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훈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소 농업연구관
(제29회 대산농촌상 농업공직 부문 수상자)
3월을 하루 앞둔 날, 나주역으로 향하는 기차 밖으로 드문드문, 차갑고 건조한 땅을 깨고 나온 어린잎들이 보였다. 봄기운 따라서 도착한 배연구소에는, 아직 잎도 꽃도 열매도 달리지 않은 배나무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아직 겨울이구나 싶었는데, 가지 끝에 작게 돋은 꽃눈을 찾아내고 나니, 꼭 나무가 봄을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았다.
농가에 보탬이 되는 연구
이날, 송장훈 농업연구관도 새 계절을 맞이할 준비로 한창 바빴다. 작업복을 야무지게 챙겨 입고, 허리춤에 톱과 가위가 든 연장 가방을 둘러매고, 배나무를 이리저리 살피면서 가지를 다듬는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이 시기에 농민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이 바로 전정剪定 작업이에요. 나무를 건축하는 거죠. 가지를 잘 배치해서 열매가 매년 안정적으로 열리는 구조를 만드는 거예요. 책에 있는 걸 해보고, 과연 그렇구나 확인하고, 직접 부딪히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송장훈 연구관은 농민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게 실증하는 것이 농촌진흥기관의 목적이라고 했다. 그는 1992년 7월에 연구직 공무원이 되고서, 처음 현장에 나가 농민을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농업기관에 대한 불신감이 엄청 심하더라고요. 너희가 뭘 해,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지금도 그런 분들을 심심치 않게 봐요. 솔직히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런 면에서 공직자의 역할이 굉장히 커요. 농민들은 현장에서 아주 절실하게 노력하고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연구를 해야죠.”
송장훈 연구관은 농가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또 연구가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살피기 위해, 농민과 끊임없이 소통한다고 했다. 연구자로서 농가의 반응을 읽지 않는 것은 곧, 자식을 낳아놓고 돌보지 않는 것과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가지를 정리하세요,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사실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농민들도 머리로는 다 알아요. 그런데 몸이 안 따라주는 걸 어떡해요. 그래서 내가 A라는 답을 내놨으면 농가에서 실현하기에 문제없는지 살펴야 해요. 농가에서 A를 가져다가 B로 쓸 때도 있거든요. 농민들의 지혜는 아주 반짝거려요. 그러면 B를 실증해서 당신이 옳다고 알려주기도 하고, B를 보고 C를 만들어서 확산하기도 해요. 우리는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연한 과정이에요.”
‘농민의 벗’이 되기까지
2014년, 송장훈 연구관은 공무 출장으로 방문했던 유럽에서, 연구자들이 농가에 어떤 방제가 필요한지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을 알게 되었다. 그는 유럽의 유기 재배 농민들과 연구자들에게 기술을 배워, 우리 농민들이 병해충 피해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농업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아는 기술은 나눠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바다 건너편에서도 송 연구관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전까지 유기농 배를 재배하는 농민들이 진짜 가시밭길을 걸었어요. 수확철만 되면 나무가 병에 걸려서 잎사귀가 싹 떨어졌거든요. 남들이 큰 배를 수확해서 팔 때, 자기 배는 주먹만 하니까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어요. 그러니까 자기 집에도 못 오게 했죠. 그런 농민들이 ‘된다!’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 과정을 함께했다는 것이 저한테는 참 과분하고 행복한 일이에요.”
송장훈 연구관은 인터뷰하는 내내, 나무에 과일 하나가 달리기까지 농민이 얼마나 어렵게 농사짓는지 이야기했다. 그가 배 ‘검은별무늬병’과 감 ‘탄저병’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를 꾸준히 이어온 것도, 한 해 농사를 망치는 멧돼지와 유해조류를 잡는 포획 트랩을 개발하게 된 것도, 결국 농민의 고단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농사를 짓는 데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 있어요. 조금이라도 잘해보려고, 배우려고 하는 그분들이 농업의 소금과 같은 존재예요. 그런 열정적인 사람들이 앞으로 우리 농업을 바꾸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정직한 농민들이 기반을 단단하게 다질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농민과 농민을 이어주는 다리
이날, 나주에 있는 배 농가에 방문했다. 송장훈 연구관과 농민 정진채 씨는 서로를 환히 반기며, 최근 농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같이 사진을 찍기 위해 나선 밭에서까지 대화는 한참이나 이어졌다.
“옛날에는 농사지으려면 이웃집에서 귀동냥하고 어깨너머로 조금씩 배워야 했잖아요. 박사님께서 농민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주시고, 거기다가 비용이 절감되게끔 관리를 해주시니까 너무 감사하죠. 나 혼자만 알아서는 안 되니까 밴드에 질문을 올리고 답을 받으면, 전국에서 배 농사짓는 분들이 다 볼 수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박사님을 보면 아, 이분은 정말 농민들을 위해서 일을 하고 계시는구나, 싶어요.”
송장훈 연구관은 밴드, 유튜브 등의 SNS를 통해 농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의 농업기술 자료를 번역해 공유하기 시작했는데, 그 반응이 아주 뜨겁다고 했다.
“일본은 관행 재배를 잘하고, 우리는 유기 재배를 잘하니까, 농가들이 교류할 수 있는 영역이 충분히 보여요. 제가 30년가량 과수만 연구했으니 그 지식을 더하면 일반 통역인이 하는 것과는 깊이가 다를 것 같고요. 농민들을 위해 충분히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싶어요. 그런데 제가 일본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져서, 그걸 좀 해결해 보려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있어요.”
연구직 공무원을 맡은 지 30년, 송장훈 연구관은 여전히 연구자로서 할 일이 많고, 또 그것을 풀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계속해서 농민의 고단함을 헤아릴 줄 아는, ‘농민의 벗’으로 남고자 한다.
“어려운 문제는 항상 있어요. 젊었을 때는 저걸 반드시 해결해야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내가 최선을 다하되, 농민들과 공감하는 것이 우선이겠다 싶어요. 안 되는 것에 같이 아파할 줄 알아야, 그걸 또 풀 수 있는 힘이 생기잖아요.”
글·사진 이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