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먹어야 건강합니까?

‘이어짓기’는 하나의 주제로 여러 명의 필자가 집필한 에세이를 이어서 소개하는 코너로, 지난 호 필자 조두진 씨에 이어 임재양 씨가 ‘농촌에 관한 단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주제로 쓴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주]

글·사진 임재양

12년 전, 나는 병원 건물을 한옥으로 짓고 정원이 있는 마당과 요리하는 공간도 만들었다. ⓒ임재양

우리 몸과 지구가 아픈 시대
  나는 유방암을 전공한 외과 의사다. 30년 전, 내가 유방암 전공을 시작할 때 한국은 유방암 안전지대였다. 그러나 유방암 환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유방암이 국내 여성 암 발병률 1위를 차지한 지 오래되었다. 특히 젊은 환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유방암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지만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서구화된 식생활 습관이다. 하지만 유방암 외에 다른 암도, 아토피나 류머티스 같은 난치병도 늘어나고 있다. 이상하다. 우리가 3년간 겪은 코로나19도 이상했고, 앞으로 더 자주 더 강하게 이상한 병들이 우리를 괴롭힐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상한 것은 우리 몸뿐만이 아니다. 지구도 몸살을 앓고 있다. 날씨가 이상하고, 태풍은 예측 불가능이다. 전에는 막연히 불안했는데, 이제는 진짜 무언가 우리를 큰 위기에 빠뜨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뛰어난 회복 능력이 있는 지구나 우리 몸이 이상하다는 것은 무언가 지구와 우리 몸의 자정 능력을 휘젓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은 환경오염일 수도 있고 화학물질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우리 몸의 놀라운 회복 능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먹는 음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12년 전, 나는 병원 건물을 한옥으로 짓고 정원이 있는 마당과 요리하는 공간도 만들었다. 요리를 시작하면서 텃밭을 만들고 채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요리는 맛보다 건강한 음식이 목표이다. 암에 걸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 “무엇을 먹어야 건강합니까?”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사람이 건강하려면 특별한 무엇을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재료로 제대로 요리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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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단단하고 물이 부족한 곳에서, 벌레에게 먹히면서 자란 농산물은 영양학적으로 건강한 성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시장에서는 볼 수 없다. 소비자가 불량품으로 보기 때문이고, 소비자가 원하더라도 중간상인 과정에서 걸러진다.
땅이 단단하고 물이 부족한 곳에서, 벌레에게 먹히면서 자란 농산물은 영양학적으로 건강한 성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시장에서는 볼 수 없다. 소비자가 불량품으로 보기 때문이고, 소비자가 원하더라도 중간상인 과정에서 걸러진다. ⓒ임재양

제대로 된 농산물을 구하려면
  요리를 시작하면서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이 농산물이다. 이제까지는 막연히 유기농 농산물만 먹으면 건강해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 미세 플라스틱을 비롯한 화학물질이 넘쳐나고, 다양한 식품첨가물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유기농 농산물을 먹는 것보다 파이토케미컬을 포함한 식이섬유를 먹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단히 얘기하면 인공적인 과정을 안 거치고 자연대로 자란 농산물이 건강하다.
  농산물을 키우는데 부드러운 땅도 있고 단단한 땅도 있고, 물이 풍부하기도 부족하기도 하다. 따뜻한 날씨도 있고 추운 날씨도 있다. 농산물은 상황에 맞게 키가 크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뿌리는 물을 찾아 길게 뻗어나기도, 딱딱한 땅에서 구불구불해지기도 한다. 햇빛을 받은 잎은 노란색을 띠기도 빨간색을 띠기도 한다. 농산물에 나타난 이런 다양한 변화를 우리는 파이토케미컬이라고 부른다. 색깔이 각각 다른 다양한 종류의 농산물을 먹어야 건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에 구매하는 농산물은 이렇지 않다. 빛과 온도를 조정하고 일정량의 물을 풍족하게 주어서 보기에 싱싱하고 일률적인 모양과 크기를 가지고 있다. 보기에는 좋지만, 건강을 생각했을 때 튼튼한 농작물은 아니다. 하지만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체제의 현대 생활에서 이런 현상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런 제도적인 한계를 벗어나서 건강한 농산물을 얻고자 다양한 시도를 했다. 내가 먹을 채소는 직접 재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 농산물도 직접 키워보았지만, 도시 근교 텃밭에서 몇 년간 주말마다 잠시 농사짓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주된 직업을 가진 상태로 그냥 취미 삼아 하기에는 체력적인 소모도 만만찮았다.
  차선책으로 믿을 만한 농민에게 농산물을 공급받는 방법을 택했다. 관행 농법으로 지은 것은 먹기 싫고, 유기농 매장의 농산물은 대량 생산에 따라 정해진 크기와 모양을 맞추어 생산된 것이므로 내가 추구하는 건강한 농산물의 기준에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철학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 믿을 만한 농민을 찾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농민들이 자기들 먹는 것은 농약을 치지 않고, 파는 것만 농약을 친다고 욕을 한다. 그런데 친환경으로 힘들게 농사지어서 작고 비틀어진 농산물을 생산하면 불량품이라고 값을 깎거나 팔리지도 않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잘못된 인식으로 힘없는 농민을 욕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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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로 농사짓는 사람들이 병원 마당에 농산물을 가져오고, 관심 있는 소비자와 연결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아마추어로 농사짓는 사람들이 병원 마당에 농산물을 가져오고, 관심 있는 소비자와 연결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임재양

