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에서 말하는 농촌, 돌봄, 교육, 사람
• 일시: 2022년 3월 8일(화) 13:00~18:00
• 장소: 대산농촌재단 세미나실
• 참석자
권혁범 여민동락공동체 대표
김기흥 한국유기농업연구소 부소장
윤요왕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
최문철 꿈이자라는뜰 대표, 홍성우리마을의료조합 사무국장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사회)
신수경(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 ‘지역소멸’ 위기라고 하는 지금, 마을, 농촌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데, 정책은 현장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 현장과 정책과의 괴리는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 ‘지역의 목소리’를 듣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다. 전남 영광군, 강원 춘천시, 충남 홍성군 등 현장에서 활동하고 연구하는 분들을 모셨다. 먼저 각 지역의 이야기를 들어 보겠다.
노인의 경제활동과 돌봄을 돕고
이동식 점빵 운영과 작은 학교 살리기
권혁범(여민동락공동체 대표): 전남 영광군에 있는 ‘여민동락공동체’는 2007년 도시 젊은이 6명이 시골행을 결단하면서 만들어진 비영리조직이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출자해서 땅을 사고 건물을 지어서 2008년에 노인복지센터를 세워 1년 정도 운영하니, 시설 내에서 이루어지는 복지가 지역사회에 어떤 도움이 되고 있는지 고민이 됐다. 마을 속으로 들어가서, 어르신들이 행복한 노후를 맞이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민에게 물어보니, 비교적 건강한 어르신들은 용돈 벌 곳이 필요하다고 했다. 2009년, 6000만 원을 대출받아 모싯잎송편 공장을 세웠고, 모싯잎과 동부콩을 재배하는 작목반을 구성했다. 면 소재지에 유일하게 있던 구멍가게가 문을 닫아서 2011년에 ‘동락점빵’이라는 가게를 만들었다. 매장도 있지만 42개 마을에 주 2회 돌아다니는 이동점빵 차량을 운행한다. 2014년에 주민들과 함께 ‘동락점빵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경로당 활성화 사업으로 60대가 80대 어르신을 보살피는 ‘품앗이 학교’를 운영하고, ‘작은 학교 살리기’로 폐교 위기의 학교를 살리기도 했다.
15년간 복지, 경제, 교육 문제까지 여러 방면에서 애썼지만, 묘량면의 인구는 여전히 감소하고 있다.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이고, 최근에는 다시 학생 수도 줄어들고 있다. 현재 추세로는 2025년 입학생이 0명이다. 지난 5년 동안 행정을 찾아가서 지역사회와 함께 해보자, 해보자, 하다가 너무 지쳤다. 지역주민의 주도성을 보장해주면 함께 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과감하게 손절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려고 한다. 노인장기요양, 노인맞춤돌봄, 농촌혁신복지 등을 준비하고, 세대 간 연대에 기반한 돌봄협동조합을 만들어서 그들과 함께 새로운 지역사회 안전망을 만들 계획이다.
학교, 일터, 마을이 하나의 생활권
장애와 농사를 연결해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최문철(꿈이자라는뜰 대표, 홍성우리마을의료조합 사무국장): ‘꿈이자라는뜰’은 2009년 가을에 시작했다. 발달장애 청소년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사회와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던 선생님이 중심이 되어 지역주민들과 함께 만들었다. 원래는 ‘특수교육 대상 학생을 위한 직업 교육 과정’이었는데, 이름이 너무 딱딱해서 꿈이자라는뜰로 바꾸었다.
처음에는 발달장애 청소년들이 어떻게 하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했는데, 이후에는 농사 기술을 익히는 것을 넘어 스스로 배우는 법을 익힐 수 있도록, 텃밭 수업에서 경험한 자신의 관찰과 활동을 농사일지에 꾸준히 기록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자폐 성향이 있는 친구들은 눈앞에 있는 것을 자기 감각으로 인식해 그림 그리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봤던 친구가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금잔화를 보고 사실적인 관찰 그림을 그렸다. 되게 감동적인 일이었다. 장애와 농사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장애인도 마찬가지인데, 발달장애인의 경우에는 낯선 사람, 낯선 환경에서 활동하는 것이 더 어려운 편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초등, 중등, 고등학교로 이어지는 긴 기간 동안 익숙한 사람을 오래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배우는 것과 일하는 것, 일상이 서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 일터, 마을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만들고 싶었다.
