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수입보험이 제 역할을 하려면

오내원

순창군청 공무원 등이 갑작스러운 태풍 피해를 입은 농가를 돕기 위해 쓰러진 벼를 세우고 있다. ⓒ순창군 (위 사진은 본문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
순창군청 공무원 등이 갑작스러운 태풍 피해를 입은 농가를 돕기 위해 쓰러진 벼를 세우고 있다. ⓒ순창군
(위 사진은 본문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

농가를 위협하는 가격 변동, 그 대책이 시급하다
  생산량의 변동과 함께 가격 등락에 따른 농업소득의 불안정은 중요한 농업 문제인데, 시장개방이 확대되면서 농산물 가격 하락은 더욱 잦아졌다. WTO(세계무역기구) DDA(도하개발어젠다, WTO 출범 이후 첫 번째 다자간무역협상) 협상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입장 차이로 지체되고 있지만, 다수 국가가 참여하는 메가 FTA(자유무역협정)인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의 이행과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추진으로 전면적인 시장개방이 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최근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 빈발, 러·우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와 사료 가격 급등, 쌀과 한우의 가격 폭락과 같은 경영불안 요소가 겹쳐 농업인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농업경영불안정이 해소되지 않으면 생산이 축소되어 그 자리를 수입농산물이 채우게 되고, 농촌 지역경제가 침체되어 국민경제에 부담을 주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전업농의 투자와 후계 세대의 영농 참여를 막아 장기적으로 농업의 경쟁력과 지속 가능성을 손상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경영안정을 위한 정책을 적지 않게 시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농작물과 가축에 대해 재해보험을 도입하여 생산위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문제는 가격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원예작물의 수급불안정을 완화하기 위해 계약재배와 출하조절, 비축 사업을 하고 있으나, 사업 방식과 예산의 한계로 가격안정 효과는 크지 않다. FTA 피해보전직접지불제도 과거 10년간 집행액이 2200억 원에 불과하여 개방 피해를 제대로 보상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쌀의 관세화 개방 대책으로 2005년에 도입한 쌀변동직불제는 소득안정에 적지 않게 기여하였으나 2020년 공익직불제를 도입하면서 폐지되었고, 이후 쌀값 하락에 대한 정책 대응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절벽과 노동력 공급 단절, 국제 분쟁에 따른 교역 혼란, 환율의 급변 등 농업생산과 시장가격의 변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예측하기 어려운 새로운 위험요소가 자주 나타나는 상황에서 각각의 위험에 대해 미리 충분한 대비책을 세우기는 어렵다. 따라서 경영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가격이나 조수입, 소득의 변동이 농업경영을 위협할 때 이에 직접 대처할 수 있는 사후적 안정대책의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시범사업을 벗어나지 못하는 농업수입보험
  농업경영안정을 위한 유력한 수단 중의 하나가 농업수입보험이다. 이는 자연재해에 따른 수확량 감소뿐만 아니라 가격 하락으로 인한 손실까지 보상해주는 제도이다. 보험시장 기능을 이용하지만 정부가 제도의 틀을 만들어 민간보험사에 시행을 위탁하고 보험료의 상당 부분을 지원하는 정책보험이다. 우리나라는 2015년에 포도, 양파, 콩을 대상으로 농업수입보장보험을 도입하였다. 농업인들의 만족도가 높아 가입하려는 수요는 늘어났지만, 아직까지도 7개 품목을 대상으로 주산지 35개 시·군에서만 시행하는 데 그치고 있다. 정부가 사업 범위를 확대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보험 시행의 기본 자료인 농가별 수입액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방안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농업수입보험을 실시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농가별로 생산량과 수입액의 변동을 파악할 수 있도록 과거 수년간의 농산물 판매 증빙자료나 세금납부 내역을 제출하여야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1) 2019년에 농업수입보험을 도입한 일본은 복식부기로 객관적 수입을 증명할 수 있는 소득세 청색신고자만을 보험 가입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개별 농가의 농업수입을 직접 파악하지 못하고, 대신 수확기에 현장 조사를 통해 생산량을 추정하고 여기에 시장가격(도매시장의 경락가격 등)을 곱하여 농업수입을 구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방법은 생산량 조사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해 보험의 전면 확대가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 재해보험에서는 생산량이 크게 감소한 농지에 대해서만 피해율을 파악하지만 수입보험에서는 보험에 가입한 전체 농지의 생산량을 짧은 수확기 내에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년 가격이 평년에 비해 30% 하락한 경우, 어느 농가의 생산량이 평년 생산량을 유지하였다면 수입도 30% 감소하지만, 생산량이 15% 늘어났다면 수입은 19.5% 감소하여(1-1.15×0.7=0.195) 지급보험금 계산이 달라진다. 따라서 보험 운영에 생산량 전수조사가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수입보험을 확대하지도 그만두지도 못하고 시범사업 수준에서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는 농업수입보험을 재설계하여 개편하든지 아니면 폐지하고 다른 대안을 모색하든지 결정해야 할 때다.