농민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다양한 시도
  그래서 농민과 소비자 간의 직거래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는 분야마다 자기가 하는 일의 본질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농민 중에도 무너지는 땅을 어떻게 살릴지 고민하고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있다. 그들이 큰돈을 벌지는 못해도 한 가족을 부양할 정도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농민당 30~40명 정도의 소비자가 연결되면 될 것 같았다. 내가 음식 강의를 다니면서 이런 꾸러미에 관해 이야기했더니 반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금방 2, 3호 농민을 소비자와 연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농산물이 공산품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실패했다. 농산물을 보내기로 했는데 갑자기 냉해가 닥치고 폭풍이 몰아치거나, 비가 오랫동안 오는 경우 농산물을 보낼 수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자기는 좋은 농산물을 먹고자 선금까지 냈는데 지금 와서 못 보낸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소비자는 단순히 돈을 내고 어느 정도의 건강한 농산물을 먹겠다고 생각할 수 있고, 농민은 농사짓는 과정에서 다양한 변동성을 예측할 수 없으므로, 이 관계는 오래 유지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생산자, 소비자 간의 직거래는 포기할 수 없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또 다른 방법을 떠올렸다. 내 주위에는 취미 삼아 텃밭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 경우, 혼자서는 다 못 먹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농산물을 넉넉하게 키운다. 자기가 먹을 농산물을 키우는 것이니 비료는 넣어도 농약은 치지 않는다. 건강한 농산물이 생기면 주위에 나누어 주는데,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 부담이다. 농산물은 키우는 것도 일이지만 수확하고 손질하는 것도 힘들다. 농사지어 본 사람들은 안다. 땅에서 뽑은 농산물의 흙을 털고 깨끗하게 다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받는 사람도 부담스럽다. 그냥 받기는 미안하니까 무언가라도 선물을 해야 한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농산물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받은 농산물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도 모르고, 귀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심지어 못 먹어서 버리기까지 한다.
  여기서 착안했다. 취미로 생산하는 농산물을 한 번씩 병원 마당에 가져오고, 관심 있는 사람들이 와서 구매하는 것이다.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두 주체의 만족도는 아주 높다. 취미로 농사짓는 사람들은 자기가 지은 농산물을 파는 재미를 느끼고, 소비자는 믿을 만한 농산물을 시중보다 싸게 살 수 있어서 좋다. 또한 그 자리는 건강한 재료와 요리에 대해 정보를 나누는 장이기도 하다.

  현재 기후위기나 건강악화 문제는 많은 이들이 직접적으로 위기를 느낄 정도로 심각하다. 나는 오랫동안 진료 현장을 지켜왔던 의사로서 그 심각성을 더욱 크게 실감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함께 공부하고 실천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내가 가진 공간의 힘을 믿고 오는 사람들이 서로 가진 것을 교환하면서, 건강한 먹거리와 생태까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그런 건강한 문화의 장터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임재양필자 임재양: 임재양 외과 원장
유방암 전문 의사로 30년간 일했다. 유방암 환자가 많이 증가하는 것이 걱정되어서 건강한 농산물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건강한 요리를 하고, 그에 관한 교육을 하고 있다. 저서로 《의사의 말 한마디》, 《제4의 식탁》 등이 있으며, 건강한 집밥에 관한 책을 발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