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길, 생명공동체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

가농 안동교구 안희문 회장(윗줄 왼쪽)과 권기찬 사무차장(윗줄 오른쪽)이 쌍호분회 회원들을 만나러 경북 예천 쌍호리를 찾았다.
가농 안동교구 안희문 회장(윗줄 왼쪽)과 권기찬 사무차장(윗줄 오른쪽)이 쌍호분회 회원들을 만나러 경북 의성군 쌍호리를 찾았다.

서울에서 안동까지 차로 3시간 여를 달려가니, 마치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 듯, 노랗게 영글어가는 풍산평야가 점점 눈앞에 펼쳐졌다. 잠시 후, 풍산읍의 드넓은 논자락을 앞마당으로 둔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이하 가농 안동교구) 사무국에 도착했다. 미리 나와 있던 가농 안동교구의 안희문 회장과 권기찬 사무차장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고, 두 사람을 따라 들어선 사무실에서는 직원들이 활기차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가농 안동교구가 안동시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는 안동시학교급식지원센터 전경.
가농 안동교구가 안동시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는 안동시학교급식지원센터 전경.

시대의 흐름에 맞춘 자주적 변화
가농 안동교구는 1978년 창립한 농민단체다.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농업, 농촌, 농민의 권익 보호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고, 90년대에는 건강한 농산물 생산과 판매를 유도하는 ‘생명농업’ 운동을 이끌었다. 이때 도시민과의 농산물 직거래를 위해 물류사업을 시작했고, 2010년대부터 안동시 학교급식, 서울시 송파구 공공급식, 안동시·예천군 임산부 꾸러미 등으로 친환경농산물을 공급하고 있다. 별도로 식생활 교육원을 설립하여 소비자 교육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의 뿌리는 마을 단위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13개 분회 92농가입니다. 공동체가 함께 결정한 생산 계획과 공급 기준, 공동 방제력, 교육 행사 등 합리적 농사 체계 확립과 상향식 의사 결정 문화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길에 실무자들은 줄기가 되었고, 도시 소비자들은 꽃이 되어 열매를 맺었습니다.”(제28회 대산농촌상 농촌발전 부문 수상소감)
  안희문 회장, 권기찬 사무차장과 함께 가농 안동교구의 ‘뿌리’를 찾아 나섰다. 낙동강 줄기 따라 차로 20여 분 달리니, 붉은 종탑과 작은 성당이 눈에 띄는 의성군 쌍호리에 다다랐다. 이곳에는 가농 안동교구 분회 중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쌍호분회’가 있다. 쌍호분회는 1979년 지역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으로, 불량 씨감자에 항의하다 납치된 일명 ‘오원춘 사건’을 비롯해 크고 작은 농촌 문제에 적극적으로 농민의 목소리를 냈다. 이후 생명농업 운동까지 40여 년의 활동을 함께해왔고, 특히 ‘유기순환 자급퇴비 가농소 입식운동(이하 가농소 입식운동)’과 같은 도농교류를 활발하게 이어오고 있다.

농민은 쇠똥을 이용해 자급퇴비를 만들어 다시 생명농업을 지속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마련한다.
농민은 쇠똥을 이용해 자급퇴비를 만들어 다시 생명농업을 지속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마련한다.

뿌리와 꽃, 그 끈끈한 관계
“목동 성당에서 우리 농산물을 가져가서 팔고 수익금을 다시 농가로 보내줬어요. 그 돈은 친환경농사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소중한 자금이죠. 단순히 좋은 먹거리를 소비자에게 제공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농업의 ‘순환’ 고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입니다.”
  쌍호분회는 2001년 서울대교구 목동 성당을 시작으로 양천 성당, 목3동 성당과 자매결연을 했다. 진상국 쌍호분회 분회장은 농민과 도시민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가농소 입식운동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다. 도시 본당을 중심으로 신자들이 송아지를 사서 농가에 보내면, 농민은 양질의 자급퇴비를 생산하기 위해 소를 정성껏 기른다. 이후 송아지를 제공했던 도시 신자들은 자급사료로 건강하게 키운 건강한 소고기를 제공받는다. 서로 나누며 사람을 살리는 상생의 관계다.
  “서울에 친환경농산물 매장이 많잖아요. 소비자들은 선택의 자유가 있어서 가격을 비교해서 사죠. 그런데 도시와 농촌의 매개 역할이 없어요. 우리는 소를 통한 농민과 도시민의 연결고리가 있어요. 옛날에는 신자들이 종종 농촌에 내려와 자고 가면서 ‘꼭 친정에 온 것 같다’고 얘기하곤 했어요.”

  쌍호분회도 서울을 오가며 끈끈한 교류를 지속해왔다. 분회원들은 자매결연을 한 성당에 나가 떡과 막걸리를 나누기도 하고, 직접 생산한 양파와 마늘을 판매하거나, 1년 치 쌀을 미리 주문하는 쌀 약정 회원을 모집했다.

안희문 회장과 권기찬 사무차장. 가농 안동교구 사무국은 농민이 농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농촌과 도시를 잇는 역할을 한다.
안희문 회장과 권기찬 사무차장. 가농 안동교구 사무국은 농민이 농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농촌과 도시를 잇는 역할을 한다.

농민이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뿌리와 꽃이 튼튼하도록, 둘 사이에서 지지대 역할을 하는 ‘줄기’가 있다. 바로 실무자다. 16년째 가농 안동교구에서 일하는 권기찬 사무차장은 올해 코로나19로 공공급식 사업이 중단되고, 공적 꾸러미 사업이 크게 늘었다는 근황을 전했다.
  “학교급식이 중단되면서 초중고 가정에 가정용 친환경농산물 꾸러미를 보내고 있어요. 그런데 건강한 먹거리에 관한 소비자의 인식을 어떻게 끌어올릴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우리는 꾸러미 의도에 맞게 유기농 쌀 4kg을 넣어서 보냈는데, 인근 지역 꾸러미의 2000원짜리 돼지 뒷다릿살이 훨씬 반응이 좋았어요. 임산부 꾸러미를 보낼 때도 철분이 많은 시금치를 넣으니까 소비자들이 요리하기 힘들다고 싫어하더라고요. 쌀과 고기를 넣었을 때 가장 반응이 좋았어요.”
  안희문 회장은 가농 안동교구도 소비자의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많이 변했어요. 젊은 사람들은 쌀도 한 포대씩 사지 않고 4kg, 2kg 소포장을 찾아요. 전자레인지에 한 번만 돌리면 쉽게 먹을 수 있는 가정 간편식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고요. 이러한 변화를 재빨리 알아채고, 그것에 맞게 따라가든지 새로운 대책을 세우든지 판단해야 해요.”
  사무국에서는 농민이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친환경쌀 전용 도정공장을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안희문 회장은 “대산농촌상 상금이 종잣돈이 되었다. 상의 가치를 농민에게 환원하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생산자와 실무자가 생명농업을 지키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생산자는 생산 규칙을 철저히 지키고, 실무자들은 조금이라도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지요. 그 덕분에 가농 안동교구의 신뢰도가 높아졌습니다. 우리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농민운동에 이어 생명농업과 공적사업까지, 가농 안동교구가 다양한 길을 걸어왔지만 이들은 언제나 ‘함께 가는 길’을 선택했다. 땅과 밥상, 사람과 세상, 자연 생태계를 살리려는 농민과 소비자가 있기에, 앞날을 쉬이 예측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도 생명공동체는 최선의 길을 찾아 나아갈 것으로 기대한다.

글·사진 이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