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가 남긴 것

나 시골 가서 농사지으면서 살까?”
최근 들어 이런 말을 하는 친구가 여럿이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귀농을 하면 어떻겠냐는 것 이다. 힘든 직장생활에 대한 푸념 조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더러 진지하게 고민하는 친구들도 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20대 직장인이라는 점, 도시에서 나고 자란 도시 토박이라는점, 그리고 애그리테인먼트Agritainment; Agriculture(농업)와 Entertainment(오락)가 합쳐진 신조어 프로그램의 애청자라는 점이다. 농촌에서의 삶, 농업인으로서의 삶을 경험해본 적도 접해본 적도 없는 이들이 귀농을 고민하게 한 배경에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tvN <삼시세끼>, KBS2 <인간의 조건-도시농부> 등 농업·농촌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들에 직접적 영향을 받은 셈이다.

농촌배경 TV 프로그램이 달라졌다
어떻게 한낱 TV 프로그램 하나에 귀농을 고민하게 되느냐고 코웃음을 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도시 생활에 환멸을 느끼던 중이었다는 것을 헤아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더군다나 최근 애그리테인먼트 프로그램이 높은 인기를 누리는 걸 보면 그 영향력에 일견 수긍이 간다. 케이블 프로그램으로서는 이례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삼시세끼>는 지난 3일 방송에서 시청률 12%(전국기준,닐슨코리아 제공)로 이번 시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고, <인간의 조건-도시농부>도 호평 속에 시청률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6개월 만에 농촌드라마가 부활하기도 했다.작년 12월 KBS <산 너머 남촌에는2>의 폐지 이후 농촌 드라마가 부재했던 상황에서 지난 5월 31일부터 KBS <오! 할매>가 방영을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농촌과 농업이 방송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농촌을 배경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농촌과 농업은 오랜 시간 꾸준히 예능 콘텐츠로서 등장해 왔다. 1995년 시골을 배경으로 한 시트콤 형식의 예능 KBS <슈퍼선데이-금촌 댁네 사람들>이 있었고, 1997년 시골 어르신들의 영상편지를 담은 SBS <서세원의 좋은세상 만들기> ‘고향에서 온 편지’가 있었다.리얼 버라이어티 포맷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이후에도 농촌과 농업은 예능에 계속 등장했다. KBS <1박2일>, SBS <패밀리가 떴다>, KBS <청춘불패>, MBC <사남일녀> 등도 모두 농촌을 배경으로 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일련의 프로그램은 최근 등장한 <삼시세끼>, <인간의 조건-도시농부> 등과는 농촌에 대한 접근방식이 달랐다. 농업·농촌을 일회성 체험의 도구나 단순배경으로 이용하는 측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농촌을 희화화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농민을 우스꽝스럽게 그리거나 농촌과 농업은 ‘촌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을 고착화한다는 지점에서였다. ‘따뜻한 고향’, ‘푸근한 인심’, ‘맛있는 특산물’ 등으로 규정된 시골의 이미지를 농촌의 모습으로 제공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농촌의 가치는 평가 절하되고,농촌의 ‘진짜 모습’은 갖가지 게임과 깔깔거리는 웃음 뒤로 가려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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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그리테인먼트 프로그램이 기존과는 달리 농업과 농촌을 깊이 다루면서 인기 를 얻고 있다. KBS (위) ⓒKBS, tvN (아래) ⓒtvN.
애그리테인먼트 프로그램이 기존과는 달리 농업과 농촌을 깊이 다루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KBS <인간의 조건>(위) ⓒKBS, tvN <삼시세끼>(아래) ⓒtvN.

애그리테인먼트의 진화, 농업과 농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다
그래서 최근 방영 중인 <삼시세끼>나 <인간의 조건-도시농부> 등이 보여주는 변화된 경향성은 흥미롭다. 이들 프로그램은 농촌을 희화화하거나 배경적 도구로 사용하는 대신 출연자들이 직접 농촌에서 생활하거나 농사를 짓는 행위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농업을 실제로 체험하는 것’ 자체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점에서 이전 프로그램보다 비교적 농촌 생활의 실제 모습에 가까이 접근했다고 볼 수 있다.

