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과 같이 크고 함께 살아요

홍서연 미르당 대표

‘미르당’을 이끌고 있는 홍서연 씨와 남편 문인석 씨.
‘미르당’을 이끌고 있는 홍서연 씨와 남편 문인석 씨.

  전남 장성군에는 지역 농산물이 ‘힙’해지는 공간이 있다. 장성역에서 차로 5분이면 도착하는 ‘미르당’은 단호박, 사과, 깨 등 지역 농산물로 음료와 디저트를 만들어 파는 ‘지역 밀착형’ 카페다. 미르당에서 가장 인기가 좋다는 ‘미르슈페너라떼’를 한 모금 들이켰더니, 쫀득한 크림 사이로 달콤한 단호박 맛과 쌉싸름한 커피 맛이 느껴졌다. 곁들여 먹은 호박떡에는 보들보들한 호박소가 듬뿍 들어 있었다.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싶은 맛이었다.

지역 농산물로 만든, 미르당의 시그니처 메뉴. ⓒ미르당
지역 농산물로 만든, 미르당의 시그니처 메뉴. ⓒ미르당

서울에서 장성으로 ‘어쩌다 귀촌’
  미르당 주인 홍서연 씨는 서울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댄스 스포츠 동호회에 가입했다가, 남편 문인석 씨를 만나게 되었다.
  “남편은 과일 경매사였는데 직업 특성상 새벽 1시에 출근해서 아침 9시에 퇴근했어요. 나중에 자기 사업을 하고 싶다고, 낮에는 떡을 배워서 자격증을 딸 정도로 부지런한 사람이었어요.”
  2010년 눈이 많이 내린 3월의 어느 날, 부부는 첫째 딸을 품에 안았다. 기쁨도 잠시, 시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세 식구는 급히 장성으로 내려갔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부부는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시부모가 운영하는 방앗간을 이어가기로 했다.
  “방앗간에 골방이 있거든요. 셋이 누우면 꽉 차는 그 방에서 한동안 살았어요.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120만 원씩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배웠어요. 봄이면 시아버지 따라서 새벽부터 쑥잎이랑 뽕잎이랑 잔뜩 뜯어서 트럭 한가득 싣고 왔던 기억이 나요. 그러면 큰 솥에 넣고 큰 막대기로 저으면서 온종일 삶고 그랬죠.”
  2013년, 부부는 함께 일하던 막내 시동생에게 방앗간을 넘기고, 지자체에서 지원받은 귀농 자금으로 가공 공장을 세워서 미숫가루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셋째를 낳고 정신 차려 보니까 수익이 너무 적은 거예요. 어떻게든 먹고살아야 하니까, 제가 탑차를 끌고 장사하러 다녔어요. 농산물 직거래 장터는 웬만하면 다 참여했죠. 백화점 팝업스토어에 들어갈 때는 일주일, 열흘 단위로 일정이 잡히거든요. 그러면 고시원에서 잠만 자고 나오고는 했어요.”
  미숫가루와 함께 선보인 참기름이 인기를 얻고, 홈쇼핑까지 판로를 넓히게 되면서, 약 2년간 이어왔던 장돌림 생활을 끝낼 수 있었다.

ⓒ미르당

홍서연 씨 부부가 시가족과 함께 농사짓는 밭. ⓒ미르당
홍서연 씨 부부가 시가족과 함께 농사짓는 밭. ⓒ미르당

농가와 함께 가는 ‘미르당’
  홍서연 씨 부부는 시가족과 함께 1만 6500㎡(약 5000평) 땅에서 깨와 호박 농사도 짓고 있다.
  “참깨가 면적 대비 수확량이 많은 편이 아니에요. 참기름에 넣을 참깨를 더 구해야 하니까, 계약재배할 농가를 발로 뛰어다니면서 찾아다녔어요. 특히 전라남도를 벗어나지 않고 수매하려고 애썼죠.”
  2020년, 장성에 폭우가 내리면서 깻값이 크게 올랐다. 참기름을 만들지 못해 고정 매출이 사라졌을 때, 부부는 지자체 공모 사업에 지원해 건물을 새로 짓고, 지역 농산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방법을 찾았다.

황룡강 가까이 위치한 미르당. ⓒ미르당
황룡강 가까이 위치한 미르당. ⓒ미르당
사과 스무디를 만들고 있는 홍서연 씨.
사과 스무디를 만들고 있는 홍서연 씨.
노란색으로 포인트를 준 카페 인테리어. ⓒ미르당
노란색으로 포인트를 준 카페 인테리어. ⓒ미르당

  “제대로 된 농산물이 들어간 음식은 정말 맛있다, 그런 마음으로 카페를 시작했어요. 레시피를 개발할 때는 시행착오도 많았어요. 특히 호박 풋내를 없애는 게 어려웠거든요. 그래도 입맛 까다로운 남편이 맛있다고 손뼉을 칠 때는 정말 기쁘더라고요.”
  미르당은 2022년 봄에 문을 열었다. 단호박과 깨가 들어간 커피, 100% 장성 사과로 만든 스무디, 호박과 사과 모양으로 빚은 떡 등 시중 카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음식을 내세우면서 점점 소비자의 입소문을 타게 되었다.
  “올가을에 광주 봉선동에 첫 직영점을 내요.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학원 가기 전에 쉴 곳이 필요하잖아요. 조금 더 건강하게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요. 직영점이 커지고 늘어나면 지역의 농산물도 더 많이 소비되겠죠. 그게 저희가 원하는 지속 가능한 미래예요.”
  남편 문인석 씨는 “미르당의 가장 큰 목적은 우리 농산물을 잘 활용해서 우리 농민들과 상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서연 씨는 미르당 마당에서 프리마켓을 열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르당
홍서연 씨는 미르당 마당에서 프리마켓을 열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르당
다섯 식구가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미래가 기대된다. ⓒ미르당
다섯 식구가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미래가 기대된다. ⓒ미르당

미래가 있는 농촌을 꿈꾸며
  홍서연 씨는 세 아이가 대를 이어서 지역을 지키는 모습을 상상한다. 미르당이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를 잡고, 성악을 공부하는 첫째 딸이 지역 문화 활성화를 이끌며,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이 아빠를 잇는 사업가가 되기를 바란다.
  “대산농업연수에서 유럽에 있는 여러 농가를 가봤잖아요. 농민들이 전통을 이어가는 모습이 경이롭게 느껴졌거든요. 특히 4대째 이어오는 피르흐너호프 농가는 제가 딱 바라는 모습이었어요. 우리 가족도 할 수 있겠다, 생각하게 되었죠.”
  농촌에서의 삶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싱긋 웃으며 “어때 보여요?”라고 되물었다. 나도 모르게 “좋아 보여요”라는 말이 나왔다.
  “저는 정말 100번 만족해요. 서울에서 각자 직장생활을 했다면, 우리 가족이 지금처럼 웃으면서 살지 않았을 것 같아요. 둘째, 셋째는 못 봤을 수도 있고요. 어떤 삶을 살았어도 이보다 만족할 수는 없을 거예요. 저는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 거예요.”
  이날, 다섯 식구가 내게 보여준 밝고 맑은 미소가 자꾸 떠오른다. 그들이 힘을 합쳐서 농촌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 모습을 떠올리니, 속이 꽉 찬 떡을 맛본 것처럼 든든하고 흐뭇한 마음이 든다.

글·사진 이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