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김홍상

무엇이 농업이고, 누가 농업인인가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우리 농업·농촌의 위기감은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느낌이다. 기후변화, 국제 정치·경제 상황의 불안정 등이 맞물려 농업인의 경영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으며, 농촌인구 감소와 더불어 의료, 교육, 시장 등 생활 서비스 기반이 취약해지면서 농촌지역 소멸 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농업은 계속 유지하기 힘들고, 농촌지역사회에서 안정적인 삶을 꾸려가기도 힘들다.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해서는 농업인 간 협력과 연대뿐만 아니라 농업인과 비농업인 간 협력과 연대, 나아가 도시와 농촌의 상생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균형발전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연대를 위해서 주체 간 긴밀한 소통과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누구랑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답을 구하기 쉽지 않다.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전통적인 경종농업뿐만 아니라 규모화된 축산업, 대규모 시설을 이용한 공장형 농업 등 다양한 유형의 농업이 등장했다. 농업에 대한 이해방식도 달라지고 연대, 소통, 협력의 주체인 농업인에 대한 이해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무엇이 농업이고, 어떤 사람이 농업인인가’ 하는 농업과 농업인에 대한 재정의를 둘러싼 논란이 제기된다.
  영세 고령농업인, 규모화된 농업인, 임차 중심 농업인, 자작 중심 농업인, 젊은 신규 창업농, 재배업 종사자, 품목별 규모화·전문화된 농업인, 축산업 종사자, 스마트시설 농업인, 식물공장 농업경영자 등 다양한 형태의 농업인이 존재한다. 농업인마다 추구하는 경영목표와 이익창출 방식이 다르다. 다양한 품목단체 간 이해관계 차이, 재배업과 축산업의 차이가 뚜렷하다. 농업생산수단인 농지의 소유 형태, 가격 수준을 둘러싸고도 농업인 간 인식의 차이가 크다. 우리의 주곡인 쌀의 가격 안정과 관련된 양곡관리법 개정 논란에서도 농업인단체 간 의견 차이가 표출되기도 했다. 이러한 여건 변화 속에서 농업인 간 연대도 새롭게 이해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소통과 협력 방향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무엇이 농업이고, 어떤 사람이 농업인인가’ 하는 농업과 농업인에 대한 재정의를 둘러싼 논란이 제기된다.
‘무엇이 농업이고, 어떤 사람이 농업인인가’ 하는 농업과 농업인에 대한 재정의를 둘러싼 논란이 제기된다.

농업인이 사는 방법, 신뢰를 바탕으로 연대해야
  전통적으로 농업은 땅, 물 등 자연자원을 이용하는 농작물 재배업, 축산업 등을 의미하며, 농업을 경영하거나 이에 종사하는 사람을 농업인이라고 했다. 농업인을 농가 단위로 구분하고, 경영주와 경영을 돕는 가구원으로 구성된 가족농을 중심으로 이해했다. 중소규모 가족농의 건전한 발전은 농업의 발전, 나아가 안정적인 사회 발전의 기초로 간주했다.
  경제 성장과 더불어 농기계, 비료, 농약 등 농자재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독과점적 시장구조가 나타났다. 개별 소규모 분산된 농업인들은 농산물의 가격을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없어 값싸게 팔고, 비료와 농약 같은 농자재는 비싸게 사야 하는 문제를 안게 되었다. 이들은 경제적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농자재 공동구매와 농산물 공동판매 활동을 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농업협동조합 등을 결성했다.
  농업인의 연대는 농업협동조합 활동, 농업인단체 및 협회 활동, 경험 공유와 지원, 교육 및 훈련 지원, 정책 영향력 행사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농업 부문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농업인의 생계 및 농업경영 개선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농업인들이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농업·농촌 발전에 기여한다.
  농업 형태의 다양화, 농가별 영농기술 수준의 차별화 등은 농업인들의 공동구매, 공동판매 활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품질이 좋은 농산물을 생산한 농업인 중에서는 별도 판매로 다른 농업인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도 있다. 물론 공동판매조직이 자체적으로 생산물의 가격을 등급별로 형성하여 합리적으로 이익을 나눌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한 기술 교육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생산된 농산물의 품질 평가 과정에서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마련되고, 그 기준이 모든 농산물과 농업인에 공정하게 적용된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신뢰는 긴밀한 소통과 협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전통적인 경종농업뿐만 아니라 규모화된 축산업, 대규모 시설을 이용한 공장형 농업 등 다양한 유형의 농업이 등장 했다.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전통적인 경종농업뿐만 아니라 규모화된 축산업, 대규모 시설을 이용한 공장형 농업 등 다양한 유형의 농업이 등장했다.

