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력을 줄이는 효율적인 영농이 필요하다

이해극

농촌의 고령화와 코로나19 이후 외국인노동자도 떠난 농산업 현장에는 늦봄 가뭄만큼이나 인력이 고갈되었다. 80㎏ 쌀 한 가마니를 생산하면 순소득이 13만 원 내외인데 외국인노동자 한 사람의 품삯이 이를 웃돌고, 그나마 구할 수도 없는 실정이니 농민은 무슨 농사를 지어야 수지를 맞추겠는가? 급기야 노동집약적인 채소 농사를 포기하고 비교적 일손이 덜 가는 콩팥 작물로 전환하고 있다. 고비용 구조로 해에 따라 심한 기복으로 밑지는 농사의 대표적 작물인 건고추는 지난해 2만t이나 과잉생산 되었다. 전체생산비는커녕 수확인건비조차 되지 않자 많은 농가에서 붉은 고추 수확을 포기하였다. 그야말로 풍년기근의 사례이다. 언제까지 이러한 고비용 구조의 관행을 고수하고 한탄만 할 것인가? 적자생존의 법칙처럼 생존영농의 방안은 없는 것일까?
  대안은 있다. 필자는 시설재배 유기농 인증 농지(100m×19연동) 연동형 하우스에서 40년 이상 친환경농업을 실천하고 있다. 가을(10월) 고추를 일시 수확하고, 호밀 또는 보리를 녹비용(풋거름용)으로 파종하여 다음 해 2월 중 경운하고, 브로콜리 재배 후 즉시 고추를 심어 10월 초 다시 일시 수확하는 작형이다. ① 화본과(볏과)인 보리나 호밀은 월동기간 동안 ㎡당 5㎏ 내외의 녹비가 생산되어 염류 제거와 토양 환경을 개선하고 ② 십자화과(배춧과)인 브로콜리 ③ 가짓과인 고추 재배 등 자연스러운 윤작체계로 연작에 따르는 선충 피해나 담배나방, 진딧물의 피해가 가볍거나 거의 경험하지 않게 한다. 고추가 붉어질 때마다 수확해야 하는 것은 오래된 고정관념의 관행이다. 자주 수확해야 전체 수확량이 늘어나는 것에 동의는 하지만 이 자연스러운 관행이 농가 수익을 악화하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고추  일시 수확형 고추 재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브로콜리 수확 후 이미 덮인 비닐 두둑에 고추를 정식(아주심기)하고 나서 쓰러지지 않게 고추 줄을 2번 띄운 후 이후에는 관수(농사에 필요한 물) 관리하는 것이 전부다. 곁순도 제거하지 않는 이유로는 인력도 없거니와 곁순을 제거하면 고추 키가 더 크기 때문이다. 나뭇가지 잡아주는 유인을 2회만 하면, 열매가 달린 고추의 무게가 있어 자연스럽게 분수형의 잎 모양이 잡혀 채광과 통풍이 개선된다. 또한 지표면에 그늘을 만들어 지온 상승을 억제한다. 기둥 사이에 남겨둔 화본과 녹비작물은 ④ 진딧물의 서식지가 되고 1~2m 간격으로 처진 무수한 거미줄은 각종 나방류의 덫이 된다. 이외에도 청개구리, 참새, 딱새 등은 해충을 방제하는 우리 농장의 부지런한 일꾼들이다.10월 고춧대를 절단하면, 수일 내에 고추와 고춧잎이 시들어 수확 작업은 일반 대비 3배 이상 능률적이다. 또한, 고추가 농익어 붉은색이 진하고 풍미가 좋아 고춧가루가 맛있다. 십수 년간 오랜 단골이 많아졌다. 밀림 같은 고추 섶 사이로 보물찾기하듯 수확하는 재미는 덤이다. 중요한 장점 중 하나는 건조비가 대폭 절약되어 탄소중립에 이바지한다는 점이다.
  수십 년 전 영농 초기부터 농민의 악성 노동을 덜어주는 농자재를 발명해 노동력 절감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작형과 농법으로 작물을 재배해왔다. 1970년대에는 폐자전거 바퀴를 이용해 멀칭한 두둑에 씨앗 구멍을 내주는 식혈구를 개발해 인건비를 절감하고, 농산물 품질이 일정하여 구매처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1980년대에는 비닐일괄 작업기를 개발했다. 두둑 형성과 피복 제거가 한꺼번에 해결되므로 시간이 절약되고 토양수분의 증발을 줄이고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 농사가 잘되었다. 시설하우스 자동개폐기를 활용한 시스템은 작물이 자라는 최적의 환경을 맞춰줌으로써 시설영농 무인화와 고품질의 농산물 생산에 기여했다.
  이처럼 농업 현장에서 도출되는 문제점과 애로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농민이고 해결할 주체도 농민이며 그 수혜의 몫도 농민의 것이다. 현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문제들 속에서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제는 즐겨야 할 때이다. 문제에 답이 있으니 이 글이 그 답을 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이와 같은 작형과 농업을 바라는 사고방식이 일반화되기를 희망한다.

이해극필자 이해극: 한국유기농업협회 회장, 한가지골농장 대표.
농업은 과학이라는 믿음으로 과학영농에 기반을 둔 유기농업을 알리고 전파하기 위하여 전국의 농부들을 만나 강연을 하고 있다. 1986년에 새마을훈장을 받았고, 2013년에는 대산농촌상 농업기술 부문을 수상했다. 저서로 《무농약 영농 불가능한가》(편저), 《미련해서 행복한 농부》(2019, 따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