친구들에게 무슨 일을 하고 싶니? 물어보면 농사가 아닌 경우가 더 많다. 농장에 오는 걸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농사를 고집할 것이 아니구나, 아이들이 농장에 와서 그냥 놀아도 괜찮아, 그 시간이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의 목표는 말을 잘 듣는 농업 노동자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집 선생님이 되고 싶고,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고, 전문 자격증을 따고 싶다는 청소년들을 사회와 연결해주는 거다.
이런 일들은 돈을 버는 것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처음에는 아껴 쓰고 나눠 쓰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7년 동안 잘 가꿨던 농장을 갑자기 빼야 하는 경우라든가,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으나 인건비는 사용할 수 없고 일은 많아져서 오히려 활동비가 부족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자립은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버는 돈이 적어도 51%를 넘기면 좋겠고 밖에서 들어오는 돈이 49%보다 작았으면 좋겠다, 라고 목표를 세웠고 실제로 그렇게 가고 있다.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중요하지만 어쨌거나 속도와 자율성을 보장받기는 힘든 것 같다. 작은 지역 안에서 선발 경쟁이나 까다로운 증빙 절차 없이, 일상적인 관계와 이해를 바탕으로 이웃들끼리 서로 도움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 좋겠다 싶다. 꿈이자라는뜰이 경제적인 자립의 일부를 마을 이웃들에게 의존하고, 마을에 필요한 활동을 일정 부분 담당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어르신이 만나 농農의 가치를 새긴다
마을주민이 필요하면 달려가는 ‘우리마을 119’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 5개 리에서 900여 명이 사는 농촌에 살고 있다. 귀농해서 처음엔 잘 몰랐는데, 어느 날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 아이들, 동네 어르신들…. 누군가에게는 우리 마을이 살 만하지 않은 곳이었더라. 대중교통, 병원, 교육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는 상황인데 청년들에게는 귀농하라고 하는 것에 자괴감이 들었다.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을 농촌 유학으로 접근했다. 지금은 농촌 유학생이 전체 학생 수의 3분의 1 정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귀농, 귀촌인 자녀이거나 시내에서 오는 아이들이다. 부모와 자신의 고향이 마을인 토박이는 이제 1명 남아 있다.
도시에서 매년 15명 정도의 유학생들이 오는데, 2~3명씩 배정된 농가에서 홈스테이로 1년을 생활한다.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데리고 산다. 이게 가능할까? 가능하다. 센터에서는 농가의 메주 냄새를 느끼게 하지 못하고, 초롱이, 바둑이 같은 강아지들이 주는 관계성을 줄 수 없다. 그렇게 새로운 가족이 되는 거다. 아이들에게 뜨개질, 바느질, 요리, 목공 등을 가르치고 있다. 보통 학생들이 4인 가족이라고 계산하면, 1년에 60명 정도가 매년 마을, 또 주민들과 관계가 생기는 셈이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대학을 간다고, 군대 갔다고, 휴가를 나왔다고 마을에 놀러 온다. 마을에서 1년, 2년을 살아낸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농農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가질 거라고 생각한다. 조만간 고탄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이들이 사회인이 되어 든든한 후원자가 되는 경우도 나올 것이다.
아이들과 어르신을 만나게 하는 일은 농촌에서만 가능하다. 어르신 댁을 찾아다니다 보니 그분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고, 노인복지 사업으로 확장하면서 ‘별빛교육센터’로는 적절치 않아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게 되었다. 어르신 댁에 형광등이 나가거나 문짝이 떨어지면, 갑자기 급하게 병원을 가야 하면 어떡하지, 이럴 때 어딘가에 전화를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생각한 것이 ‘우리마을 119’다. 지금은 미용도 하고, 한글 교실도 연다. ‘핸디맨’이라고 손재주 좋은 두 형님이 언제든지 출동해서 수리를 하고, 2021년에는 균형발전위원회에서 예산을 받아서 마을주민들 중 이웃을 돌보고 연결망을 만드는 ‘이웃 복지사’ 사업을 실험적으로 하기도 했다.
