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농農의 가치 확산과 교육의 역할

[크기변환]13

• 일시 : 2023년 6월 9일(금) 14:00~18:00
• 장소 : 대산농촌재단 세미나실
• 토론자 
김동섭
공주대학교 원예학과 교수
김선아 한국농어민신문 기자
김윤경 양평고등학교 식품가공 교사
김태양 농산어촌교육협동조합 이사장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 소장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사회)

신수경(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 오늘 주제는 ‘농의 가치 확산과 교육의 역할’입니다. 이러한 주제를 정한 데는 특별한 배경이 있습니다. 대산농촌재단이 1991년에 설립되어 32년간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면서, 농업과 농촌이 지닌 다원적 가치를 일반인에게 알리고 확산하는 데 노력해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어떻게 보면, 광의의 교육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대산농촌재단의 창립자 대산 선생이 중요하게 강조했던 것도 바로 교육이었습니다. 교육을 농과 연결해 보면, 농민을 키우는 교육이 있는가 하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좀 광의의 활동을 포함한 교육이 있습니다.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농이 지속 가능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요. 이것을 위한 교육의 역할에 대한 의견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먼저 농민을 길러내는 교육현장의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김윤경 양평고등학교 식품가공 교사 양평고등학교에서 5년 차 식품가공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건강한 먹거리, 농업 교육, 농식품 창업 등에 관 심이 많다.
김윤경 양평고등학교 식품가공 교사
양평고등학교에서 5년 차 식품가공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건강한 먹거리, 농업 교육, 농식품 창업 등에 관심이 많다.

김윤경(양평고등학교 식품가공 교사): 저는 종합고등학교에서 식품가공을 가르치는 5년 차 교사입니다. 인문계가 다섯 반이 있고, 식품과학과와 바이오식품과가 있습니다. 양평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90% 정도고, 학부모님은 농사를 짓거나, 관련된 사업을 하는 분이 대부분입니다. 저는 학생들이 농대에 진학하거나 농사를 이어받을 교육을 받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학부모들은 자녀가 대학을 꼭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들도 농업 분야가 유망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고 실제로 농촌에 남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별로 없어요. 저는 학교에서 농업의 개념을 확장시켜 식품 관련 교과목들을 가르칠 때 지역의 특산물을 가공해서 판매하는 것, 농촌체험 상품을 기획하는 것 등을 연계시켜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김동섭(공주대학교 원예학과 교수): 저도 종합고등학교를 나왔어요. 그때 농고가 한 반, 식품과 한 반, 전자과 세 반, 인문계 세 반이 있었어요. 제 친구가 농과에 두 명 있었는데, 농업에 상관없이 공부하기 싫어서 가는 애들이 대부분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김윤경: 학교마다 분위기가 다른 것 같은데, 요즈음 주변 농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농업을 희망하는 사람이 꽤 있는 것 같고, 저희처럼 종합고는 인문계 애들이 대학을 많이 가다 보니까 대학을 많이 가려고 하는 분위기예요.

김태양(농산어촌교육협동조합 이사장): 지역민 중에서 지역에 남아 삶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진학이나 취업으로 대도시로 떠나지 못해서 지역에 남은 거라는 인식 때문에 자신을 실패자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꽤 많아요. 심지어 현재 재력이 있는 분조차도 자신이 능력이 없어서 지역에 남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가 전환되지 않는 이상, 아이들에게 농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희망 고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지역을 떠나고 싶은 아이들
· 교육자의 역량에 따라 달라지는 교육의 질

김동섭: 저는 2021년부터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데, 1학년 진로 상담을 하다 보면 농업이 뭐냐고 물어보는 학생부터, 농업이 뭔지도 모르고 들어왔다는 학생도 있고, 진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에요.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학생들이 제일 많고요. 왜냐고 물어보면 “안정적이니까요”라고 답하거든요. 그러면 저는 세상이 이렇게 바뀌고 있는데 과연 안정적인 게 있을 수 있냐고 되묻고는 하죠.

신수경: 학교 선생님들과 최근 교육과정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요?

