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는 농민에게

농지 소작제에서 농지 소유제로
고대부터 왕정 시대까지 모든 농지는 국왕이 소유하였다. 국왕은 지배계층에게 농지의 경작권을 하사하고, 지배계층은 양민의 대부분인 농민들에게 소작 시켜 운영하였다. 
  우리나라 소작제도(小作制度)는 삼국시대 무렵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 토지 매매가 이뤄졌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토대로 지주가 농사를 직접 짓지 않고 소작제도로 경작하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소작제도는 고려 시대에 자주 등장한다. 고려 중기에 공전제(公田制)가 붕괴하면서 소작제가 전국적으로 성행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신진 관료들이 과전법(科田法)을 단행하여 지주가 소작인에게 경작을 시킬 때는 조(租)를 생산물의 10%만 징수하게 하였으나 15세기 말 과전법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병작반수제(竝作半收諸)라는 봉건적 소작제도가 확립되었다. 갑오개혁(甲午改革)을 계기로 봉건적 소작제는 반봉건적 소작제로 바뀌었지만,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 시대 보다 더 혹독한 봉건적 소작제도가 일본으로부터 도입되었다. 이때까지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은 그 개념조차 없었다.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 소유의 한도, 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대한민국 제헌헌법 제86조)

  일제 해방 이후 미군정은 공산화 방지를 목적으로 소작제도 금지와 경자유전의 원칙을 내세웠다. 1948년 대한민국 제헌헌법 제86조에는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한다”는 내용이 실렸고, 이듬해 농지개혁법이 공포되어 농지개혁의 법적 근거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군정은 일본인 소유 농지였던 귀속농지를 농민에게 분배하는 1차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정부는 한국인 지주가 소유하고 있던 땅을 대상으로 2차 농지개혁을 진행했다.
  농지개혁으로 종래 심각한 사회문제였던 지주와 소작인 간의 분쟁은 해결하였다. 그러나 지주계급은 몰락했고, 농민은 여전히 가난했다. 정부는 농가의 농지 소유 한도를 3ha로 제한했고, 소작·임대차 또는 위탁경영을 금지했다. 매매도 제한이 있었다. 세분화된 농지가 상속 등에 의하여 더욱 세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논의가 있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이는 공교롭게도 농업인을 영세하게 만들고, 농업경쟁력을 둔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23
농지의 누구의 것인가? 경자유전의 원칙은 농업소득과 더 나아가 농업 관련 농외소득을 고스란히 농업인에게 귀속시켜 부족한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

농지법, 누구를 위해 제정했나?
1980년경 체계적인 농지법의 제정이 요구되었다. 첫째, 농지 관련 제도가 여러 법률에 분산 규정되어 있어서 이를 체계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둘째, 1987년 헌법 제121조에 반영된 ‘경자유전의 원칙’과 ‘농지의 소작제도 금지’를 반영해야 했다. 셋째,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과 WTO 체제 출범 이후 세계화, 개방화 추세에 따라 국내 농업도 경영 규모를 확대해 경쟁력을 키워야 했다.
  1994년, 농지법은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정치적 대립으로 7차 시도 끝에 비로소 제정되었다. 제정 목적과는 달리 정치적 갈등으로 경자유전의 원칙을 심히 훼손하는 제정이 이루어졌다. 제정 농지법은 경자유전의 원칙과 농지투기 금지를 규정하고 있으나, 농지의 세분화 방지, 농지의 보전 및 농업발전과 거리가 멀다. 우선, 제정 당시까지 소유한 농지는 소유 규모 및 자경 여부와 관계없이 무한정 소유할 수 있다. 또 비농업 상속인과 8년 경작 후 이농한 자에게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만들어 농지 세분화를 조정했다. 농지매매의 사후적 통제 체제의 도입으로 전환하였으나 관리·감독이 허술하고, 농지투기 적발 시 일차적으로 처분을 명하는 규정만 둠으로써 사실상 농지투기를 방치한 셈이다. 그리고 농지 임차료의 상한 규정을 두지 않아 오늘날 병작반수제를 행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했다.
  농지법은 현재까지 55차례 개정되었는데, 농업회사법인 도입 등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 절차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을 뿐 농업의 발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 결과 농지는 끊임없이 전용되어 감소하고, 농지투기는 전국적으로 성행하고 있다. 현재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 규모가 전체 농지의 70%를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농지투기로 말미암아 농지가격은 계속 상승하여 더 이상 농업용으로 부적절한 곳이 생겨나고 있다.