1) 미국은 여러 종류의 수입보험을 시행하고 있다. 가입자가 가장 많은 수입보장보험(RP)에서는 농장별 평균수확량(AHP)을 계산하기 위하여 과거 4년 이상의 판매 자료를 제출하여야 하며, 농가 단위 수입보장보험(WFRP)은 과거 5년 이상의 소득세 납부 실적이 있어야 가입할 수 있다.

농업수입보험의 개념. ⓒ농업정책보험금융원
농업수입보험의 개념. ⓒ농업정책보험금융원

농업소득세에 관한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
  농업수입보험을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가입 농가의 농업수입을 정확히 파악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일본과 같이 소득세 신고를 통해 제출된 자료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국세청이 수입과 비용에 관한 자료를 제출받아서 필요한 경우에는 검증할 수도 있어 자료의 신뢰성이 법·제도적으로 확보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작물재배업에서 연간 수입금액 10억 원 이하는 소득세를 과세하지 않고 있어 소득세제를 통한 농업수입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2) 농업에도 소득세를 과세해야 한다는 논의가 가끔 있었지만 농업보호론 속에서 과세 저항에 대한 우려와 낮은 세수 예상으로 비과세가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농업소득세 부과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여야 한다. 현대 복지국가에서는 소득에 따라 세금을 부담할 뿐만 아니라, 복지정책도 개인별 소득수준에 기반하여 시행하는 추세다. 개인소득의 정확한 파악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을 합리적으로 운영하는 데 기초가 되며, 근로장려세제(EITC)나 농업수입보험과 같은 새로운 제도의 도입과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물론 소득세 과세 전환은 단계적으로 비과세 상한액을 낮추면서 장부 기장의무를 확대하는 점진적 방안이 현실적이라 본다. 농업소득세 납부 부담과 소득 파악으로 생기는 혜택을 잘 고려하여 과세 전환을 하면 수입보험의 중요한 인프라를 갖추게 될 것이다.