김윤경: 학생들에게 새로운 정보와 다양한 진로를 적극적으로 제시해주는 선생님도 있고, 또 정해진 교육과정의 내용만 가르치는 선생님도 있습니다. 선생님마다 가치관과 교육 방식이 매우 달라요. 전문 교과는 과목 수가 많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 교육 내용도 재구성해야 하는데, 농업 계열이 소수 교과이다 보니 교사 대상으로 하는 교과목 연수 자체가 많이 없어요. 그래서 수업 연구를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김동섭: 대학의 경우, 모든 학교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변화의 속도를 뒤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커리큘럼 자체가 안 변해요. 개중에는 아직도 교과서만 읽는 분도 있고, 출판사에서 받은 슬라이드쇼로 강의하는 분도 있고요. 계속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예전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태양: 2년 전쯤 모교인 대학을 방문했어요. 제가 93학번인데 학부 때 부끄럽게도 논문을 읽어볼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수업을 논문으로 하더라고요. 해당 분야의 전 세계의 흐름이 어떤지도 알려주고요. 대학의 변화가 빨라지고 점점 발전해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모든 수업이 그렇지는 않지만, 확실히 흐름을 빨리 쫓아가시는 강의와 교수님에게로 학생들이 몰리는 걸 느꼈어요.

김동섭 공주대학교 원예학과 교수 2021년 9월부터 공주대학교 원예학과에서 일하고 있 다. 친환경 병해충 방제, 인공지능 및 이미지 분석을 이용한 수확량 예측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김동섭 공주대학교 원예학과 교수
2021년 9월부터 공주대학교 원예학과에서 일하고 있다. 친환경 병해충 방제, 인공지능 및 이미지 분석을 이용한 수확량 예측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김동섭: 저도 해외 논문 중에서 괜찮은 것을 골라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학생들이 영어를 잘 모를 수 있으니 그림이나 동영상을 가져오기도 하고요. 계속해서 트렌드를 따라가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다른 학과 교수님과 협업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런 과정이 학생들에게는 선택의 폭을 넓힌다고 생각합니다. 플로리스트를 하고 싶다는 친구가 있었는데, 자기 동네에 꽃집 6개 중에 4개가 망했다며 낙담을 하더라고요. 살아남으려면 차별점을 둬야겠죠. 대부분 꽃다발을 만들어 놓고 판매하잖아요. 내향적인 사람은 별로 마음에 안 들어도 그냥 사고 집에 와서 투덜거리는 거죠. 그런데 키오스크에서 인공지능이 꽃을 조합해 몇 가지를 제시하고, 그중 마음에 드는 걸 고르면, 플로리스트가 그대로 만들어 줄 수 있잖아요. 이러한 기술을 도입하려면 결국 새로운 걸 계속 배워야겠죠. 요즘 인공지능학부 교수님과 함께 인공지능으로 딸기 수확량을 예측하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김윤경: 저도 학생들이 창의적이고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교육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농업이라고 하면 단순히 농사짓는다가 아니라 어떤 데이터를 활용해서 똑똑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노력해요. 학생들에게 너무 높은 수준의 노력이나 경쟁을 요구하면 자신감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방법을 제시해요. 예를 들어 버섯을 키우는 농가 학생에게 버섯을 활용한 제과제빵을 제안한다든지, 학생들이 농업 분야의 해외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어학 공부를 추천한다든지요.

[크기변환]18

· 농업은 현재 상태로는 지속 불가능
· 국민이 생각하는 농의 가치는 다를 수 있다

남재작(한국정밀농업연구소 소장): 대학교수를 하는 지인의 말을 빌리면, 요즈음 농과대학에 들어오는 학생의 학업 수준이 너무 낮다고 우려합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제가 운영하는 연구소에 농대를 나오고 농촌지도사를 하다가 그만둔 청년이 잠시 인턴으로 있었어요. 똑똑하고 적극적인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거예요. 대학 4년 동안 뭘 했냐고 물어보니까 공무원 시험만 준비했대요. 그런데 그게 안 맞았던 거죠. 떠날 때까지 굉장히 마음이 무겁더라고요.

