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염명배
15년 논의 끝에 도입된 ‘고향사랑기부제’
2023년 1월 1일, ‘고향사랑기부제’가 도입되었다.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고향세’가 처음 공식 제안된 후 무려 15년이란 긴 세월 동안 수많은 논의와 논쟁을 거쳐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고향사랑기부금에 관한 법률(약칭: 고향사랑기부금법)’은 여타 법률과 달리 법의 명칭에 ‘사랑’이란 감성적 용어가 들어간 매우 특이한 제도라고 하겠다.
고향사랑기부제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개인’이 자신의 ‘거주지 이외’의 지자체에 기부(연 500만 원 한도)하면, 둘째, 기부금에 대해서 중앙정부와 거주지 지자체로부터 ‘세제 혜택(10만 원까지 전액 공제, 그 이상은 16.5% 공제)’을 받고, 셋째, 기부받은 지자체로부터 감사의 표시로 지역특산물 등의 ‘답례품(기부액의 30% 한도)’을 받는 제도다. 이 제도의 주요 정책 목적은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의 재정난 해소 및 지역 간 세수격차(재정격차) 완화를 통한 지역(국가)균형발전 모색, 답례품 생산과 제공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및 향토산업 육성, 지역고용 창출 및 인구 유입 촉진에 따른 지방소멸 억제, 농어촌 지역에 대한 애향심과 기부의식 고취, 기부자와 지자체 간의 직접적 연결고리 및 신뢰관계 형성 등 상당히 다양하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일본의 ‘고향납세(ふるさと納稅)제’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일본에서 2008년 처음 도입된 고향납세제는 초기에 주로 출향민들을 대상으로 고향에 대한 지원을 강조했지만, 최근에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공공크라우드펀딩(GCF: Government Crowd Funding)’ 방식과 연계한 다양한 지역사업 활성화 방안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런데 일본의 ‘고향납세(고향세)’라는 용어가 자칫 새로운 ‘세금’이 아닌가 하는 오해와 함께 세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우려에서, 우리의 고향사랑기부제는 ‘기부를 통한 농어촌 지원’이라는 제도의 원취지를 강조하여 ‘납세’ 대신에 ‘기부’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일본의 고향납세제가 우리 고향사랑기부제의 모델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양국의 여건이나 제도 자체가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는 점에서 무조건 일본을 따라 하기보다는 일본의 사례를 선별적으로 취사선택해서 우리의 상황에 보다 적합한 제도를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지역에 힘을 실어주는 정책
고향사랑기부제는 ‘지방재정 운용방식(Modus Operandi)의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기존의 지방재정 운용방식은 대부분 중앙정부가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지자체에 하향식(Top-Down)으로 재원을 배분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지자체는 그저 중앙정부가 내려주는 재원을 수동적으로 받아 쓰는 역할에만 그쳤다. 하지만 고향사랑기부제 하에서는 지자체가 전통적인 천수답天水畓식 재원조달 방식에서 벗어나서 직접 주도권을 가지고 필요한 재원을 자율적으로 마련한다는 차이가 있다. 이를 통해 고향사랑기부제는 지방이 안고 있는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역할을 함으로써 진정한 지방자치 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는 논리다.
때마침 윤석열 정부에서도 새로운 국정과제(국정목표 6)로서 ‘지역주도 균형발전’과 ‘자립형 지역발전’을 천명하고 지역의 잠재력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 지역 스스로 고유한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장려하겠다는 정책기조를 밝힌 바 있다. 이는 지자체가 자생적·능동적으로 지방재정을 운용한다는 고향사랑기부제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향사랑기부제의 가장 큰 역할은 기부를 매개로 농어촌과 도시를 잇는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즉, 수도권과 도시에 사는 주민이 지방과 농어촌에 관심을 가지고 후원과 기부, 교류활동(관계인구 및 생활인구)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농어촌과의 지속적 신뢰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도-농 상생의 기반을 튼튼하게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대부분의 농어촌 지자체들은 고향사랑기부제가 도입되는 즉시 모든 지역 문제가 일시에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고향사랑기부제의 시행을 열렬히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은 고향사랑기부제의 형식적 도입만으로 지방이 안고 있는 모든 현안 문제들(예를 들면 재정확충, 세수격차 해소, 지방소멸 방지, 지역경제 활성화 등)이 즉시에, 한꺼번에,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향사랑기부제가 ‘요술방망이’나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고향사랑기부제 법제화 이후의 과제는 이 제도가 의도치 않은 부작용에 대응하고 정책 목적에 맞게 성공적으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추진하는 작업이라고 하겠다. 이 제도의 성공적 정착과 활성화를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역할 분담과 부단한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우선 중앙정부(행정안전부)는 지자체들이 공정하게 경기(경쟁)를 벌일 수 있도록 운동장(Play Ground)을 조성하고 경기 규칙(Play Rule)을 제정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리고 고향사랑기부제의 범국민적 홍보와 함께 제도의 활성화를 위해서 중·장기적으로 ‘제도 개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제도 개선 노력은 양적으로 기부흐름(Outflow)을 확대하는 동시에 기부금이 재정이 열악한 지역으로 흘러들어가도록 질적으로 기부흐름(Inflow)을 조정하는 역할을 강화하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
양적 흐름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장 시급하게 요청되는 사안은 현행 제도에서 지나치게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홍보 수단과 기금(기부금)사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조치라고 하겠다. 현재 대통령령으로 정한 광고매체로만 모금할 수 있도록 제약하고 있는 홍보 방식을 완화해서 개별 전화나 서신, SNS, 호별 방문, 향우회나 동창회 같은 사적 모임을 통한 기부 권유까지 허용하는 방안이 효과적이다. 아울러 현재 청소년 육성·보호, 사회적 취약계층 지원, 지역공동체 활성화 및 주민복리 증진 등 주로 사회복지 분야에 국한되어 있는 기부금 사업 분야를 넓혀서 각 지자체가 다양한 형태의 차별화된 지역경제 활성화 사업이나 기부자를 감동시킬 참신한 독창적 아이디어 사업들을 개발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나아가서 장기적으로는 기부상한이나 세액공제율, 답례품 비중 등을 높여서 기부유인을 제고하고 기부를 장려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도 있다. 질적 흐름 강화 방안으로는 기부대상 지자체의 조건을 구체화하고, 지역별 세액공제율을 차등화하거나 지방소득세 공제율 인상 등을 통해 지자체 간 수평적 형평성을 제고하는 방안 등을 생각할 수 있다.
