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 사회가 같이 하는 일

농업의 고립, 어떻게 할 것인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외국 TV를 보는 비중이 부쩍 늘었다. 프랑스 뉴스 말미에 생활 정보를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 갑자기 이가 부러졌을 때, 긴급하게 연락해서 도움을 받을 전화번호 같은 것을 소개해주는 시간이다. 그 코너에서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농장에서 자원봉사 하고 싶은 사람들이 연락할 수 있는 곳을 알려주는 것을 보면서 우리와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프랑스는 식량 자급률이 320% 가까이 된다고 알고 있다. 자급률과 같은 물량적 지표를 떠나서, 프랑스에서 농업은 시민들에게 사회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그런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시민들과 농업은 이제 먼 곳에 와 있는 것 같다. 
  작년에 WTO에서 한국 농업을 이제 더 이상 개도국이 아니라 선진국으로 간주하겠다는 발표를 정부가 했다. 미국의 압력 시점에 밀려서 쫓기듯이 선언했다. WTO가 발족하던 90년대, 아니 한미 FTA 논쟁이 한창이던 10여 년 전만 해도 그렇게 아무 일도 없듯이 진행될 수가 없는 일인데, 그렇게 되었다. 국민들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별로 기억도 못 하는 것 같다. 그걸 계기로 무슨 시민운동이 불같이 일어나는 기미도 없었다. 2020년, 농업은 한국에서 다른 경제 부문은 물론 시민운동으로부터도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쌀 목표 가격제는 폐지되고, 쌀에 대해서 유리하게 적용되던 직불제가 ‘공익형 직불제’ 요소를 강화하는 쪽으로 변화시킬 거라는 게 정부 방침이다. 조금은 더 환경과 지역경제에 대한 기여 쪽으로 제도가 전환되는 것이라서 기본적으로 나는 찬성이다. 그리고 기왕 하는 거면 좀 더 규모를 늘리고, 부재지주에 대한 관리방안을 좀 더 확실하게 정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환경과 지역 등에 대해서 농업이 가지는 공익적 가치를 강화시키는 방향은 맞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한국 농업의 장기적 방어를 위해서 충분한 조치인가에 대해서는 좀 갸우뚱하게 된다.
  저울로 예를 들어보자. WTO에서 농업의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 한쪽 저울추라고 하자. 그렇다면 지금부터 정부가 하는 조치가 원래의 균형으로 돌아가는 반대편 저울추일 텐데, 과연 공익형직불제를 포함한 일련의 조치들이 충분한 무게로 균형을 잡을 것인가? 정부에게는 미안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원래도 하려고 하던 것을 단지 조금 먼저 그것도 대충한다고 하면서, 새로운 대책처럼 내놓은 것은 아닐지…. 농업인은 아니지만 농업 분야를 꽤 오랜 기간 지켜본 입장으로서는 “아무 일도 안 벌어질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한국 농업이 위기에 빠진 이유는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 그중의 하나가 90년대 후반의 ‘신토불이’ 캠페인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때 좀 더 적극적으로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이에 따른 농정 전환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애국심으로 뭔가 해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 이후로 한국 농업이 결정적인 전기를 맞은 것은 없다. 농민들은 계속 늙어가고, 농업은 점점 더 고립되어 간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의 10대에게 농업은 어떤 의미일까?