김윤경: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에 보내기 위한 시스템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잖아요. 그게 아니라면, 학생들이 진로에 대해 더 깊이, 넓게 고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초, 중, 고등학교를 입시 중심으로 교육받았는데 대학생이 되면 갑자기 사람이 달라질까요?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조언해주는 선생님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기업이 능력주의 채용을 한다고 해서 특성화고등학교에서 NCS(국가직무능력표준) 교육과정을 실시하고 있는데 별로 효과가 없어요. 예를 들어 학생들이 ‘NCS 제빵’ 과목에서 ‘반죽하기’, ‘발효하기’ 등 다양한 단위를 이수하면 생활기록부에 기재가 되는 거예요. 그것을 인정해 채용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게 목적이지만, 아직 그게 실제 현장에서는 크게 적용되지 않는 것 같아요. 눈에 보이는 학벌, 자격증, 토익 점수를 원하기 때문이에요. 근본적으로 이러한 스펙 중심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도 학생들을 농촌으로 유입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김선아 한국농어민신문 기자 1995년 한국농어민신문에 입사해 편집부, 국제부, 편집기획부, 농업부 등을 거쳐 현재 전국사회부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김선아 한국농어민신문 기자
1995년 한국농어민신문에 입사해 편집부, 국제부, 편집기획부, 농업부 등을 거쳐 현재 전국사회부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김선아(한국농어민신문 기자):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를 타파하지 않는 한 공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답이 없는 것처럼, 농업·농촌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서는 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농업에 종사하게 하거나, 농촌으로 유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부모님들이 자식 세대가 농사짓는 걸 원치 않는 이유는 자기가 너무 고생했기 때문이거든요. 아이들한테까지 그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은 거죠. 요즘엔 특히 이 상태로 과연 농업이 지속 가능할까, 의문입니다. 농민들에게 농업은 생계의 수단인데, 지금 농사짓는 분들이 너무 힘들거든요. 인건비 등 투입되는 비용은 갈수록 늘고 농산물 가격은 들쑥날쑥하니 그야말로 자신들의 노동력을 갈아서 힘들게 농업을 지키고 있거든요. 적정한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70% 이상의 소농들이 지탱해 온 기존의 농업을 계속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령화 속도도 너무 빠르고요.

남재작: 요즘 제가 자주 하는 이야기가 ‘도대체 우리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입니다. 농이 왜 가치가 있어야 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저는 챗지피티ChatGPT 같은 기계적인 답변을 하겠죠. 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까? 솔직히 아닐 것 같아요. 지금은 농업과 관련된 사람들끼리 세상과 동떨어져 있고, 그들만 농업을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농업계에 있는 분들은 농민의 관점에서만 농업을 바라보는 거예요. 저는 이 괴리가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국민이 생각하는 농업은 식량 산업 전체를 의미하잖아요. 과연 국민의 시각에서 농민의 삶으로서 농업은 얼마만큼 가치가 있다고 느낄까요?
  교육으로 당장 뭘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5년, 10년 정도 뒤에 어떤 세상을 살 것인지 먼저 가정을 해야죠. 인구가 줄어드는 건 막을 수가 없어요. 10년 안에 일본처럼 65세 이상 농업인구가 70%에 이를 것 같고요. 부재지주도 80%쯤 될 것 같습니다. 작은 농업은 다 사라질 것 같고요. 이 상태면 스마트농업 같은 신기술은 작동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비관적이라기보다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으면 대비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제때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규모화가 일어날 수도 있고요.