지역 정책, 현장을 알고 유연하게 움직여야
청년을 위한 정책, 지역과 연계되도록
김기흥(한국유기농업연구소 부소장): 유기농업 연구를 위해 홍성군 홍동면에 머문 적이 있다. 귀농, 귀촌인을 만나 왜 지역에 왔는지 물으면 다들 농사지으러 왔다고 했다. 아, 이분들이 귀농인이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이분들은 제도적으로는 농업인이 아니다. 300평 이상의 땅을 갖거나, 농산물 판매로 인한 수익이 120만 원 이상이어야 한다든지, 하는 조항들 때문이다. 지역에 온 청년들은 현실적으로 농사를 짓지도 못할뿐더러, 농업인으로서 지원 대상이 되지도 못하는 것을 보고 제도의 한계를 크게 느꼈다. 이런 경우도 있다. 청년들에게 농사지을 기회를 주고 싶은데, 뭔가 계약하는 게 불편하기도 하고, 직불금이라든지 이런 문제가 있어서 구두로 청년들에게 땅을 내어주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은 불법이다. 1996년 이후 농지법에 따라 농지는 농지은행을 통해서만 계약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귀농, 귀촌 관련 법이 바뀌면서 귀촌인의 기준이 동 지역에서 읍면 지역으로 이동한 사람이 되었다. 주거지가 바뀐 사람들이 대거 귀촌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제도가 성급하게 만들어지면서 실제로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분들은 그러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 귀농하기 어렵다. 마을 안에 농업위원회가 있고 그 위로 시군 단위 농업위원회, 그 위에 최종적으로 농업회의소가 있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귀농인이 농사도 잘 짓고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는지 1년, 2년 동안 지켜보고 나서야 지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땅도 빌려주고, 집도 빌려주고, 생산한 농산물도 같이 판다. 반면 우리나라는 청년 농업인이 국비로 지원금을 받는데 지역과 연계해야 하는 당위성이 아무것도 없다. 청창농 지원 사업으로 청년들은 1년 차 100만 원, 2년 차 90만 원, 3년 차 80만 원을 지원받지만, 지역에 노는 땅들이 보여도 농지은행이 아니면 땅을 구할 수가 없어 정착하기가 어렵다. 지역과 전혀 연계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지역에 필요한 서비스를 주민 스스로 만들어내는 움직임이 조금씩 보인다. 농사지으려고 모인 청년들이 지역에 있는 폐교를 활용해 숙소도 만들고 지역주민과 함께 사용하는 도서관을 만든 사례도 있고, 지역주민이 함께 쓸 수 있는 거점 공간을 만들어서 동아리 활동과 교육을 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 ‘우리마을 119’ 같은 사업도, 실제로 마을 사람들이 살아 보니까 너무 불편해서 스스로 만든 부분이다. 행정은 지역 안에서 발굴되는 아이디어와 좋은 사업을 엮어내도록 기존의 지침을 바꿔서라도 유연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는 지역과 농촌에
사람들이 부딪히며 문제를 해결하는 자치의 힘
신수경: 우리나라 도시화율은 90%에 육박하고 있다. 대부분 도시에 살아서 지역이나 농촌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지역이, 농촌이 중요하다는 공감대를 어떻게 확산할 수 있을까. 지역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윤요왕: 우리 사회에 농촌이 사라지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지역을 다 떠나는 상황이 되었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하고 있지만, 농촌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내가 사는 춘천이 예전에는 주말에 차가 막혔는데 지금은 평일에도 막힌다. 왜 그럴까? 자연, 생태, 쉼이 도시에 있지 않다. 인간의 삶이, 또 국가나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가 지역과 농촌, 자연에 있다고 본다.
김기흥: 예전에는 농촌이 삶의 터전이었다. 사람들이 왜 이곳을 떠났는지, 부모 세대는 왜 자식이라도 떠나게 했는지, 국민 전체가 생각해봐야 한다. 사람들이 없으니 시설이 사라진다. 농촌에 살고 싶어서 와도 첫째 아이가 중학교에 가게 되면 이제 마을을 떠나야 하나 고민하는 시점이 오게 된다. 약국, 병원, 가게, 나중에는 치킨집도 없어졌다. 기본적인 인프라가 사라지니 더 살기가 어려워져서 결국에는 지역을 떠나게 된다. ‘지역소멸’이라는 굉장히 자극적인 단어를 쓰는데, 몇 가지 지표를 가지고 지역이 사라진다고 일종의 협박을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말이 과연 누구한테 도움이 될까 싶다.
권혁범: 마을은 공간적인 의미도 있지만, 결국은 조직된 시민의 힘으로 그들이 스스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장소로 부각이 되는 것 같다. 농촌에는 공동체 정신, 협동과 연대의 정신이 남아 있으니까. 그런데 이제 농촌도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지 않았나, 오히려 도시보다 격차 사회로 넘어가고 있지 않나, 그런 근본적인 고민이 생긴다. 집단을 강조하다가도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공동체 이익은 필요 없고,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경우가 있다. 이런 걸 알지 못했던 이들이 농촌에 들어오면 살아남기가 쉽지 않고, 결과적으로는 다 떠나게 되는 거다.