다음으로 각 지자체는 주어진 운동장에서 실제 경기자(Player) 역할을 하면서 경기규칙에 따라 제도를 정착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각 지자체가 이 경기의 주인공으로서 고향사랑기부제 성패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점에서 지자체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지자체는 최대한의 자율성·결정권을 가지고 다른 지역과 차별되는 독창적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현행 법제도의 틀 안에서 적극적인 고향사랑기부금 유치전략과 함께 구체적으로 고향사랑기부제의 안정적 정착 및 활성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잠재적 기부자가 누군지 고객 대상을 파악하고, 둘째, 이들로부터 기부금을 유치할 수 있는 매력적인 지역 사업계획(기금 사용처)을 제시하고, 셋째, 경쟁력·차별성 있는 답례품을 발굴하고, 넷째, 이를 외부에 적극 홍보하는 이른바 ‘3+1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천천히 서둘러라”
올해 초 국내에서 고향사랑기부제가 도입되자마자 유명 연예인, 스포츠 스타, 유명 인사, 정치인, 기관·단체장들이 앞다퉈 기부 행렬을 벌이는 것을 볼 때 한편으로는 이 제도에 대한 관심이 예상보다 높은 것에 안도감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행여나 초기의 반짝 퍼포먼스가 끝나면 다시 기부 실적 부진의 늪에 빠지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고향사랑기부제가 진정한 도-농 상생의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일부 특정 계층만이 보여주기식 일회성 이벤트를 벌일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이 함께 고향을 사랑하고 농어촌을 지원하는 일관된 마음을 가지고 열악한 농어촌을 지원·응원하기 위한 지속적·반복적 기부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원천적으로 긍정적 요인(장점)과 부정적 요인(단점)이 복잡하게 뒤섞여있고 상충관계(Trade-Offs)도 민감하게 얽혀있어 시행과정에서 당연히 많은 쟁점 사안이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지난 긴 세월 동안 무수한 공방을 거쳐온 이유다. 아니나 다를까? 제도가 시행되자마자 이런저런 문제점들이 지적되면서 벌써부터 법개정 논의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어느 한 가지를 바꾸면 숨어있던 또 다른 문제가 불거져 나올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법개정 논의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문제가 보일 때마다 법에 손을 댄다면 이 제도는 땜질식 누더기 법안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의 여건이 일본의 환경과 똑같지 않고, 제도 자체도 일본과 사뭇 다른 점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 성공한 요인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우리나라에서도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참으로 힘든 과정을 거쳐 어렵사리 도입된 제도를 채 100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곧바로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현행법이 비록 미흡하고 부족한 점이 많다 하더라도 일단 받아들이고 당분간 추이를 지켜볼 것을 권고하고 싶다. 너무 조급하게 법개정을 서두를 것이 아니라 적어도 앞으로 몇 년간은 현행 제도 틀 안에서 최선을 다해 시행해보고, 거기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점들을 종합적으로 모니터링한 뒤에 한꺼번에 종합적으로 법을 개정하는 편이 자잘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바람직한 방안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의 고향납세제가 마치 처음부터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도입 초기 5∼6년 동안은 고향납세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적고 실적도 미미했다는 사실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고향납세제 활성화를 위한 중앙정부(총무성)의 지속적 제도 개선(자기부담금 인하, 소득공제율 인상, 행정절차 간소화 등) 노력과 아울러 지자체의 기부금 유치 노력(매력적 사업 및 답례품 발굴 등)을 거쳐 몇 년 지난 뒤부터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했음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 조급하게 결과를 빨리 보려고 서두르는 게 아닐까? “첫술에 배부르랴?”는 옛 속담이 있듯이 제도 도입 즉시 효과가 바로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보다 긴 호흡으로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제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좌우명으로 삼았던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라는 문구가 새삼 지금 필요한 명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쪼록 고향사랑기부제가 향후 지속적인 개선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지역을 재발견하고 농어촌의 중요성을 재인식하여 열악한 지자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게임 체인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도-농 간 상생과 지역(국가)균형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필자 염명배: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한국재정학회 및 한국재정정책학회 회장, 한국경제학회 충청지회장을 역임했다. 국내 최초로 고향세(고향사랑기부제) 관련 학술논문을 전문학술지에 게재(2010)하고, 그 후 30여 편의 논문 및 칼럼을 학술지에 게재했다. 옥조근정훈장(2013) 및 행정자치부장관 표창(2015)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