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양석준
온라인 유통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
“안녕하세요? 계신가요?”
제주에서 레몬 농사를 짓는 이종숙 씨(가명, 52세)는 하우스에서 일하다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웬 청년이 성큼성큼 하우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누구인지 묻자 그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스마트 스토어를 운영하는 사람인데요. 혹시 농사지은 레몬을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계세요? 안 하시면 제가 스마트 스토어에서 판매해도 될까요?”
이종숙 씨는 몇 년 전 온라인 판매 교육을 받고, 직접 온라인 판매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계속 관리하기도 힘들고, 매출도 부진해서 그만두었다. 괜히 관리만 힘들어서 안 한다고 이야기했더니, 그 청년은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제가 스마트 스토어 페이지를 대신 관리해 드릴게요. 저한테 맡겨주세요. 제가 매일 밤 12시까지 주문받은 것을 정리해서 구매자 이름, 수량, 주소를 메시지로 보내면, 대표님은 아침에 레몬을 포장해서 택배만 보내주세요. 정산 대금은 구매자가 제품을 받은 다음 날에 대표님 통장으로 보내드릴게요. 저한테는 판매 금액의 10%만 수수료로 주시면 돼요.”
조건은 의외로 괜찮았다. 레몬을 보내고 4~5일 뒤에 정산하는 것이니 큰돈을 떼일 위험도 없을 것 같았다. 스마트 스토어를 직접 관리하는 것도 아니니 귀찮은 일도 없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듣다 보니 농산물을 온라인에서 잘 판매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그 청년은 ‘셀러’라고 불리는 온라인 판매 전문가였다. 셀러의 말대로 판매 단위를 1.5㎏로 바꾸고 가격은 1만 6900원(택배비 3000원 별도)으로 결정했다. 다만, 택배비 3000원으로는 제주에서 육지로 배송이 어려웠다. 그 청년은 택배비가 너무 비싸면 소비자가 구매를 꺼린다고 했고, 이종숙 씨는 택배비로 1000원을 보태기로 했다. 그렇게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고, 지금은 전체 레몬의 3분의 1 정도를 온라인으로 판매한다. 우선 수취가격이 너무 좋다. 소비자가 낸 1만 6900원 중에서 네이버 수수료, 배달비 보조금 1000원, 스마트 스토어 운영 대행 비용을 빼면 이종숙 씨는 1만 3500원을 받는다. 도매상 등에 파는 것보다 훨씬 이윤이 많이 남는 것이다.
위 이야기는 온라인 유통을 하게 된 한 농민의 실제 사례이다. 몇 년 전부터 온라인 전문 판매자인 셀러가 수수료를 받고 농가의 농산물을 대신 판매하는 일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셀러들 덕분에 한국의 농산물 온라인 유통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졌다. 농림축산식품부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2조 3864억 원이었던 한국의 농산물 직거래 시장 규모는 2020년에 7조 6000억 원이 넘었다. 2026년은 되어야 4조 원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했던 수치를 온라인 유통 덕분에 훌쩍 뛰어넘을 수 있었다. 이렇게 농산물 온라인 유통 시장의 성장은 농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온라인 유통이 가져다준 희망
첫째, 온라인 유통은 농민에게 더 큰 수익을 가져다주고 있다. 사례로 제시한 레몬 농민의 경우를 살펴보자. aT에서 제공하는 품목별 유통비용 비율을 보면 2021년 기준 감귤류 유통비(직접비)는 58.1%이지만, 레몬 농민의 유통비용은 32.2%에 불과하다. 유통비용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 농민에게 더 많은 수익이 돌아갔다. aT 자료를 더 살펴보면 감자, 고구마 등 식량작물은 유통비용이 소비자 지불 가격의 60%가 넘는다. 엽근채소류도 유통비용이 50%가 넘는다. 그런데 온라인 유통으로 농산물을 직거래한다면 셀러에게 줄 판매 대행 수수료를 포함해도 유통비용은 30~40% 정도까지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둘째, 농산물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다만, 온라인 유통을 하는 농가가 단골 고객층을 만든 경우에 한한다. 과거 소비자는 대부분 농산물을 상품으로만 보았고, 그 때문에 저렴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러나 온라인 유통을 통한 직거래는 다르다. 소비자는 ‘누가 생산한 농산물인지’ 알고 구매한다. 상품 페이지에 ‘생산한 농민’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생산자를 ‘아는 농민’으로 친근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농민이 어려울 때 외면하기 어려워진다. 