최문철: 한 사람이 긴장감 없이 마음을 나누고,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이웃의 숫자엔 한계가 있다. 개인의 참여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사회적인 영역의 크기도 무한대로 넓지 않다. 때문에 개인의 참여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작은 규모의 지역이 중요하다. 면 단위는 농촌주민들의 일상이 맞물리면서 영위되는 최소 단위의 지역사회다. 사람들이 작은 공간에 모여서 지지고 볶다가도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서로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런데 주민자치를 시작하라고 국가에서 ‘지시가 내려오는’ 일은 이상한 것이다. 지역마다 상황과 속도가 다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다 다른데, 일방적으로 그 방식을 결정해서 내려오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국가, 정부, 중앙에서 지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지역에 동기를 부여하고, 가능성을 열어주었으면 좋겠다.
지역주민의 역량을 믿고 맡기도록
과정과 결과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지역을 지키는 인재를 키워야
신수경: 듣고 보니 지역은 도시보다 회복력이 있고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역 정책과 제도는 어떻게 진화해야 할까?
윤요왕: 놀이터를 만들어 놓고 여기서 놀려면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 그러면 애들이 오지 않는다. 지금 농촌이 그런 상황이 아닐까 싶다. 지방자치의 핵심이 주민자치라고 보는데, 최소한 읍면 단위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큰 틀에서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결정하면, 마을이 현장 중심성을 가지고 자치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최문철: 주민참여예산 아이디어를 공모하는데, 그걸 결정하는 건 주민이 아니라 소수의 전문가다. 지역 배분은 이미 나뉘어 있다. 굉장히 아이러니한 일이다. 주민참여예산이니 말 그대로 주민이 일일이 투표해서 그 예산이 어디로 갈지 결정하게 하고, 예산을 받은 조직은 돈을 어떻게 썼는지 낱낱이 공개할 책임을 지게 하면 된다. 공공예산에는 설명책임성이 뒤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지역 단체가 돈을 왜 받았는지, 어떻게 쓰였는지, 지금은 공개가 안 되고 있다. 정보공개청구를 해야 간신히 알 수 있다. 청구를 하지 않아도, 투명하게 공개되었으면 좋겠다.
김기흥: 공무원들은 대번에 주민 역량이 부족하여 몇몇 사람만 지원금을 가져갈 거라고 이야기하는데, 독식하지 못하는 구조를 만들고 함께 감시하면 된다. 모르면 배우는 과정이 추가되어야 하는데, 시작부터 굉장한 불신이 있는 것 같다. 지역주민의 역량을 믿고 맡기는 제도적인 기반이 더 갖춰지면 좋겠다.
권혁범: 지역에서 정책 사업을 도모하려면 그것을 해낼 수 있는 핵심 일꾼이 있어야 한다. 바쁜 농민에게 주민자치 간사 하라고 하면 못 한다. 결국 사람이 없으니 행정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지역에는 인재가 남지 않는다. 지역에 있는 고등학생 99%가 도시로 나갈 거라고 한다. 지자체에서도 서울 우수 대학으로 가는 학생들을 지원한다.
윤요왕: 행정도, 관료도, 정치인도 농촌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농農의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기 업무니까 최소한으로 다치지 않게끔만 하는 거지, 정부 부처부터 면사무소 직원까지 주민자치, 농촌복지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농촌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지위와 권한을 준 거다. 이제 그 권한을 절박하고 간절한 현장으로, 지역으로, 중간지원조직으로 넘겨줘야 한다.
지역소멸, 어떻게 대응할까?
협동과 연대로 농촌의 복원력을 키워야
주민자치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신수경: 농촌은 도시보다 훨씬 복원력이 있는 사회고, 또 함께하는 주체들이 혁신적으로 움직인다. 대부분 협동조합의 형태인데, 안을 들여다 보면 쉽지 않은 일이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협동이나 연대를 통해 뭔가 새로운 것을 꿈꾸고 있기도 하다.
최문철: 5명 있는 협동조합도, 500명 있는 협동조합도 모두 1인 1표다. 구성원은 물어볼 수 있는 권한, 반대 의사를 표명할 권리가 있다. 그런 크고 작은 조직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산자조합의 작목반 같은 경우 마늘 작목반, 생강 작목반, 벼 작목반에 사람들이 중복되어 있듯이, 사람들이 촘촘하게 겹쳐져 있으면 조직화가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다. 협동조합이 많아질 뿐만 아니라, 협동조합의 7원칙이 지켜지고, 그중에서도 5번째 원칙인 교육과 학습이 지속되어야 한다. 그래야 관행을 깰 수 있고,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주인이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그 안에서 실무자만 고생하는, 자조·자립·자치와는 거리가 먼, 무늬만 협동조합인 경우가 생긴다.
