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답을 찾다

강경수 KIST 강릉 천연물연구소 책임연구원. 대
강경수 KIST 강릉 천연물연구소 책임연구원. 대산장학생 출신인 그는 “장학생 시절 다양한 농촌 현장을 찾고, 생각이 맞는 친구들과 선후배들을 만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강경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 책임연구원

  강경수 씨는 어린 시절부터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봄이면 앞마당에서 초록색 싹을 틔우는 식물을 들여다보고, 시골에서 농사짓는 주변의 어른들을 만나면서, 우리 농업과 농촌에 도움이 되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는 희망했던 농과대학에 진학해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이하 KIST 강릉 천연물연구소)에서 천연물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강원 강릉시에 위치한 KIST 강릉 천연물연구소 본관.
강원 강릉시에 위치한 KIST 강릉 천연물연구소 본관.

‘천연물’의 가치를 찾아서
  강경수 씨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의약품,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중에서도 천연물을 이용해 만든 것이 많다고 설명했다.
  “아스피린은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살리실산 성분으로 만든 진통제예요. 살리실산은 식물이 뿜어내는 호르몬이거든요. 식물이 병원균이나 벌레에게 공격받을 때, 다른 식물들이 미리 방어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역할을 해요. 신기하게도, 이걸 사람이 먹으면 해열 효과가 있어요.”
  그는 장 건강과 관련된 천연물의 효능과 독성을 찾아내고, 이에 관한 작용 원리를 알아내는 일을 중점적으로 맡고 있다. 연구소 내에서 유일하게 포유류가 아닌 예쁜꼬마선충(C. elegans)으로 실험하는 연구원이기도 하다.

과학 잡지 《Journal of Agricultural and Food Chemistry》의 속표지. 예쁜꼬마선충의 장 건강 상태를 평가하기 위하여 초록색 형광물질을 투여한 모습이다. 장 건강 개선에 유익한 천연 성분의 화학구조가 함께 표시되어 있다.
과학 잡지 《Journal of Agricultural and Food Chemistry》의 속표지. 예쁜꼬마선충의 장 건강 상태를 평가하기 위하여 초록색 형광물질을 투여한 모습이다. 장 건강 개선에 유익한 천연 성분의 화학구조가 함께 표시되어 있다.

  “예쁜꼬마선충은 1 밀리미터(mm) 정도 되는 작고 투명한 선형동물이에요. 초록색 형광 물질을 밥과 함께 섞어 먹이는데, 체내에 얼마나 잘 흡수되는지에 따라서 벌레의 장 상태를 알 수 있어요. 배가 아프면 초록색으로 보이는 거죠. 이때, 장 건강에 좋은 천연물을 먹이면서 그 효과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거예요.”
  그 내용을 담은 ‘장 생체모사 시스템에 기반한 장 건강 소재 개발’은 2020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도 선정되었다.

실험실에서 예쁜꼬마선충을 관찰하고 있는 강경수 씨.
실험실에서 예쁜꼬마선충을 관찰하고 있는 강경수 씨.

함께 가면 멀리 간다
  강경수 씨는 천연물이 ‘몸에 참 좋다’라는 설명 대신, 과학적인 근거를 통해 소개되기를 바란다.
  “천연물이 신비주의에만 의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인삼이나 산삼을 먹어왔지만, 서양 사람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글로벌 시장에서는 과학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해요. 또한, 기초가 탄탄하게 잡혀야 응용 개발도 할 수 있고요. 원천 연구는 개인이나 기업이 할 수 없기에, 우리 같은 연구소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천연물 연구를 위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천연물 연구를 위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KIST 강릉 천연물연구소에는 50여 명의 정규 연구원을 비롯한 200여 명의 연구진이 천연물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펼치고 있다.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필요한 인력이 다채롭게 구성되어 서로 협력한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고 하잖아요. 천연물에 관한 어떤 지식이 나오고, 새로운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가 협업해야 해요. 상용화까지 가려면 정부, 기업, 농가 등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꼭 필요하고요.”
  그는 입사 초반에 ‘이고들빼기’를 이용해서 간 보호제를 개발하는 일에 동참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제품만 잘 되면, 농가 소득 창출에 엄청나게 기여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어요. 우리 연구소에서 내 꿈을 펼칠 수 있겠다 싶어서, 소명의식을 느끼며 열심히 일했죠. 그런데 기업과 농가가 서로의 기대치가 달라서 갈등하는 모습을 봤어요. 아, 기술 개발이 전부가 아니구나, 느끼면서 전체 과정을 생각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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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수 씨는 2006년부터 KIST 강릉 천연물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천연물로 인류에 행복을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실험실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연구자가 다양한 천연물 자원을 모아서 직접 실험하는 방식을 넘어, 인공지능이 천연물의 효과와 부작용을 예측하는 기술이 도입된 것이다.
  “1만 개의 자료 중에 100개만 뽑아서 테스트할 수 있는 거예요. 지금은 정확도가 떨어지는 편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높아지겠죠. 기술 강국들이 이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서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어요.”
  ‘혁신을 당할 것인가, 주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기술이 개발되는 흐름이 있어요. 우리가 늦어지면 결국 더 비싼 돈을 주고 들여오게 되는 거예요. 오히려 선도하게 되면 직접 표준을 정할 수도 있고요. 우리 국민이 첨단 기술에 대해서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천연물 연구를 위한 KIST 강릉 천연물연구소의 스마트팜 시설
천연물 연구를 위한 KIST 강릉 천연물연구소의 스마트팜 시설.

  그는 인류가 인공위성, 달 탐사와 같은 우주 개발을 위해 진행한 최첨단 연구 덕분에 우리가 누리게 된 것을 예로 들면서 이야기했다.
  “인류가 로켓을 정확하게 발사하기 위해서 개발한 GPS 기술이 지금의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만들었어요. 마찬가지로, 우리 연구소에서는 규격화된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 스마트팜 연구가 꼭 필요하거든요. 이 과정에서 농민들을 위한 기술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노지에서 인공지능이 병충을 예측하는 모습도 상상해 볼 수 있겠죠.”

  2023년은 KIST 강릉 천연물연구소가 20주년이 되는 해다. 강경수 씨는 “드디어 본격적인 연구를 할 준비를 마친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과거에는 선진 기술을 빠르게 모방하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였다면, 이제는 과학 기술을 이끄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될 차례거든요. 천연물 분야에서 20주년을 맞은 우리 연구소도 앞으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천연물로 인류에 행복을’이라는 목표를 담아, 자연에서 답을 찾기 위한 연구자들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글·사진 이진선

강경수 씨가 직접 작업한 캘리그래피. KIST 강릉 천연물연구소의 비전인 ‘천연물로 인류에 행복을’이라는 글귀와 함께 살리실산의 화학구조가 그려져 있다.
강경수 씨가 직접 작업한 캘리그래피. KIST 강릉 천연물연구소의 비전인 ‘천연물로 인류에 행복을’이라는 글귀와 함께 살리실산의 화학구조가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