애그리테인먼트 프로그램은 농업·농촌을 ‘내 삶의 일부’로 쉬 생각하지 못하던, 밥상 위 쌀이 어디서 왔는지 고민하지 않던 대다수 소비자에게 농업의 필요성을 알려주고 관심을 갖도록 하는 데 어느 정도 일조하고 있다. 농업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환기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직접 농사를 지으며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 행위 자체가 예능 프로그램의 중심을 차지했다는 점은 흥미롭고도 놀랄만한 변화다. 그리고 이 같은 애그리테인먼트의 ‘업그레이드’는 시청자의 인식 전환으로 이어졌다. 농업을 ‘촌스럽고 구시대적인 산업’에서 ‘재미있는 것’, ‘해보고 싶은 것’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효과를 냈다. 특히 시청자가 농업을 힐링의 방법,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재미있는 변화다.
애그리테인먼트 프로그램을 통한 의외의 교육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시청자는 출연자가 농사를 짓는 모습, 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밥상 위에 오르게 되는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애그리테인먼트 프로그램은 농업·농촌을 ‘내 삶의 일부’로 쉬 생각하지 못하던, 밥상 위 쌀이 어디서 왔는지 고민하지 않던 대다수 소비자에게 농업의 필요성을 알려주고 관심을갖도록 하는 데 어느 정도 일조하고 있다. 농업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환기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애그리테인먼트 프로그램의 한계
그러나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최근의 애그리테인먼트 프로그램이 과거와 비교하면 농촌의 실제 모습에 근접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농업·농촌의 진짜 현실과 목소리를 반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최근의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힐링’ 코드로서의 농업은 도시인들의 판타지와 로망에 맞춰 제작된 허상이라는 지적이 있다. 애그리테인먼트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농업·농촌은 결국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전원생활에 갖게 된 낭만과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차원에서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능 프로그램의 기획과 흥행이 기본적으로 그 시대의 사회적 욕구나 트렌드를 반영한다는점에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애그리테인먼트’라는 신조어 자체가 농업을 생존·노동·삶이 아닌 놀이와 즐거움으로 여기는 시각을 내재한 것이기도 하다.
나에게 귀농 이야기를 꺼냈던 친구들이 상상한 ‘농촌에서의 삶’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이들이 생각하는 귀농은 중장년층이 떠올리는 귀농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이들은 ‘은퇴 이후 제2의 직장’이라기보다는 ‘경쟁사회에서 벗어난 여유로운 삶의 방식’으로 귀농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애그리테인먼트 프로그램에서 농업의 치열함과 절박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농업인의 시선에서 보면 농촌의 현실을 왜곡했다고 볼 수도 있는 지점이다.

애그리테인먼트 프로그램에서 정작 농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부분이다. 농업·농촌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정작 농촌 사람 들은 구경꾼 혹은 주변인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지만, 대부분의 TV 프로그램이 철저히 도시인의 관점에서 제작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같은 현상은 필연적이다. 농촌을 바라보고 접근하는 방식이 도시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에서 정작 농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부분이다. 대부분의 애그리테인먼트 프로그램에 농민은 타자화된 형태로 등장한다. 농업·농촌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정작 농촌 사람들은 구경꾼 혹은 주변인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지만, 앞에서 지적했듯 대부분의 TV 프로그램이 철저히 도시인의 관점에서 제작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같은 현상은 필연적이다. 농촌을 바라보고 접근하는 방식이 도시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애그리테인먼트 프로그램은 과거보다 진화했지만, 여전히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의 존재가 농촌에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한마디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시청자가 농업·농촌을 친숙하게 여기고 호기심 있게 바라보도록 하는 데 일조했다는 점에서는 나름의 순기능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농업을 고루한 것으로 여기는 부정적 인식보다는 그게 설령 판타지일지언정 긍정적 인식을 시청자들이 갖게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다만 애그리테인먼트 프로그램의 진화를 계속 이어나가는 노력이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도시민의 시각에서 탈피해 농촌에 사는 사람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반영된 프로그램, 농업·농촌을 조금 더 깊이 다루는 프로그램이 탄생하길 기대한다.

39※필자 김연지: <PD저널> 기자. 대산농업전문언론장학생 출신으로 홍대 인근에서 농사짓는 초짜 도시농부. 세상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살 방법을 궁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