한국의 10대에게 농업은?
누구나 한국 농업을 위기라고 하고,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시민사회 속에서 논의가 많이 되는 주제들은 최소한 고립되거나 심하게 방기되지는 않는다. 또 다른 기준으로 20대 특히 10대들의 생각과 어느 정도 밀접한 것인가, 그게 일종의 미래의 흐름을 보여준다. 경제학자로서 나도 미래의 흐름을 어느 정도는 예측하면서 분석을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시민사회의 논의 흐름을 민감하게 보려고 하고, 10대들의 삶을 유심히 지켜보려고 한다. 물론 불충분하다. 내가 해 본 연구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10대 연구다. 한국의 10대, 아무도 모른다. 사회의 변화보다 10대의 생각이 먼저 변하고, 가장 포착되기 어려운 분야다. 그런데 자신이 ‘지금 10대’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보기 어렵다. 모두 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소크라테스의 기준으로 말하면, 모른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정말 모른다. 부모도 모르고, 교사도 모른다. 아주 제한적이고 부분적으로만 조금 알 뿐이지, 몇 년에 한 번씩 크게 유행과 흐름이 변하는 한국의 10대에 대해서 우린 잘 모른다. 
  지난 몇 년 동안 시민사회에서의 농업에 대한 논의는 완연하게 축소되거나 사라져버렸다. 10여 년 전에 한미 FTA 논쟁이 한창일 때만 해도 단체마다 어느 정도의 농업 지식을 가진 활동가들이 있었다. 참여연대도 농업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고, 환경운동연합에도 농업 담당 간사가 필요하다는 얘기들이 있었다. 그 힘으로 생협 운동이 크게 확장되기도 하였다. 전혀 농업과는 상관 없어 보이는 문화연대에서도 농업 논의들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지역자치 분야에 대한 논의를 할 때면 작게라도 농업 얘기들이 거론되곤 하였다. 지금은 다르거나 그때보다도 못하다. 시민지원농업(Community-Supported Agriculture) 같은 얘기는 이제 주체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고 정책 프로그램만 남았다. 물론 한국의 시민단체가 사회 문화의 전 분야를 포괄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미래 의제를 제기하고 끌고 나가는 능력만큼은 최고로 높은 집단이다. 정당이 많은 것을 하는 것 같지만, 현상만 그렇다. 시민사회 내에서 제시된 일부 의제를 나중에 정당이 받아 가는 것이지, 그 반대의 일은 거의 벌어진 적이 없다. 학교급식 운동 같은 게 대표적으로 시민사회 의제 아니었던가? 지금 중요한 여당 인사 중에서 한때 지역 학교급식네트워크 명함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었던가? 학교급식이 한국 사회는 물론 정치를 완전히 흔들던 시절, 농업은 시민사회의 가운데 토막이었다. 
  세대로 눈을 돌려보자. 지금의 20대에게 농업은 어떤 의미일까? 청년 귀농이나 청년 농업 창업 같은 프로그램 이름만 거창했지, 살기 힘든 도시의 청년들에게 농업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별로 없을 것 같다. 20대에게 농업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가 어렵다면, 10대로 눈을 돌려보면 조금 더 명확해진다. 몇 년 지나면 그들이 바로 20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수조사 같은 통계는 엄두도 못 내봤지만, ‘10대를 위한 농업경제학’ 책을 준비하면서 꽤 많은 10대를 만났다. 농업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없으면 차라리 다행이다 싶을 정도다. 학원 뛰어다니면서 편의점에서 컵라면 사 먹는 10대에게 ‘친환경’은 “재수 없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우리 밀’이라는 단어에서 뭔가 감정을 느끼는 10대는 아직 한 명도 못 본 것 같다. 수입 밀로 만든 빵도 비싸서 못 먹는 상황이다. 농업 정책은 지금 쌀 소비 증대를 고민하고 있지만, 많은 10대는 베트남이나 태국산 쌀로 만든 볶음밥을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쌀이 더 찰지고 맛있다”, 그건 어른들 생각이다. 
  제이미 올리버가 음식을 통해서 사회로 들어가는 통로가 10대였다. 처음에는 불량 10대에 대한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가 결국 부실한 10대들의 학교 급식 문제로 들어가고, 그렇게 농업 프로그램이 영국에서 만들어지게 된다. 우리는 농산물의 소비처로서만 학교 급식 문제를 봤지, 10대 문제에 대해서 접근하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다. 일본도 중앙의 농협만 움직인 게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 농업교육재단 등을 만들면서 초등학생부터 시작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고민했다. 고령화된 한국 농업에 10대는 너무 먼 곳에 있는 것 같다.

씨만 뿌리는 농업 정책
지난 몇 달 동안 농업에 관해서 집중적으로 고민하면서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그에 따른 직불제의 개편을 살펴보았었다. 그리고 내가 내린 진단은 땅은 갈지 않고 씨만 뿌리는 것이 지금의 농업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익, 말 그대로 사회가 같이하는 일이다. 사회와는 아무런 논의도 하지 않고 그냥 농업 분야 내에서 아무리 논의해 봐야 좋은 성과가 나오기 어렵다.
  고립되면 고립에서 빠져나오고, 포위되었으면 포위망을 뚫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위기 출발의 첫 시작이다. 농업 정책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돈만 준다고 되는 일이 아닌 듯싶다. 그 돈이라는 것도 그렇다. 농업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기금이 아니라면 결국 국민들의 동의 하에 집행되는 돈이다. 지금처럼 농민 기본소득이 소액이라면 별로 상관 안 하겠지만, 이게 일정 금액이 넘어가기 시작할 때, 과연 그때에도 국민들이 지금처럼 신경을 안 쓸까? 농협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한전에 대한 불만보다 결코 작다고 하기 어렵다. 
  종종 우리는 EU의 농업 프로그램만 가지고 오려고 하지, 그들이 가졌던 사회적 논의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다. 프로그램만 달랑 그렇게 넘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맥락’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다. 따져보면 직불제 도입부터 최근의 스마트 농업이나 혹은 네덜란드형 농업까지, 그게 잉태된 그 사회의 기원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베껴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정책이 착근되지 않고, 약삭빠르게 정책 근처에 있는 사람들 배만 불린다. 
  대대적인 보조로 힘든 자연적 조건을 극복한 스위스 농업 사례를 많이 거론한다. 스위스 농업에서의 재정 정책의 출발점은 GMO에 대한 대안을 찾는 국민투표로부터 시작된다. 그렇지만 그 경제적 요소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북쪽의 독일어권과 불어권 지역들이 남쪽의 이탈리아어권의 농촌 지역에 대한 지원에 대한 합의 같은 것이다. 이탈리아어권이 너무 살기 어려우면 굳이 스위스 연방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고, 연방에서 탈퇴해서 이탈리아로 편입하려는 경제적 동기가 생긴다. 자, 연방을 유지할 것이냐, 아니면 각자 언어권의 모국으로 돌아가고 스위스 연방은 해체할 것인가? 그 정도의 절박함을 사회가 공유하고 토론하면서 스위스 농업 정책의 근간이 생겼다. 미국과의 FTA 협상을 국민투표로 정지시켜 버린 정도의 농업에 대한 논의를 우리가 사회적으로 한 적이 있는가? 그런 고민 없이 스위스처럼 강한 재정정책을 우리는 시행할 수가 없다. 국민들이 그런 데에 동의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농업 담당자들은 민주주의를 믿을까? 잘 모르겠다. 공론장에 대해서도 믿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공론에 붙이고, 사람들이 같이 결정하는 과정 자체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자꾸 농업 특유의 계몽주의에 빠진다. 이미 한국 사회는 2000년대를 지나면서 탈계몽주의로 가고 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야”, 그런 말에 반응하는 20대도 거의 없고, 10대는 아예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영화도 약간만 계몽적인 톤으로 말하면 “자꾸 가르치려 한다”고 싫어한다. 애국주의가 조금만 선을 넘으면 ‘국뽕’(국수주의자)이라고 격렬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 시대가 변했다. 서운하고 섭섭할 수 있겠지만, 시대가 그렇게 변해간다. 그리고 그게 선진국이 되어가는 길이다. 

