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균형발전정책’ 신호탄 ‘공공기관 이전’
노무현 정부의 출범 초기인 2003년 12월에 제정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지방분권특별법」은 이른바 ‘지방분권 3대 특별법’이라고 불린다. 이 중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은 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집단이 위헌 확인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최종적으로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효력을 상실했다. 정부는 이에 대한 후속대책으로 「신新 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 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약칭 행복도시법)을 제출해 2005년 3월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수도 이전이라는 균형발전의 ‘원대한 계획’은 좌절되었지만 수도권 인구 분산과 지역 발전을 위한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하나하나 펼쳐나갔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즉 세종특별자치시(세종시)와 10개의 혁신도시 건설 등이 대표적인 정책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서울에 있는 정부 부처 가운데 서울을 벗어나기 어려운 5개의 행정부(외교부, 통일부, 법무부, 국방부, 여성가족부) 외에 모든 행정부를 세종시로 이전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이러한 정책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결국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 행정부 이전 계획이 완성되었다. 현재 세종시는 초기 불완전한 도시의 형태를 벗어나 인구 35만 명의 중견도시로 발전했다.
이와 함께 전국 10개 혁신도시도 빠르게 건설되었다. 2003년 처음 기본 구상이 발표된 이후 2019년 말까지 수도권 소재 153개 공공기관이 세종시(19개, 4000명)와 10개의 혁신도시(112개, 4만2000명), 그리고 개별 지역(22개, 6000명)으로 이전을 완료했다. 모두 5만2000명의 인구가 이들 지역으로 이주를 완료한 것이다. 정부는 공공기관이 이전한 혁신도시를 지역 성장과 혁신의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더욱이 21대 총선 때 ‘공공기관 이전 시즌2’가 여야의 공약사항이 되면서 2차 공공기관 이전이 다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수도권에 남아있는 공공기관은 148개이다. 이 중 수도권에 꼭 남아있어야 할 공공기관을 제외하면 약 122개 공공기관이 제2차 지방 이전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각 지자체에서는 이들 공공기관을 자신의 지역에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이번 6월에 개정된 「혁신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에서 그동안 혁신도시에서 소외된 대전과 충남도 혁신도시 지정이 가능하고, 또 기존 혁신도시가 소재한 광역 지자체도 추가 혁신도시 지정이 가능해지면서 광역 지자체뿐 아니라 기초 지자체까지 공공기관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공공기관 유치가 곧 지역발전의 중요 기제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바라보면 ‘국가불균형’ 정책
그런데 공공기관 이전 방식의 균형발전정책이 과연 최선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국가균형발전의 정책 이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점도시 조성을 통한 국가균형발전이 과연 타당하고 합리적이며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여전히 토건 중심의 도시 건설이 지속되는 국가균형발전으로는 파국을 맞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한 생각을 감추기 어렵다.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제2조에는 ‘국가균형발전’에 관한 정의가 나온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가균형발전이란 지역 간 발전의 기회균등을 촉진하고 지역의 자립적 발전역량을 증진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여 전국이 개성있게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균형발전정책의 성과와는 별개로, 농촌의 시각에서 보면 기존의 국가균형발전정책은 오히려 ‘국가불균형발전’의 대표적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 건설 위주의 국가균형발전정책은 지역 간 발전의 기회균등 촉진도, 지역의 자립적 발전 역량의 증진도, 삶의 질 향상도, 지속 가능한 발전의 도모도, 전국이 개성 있게 골고루 잘 사는 사회도 구현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가균형발전정책이라는 미명 아래 농민은 우량한 농지를 개발 용지로 내주고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자연생태계가 파괴되었다. 세종시와 혁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주변 농촌지역 주민들은 점점 화려한 신도시로 흡수되어 갔다. 예를 들어, 세종시 건설에 상당 부분의 면적을 떼어줬던 공주시의 경우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이 발표된 2010년에는 인구가 약 12만5000명이었으나 2019년 기준 약 10만6000명으로 감소했다. 연기군을 통째로 세종시 건설을 위해 떼어주었던 충남은 그동안 수도권 일출溢出 효과와 대기업 위주의 경제 성장으로 인해 인구가 증가했지만, 2019년부터 오히려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세종시가 대전과 충청도의 인구를 흡수하는 블랙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세종시와 전국 10개의 혁신도시 건설이 시작될 무렵 서울, 특히 강남의 부동산 시세가 천정부지로 뛰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 막대한 건설로 지역의 유지와 토호세력들은 막대한 개발 이익을 보았고 그 이익금으로 서울의 부동산에 투자했다. 지방에서 돈을 벌면 대도시, 특히 서울에 집 한 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심리가 발동한 많은 사람들이 토지 등 부동산 보상비용을 지방에 투자하지 않고 서울 등 대도시에 투자했다. 결국 국가의 막대한 재정 투입으로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정책을 시도했지만, 그 과실은 토건회사와 서울 등 대도시가 가져가는 꼴이 되었다. 국가균형발전정책의 가혹한 패러독스(역설)이다.