2) 축산업은 과세 대상이지만 소 50두, 돼지 700두, 닭·오리 1만 5000수 이하 등 부업 축산은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농업수입보험 재설계에서 고려할 사항
  농가는 보통 여러 작목을 경영한다. 같은 해에 어느 품목의 수입은 감소하였지만 다른 품목의 수입이 증가하여 그 영향이 상쇄될 수 있다. 따라서 품목별 보험보다는 농가 전체의 농업수입이나 복수의 품목을 대상으로 하는 보험이 경영안정이라는 정책 목적에 더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품목별 수입보험을 시행하여 왔으나 2015년부터 농가 단위의 보험을 도입하여 동시에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은 농가 단위의 수입보험만을 시행하고 있다. 농가 단위로 보험을 시행하되 품목 간 차이를 감안하여 경종농업과 축산업을 구분하여 설계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단, 농가의 수취가격이 경쟁시장에서 결정되지 않는 육계와 낙농은 수입보험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별도의 경영안정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수입보험을 확대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손해율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3) 안정적인 보험 운영을 위해서는 손해율을 100%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시장가격 하락과 자연재해는 특성상 다수 농가에 같은 영향을 미치므로 연도에 따라 보험금 지급액의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재보험을 맡아 손실을 분담하고 있지만, 보험 설계에서도 손해율을 낮출 방법을 모색하여야 한다. 연속 가입자와 다품목 가입자에 대해 보상수준의 상한을 높여 주고, 지급률 개념을 도입하여 손실이 발생한 후에라도 추가 손실을 줄이려는 노력을 유도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4)
  경영안정을 위해서는 조수입보다는 농업소득을 지표로 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최근과 같이 에너지와 사료 가격, 노임이 크게 상승하여 경영불안을 가중시키는 상황에서는 더 나은 방안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영비의 계산과 검증은 조수입 계산보다 훨씬 어렵다. 따라서 모든 경영비를 계산하기보다는 단기 변동성과 비중이 크면서 객관적 자료 수집이 용이한 영농광열비, 사료비, 임차료, 고용노력비 등을 조수입에서 차감한 일종의 조정된 농업수입을 지표로 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다.
  농업수입보험을 개편하는 데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농업소득세 과세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소득세 신고방안 개선, 농가별 자료의 축적, 사업체 등록에 따른 농업경영체 등록제의 정비, 보험의 세부 설계와 도상연습을 통한 평가 등에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국회나 정부 내에 이해관계자를 포함한 민관합동기구를 두어 관련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공신력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 출발점이 될 것이다.

3) 손해율(지급보험금/위험보험료)은 인수연도(UY) 기준으로 2015년부터 2022년까지 91.4%, 132.0%, 197.1%, 200.5%, 46.4%, 62.7%, 11.8%, 110.0%로 평균 138.0%를 기록하였다.
4) 현재는 당년 수입이 보상수준보다 떨어질 경우 차액을 모두 보전해주는 지급률 100%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만약 보상수준이 80%이고 당년 수입이 기준 수입의 60%로 떨어진 경우, 지급률을 85%로 낮추면 지급보험금은 20%가 아니라 17%가 된다. 지급률을 도입하는 대신 보상수준을 상향 조정하는 설계가 가능하다.

수입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운 농가의 경영안정을 위한 대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수입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운 농가의 경영안정을 위한 대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중소농의 경영안정 위한 대책 마련해야
  농업수입보험은 주로 전업적 중대농을 대상으로 한 대책이다. 매출액이 적은 중소농은 소득세 신고를 위한 법정 자료의 수집과 장부 정리에 드는 노력보다 보험 가입으로 얻을 수 있는 경영안정 효과가 적을 수 있기 때문에 수입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운 농가의 경영안정을 위한 대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평균적인 가격과 단수의 변화에 따른 조수입 감소의 일부를 직접지불로 보전하는 농가 단위의 소득안정직불제를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다. 소득안정직불제는 수입보험에 비해 시행을 위한 통계 확보가 용이한 편이다. 주요 품목의 전국 또는 지역별 단수와 가격 변화에 대한 과거 몇 년간의 통계를 구축하고, 농가별로는 당년의 품목별 경작 면적과 가축 사육두수만 파악하면 시행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방식은 평균적인 대책이므로 정확한 농가별 수입 변화에 기초한 보험보다 안정 효과는 낮은 수준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미국의 카운티 단위 농업위험보상(ARC-CO)과 일본의 수입감소영향완화대책이 비슷한 목적으로 수행되고 있어 구체적 시행방안 설계에 참고가 될 것이다.

오내원필자 오내원: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농가경제 분석과 경영안정 정책을 주로 연구하였다.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으로의 전환을 지원하는 직접지불제의 역할에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