목반에서 평수 대비 농사를 제일 잘 지었다고 칭찬받고 좋아했어요. 그런데 정산해보니 비룟값이 40만 원 나왔어요. 씨 값은 빼고요. 농사짓는 형님들의 놀림감이 되었던 적이 있었죠.
공석진: 그 와중에 지자체 농업기술센터에서는 농민들에게 직거래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농민들 대상으로 강의를 다닌 적이 있는데, 가서 솔직하게 말씀드렸어요. 저는 농민이 직거래하는 것 반대한다. 사람이 무슨 기계도 아니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12시까지 주문을 받느냐. 차라리 그 시간에 쉬셔라. 농업기술센터 직원들에게도 대놓고 요구했더니 다시는 안 부르더라고요.
정은정: 농촌에는 농민의 삶만 있는 게 아니죠. 보통은 농민이면서 계절 노동자이기도 해요. 겨울에는 건설 현장도 나가고, 슈퍼마켓 계산원으로 일하는 어머니들도 있어요. 지역에서 작은 미용실을 하시는 분도 농촌에서의 삶을 유지하고 있고요. 그래서 조금 더 세게 나가면 농민기본소득보다 농촌기본소득으로 가야 한다는 건데, 이런 논의가 더 많이 이뤄져야 해요.
> 코로나19 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
연대와 협력으로 함께 사는 세상
각자의 색깔을 내며 어우러져야
전민철: 한때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문구를 한동안 차에 붙이고 다녔어요. 농민도, 농민이 만들어내는 먹거리 를 먹고 사는 사람도 모두 다 같이 잘 살았으면 좋겠거든요. 각자의 영역에서 잘 해낼 수 있는 걸 해보고, 혼자서 하기 어려운 건 연대를 통해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공석진: 제가 책임지는 방울토마토 생산자가 생협 매장에 가격을 낮춰서 팔아야 하는 상황이 있었어요. 그때 제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다 빼드릴게요”라고 터무니 없는 호언장담을 했죠. 나중에 전화가 왔더라고요. “덕분에 제가 생협에 아쉬운 소리 하지 않았습니다”라고요. 저는 그 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이 업계에서 10년을 버티니, 어느새 후배들이 생겼어요. 그들에게 건강한 유통인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책임감이 있어요.
송정은: 저는 연대와 협력을 늘 생각해요. 20년간 이 일을 하면서 누군가와 손잡는 걸 꺼리지 않기도 했고요. 서로 분야는 달라도, 그 과정을 함께 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색깔을 내면 좋겠어요. 그렇게 우리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거죠.
신수경: 우리나라는 농업과 먹거리의 영역이 나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농업과 먹거리 소비, 사실은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잖아요. 이와 관련된 고민을 함께하는 연대의 움직임이 필요합니 다. 우리가 조금 더 지혜를 모으고 함께 의미 있는 활동을 펼치다 보면, 지속 가능한 농업으로 조금씩 방향을 틀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집니다. 오늘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리·사진 이진선
※ 본 좌담은 정부의 ‘생활 속 거리두기’ 집단방역 기본수칙을 지키며 진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