김태양: 제가 사는 점동면 당진 1리에는 55가구 정도만 살고 있는데 농촌 유학으로 전입한 학생들과 활동가들을 빼면 대부분 70~80대입니다. 10년 안에는 현재 인구수의 절반도 아니고 3분의 1 정도로 줄어들 것이라 예상이 되고 있고요. 희망적인 것은 지난 8년간 늘푸른자연학교에서 농촌유학을 경험했던 학생 중에서 34% 정도의 아이들이 부모를 설득해서 가족이 여주로 귀농 또는 귀촌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다행히 여주에는 여주자영농업고등학교와 그 안에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가 있어서 농업 분야로 진학한 학생들도 꽤 있습니다. 부모님이 귀농하신 경우에는 부모님이 하시는 농사일을 이어받아 농업에 종사하겠다는 아이들도 있고요. 지역에서 코디네이터나 활동가로 일하고 싶어 하는 청소년과 청년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여주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해요. 군대에서 휴가 나오면 외갓집에 인사드리러 가는 것처럼 저희 마을에 방문하곤 합니다. 농촌유학 생활을 통해 마을 주민들과 교류도 하게 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아이들에게 큰 의미를 주는 것 같아요. 현실에서 느끼는 막연한 소외감을 공동체 속에서 치유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농촌에서 아무리 교육을 해도 교육자로서 느끼는 한계가 있는데요, 골프에 비유하자면, 다들 갤러리로 남아있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선수가 열심히 하는 걸 보면 응원해주고 즐겁긴 한데 자신이 선수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선수만이 살길이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교육자로서 양심이 허락하지 않더라고요.

· 골리앗과 싸울 것이냐? 새로운 길로 갈 것인가?
· 농업·농촌의 문제를 냉정하게 직시해야

김동섭: 이야기를 들을수록, 저는 개인적인 능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국영수를 잘하는 건 그대로 인정해주고요. 우리는 그들과 다른 길을 찾아가면 되는 거죠. 그것이 경쟁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학생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핸드폰으로 찾아보고, 챗지피티에 물어보라고 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기초는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검색 능력은 훨씬 뛰어날 거예요. 농업을 하려는 분, 농촌에 있는 분도 차별점을 두고 노력하는 부분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우리나라 농민 중에서는 식량 안보를 앞세워서 보조금에만 의지하려는 분들이 있어요. 개인적인 능력으로 스스로 해내야겠다, 내가 여기서 쓰러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조금 약한 것 같아요.

김선아: 말씀처럼 정부의 각종 보조금 정책이 농업 현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부분이 분명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게 개별 농민들 탓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수출 주도형 경제 개발을 위해 수입 개방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농업 부문의 일방적 희생이 불가피했고, ‘그래도 최소한의 농업은 지켜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 속에 정부가 정책적 지원을 한 거잖아요. 그런데 30여 년이 지난 지금 정부의 정책이 결과적으로 농업을, 농가를 살렸는지는 물어봐야 하는 거죠. 정부 보조금이 들어가는 순간 시설 자잿값이 뛰는 등 불공정과 비효율이 발생하고, 관 주도의 무분별한 농촌개발사업이 오히려 경관을 훼손하거나 주민 갈등만 초래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아요. 정부가 농업·농촌을 지원해 온 방식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섭: 동화책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온 ‘레드퀸 효과’라는 생물학 이론이 있어요. 거울 나라의 붉은 여왕이 앨리스를 잡고 계속 뛰는데 이상하게도 계속 그 자리인 거예요. 앨리스가 붉은 여왕에게 왜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뛰는데 제자리냐고 물어요. 그랬더니 붉은 여왕이 “네가 앞으로 가고 싶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답해요. 과학자들은 이걸 자연의 섭리라고 이야기해요. 그래서 저는 선택지를 두 가지 말한 거예요. 골리앗과 싸워서 이길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길로 가서 창조할 것이냐. 저는 후자 쪽으로 가고 있고요.

