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훈 괴산먹거리연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제30회 대산농촌상 농촌발전 부문 수상자)
망종芒種 무렵, 논에 괴어 있는 물에 새파란 하늘이 선명히 비치는 날이었다. 농민들이 부지런히 모내기한 논배미는 짙은 녹색으로 채워져 있었다. 자연과 사람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을 때, 이도훈 씨가 날씨만큼이나 환히 웃으며 다가왔다.
농민은 어떻게 삶을 유지하는가
충북 괴산군 감물면, 이도훈 씨는 이곳에서 나고 자란 농민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짓는 형을 도우면서 시작한 농사가 어느덧 45년이 되었다. 그는 청년 시절 농촌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던 신용협동조합(신협) 운동에 참여하면서 지역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80년대 농촌은 심각한 고리채에 놓여 있는 상황이었어요. 이자율이 50%였으니까요. 조합원들이 십 원짜리든 백 원짜리든 모아서, 돈 없는 사람에게 이자율을 낮춰서 대출을 해준 거예요. 그러면서 지역에서 어떻게 협동할 것인가, 그걸 배우게 되었어요.”
이도훈 씨는 “농민이 어떻게 삶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농민운동을 했다. 괴산군 농민회 사무국장일 때에는 농촌활동 왔던 대학생들과 서울 대학로에 가서 말린 고추를 판매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시장에서 거간꾼이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농민을 괴롭힐 적에는, 경매사를 불러서 현장에서 경매를 진행하고 업체들이 직접 농산물을 싣고 가도록 했다.
괴산미생물연구회(흙살림의 전신)에서 활동하던 이도훈 씨는 1991년부터 유기농을 시작했다. 뜻을 함께하는 농민들이 점점 늘어나자 면 단위 모임을 만들었다. 2002년에는 흙살림 감물면 지회를 세웠고, 이듬해 흙사랑영농조합법인(이하 흙사랑)으로 공식 명칭을 바꿨다.
“첫해 12명이 벼농사 1만 평을 지었는데 팔 데가 없었어요. 1년 내내 팔고서 다음 해에 정산했죠. 그런데도 함께하겠다는 농민들이 많아져 회원이 60명으로 늘었어요. 이 사람들의 소득을 지키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판로를 확보했어요. 흙사랑이 한참 출하처 찾을 때는 16군데 조직과 관계를 맺었어요. 나중에는 농산물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어요.”
조직에는 사람이 필요하다
흙사랑은 기획생산, 공동선별, 공동정산을 한다. 조합원들은 출하처에 공급할 만큼 농산물을 생산하는데, 처음 들어온 사람도 최소 면적인 1000평을 배정받는다. 품목도 상대적으로 농사짓기 쉬운 것으로 선택할 기회가 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중·소농을 중심으로 한다는 원칙이 있어서 귀농한 사람들의 진입이 쉬운 편이죠. 검토 과정을 거치면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어요. 흙사랑 멤버가 되면 지역 토박이들과 어울리기 때문에, 마을에서도 주민들이랑 충돌하지 않고 잘 지내요.”
농산물은 출하처마다 납품되는 시점도, 가격도 모두 달라 공동창고에서 관리하고 유통한다. 저장 과정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특정 농가가 피해를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품목별로 조합원들이 공동책임을 진다. 최종적으로 조합원들은 총매출에서 의무 출자금을 제한 나머지 금액을 배분받는다.
“정산할 때 만 원 단위 이하 금액은 따로 모아요. 그러면 몇백만 원 모이는데 그건 흙사랑 돈이 아니에요. 그 시기에 어려운 곳을 찾아서 기부하죠. 2021년에는 감물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 400만 원 기탁했어요. 충북시민재단에 받았던 도움을 2배로 갚기도 했고요.”
흙사랑이 이렇게 체계적으로 운영되려면, 농민이 농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실무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더불어, 이도훈 씨는 지역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직에는 사람이 필요해요. 농민이 열심히 농사지으면서, 조직도 운영하고 관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죠. 그래서 귀농하고 싶은 사람 중에서 흙사랑 실무자를 뽑았어요. 2년 동안 실무를 익히면서, 농사도 배우는 조건으로요. 그걸 지금까지 반복한 거예요. 실무자들은 농민이 되기도 하고, 지역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기도 해요.”
지역의 건강한 먹거리 순환
흙사랑은 2013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이도훈 씨는 “흙사랑이 어떻게 지역에서 보탬이 되는 조직으로 남을 것인지” 생각했다. 첫 움직임은 농부시장이었다. 괴산군 사회적기업·마을기업협의회를 통해 7개 조직을 모아 직거래 장터를 운영했고, 그 활동을 점차 확장할 수 있도록 ‘사회적협동조합 문전성시’를 세웠다.
그 과정에서 이도훈 씨는 친환경농산물과 로컬푸드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먹거리 순환 체계를 이끌 단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괴산군과 같이 먹거리 종합 계획(푸드플랜)을 수립하던 때였다. 이 씨는 흙사랑 대표 자리를 내려놓고, 2019년 괴산먹거리연대사회적협동조합(이하 괴산먹거리연대)을 설립했다.
“각자 먹고사는 데 허덕거려 지역에 구심점이 없었죠. 괴산먹거리연대의 틀을 짤 때 지역의 농민단체들이 참여하도록 했어요. 단체들의 중심이 되는 조직을 만든 거죠.”
괴산먹거리연대는 괴산군 공공급식지원조례 제정과 공공급식지원센터 설립, 로컬푸드 직거래매장 개장 및 운영 등을 이끌며 지역민들이 지역 농산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지금은 2021년 준공된 괴산군 먹거리통합지원센터를 위탁 운영하면서, 공공급식 및 농식품꾸러미 운영 등 지역에 건강한 먹거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로컬푸드 생산자 관리가 주요 사업 중 하나예요. 우리는 교육을 어마어마하게 해요. 로컬푸드와 푸드플랜이 무엇인지, 생산자들은 어떤 책임과 권리를 갖는지 전하죠. 농민들은 교육을 들어야 로컬푸드 직매장에 물건을 출하할 자격을 받아요. 참여 농가는 170여 개 정도 되고, 앞으로 교육받을 농가가 400개 가까이 됩니다.”
옆을 끊임없이 돌아보는 것
이도훈 씨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뒷배 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이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삶에 보탬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역할.
앞서 그와 동료들이 지역의 이웃을 살피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 ‘사회적협동조합 다함께세상’이다. 아이 돌봄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는 이 단체는 앞으로 괴산형 커뮤니티센터를 만들어 노인 돌봄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지역 어르신들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사회적 농업도 함께 구상 중이다.
“같이 살아야죠. 우리가 어떻게 같이 살지, 옆을 끊임없이 돌아봐야 해요. 그게 연대고, 협치고, 협동이죠. 옆집이 안 되는데 난들 잘되겠어요?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 필요해요.”
앞으로도 내 이웃, 동료와 쭉 같이 살기 위한 방법을 찾겠다는 이도훈 씨. 이런 벗바리가 있어 지역이 든든하다.
글·사진 이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