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짓기’는 하나의 주제로 여러 명의 필자가 집필한 에세이를 이어서 소개하는 코너로, 지난 호 최성현 씨에 이어 송이 씨가 ‘농촌에 관한 단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에 관하여 적은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주]
글·사진 송이
땅 500평(약 1653㎡)에서 농사짓는 텃밭농부, 비건빵과 샐러드를 만드는 카페 사장, 유튜브 <조화로운삶> 채널 운영자. 시골로 들어와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지금 내가 맡은 일들이 이렇게 많아졌다. 처음 시골살이를 결심하게 된 건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내가 귀농한 ‘진짜’ 이유
나는 할아버지 손에서 컸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릴 적 할아버지는 나를 등에 업고 동네를 산책하셨다. 낯선 사람만 보면 울어 젖혀서 다른 사람은 손도 못 댔던 어릴 적 나는 할아버지 넓은 등 뒤로 숨어서 동네를 구경했다. 지나가는 동네 아주머니는 그런 우리 모습을 보며 우스갯소리로 “나중에 크면 네가 할아버지 업고 다녀야지” 하셨다. 초등학교 입학식 그리고 1학년, 유난히 수줍음 많았던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학교에 가는 게 너무 싫었고 무서웠다.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위해 매일 아침 등굣길 내 손을 꼭 잡고 교실 문 앞까지 나를 바래다주셨다. 그러곤 내가 잘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가셨다.
4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었다. 할아버지의 부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걸까? 어디에서 답을 구해야 할까?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출근길 꽉 막힌 버스 안에서 혹은 밤 10시 밀린 일에 야근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마음은 끊임없이 재잘거리며 내게 말을 걸었다. 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고, 전문가를 찾아갔지만, 인생의 정답을 찾지 못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죽음은 이생에서의 시간을 한정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삶을 더 빛나고 아름답게 한다. 우리가 언젠가 죽는다면 살아있는 동안은 원하는 걸 하면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인생을 건 실험을 시작했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 나중에, 나중에를 입버릇처럼 말하던 나는 달라지겠다고 결심했다. 주어진 순간, 하고 싶은 일들에, ‘YES!’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삶은 달라졌다.
시골 생활의 현실
누군가 묻는다. “그래서 지금 원하는 것을 하니 행복하니?”라고. 대답은 그 당시 나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은 시기에는 “도시나 시골이나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시골이라고 해서 더 좋은 건 아니야.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면 돼”라고 말한다. 하는 일이 잘 풀려서 하루하루가 기대되는 날에는 “시골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곳이야. 우리 함께하자”라고 답한다. 이토록 변덕스럽다. 독일 작가 에크하르트 톨레는 책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 마음은 언제나 다른 사람이나 상황을 원한다. 마음속에는 늘 불충분함과 결핍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채워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상황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쩌다 성공해도 그 만족감은 결코 오래 가지 않는다. 대부분은 내가 원하는 것과 실제 모습 사이의 차이에 끊임없이 혼란스러워하고 고뇌한다.”
나의 변덕스러운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은 늘 현재에 만족하는 법이 없다. 시골 생활 3년 차인 지금에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시골에서 살아도 도시에서 살아도 불안해할 인간이라는 것을. 그것이 장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삶은 어디서나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고통스러운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 생활을 지속하는 나름의 이유는 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해도 얼마 전 심은 작은 씨앗이 ‘영차’ 하고 흙을 들고 나오는 모습을 볼 때, 한겨울 얼었던 밭이 녹고 꽃샘추위가 시작될 때 제일 처음 밭에 심었던 감자가 어느새 굵어져 수확의 기쁨을 누릴 때, 혼자 외롭기는 해도 멀리 산이 보이는 강둑길을 반려견 하루와 걸으며 노을 지는 풍경을 바라볼 때, 이런 작은 순간들에 나는 종종 가슴 벅찬 감정을 느끼곤 한다.
싱싱한 채소가 가득 자라고 있는 텃밭은 나의 작은 슈퍼마켓이다. 밭에서 수확한 작물로 요리해 손수 차려 먹는 간소한 음식은 나의 몸과 마음을 풍요롭고 건강하게 한다.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가능한 범위 안에서 식재료를 직접 키우고 요리해서 먹고 싶다. 이 음식의 재료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에 담아서 누구와 함께 먹는지는 나에게 꽤 중요한 일이다. 음식에 깃든 사연을 떠올려보는 것도 즐겁다.
봄이 오기 전, 밭이 초록색 새싹들로 덮이기 전, 그 황량한 밭에 냉이가 자란다. 따로 심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오는 건지 매년 밭에는 냉이가 나온다. 그러면 작은 호미와 소쿠리를 들고 나가 할머니와 함께 쪼그리고 앉아 냉이를 캔다. 냉이가 지천이라 얼마 안 가 소쿠리로 하나 가득 찬다.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와 냉이를 다듬을 때, 할머니는 냉이가 아닌 걸 캐왔다고 나무라셨다. 내가 보기에는 분명 똑같이 생겼는데, 이건 냉이가 아니라는 할머니. 냉이는 냄새를 맡으면 안다고 했다. 냄새를 맡아보니 정말 알 것 같았다. 이건 쌉싸름한 향이다. 그리고 흙냄새다. 단어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냉이에만 나는 향긋한 냄새가 정말 있었다. 이후로 매년 봄, 밭에 나가면 냉이만 쏙쏙 골라 잘 캐는 아주 훌륭한 학생이 되었다. 봄마다 냉이를 캐서 그 향긋한 향을 함께 무쳐 먹으면, 마치 봄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할머니와의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이런 작고 소중한 일상들이 내가 시골 생활을 사랑하는 이유다.
필자 송이: 텃밭 농부, 비건빵과 샐러드를 판매하는 카페 운영자.
농업대학교 원예과학과를 졸업한 뒤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시골로 이사 와서 반려견 하루와 함께 시골 생활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한 유튜브 채널 <조화로운삶>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