김태양 농산어촌교육협동조합 이사장 경기 여주시에서 농촌유학센터를 운영하며 농촌지역 의 청소년과 청년이 올곧게 성장하도록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김태양 농산어촌교육협동조합 이사장
경기 여주시에서 농촌유학센터를 운영하며 농촌지역의 청소년과 청년이 올곧게 성장하도록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김태양: 이번 대산농업연수 과정 중 프랑스에서 밀을 재배해 빵으로 만들어 직판하는 농가에 방문했을 때 인상적인 말을 들었는데, “우리는 오토노미(Autonomy, 자치)를 갖추고 있다”라는 것이었어요. 어른이 되었다는 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어떠한 실효성을 얻기 위해서는 개인의 역량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아이들에게 사회적인 변화가 생길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고만 하는 것은 어른으로서 무책임한 생각인 것 같습니다. 다만, 교육을 통해서, 경쟁력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 그 생태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상대방을 비방하는 등의 비상식적 행동은 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런 ‘야수’들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김동섭 교수님이 이야기한 부분이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재작: 농가 단위에서는 경쟁력을 지녀야 하고, 개인적인 역량이 중요하죠. 그렇지만 농업이 갈 방향을 정하긴 해야 할 것 같거든요. 지금은 농가들의 경쟁을 없애는 방식으로 가는 것 같아요. 제도에 차별성을 잘 안 두잖아요. 보조금이 들어가면 다 비슷해지는 것도 있고요. 농가에서 독자적인 노력보다 보조금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에 더 신경을 쓰는 경향도 있고요.
  우리에게 그렇게 긴 시간이 남지 않았거든요.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바꾸려면 서둘러야 해요. 지금은 토지 생산성 중심에서 노동생산성 중심으로 바뀌는 전환기입니다. 작은 땅에서 많은 소득을 내는 방식의 농업은 성공적이었지만 인구가 줄면서 끝나가고 있어요. 이미 농촌은 외국인 아니면 유지가 안 되는 수준에 이르렀잖아요. 이제부터는 노동력을 줄일 수 있는 첨단 기술 중심으로 바꿔야 해요. 기술이 작동하려면 무조건 면적이 늘어나야 하고요.
  지금은 농업을 너무 낭만적으로 그려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제가 가끔 농담 삼아서 하는 말이지만, 세상을 너무 아름답게 보는 듯합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금 냉정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서로 공존하는 방식에 저도 동의하는데, 거기까지 어떻게 갈 거냐는 거죠. 다 같이 잘살자는 주장만 하지 말고 방법도 같이 제시해주면 좋겠어요.

신수경: 30년 가까이 농촌 현장을 다니면서 저는 소규모 가족농들이 지속 가능한 방식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규모를 키우지 않으면서 적절한 부가가치방법을 찾고 소비자의 신뢰를 구축하는 모습을 보면서, 적정규모의 가족농이 지닌 가치를 분명히 느꼈어요. 그래서 모든 것이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고, 다양한 차원에서 통찰하고 고려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김선아: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건 너무 많이 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현재 농가가 가장 취약한 건 농산물 가격변동과 자연재해거든요. 정부는 농축산물 가격이 조금만 들썩이면 ‘물가 관리’ 명목하에 수입 문턱을 낮춰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합니다. 하지만, 가격하락 리스크를 완충해 줄 정책 수단은 없죠. 당장 쌀값이 폭락했던 2022년 농업소득은 948만 원으로 전년비 26.8%나 줄었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해 빈발하는 자연재해도 문제죠. 농가경영에 큰 위협이 되고 있지만 거의 무방비 상태에요. 유일한 보호망인 ‘농작물재해보험’ 전면 개선 요구가 수년째 이어져도 여전히 묵묵부답입니다. 작기가 있는 1년 단위 농사는 한 번 망하면 2~3년간 회복이 어렵습니다. 농민이 노력하지 않거나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외부 환경에 의해 겪게 되는 위험에 대해선 최소한의 제도적 안전망을 구축해 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크기변환]22

· 구석구석 논의의 물꼬가 터지길
· 칸막이를 넘나드는 인재 필요

김태양: 농업, 농촌의 미래에 접근할 때 지금까지 나왔던 논의들처럼 전술과 전략 또는 개인의 역량에 집중하면 다시 실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왜 유럽하고 다르지?”, “유럽 시스템은 한국에 맞지 않아”라는 말들을 수십 년 동안 해왔잖아요. 그런데 유럽에 다녀와서 생각해보니, 유럽에서는 직업을 소명의식(Calling)으로 받아들이는, 즉 마이스터 제도에 대한 존중 등이 있었어요. 대한민국에서는 마이스터를 잘 인정하지 않잖아요. 그냥 ‘3대째 이어오는 구둣방’인 거예요. 그런 인식의 차이가 있는데 학생들, 혹은 그 일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성공 경험을 과연 줄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가야할 것이냐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작더라도 교육 운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도를 바꾸는 건 혁명인데, 현재 공교육에서는 어려울 것 같고, 제가 있는 영역에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 형태는 바텀업(Bottom-up, 상향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리 단위나 면 단위에서 사람들이 성공을 경험할 기회를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 소장 ‘농업의 미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에 대해서 글 을 쓰거나, 연구를 하거나, 강의를 하고 있다. 이전에 는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기술실용화재단 등에서 근무했다. 저서로 《식량위기 대한민국》이 있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 소장
‘농업의 미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에 대해서 글을 쓰거나, 연구를 하거나, 강의를 하고 있다. 이전에는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기술실용화재단 등에서 근무했다. 저서로 《식량위기 대한민국》이 있다.