농지투기 및 직불금 부당수령의 사례가 말하는 것
최근 농지법의 허점이 드러나는 대법원 판례가 있었다. 비농업인 A씨는 2008년 부산 강서구 소재 2158㎡ 규모 농지를 상속받아 땅을 공장 부지와 물건을 쌓아두는 용도로 무단 사용했다. 2016년 구청은 농지법 10조(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아니하는 농지 등의 처분)에 따라 농지처분을 통지했고, A씨는 부산 강서구를 상대로 농지처분 의무 통지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구청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으나, 대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대법원은 농업인에게는 경작의무가 있으나 비농업 상속인에게는 경작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농지법 10조에 근거하여 농지처분을 명할 수 없다고 하면서 원고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구청이 농지의 원상회복을 명하고 과태료를 부과할 수는 있어도 농지처분을 명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 패소한 것이다. 여기서 드러난 또 다른 문제는 농업인에게는 경작의무가 부과되는데, 비농업인에게는 그러한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형평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주가 직불금 수급 목적으로 산 농지를 가만히 놀리고 있다. ⓒ사동천
지주가 직불금 수급 목적으로 산 농지를 가만히 놀리고 있다. ⓒ사동천

  또 하나의 판례가 있다. B씨의 남편은 1998년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부정으로 발급받아 농지를 취득하였다가 적발되어 지자체로부터 농지처분을 명받았다. 이에 B씨의 남편은 C씨의 남편인 농업인과 공모하여 그 명의로 명의신탁을 하였다. 2009년 B씨의 남편이 사망하자, B씨는 농지를 상속받았다. 이어 2012년 C씨의 남편이 사망했고, B씨는 C씨를 상대로 명의신탁된 농지의 소유권 등기를 자신에게 이전하라고 소송을 냈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은 1심, 2심과 마찬가지로 기존 판례에 따라 “불법 원인 급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농지를 돌려달라는 B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로써 B씨는 상속에 의한 농지취득으로서 농지법 6조 2항에 의하여 합법적으로 농지를 취득하게 되었다. 농지투기가 합법이 된 셈이다. 농지법의 허술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직불금의 부당수령 사례는 무수히 많다. 2009년 공무원만 1315명이 직불금 부당수령으로 적발되었다. 그 후 현재까지 매년 50여 명이 적발되고 있다. 전체 농지의 70% 이상이 비농업인 소유로 추정되고 있다. 열악한 임차농의 지위 때문에 드러나지 않은 사례는 무수히 많을 것이라고 한다. 지주의 직불금 부당수령 방법은 다양하다. 오죽했으면 2019년 7월 국회에서 직불금 부당수령 고발대회까지 개최했겠는가? 
  여기서 보고된 내용에 의하면 “지주들은 자신의 통장을 내밀면서 농약·비료의 거래부터 수매대금까지 지주 명의로 할 것을 요구한다”, “농사짓지 않는 지주들이 경영체 등록을 하고 법적으로 농업인 지위까지 얻으면 임차농은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된다”, “임대차계약서를 쓰면서 농업경영체 등록을 방해하는 지주도 있다”고 한다. 이런 유형은 지주가 농지 매도시 양도세 면제 혜택을 목적으로 하는 농지투기자일 가능성이 크다. 
  정상적인 임대의 경우에도 고액의 차임(지대)을 통하여 사실상 직불금을 갈취하는 사례도 많다. 농지법상 차임 상한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것을 기회로 병작반수제가 유행한다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자유전의 원칙’ 반영한 농지법 개정이 필요하다
2017년 말 헌법개정 논의가 대두될 때 국회에서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폐기하자는 주장이 흘러나왔다. 농식품부, 농협중앙회, 한국농업법학회 등 농업계 단체가 합심하여 어느 분야보다 열정적으로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대통령 개헌안에 기존 농업 이념을 지켰고 아울러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의 발전과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 반영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반영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끊임없이 이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농지법 개정이 시도되고 있다.
