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박은우
나는 식물병리학자로서 35년간 대학에서 근무하다 2020년에 정년퇴직하였고, 퇴직한 다음 날에 강원 평창군으로 이사하여 3년째 서울대 평창캠퍼스 주거단지에서 아내와 함께 지내고 있다. 주변에 퇴직 후 귀농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의 경우는 귀농이라기보다 농작물 병해충 방제에 대한 평생의 연구 성과와 생각을 영농현장에서 직접 실용화시켜 보겠다는 도전이다. 지역에 오자마자 지역 농민을 대상으로 원예작물 병해충 방제 교육을 시작하는 한편, 약 400평(약 1322㎡) 규모의 실험 포장에서 고추와 감자를 직접 재배하면서 병해충 발생을 예측할 수 있는 병해충 예측정보를 활용해 고추 탄저병과 감자 역병에 대한 예찰방제체계를 개발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농업은 자연자원을 활용하여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산업이다. 따라서 농산물을 증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연생태환경을 훼손하게 된다. 20세기에 들어 자연생태환경과 식품 안전 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기계화와 화학비료, 농약을 투여해 단일 작목을 재배하는 관행농업의 대안으로 유기농업이 떠올랐지만, 현실적 문제점과 파급효과에 대한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유기농업은 화학비료와 유기합성농약을 사용하지 않아서 농작물 병해충 방제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일부 농민들이 어렵게 유기농업을 실천하고 있지만, 재배 면적이 넓을수록 살균제, 살충제, 제초제 등의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는 농사를 짓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영농현장에서 농약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면서 병해충 방제 효과를 극대화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농약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환경을 오염시키고 식품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약제저항성 병해충을 발생하게 하여 방제 효과도 떨어뜨린다. PLS(Positive List System, 농약허용기준강화제도) 시행으로 작물별로 사용할 수 있는 농약의 품목 수가 제한되어 있는데 병원균의 약제 저항성 문제는 시판 농약에 대한 선택의 폭을 더욱 줄여서 현실적으로 병해충 방제를 어렵게 한다.
농약 살포를 줄이기 위해서는 병해충 방제가 꼭 필요한 시기에만 농약을 살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병해충 발생위험을 미리 알려주는 예측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지난 3년간 농민들과 소통하며 실감하게 된 병해충 방제에 대한 농민의 마음과 병해충 예측정보를 활용하여 영농현장에서 쓸 수 있는 병해충 방제체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농약에 대한 농민의 마음을 읽다
농민은 왜 농약을 사용하고 어떻게 쓰고 있나. 농약 사용 현실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농민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우선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때깔이 좋은’ 농산물을 유난히 찾는 경향이 있다. 즉, 흠집이나 병해충 피해 증상이 전혀 없는 완벽한 모습의 생산물에 대한 시장 요구가 절대적이다. 결국 농민은 소비자 요구를 충족하는 농산물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100% 병해충 방제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병해충은 언제 돌발할지 모른다는 것이 농민에게는 또 하나의 어려움이다. 병해충 발생은 기상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매년 작물 생육단계로 볼 때 일정 시기가 되면 특정 병해충이 발생하는 것 같지만 기온, 강우, 가뭄, 상대습도 등의 기상변화에 따라 병해충 발생 양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최근에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병해충 방제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농민들은 100% 병해충 방제를 목표로, 특정한 시기가 되면 농약을 살포하기 시작해 대략 7~10일 간격으로 주기적으로 농약을 뿌리게 된다. 여기에 날씨에 따라 병해충 발생위험이 크면 추가로 농약을 살포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을 살펴보면, 농민들이 주기적으로 병해충 방제를 하는 것이 경제적 손실을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이며, 앞으로 발생할 위험을 사전에 관리하는 ‘위험관리(Risk Management)’1)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은 100% 병해충 방제라는 목표는 달성할지 몰라도 농약 과용에 따라 경제적 편익이 감소할 뿐 아니라, 농약의 오남용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적절한 위험관리 전략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병해충 발생위험에 대한 예측정보를 활용하여 꼭 필요할 때만 농약을 뿌려 최소한의 농약살포로 병해충을 효과적으로 방제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1) 위험관리란 앞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위험을 예측하여 대비책을 세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래의 위험은 현재 지닌 정보를 바탕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그 위험이 발생할 것인가에 대한 불확실성은 상시 존재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적절한 위험관리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위험 수준에 대한예측정보가 필요하고, 불확실성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농민과 연구자가 만나 바꾼 현장
교육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지역농협과 평창군농업기술센터의 요청으로 원예작물 병해충 방제 교육을 하면서, 병해충 방제에 대한 농민의 생각을 좀 더 과학적으로 변화시키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지역 농민들과 병해충 예찰방제의 경제적, 친환경적 효과는 물론 영농현장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주제로 토론하면서, 병해충 예찰방제를 실용화하기 위하여 두 가지 일을 하였다.
