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난 농촌이 모두 아름다웠던 이유

신수경 편집장

농가에서의 휴가’ 아침 풍경. 오스트리아 티롤 엘마우.
‘농가에서의 휴가’ 아침 풍경. 오스트리아 티롤 엘마우.

  2023년 5월,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알고이 지역의 농림부라 할 수 있는 켐프텐 식품농림청에 도착했다. 단정하고 소박한 건물 앞 세움간판에 식품농림청 부설 농업학교와 ‘농가에서의 휴가 협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행정기관이 다양한 조직들과 지역 농업과 농촌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깊게 받았다.

켐프텐 식품농림청에는 다양한 단체와 협회가 상주해 협력한다.
켐프텐 식품농림청에는 다양한 단체와 협회가 상주해 협력한다.

농민의 ‘제2의 다리’를 튼튼하게
켐프텐 식품농림청 부설 농업학교 가정경영과
  켐프텐 식품농림청 부설 농업학교에는 전문 농업인을 양성하는 과정과 함께 또 하나 특별한 코스가 있는데, 결혼 등을 이유로 지역으로 온 여성들의 지역 안착을 돕는 ‘가정경영’ 과정(Besuch Teilzeitschule Hauswirtschaft am AELF Kempten)이다.
  “이 지역(독일 남부 알고이)은 농가의 규모가 작아서 농사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요. 농민에게 든든한 다리가 더 필요합니다. 농가에서의 휴가(농가민박), 직판과 가공, 그리고 체험 등이 ‘제2의 다리’가 되는 거죠.”
  안내를 맡은 비숍 베이커 박사Dr. Bichof Beger가 말했다. 우리가 방문한 시점을 기준으로 가정경영과 교육생은 20명이고, 나이는 20세에서 60대까지로 폭이 넓었다.
  “교육생 중에는 약사, 교사, 행정전문가 등 다양한 직업 경력이 있고 농업인과 결혼한 여성이 절반가량이에요. 농장을 잘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여성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죠.”

[크기변환]29-1

가정경영과 과정은 교육학부터 농가에서 필요한 실습까지 다양한 커리큘럼이 있다.
가정경영과 과정은 교육학부터 농가에서 필요한 실습까지 다양한 커리큘럼이 있다.

  가정경영과에서는 무엇을 배울까. 교육과목은 가족과 보살핌, 교육학, 예산 및 재무 관리, 영양과 음식, 농업과 고용, 프로젝트 관리 및 커뮤니케이션, 주방과 가정에서 필요한 실습, 정원 가꾸기 등 농촌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배운다. 교육부가 지정한 과목 외에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깊이 있게 공부할 수도 있다. 독일의 다른 기술교육과 마찬가지로 듀얼 시스템으로 이론 수업과 실습을 병행하는데, 일반 학교 과정과는 달리 가정과 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주 1회 8시간 교육으로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총 660시간 20개월 과정을 마치고 시험을 통과하면 ‘영양 및 가사관리 전문’ 자격증을 받는다.
  “지속 가능한 환경을 생각하고 창조, 자립, 정보 교환, 책임감, 미래, 개성을 키우고 협조하는 것, 기쁨을 찾는 것 등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외국인도 이 과정을 교육받을 수 있는지,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묻자, 베이커 박사는 “현재 2명의 외국인이 이 과정을 밟고 있다”라고 했고, 남성은 이 과정에 참여할 수 없냐는 질문에는 “환영한다”고 웃으며 답했다.

알고이 지역 킨커 농가에서 바라본 경관.
알고이 지역 킨커 농가에서 바라본 경관.

호텔보다 정겹다, 농가에서의 휴가
  ‘농가에서의 휴가’라는 말은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유럽, 특히 독일 남부에서는 익숙한 명칭이다. 농촌관광 대신 쓰이고 있는 ‘농가에서의 휴가’는 농가민박을 의미한다.
  농가민박을 하는 농민들 대부분 소농으로, 농업소득과 농업 보조금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서 농산물 가공이나 직판, 농가민박을 함께 한다. 농가민박은 대부분 앞서 말한 ‘가정경영과정’을 통해 전문 교육을 받은 여성이 담당한다.

50여 년 전 ‘농가에서의 휴가’를 처음 시작한 요세프 킨커 씨가 손님을 위한 다과를 준비하고 있다.
50여 년 전 ‘농가에서의 휴가’를 처음 시작한 요세프 킨커 씨가 손님을 위한 다과를 준비하고 있다.

  독일 바이에른주 로호프텐에서 증조부 때부터 대대로 농사를 지으면서 농가민박을 하는 프란츠 킨커Pranz Kinker 씨 농가의 경우도 비슷하다.
  “아버지가 1960년대 말에 다락방을 휴가용 아파트로 개조해서 1970년에 처음으로 ‘농가에서의 휴가’를 제공했어요. 2005년에 헛간과 마구간을 허물고 휴가용 주택을 지었죠. 지금은 방 5개로 농가민박을 운영해요.”
  킨커 씨 부부는 소와 토끼에게 먹이를 주고 마구간을 치우게 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주로 운영하면서, 노인과 장애인의 요양과 치유를 위한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이를 위해 방문턱을 없애는 등 집의 구조도 바꾸었다.

‘농가에서의 휴가’를 담당하는 킨커 부인과 딸.
‘농가에서의 휴가’를 담당하는 킨커 부인과 딸.