윤요왕: 혼자서는 할 수 없는데, 둘 이상 모이면 될 것 같은, 그런 아이템을 가지고 협동조합을 해야 한다. 내 목표 중 하나가 마을마다 농기계 협동조합을 만드는 거다. 내가 사는 고탄 5개리에 농기계는 지금의 10분의 1만 있으면 되는데, 정부 보조금, 농협 보조금 받으면 혼자서도 1억 원짜리 농기계를 살 수 있으니까 협동조합을 만들지 않는다. 옛날에는 농기계 하나로 서로 의논해서 나눠 썼지만, 지금은 트랙터, 콤바인 등 개인화되어 있으니 굳이 협동하지 않는다.
최문철: 현실에서 수많은 문제는 두 가지로 해결할 수 있다. 돈이나 협동이다. 사실 정부도 보조금이라는 돈을 주고 문제를 해결한다. 너무 편리하니까. 협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너무 어려운데, 그래도 그 경험은 남아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자조·자립·자치가 한 번에 완벽하게 성공을 못 하더라도, 지역이라는 물리적인 한계가 오히려 경험이 고이는 울타리가 된다.
권혁범: 내가 지역에 남아 있는 건 1%의 희망 때문이다. 협동과 연대의 방식으로 지역 중심의 순환 경제 체제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역에 돈이 투입되어서 엄청나게 싸움이 나고 형사 고발까지 간 적이 있었다. 그래도 10년, 20년 지나니까 주민들이 주민자치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의를 하면서 거기서 결론은 안 나더라도, 손 들고 자기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시간이 필요하다. 내 장기 목표 중에 노인돌봄마을이 있는데, 우리에게 남아 있는 협동의 DNA, 이걸로 제도의 도움 없이 우리의 힘으로 조직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게 숙제다.
최문철: 의료조합을 만든 지 7년째인데, 의사가 가까이에 있다는 건 이런 거구나, 사람들이 이제야 체감하고 있다. 이건 ‘숨어있는 필요’였다. 주치의를 경험한 적이 없으니 필요하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거다. 조합에서 건강교실을 여는데, 그 이유가 자기 자신을 살필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도 있지만, 그 역량으로 다른 사람도 살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나와 옆집의 필요를 점검하는, 단순한 살핌과 보살핌의 훈련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살핌과 보살핌, 돌봄과 돌아봄이 작은 규모 안에서 순환하는 거다. 이 지점에서는 의료인이 없어도 ‘건강을 지키는’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소멸’ 걱정 않고 지금, 행복하게
마음 맞는 사람들과 지역에서 재미있게 산다
윤요왕: 우리 마을이 앞으로 몇 년 후에 혹시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때까지 900명 주민들이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생각한다. 인구가 9000명으로 늘면 행복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역소멸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과소화에 너무 주눅 들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가 지금 사는 곳에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재밌고 행복하게 오늘 하루를 살아낼까,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다.
권혁범: 우리가 재미있게 살면 밖에서도 들어오지 않겠나? 그러면 더 행복한 게 뭐가 있을까. 마음 맞는 사람끼리 조직해서 우리의 방식으로 하나의 모델을 만드는 데 주력하려고 한다.
김기흥: 제도가 하지 못하는 일을 지역민들 스스로 해결하고 있다. 이런 작은 희망들이 지역에 살아있다는 게 굉장히 긍정적인 신호다. 기후위기와 같은 또 다른 문제가 계속 오고 있는데, 이런 것들도 역시 협력하고 연대하는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아직은 희망적인 부분이 더 많지 않은가 생각한다.
최문철: 절망적인 부분이 더 많아 보인다. 그래도 희망이 있을까? 생각한다. 희망이 있으면 좋겠다, 한 걸음을 더 못 나가고 있는데, 그래도 계속 붙잡고 있는 건, 우리가 쌓아온 것들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마을 안에서 인간적인 돌봄을 받기 원한다면, 내가 먼저 협동에 참여하는 주민조직밖에 답이 없는 것 같다. 일상의 문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든, 또는 해결하지 못하든 간에 결국 가장 큰 위로는 옆집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신수경: 오늘 함께 이야기한 지역의 의미, 지역 정책의 방향과 제안 등을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더 나은 대안을 찾고, 또 함께 실현해 가는 이야기를 들으니, 지역의 의미와 가치가 더욱 선명해지는 것 같다. 오늘 함께해주셔서 감사하다.
기록 이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