먼저 ‘평창군 날씨와 농작물 병해충’ 모바일앱(이하 평창앱)을 주식회사 에피넷 및 국립기상과학원과 함께 개발했다(그림 1). 평창앱은 기상청이 제공하는 지점별 기상 관측자료와 예보자료를 기반으로 하여, 평창군의 8개 읍·면 별로 고추, 사과, 감자에 자주 발생하는 병해충 발생위험에 대해 8일 예보를 제공한다. 구글 애널리틱스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22년 3~11월 동안 342명이 한 번 이상 평창앱에 접속하여 정보를 검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창군에 4000여 농가가 있으니, 약 8~9% 정도가 사용했다는 뜻이 된다. 아직은 소수이지만 농민들이 병해충 예측정보에 관심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은 반가운 일이다.
다음으로, 병해충 피해에 대한 위험관리 전략으로서 불확실성에 따른 농민의 걱정을 줄일 방안을 마련하였다. 불확실성을 해결하지 않고는 병해충 발생위험 예측정보가 아무리 정확해도 농민이 적극적으로 예찰방제를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병해충 발생 가능성은 기상자료 또는 기타 환경자료를 활용하여 위험 수준을 측정할 수 있지만, 불확실성은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개념이다. 사실 병해충 예측모형과 예찰방제를 연구하면서도 불확실성 문제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3년 동안 현장에서 농민들과 만나고 토론하며, 불확실성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병해충 예측정보의 실용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고추 탄저병 방제를 잘못하면 그 밭 전체 고추를 수확하지 못할 정도로 피해가 심각하다(그림 2). 그런데 고추 정식 후 수확기까지 전체 재배 기간 동안 예측정보를 활용해 병 발생위험 경보가 뜰 때만 살균제를 살포하라고 하면 농민에게는 위험 감수(Risk-taking) 기간이 너무 길어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하지만 병해충 발생 초기부터 살균제 살포 주기를 3주에 한 번씩으로 설정해 4~5회 정도 살포하고, 이러한 정기살포 사이사이에 예찰방제를 추가하면 병해충 발생에 대한 농민의 걱정을 줄일 수 있다. 즉, 살균제를 뿌린 후 1주일 동안은 약효가 지속되는 기간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고, 그다음 2주일은 병해충 발생위험 경보가 뜰 경우에만 농약을 살포한다면 불확실성으로 인한 위험 감수 기간이 2주일로 줄어든다.
100%와 90%, 농약을 줄이니 보이는 것들
병해충 위험관리 전략을 비교하기 위해 2022년에 고추 탄저병 방제체계 연구를 하면서 살균제 살포 날짜를 그림 3과 같이 결정하였다. 여기서 ‘기본경제방제’란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의 기간을 약 3주 간격으로 나누어 살균제를 살포하여 탄저병에 의한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막고자 하는 최소한의 방제체계를 말한다. ‘기본경제+예찰방제’란 기본경제방제 이외에 병 발생위험 기간 중 경보가 발생했을 때 살균제를 추가로 살포하는 것이다. 정기방제는 탄저병 위험경보가 처음 발생했을 때 살균제 살포를 시작해서 약 1주일 간격으로 주기적으로 방제를 한 경우이다. 이 실험에서 기본경제방제, 기본경제+예찰방제, 정기방제는 살균제를 각각 4회와 6회, 12회 살포하였다. 실험 기간 중 6월 22일과 7월 17일에 탄저병 위험경보가 있어서 예찰방제를 2회 추가했다. 그 결과 정기방제는 거의 100%에 가까운 방제 효과를 보였고, 기본경제방제와 기본경제+예찰방제는 각각 84~91%와 89~96% 방제 효과를 나타냈다. 탄저병 발생위험 예측정보를 활용하여 농약 살포 시기를 조절하면 살포 횟수를 50% 이상 줄이고도 90% 수준의 방제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당연히 농약 사용량을 줄이고 방제 비용과 노동력 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
‘답은 현장에 있다’
기본경제방제와 더불어 예찰방제를 통한 병해충 위험관리 전략의 핵심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이다. 병해충이 발생하면 경제적 피해가 심각해지기 때문에 불확실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농민은 농약 살포를 줄이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이러한 불확실성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농약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기본경제+예찰방제’는 병해충 발생 가능성 때문에 농민이 걱정하는 기간을 줄임으로써 불확실성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이다.
나는 학자로서 병해충 예측정보의 실용화를 위해 평생 연구하고 노력했지만, 이 불확실성 문제를 간과해 왔다. 지난 3년간 평창에서 지역 농민들과 함께 지내며 이들의 생각과 관심을 알고 이해하게 되면서, 나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의 틀(Thinking Frame)’을 바꿀 수 있었던 것 같다. 흔히 이야기하는 ‘답은 현장에 있다’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였다.
2023년에는 병해충 위험관리전략을 다른 농작물 병해충 방제로 확대할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병해충 발생위험 예측에 관한 나의 노력이 농민의 생산 비용을 절감하면서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농민의 건강을 지키고 노동의 수고를 덜 수 있기를 바란다.
필자 박은우: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주)에피넷 연구위원.
한국식물병리학회 회장,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장, 전국농학계대학장협의회 회장, 한국농식품생명과학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식물병리학자로서 주요 연구 분야로 농작물 병해충 예측모형 개발과 예측정보시스템 구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