한국이라는 밭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먼저 쉬운 것부터 생각해보자. 주요 시민단체와 지역단체 특히 도시 지역의 단체가 농업 관련 활동가 1~2명을 채용하고 유지할 수 있게 해주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영역에서 어떻게 농업과 관련된 활동을 접목시킬 수 있을지 작은 연구보고서 하나를 매년 받으면 된다. 농업에 들어가는 보조금과 비교하면 아무 돈도 아니다. 한국에서 의제 개발은 이 방법이 가장 빠르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참여연대에 농업 관련된 간사들이 1~2명 늘어나면 농협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구가 하나 생겨나는 셈이다. 재벌들도 시민단체의 감시망 안에 들어가 있는데, 농업은 관심도 없고 감시도 없었던 것 아닌가?
  농림부 내에도 시민단체와 협업하고 소통하는 소위 거버넌스 관련된 기구가 필요할 것이다. 이건 그냥 하면 되는 것이다. 시민들이 같이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지내서 그렇지, 그들과의 논의가 그렇게 벽이 높은 것은 아니다. 하면 되는 일이다. 지금 한국의 농업은 시민으로부터 너무 먼 곳에 와 있다. 더 멀리 가면 이제 돌아가기 어렵다. 부패하지 않고 정직하게만 정책을 한다면, 한국에서 가장 쉬운 일이 시민단체와 협업하는 일이다. 그들도 이제 초기 형성기 단계는 지났다. 
  유소년과 청소년에 대한 접근, 이건 품이 들고 돈이 좀 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상황을 보자. 어린이집만 해도 1년에 몇 번은 농업 체험을 한다. 딸기 농장에도 가고, 참외 농장에도 가고, 배추 농장에도 간다. 떡도 만들어 보고, 김장도 해본다. 특별히 농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중학교, 고등학교로 가면서 매우 빠른 속도로 농업에서부터 멀어지게 되어 있다. 
  이를 시민교육의 일환으로 다시 집어넣으면 된다. 정말로 농업이 공익적 가치가 있다면, 그걸 교육 프로그램으로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친환경에 대해서도, 농업의 사회적 기여에 대해서도 치밀하게 연구하면서 교육 프로그램이 못 될 이유가 없다. 
  좀 넓게 보자. 10대 중학생 한 명이 농업에 종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실제로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가 해야 할 일, 그에게 필요한 일이 무엇일까? 그걸 중심으로 지금의 농정을 재구성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약 그가 ‘공익적 가치’가 뛰어난 농업을 하고 싶다면, 그에게 어떤 지원을 해줄 수 있을까? 고등학교 단계에서 필요한 변화가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하면 되는 일이다. 어차피 우리는 농업 특성화고 같은 농업 교육기관이 있다. 멀리 가서 찾을 게 아니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공익적 전환, 기술적 해법을 찾고 메커니즘을 디자인하는 것은 정책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쉽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적 수용성이 문제고, 직불제 등 보조금 논의만 하면 농업은 점점 더 고립되어 갈 것이다. 밭도 갈지 않고 씨를 뿌릴 수는 없다. 10대를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크게 설계해야 한다.

21※필자 우석훈: 경제학자, 두 아이의 아빠. 성격은 못됐고 말은 까칠하다. 늘 명랑하고 싶어하지만 그마저도 잘 안 된다. 사람들의 욕심과 의무감 대신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보람으로 살아가는 경제를 기다린다. 대표 저서로 「88만원 세대」, 「불황 10년」, 「오늘 한 푼 벌면내일 두 푼 나가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