남재작: 우리가 계속 농민의 삶이나 농업을 얘기하고 있지만, 국민의 농업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거냐는 게 중요하잖아요. 아쉬운 점은 농업계에 있는 분들이 농민 관점에서의 농업만 바라보는 거예요. 이것만 계속 얘기해서는 농의 가치를 어떻게 밖에다가 증명을 할 거냐는 거죠. 국민이 인정하지 않는데, 농민만 농의 가치를 증명하는 건 큰 의미가 없잖아요. 그러면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실력을 보여줬느냐? 작은 성공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바깥에서 농업이 잘하고 있다고 느끼게 했느냐면 저는 솔직히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농민 단체나 자조금관리위원회 같은 곳에서 산업 변동과 농가 구조에 대한 분석, 생산성 변화 등 구체적인 연구를 하고 스스로 대처하고, 성공 사례를 만들고 확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윤경: 농업, 농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교육부터 시작해서 정말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그 심각성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고요. 앞으로 저도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사회적인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남재작: 우리 농업이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방식으로는 많이 노력해왔으니, 다른 관점으로 접근을 해보자는 생각이었고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토론을 시작으로 여러 단체가 현재의 문제를 인식하고 논의할 수 있는 물꼬가 터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동섭: 제가 능력주의 차원에서 말씀드린 것 같은 느낌이지만, 우리 농민들이 약간의 정보력과 어느 정도의 트렌드를 읽을 줄 아는 눈을 가지고, 거기에 자신의 신조를 더하면 자기만의 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입니다.

김선아: 경쟁이 불가피한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존하려면 당연히 경쟁력이 있어야죠. 방향은 여러 갈래겠지만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정부의 정책 의도와는 달리 현장에서 나타난 부정적인 효과를 잘 살피고, 같은 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바로잡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김태양: 행정과 함께 일을 하다 보면 ‘부처 간 칸막이’가 문제라고 많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몸의 장기 보고 다른 장기의 역할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잖아요. 간은 해독하고 영양소를 축적하는 역할을 하는데, 허파의 역할인 가스 교환을 할 수 없냐고 묻는 건 이상한 일이죠. 대신 우리 몸에는 피가 돌잖아요. 피는 허파에서는 가스 교환의 역할을 담당하고, 간에서는 영양소를 운반하는 일을 하는 것처럼, 기관을 넘나들며 제3의 영역으로서 고유의 기능을 갖는 조직이 중간지원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산농촌재단은 대한민국 차원에서 농업, 농촌 분야의 중간지원조직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인재들을 찾아 각자가 가진 핵심 역량을 성장시켜서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도록 돕잖아요. 재단이라는 특성상 민과 관을 넘나들며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재단에서 앞으로는 이러한 칸막이를 넘나들 수 있는 혈액과 같은 소통형 인재를 키워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사회) 30년째 대산농촌재단에서 일하며, 지속 가능한 농 업·농촌에 관한 다양한 방법, 실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사회)
30년째 대산농촌재단에서 일하며,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에 관한 다양한 방법, 실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신수경: 각각 다른 영역에서 활약하는 다섯 분이 지닌 다양한 생각과 관점, 그것들이 또 건강한 균열을 만들어내고 때로는 큰 틀에서 이어지는 것들을 본 것 같습니다. 우리 몸에서 간과 심장과 머리의 역할이 모두 다르듯, 이제 각자의 영역에서 일하며 유기적인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산 선생 영면 20주기를 맞아, 우리 농업과 농촌의 가치와 교육의 역할에 대해 재조명하는 의미 있는 자리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록 이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