  경자유전의 원칙이란 경작자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원칙을 말한다. 헌법 제121조에 규정된 이 원칙은 헌법 제23조의 재산권 보장 규정의 특별규정이다. 재산권 보장의 개념에서는 소유자가 직접 그 물건을 사용하거나 임대 등을 통하여 수익을 창출하거나 매매 등에 의해 처분하는 등 모든 권능을 포함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나, 경자유전의 원칙은농지 소유자가 직접 농업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능만을 허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대용으로 농지를 취득·소유하거나 전매차익을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소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농지법 제3조에도 “농지는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소유·이용되어야 하며,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비농업 상속인과 이농자(離農者)의 농지 소유가 증가하고, 관리·감독의 허술함을 틈타 합법을 가장한 농지투기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더욱이 양도세 면제 혜택을 노리고 마치 자경하는 것처럼 영수증을 꾸미는 투기꾼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 결과 3.3㎡당 300만 원을 넘는 농지도 속출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대체로 경자유전의 원칙을 법률로 보장하고 있으며, 식량안보 등을 고려하여 이를 철저하게 준수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 경자유전의 원칙을 유일하게 폐기하였는데, 그 결과 2014년 기준 농지 가격은 미국의 167배, 프랑스의 145배, 독일의 52배, 한국의 9.6배, 일본의 6.2배에 이른다고 한다. 폭등한 대만 농지는 임대용으로도 부적당하다고 보고되고 있다.
  경자유전의 원칙은 농업소득과 더 나아가 농업 관련 농외소득을 고스란히 농업인에게 귀속시켜서 부족한 소득을 보장해주고, 국가는 식량안보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준수되어야 한다. 아직도 우리나라 농산물 자급률은 23%에 불과하다. 최근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하여 베트남은 쌀 수출을 중단했고, 독일은 인근 국가에서 국경을 넘는 식료품 구입을 차단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식량안보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종식 후 세계는 보호무역으로 회귀할 것으로 예상한다. 식량안보가 더욱 중대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식량안보는 농업생산수단인 농지의 보전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농지법 제정 후 농업인의 농지 소유는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는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농업소득이 지주에게 흘러간다는 것이고, 농업인의 농업소득은 끊임없이감소한다는 것이다. 급기야 농업인이 농업과 관계없는 농외소득으로 이전해 가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 규모가 51%에 이르지만, 명의신탁에 의한 농지투기, 외형상 합법적 소유를 목적으로 이농자를 가장하기 위하여 유입된 농지투기 등 실제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는 70%를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나아가 이들에 의하여 끊임없이 농지전용이 시도되고 있다. 농지는 농업생산수단으로서 기능하여야 함에도 제정 농지법부터 헌법상 위임입법의 한계를 넘는 규정으로 인하여 농지보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생산수단인 농지가 줄어든다면 농산물 생산 감소와 농산물 가격의 폭등으로 이어지고, 그 빈 자리를 값싼 수입농산물로 채워지면서 자연히 국내 농업은 위기를 맞게 된다. 심히 식량안보가 위태롭게 될 것이다. 어느 국가든 식량은 잉여 부분에 대해서만 수출을 하게 되는데, 기후급변으로 흉작이 이어지거나 코로나19와 같은 세계적인 바이러스가 다시 유행한다면, 베트남 쌀 수출 금지 조치의 후폭풍처럼 농산물 수급문제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농산물 생산의 기반인 농지를 보전하고, 농지가 농업생산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법적 뒷받침이 따라야 할 것이다. 

26※필자 사동천: 홍익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1994년부터 농업법을 부전공으로 연구했다. 2018년 헌법개정TF위원회 위원으로 지냈고, 현재는 한국농업법학회 회장, 식품안전위원,농지위원을 맡고 있다. 그밖에 홍익대학교 법학연구소 소장,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