그 결과일 것이다. 작년에 나온 통계를 보면 수도권 인구 비중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50%를 넘어섰다. 2018년 말 기준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의 인구(2593만 명)는 비수도권 인구(2592만 명)를 넘어섰다. 수도권 인구 집중을 막기 위해 국가균형발전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수도권 인구가 오히려 더 집중이 된 결과는 이와 같은 정책으로는 국가균형발전정책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일각에서는 수도권 공장 증설을 막고 제2차 공공기관 이전을 통해 강력한 균형발전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전철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이 던진 새로운 국가균형발전 가능성
이제 진정한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농촌기본소득 도입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한 국가 위기 국면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으로 붕괴 위기의 지역경제, 골목상권이 활기를 찾은 현장을 우리는 목도했다. 유사 이래 처음 실시된 긴급재난지원금과 재난기본소득(재난지원금)에 대해 많은 이론과 논쟁이 있었지만 막상 실시되고 보니 실행상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체험했으며, 이와 같은 방식이 결코 꿈같은 일이 아님을 우리는 깨닫게 되었다. 재난지원금은 농촌기본소득 실현에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 대표적인 시사점은 더 이상 낙수효과에 기대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재난지원금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 위기 시 기업이 아닌 국민(소비자)에게 직접 지원해 경제를 회생시킨 첫 사례이다. 생산 과잉 시대에 기업 위주의 지원으로는 경제 회복이 어렵다. 필요한 것은 국민들의 소비이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직접 지원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농촌기본소득은 혁신도시 등 거점지역 개발을 통한 농촌지역의 발전이 어렵기 때문에 농촌주민들에게 직접적인 소득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농촌주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정된 소득이다. 하지만 농촌주민 대부분 농업을 통해 소득을 올리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지역에서 변변한 소득을 얻을 기회도 별로 없다. ‘농촌소멸’, ‘지역소멸’의 가장 큰 원인이다.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각종 개발사업은 이제 지양하고 ‘전국이 개성있게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위해 농촌기본소득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 국면에서 농업·농촌의 가치는 더욱 중시되고 있다. 식량주권을 수호하고 생태환경을 보존하고 적정한 거리를 유지한 거주가 가능한 농촌은 포스트 코로나 사회에서 더욱 중시되고 있다. 이제 ‘국토지킴이’를 자처하고 있는 농촌주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할 때도 되었다. 처음부터 전체 농촌주민에 대한 지급이 어렵다면 ‘인구소멸위험지역’부터 실시해도 좋을 것이다.
정치권 최대 이슈로 부상하는 ‘기본소득’
지난 총선 이후 정치권에서는 기본소득이 최대 화두가 되었다. 그동안 진보진영의 의제였던 기본소득을 보수진영에서 더 적극적으로 들고 나선다. 사람들은 21대 총선에서 재난지원금이 가장 큰 이슈였다면 다음 대선에서는 ‘기본소득’이 가장 큰 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경기도와 서울 등 지방정부에서는 청년기본소득(청년수당)을 도입했고 전남북, 충남 등에서는 농(어)민수당을 도입했다. 현재 경기, 충북, 강원, 경남북, 제주도에서도 농(어)민수당 또는 농민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에 있다. 농(어)민수당(농민기본소득)은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유지 및 증진하고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 받기 위한 농어민의 기본적 권리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농(어)촌기본소득은 그동안 도농 불균형발전으로 소외되고 배제된 농촌 주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국토 어디에 살든 모든 국민이 동등한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는 평등한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중앙정부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국가균형발전사업에 175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사업비는 2차 공공기관 이전, 지역 현안인 교통과 도로시설 확충, 생활SOC 사업 추진, 지역융복합사업과 혁신사업 등에 투입될 예정이다. 그런데 175조 원의 일부를 떼어서 긴급재난지원금처럼 농촌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단언컨대 진정한 풀뿌리 국가균형발전이 시작될 거라 확신한다. 이는 농촌의 활성화뿐만 아니라 고질적인 도시의 부동산 문제도 어느 정도해결될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 기본소득 정책을 주도하는 경기도가 올해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 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잘 하면 내년부터 경기도 내 실험대상 농촌지역(하나의 면面 지역 예상) 주민 모두에게 기본소득이 지급될 예정이다. 경기도는 이 실험 결과를 통해 농촌기본소득이 지역경제 선순환 효과,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 심리적 만족도와 안정감, 인구 증가 등에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경우 이를 대폭 확대하고 중앙정부에도 이를 적극 받아들일 것을 건의할 예정이다. 인구 과소화, 고령화로 ‘농촌소멸’의 위기를 타계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경기도의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이 주목되고 기대되는 이유이다.
이제는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
우리는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코로나 이후 시대에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의 양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관성과 타성을 깨야한다. 경제 살리기 명분으로 기업 위주로 지원했던 시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거점 도시, 중심 도시, 중심지 건설의 시대는 끝났다. 중심지는 주변의 인력과 자원을 빨아들이지 그 성장의 과실을 결코 주변에 나누지 않는다. 실핏줄 같은 마을까지 균형발전의 혜택이 가지 않으면 마을은 존속을 할 수가 없다. 농촌기본소득이라는 긴급 수혈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 농촌은 늘 재난의 연속이었고, 위기 상황이었고, 긴급 조치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위정자들은 애써 눈을 감아왔다. 이제는 국가균형발전정책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제도가 잘못됐다면 제도를 바꾸면 된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재난지원금도 지급됐고, 불가능할 것 같았던 농어민수당도 농어민의 힘으로 만들어 냈다. 전 국민 기본소득은 국민적 합의와 막대한 예산으로 지금 당장 도입하기는 어렵다. 농민기본소득, 나아가 농촌기본소득을 먼저 도입해 그동안 정부 정책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어느 정도 맞춘 다음 전 국민 기본소득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농촌기본소득으로 진정한 국가균형발전의 첫 걸음을 함께 떼어보자.
※필자 박경철: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 무장기포지가 있는 고창군 공음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대산농촌재단 2기 장학생으로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로 농촌사회, 농촌개발, 중국농촌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하고 있다. 농農과 생명, 그리고 기본소득을 토대로 한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 풍요로운 농촌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