  현재는 두 딸이 합류해 농장일을 돕고 있는데, 이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농가민박을 알리고 있다.
  “회비 100유로를 내고 소의 대부가 되는 공동체지원농업(CSA)도 하고요, 민박집 안에 작은 마켓을 열어 이웃과 친구의 농산물을 함께 판매하고 있어요. 농업소득보다 농가에서의 휴가에서 나오는 소득이 조금 더 높아요.”
  편리함을 선호하는 사람은 호텔을 이용하지만, 농가민박의 수요층도 두껍다. 일회성 관광이 아니라 휴식과 힐링을 위해 매년 같은 민박집으로 휴가를 가는 사람이 많고, 그 과정에서 농민과 친밀한 관계가 이어진다. 킨커 씨네 집에 방문했을 때 우리를 위해 다과를 준비해주던 사람이 있어 가족인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투숙한 단골손님이었다.
  농가민박은 보통 일주일 이상 머무는 사람이 많고, 알프스 지역의 경우 이른 봄에 여름까지 예약이 꽉 차는 경우가 많아 짧게 머물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지난 10여 년간 독일의 알고이 지역이나 라인스바일러 포도주마을, 오스트리아 엘마우 등에서 ‘운 좋게’ 머물렀던 농가민박은 언제나 연수자들의 만족도 최상이었다.
  농가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도 훌륭했지만, 그 못지않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농촌다움을 유지하면서 깨끗하고 정갈하며 센스가 돋보이는 침구 배치, 자연에서 가져온 다양한 소품과 장식품들, 막 구워낸 빵과 직접 만든 치즈로 정성스럽게 차려낸 아침 식사 등이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솜씨가 놀랍기만 했는데, 그들의 환대와 전문성은 농민이 농촌에서 농업으로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행정의 역할과 이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농민의 노력 덕분이었다.

소박하고 정성스러운 농가의 아침 식사.
소박하고 정성스러운 농가의 아침 식사.
전문 교육을 받은 여성이 운영하는 ‘농가에서의 휴가’의 수요층이 두껍다
전문 교육을 받은 여성이 운영하는 ‘농가에서의 휴가’의 수요층이 두껍다.

“함께 일하는 것이 성공입니다”
농가에서의 휴가 협회
  농가에서의 휴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농가에서의 휴가 협회(Urlaub auf dem Baue-rnhof)’다. 알고이 지역의 경우 이전에 있던 4개의 조합을 하나로 통합해 2003년에 설립했다. 회장은 명예직이고 센터 직원 2명이 실무를 담당한다. 회원은 515명으로 회원자격은 현재 농업인이거나 이전에 농사를 지었고 그래서 농가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으로 나눈다. 2013년까지는 농가에만 자격을 부여했지만, 이제는 기준을 완화했다.
  “이곳 지역은 대부분 소농이에요. 농사와 민박을 함께 하다가 민박으로 점차 전환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분들이 사업을 그만두고 지역을 떠나야 하잖아요. 그래서 규정을 완화하고 대신에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기 위해서 마크의 색깔을 구분하기로 했죠.”

농가에서의 휴가협회는 510명의 농가를 회원으로 한다. 농가는 농사를 짓는 농가(초록색)와 예전 농장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농가(파란색)로 구분한다.
농가에서의 휴가협회는 510명의 농가를 회원으로 한다. 농가는 농사를 짓는 농가(초록색)와 예전 농장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농가(파란색)로 구분한다.

  안젤리카 소이야Angellika Soyer 회장은 협회에서 하는 일을 크게 3가지로 소개했다. 도시민과 농가를 연결해주고, 민박 농가를 대표해서 정치권이나 정책에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하며, 농가민박이 등급을 받는 데 중립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받도록 돕는 것이다.
  “농가민박 등급은 별 2개에서 5개까지 있는데, 이곳 농가의 절반이 별 4개를 받아요. 소비자들의 불만 사항은 협회에서 접수하는데, 거의 없는 편입니다. 이용객 대부분 가족 단위가 많고요, 가치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찾는 편이죠.”
  민박 농가들은 저마다 다른 특성이 있다. 허브, 어린이 체험, 요양과 치유, 예술과 문화 등 농가의 특성에 따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자세히 소개한다. 민박 가격은 하한선만 정해주고 각 농가가 가격을 결정하도록 한다. 또한, 다양한 기업과 협력해 농가 회원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일도 하면서 관과 긴밀하게 협력한다.
  “식품농림청은 우리의 파트너입니다. 상징 마크도 같이 만들었어요. 같은 건물에 있다 보니 교육실 등을 사용하거나 어린이 프로그램 등 다양한 지원을 받기도 하고 파트너십으로 연결하기도 하지요.”
  소이야 회장은 최근 농가가 환경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두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포장재 등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농가에서 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한 방안을 추천해주고 있어요. 그것이 우리가 지속 가능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일하는 것이 성공이다.’ 한국어 발음으로 쓰여진 발표문.
‘함께 일하는 것이 성공이다.’ 한국어 발음으로 쓰여진 발표문.

  소이야 회장은 “함께 모이는 것이 시작이고, 함께 유지하는 것이 진보이며, 함께 일하는 것이 성공입니다”라는 헨리 포드의 격언을 한국어 발음으로 읽는 것으로 발표를 마쳤다.
감동적인 마무리처럼, 함께한 연대의 결과가 또 다른 연결로 확장되는 변화, 그것이 아직 유효한 ‘희망’이기를 바란다. 성공으로 가는.

‘농가에서의 휴가’의 오후 풍경. 독일 바이에른주 미르스버그.
‘농가에서의 휴가’의 오후 풍경. 독일 바이에른주 미르스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