농업인의 정치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농업과 농업인, 농촌지역사회 속 삶의 모습이 다양해지고 농산물 소비구조가 변화하고 있기에 연대의 대상, 소통과 협력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 농업인 간, 농업인과 소비자 간, 농산업과 관련 산업 간, 나아가 도시와 농촌의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
  고령 농업인이 보유한 농지와 시설 자본 등을 젊은 농업인이 이용할 수 있게 하려면 세대 간 소통과 협력도 중요해진다. 게다가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에너지 정책의 전환, 농사 방법의 변화도 필요한데, 이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 간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다.
  농촌에서 축산 분뇨를 둘러싼 갈등이 사회적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데, 지속 가능한 축산업을 위해서는 축산 농가와 다른 재배업 농가, 다양한 농촌지역주민 간 소통과 협력이 중요하다. 그리고 농촌지역 내 학교, 병원, 시장 등 생활 서비스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민들과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
  다양한 차원의 협력과 연대를 이끌어내고, 좋은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기존과 다른 새로운 소통 방식이 필요하다. 농업계에서 당연하다고 이해되는 과제도 비농업인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공감대를 이루기 힘들 수 있다. 과거 단순한 회의나 단합대회 방식을 넘어서 농업·농촌과 관련된 다양한 의제를 깊이 있게 논의하고 연구하는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일부 농업인들의 공동판매 활동이 규모화, 전문화, 조직화 되면서 정부의 관점에서 물가 관리나 시장 질서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비판이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가격 담합 의심이 가는 품목단체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일까지 생겼다. 전통적으로 이어온 농업인 간 협동 활동에 대해서 우호적이었던 분위기가 약화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해당 품목단체 간 협의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간 소통과 협력을 통해 농업인의 정책 영향력 및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품목단체가 농업인의 개별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면 협력과 연대 활동은 점점 사회적 공감을 얻기 힘들고 고립될 수밖에 없다. 농업인의 권리를 증진하고 정책 영향력 및 정치력을 강화하고자 한다면, 인식의 전환과 명확한 설득 논리 개발을 위한 깊이 있는 공부와 연구가 필요하다. 국민의 공동이익을 고려하고, 농업인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사회적 책임의식도 가지면서, 사회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논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간 소통과 협력을 통해 농업인의 정책 영향력 및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간 소통과 협력을 통해 농업인의 정책 영향력 및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소통과 협력의 방향은 공익적 가치
  농촌을 단순히 농산물 생산 공간으로만 여기지 말고, 건강한 먹거리 조달, 생물다양성 확보, 토양 보전, 경관 유지, 정서 함양, 여가 지원 등 다양한 부가가치와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 및 공간으로 인식해야 한다. 또한, 과거 소규모 영세농으로서 경제적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한 조직적 대응이라는 초보적인 틀을 넘어서,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과 공익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연대와 협력을 이뤄내야 한다.
  농업과 농촌의 외연 확장과 더불어 다양한 농업경영 형태가 등장하면서 농업경영체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하고, 정책 대상 범위를 다원적 기능과 공익적 가치를 고려하여 조정할 필요가 있다. 직접지불 중심의 농정체계 정립이 정부의 주요 정책 과제로 꼽히는데, 이러한 공익형 직불 제도가 안착되려면 농업인들의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 직불금이 농업인들의 공익적 활동 수행을 통해서 받는 정당한 보상이라는 전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농업 관련 주요 현안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영향이 커지면서 농업인 간 소통과 협력이 새로운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농업인이 공동구매, 공동판매 활동을 하거나 자조금을 걷어 품목별 수급 관리와 가격 조절에 정부의 개입이 늘면서, 소통과 협력의 목적과 방식도 달라지고 농업인의 노력이 약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중장기적으로 농업·농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농업인이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연대, 소통, 협력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김홍상필자 김홍상: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29년간 농업구조, 농지와 농업용수 등을 비롯한 농업·농촌 분야의 다양한 농정연구를 수행했다. 퇴임 후 경북대학교 전문경력인사 초빙교수와 농정연구센터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