만일 농산물 가격이 폭락해서 아는 농민이 고통스러워지는 상황이 되면, 소비자는 시장 가격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에도 기꺼이 지갑을 열 것이다. 물론, 이러한 소비자의 행동을 이끌어 내려면 농가에서도 돈독한 관계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농산물 가격이 폭등했을 때 단골 소비자에게 조금 더 싸게 공급한다든지, 평소에 덤을 준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마지막으로, 기존에 판매하지 못했던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못난이 상품’이다. 표준화, 규격화가 되지 않는 상품은 기존의 도매시장에서 거래되지 못했다. 그래서 거의 버려지거나 헐값에 판매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온라인 유통을 통해서 얼마든지 판매가 가능하다. 2023년 9월 3일 기준, 쿠팡에서 ‘못난이 토마토’를 검색했을 때 첫 번째로 나오는 상품의 후기가 무려 7904개다. 이는 못난이 농산물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신품종 농산물도 과거에는 판매하기 어려웠던 상품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친환경 농산물은 보급 초기에 유통망이 없어서 많은 고생을 했다. 도매시장 상인은 판매량 예측이 힘든 상품은 취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도매시장에서는 친환경 농산물이 일반 농산물보다 더 싸게 거래되는 황당한 일이 속출했다. 하지만 온라인 유통 시장은 다르다. 소비자가 관심을 가질만한 상품이라면,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판매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지포도(블랙사파이어)의 경우 국내 재배 초기에는 1㎏당 5만 원에 판매되었다. 도매시장이라면 절대 거래되지 않았을 가격이다. 하지만 온라인 유통 시장에서는 소비자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온라인 유통이 없었다면 가지 포도는 초기 유통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고, 판매가 안 되니 생산도 늘지 않았을 것이다.
온라인 유통을 위협하는 것들
온라인 유통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농산물 온라인 유통의 미래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과 위협이 존재한다.
첫째, 온라인 유통 플랫폼의 수수료 강화 전략이다. 2023년 온라인 유통 플랫폼 1위 업체인 쿠팡은 수수료 정책을 대폭 수정했는데, 사실상 수수료 인상이다. 온라인 유통이 독점화되면서 수수료를 올리는 것은 미국 등에서 이미 일어났던 일이다. 독점화된 유통 플랫폼의 수수료 인상으로 유통비용이 늘어나는 것도 농산물 온라인 유통 확대의 위협이 되고 있다.
둘째, 대규모 온라인 유통 플랫폼을 활용할 때 광고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어떤 온라인 유통 플랫폼이라도 처음에 입점하면 상위 노출이 잘 된다. 온라인 유통 플랫폼에서 처음 입점한 업체를 잘 노출시켜주는 경향이 있어 초기에는 매출이 잘 나오다가, 또 다른 업체가 입점하면 그 새로운 업체를 밀어주고, 입점한 지 시간이 좀 지난 업체는 매출이 떨어지게 된다.
온라인 유통 플랫폼에 입점한 농가의 시각으로 보면 이렇다. 스마트 스토어 등 처음 온라인 유통을 시작했을 때는 판매가 생각보다 괜찮다. 하지만 ‘온라인 유통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때쯤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매출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를 찾다 보면 ‘알고리듬’이니 ‘키워드’니 하는 단어가 보일 것이다. 하지만 농사를 짓기도 바쁜 시간에 이를 공부하기는 어렵다. 결국 광고에 손을 대기 시작하고, 유통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스마트 스토어에서 일정 매출 이상을 올리는 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총 매출의 25~33%를 광고비로 쓰고 있었다. 농가가 이익을 내는 것이 불가능한 수치이다. 점차 치열해지는 농산물 온라인 유통 경쟁에서 개별 농가가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처음 제시했던 레몬의 온라인 유통 사례에서 보았듯이 전문 셀러와 협업한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전문 셀러는 방문 고객 분석 도구를 통해 광고하지 않고도 쇼핑몰이 잘 노출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농산물 온라인 유통을 지원하는 지자체 담당자의 역량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지자체 담당자 상당수의 온라인 유통에 대한 인식은 오프라인 직거래 장터를 온라인으로 바꾸는 정도로 생각하고, 농가를 대상으로 스마트 스토어 판매 교육, 라이브 커머스 교육 등을 한다. 하지만 농가에 온라인 유통을 직접 맡기면, 대부분의 농가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다. 많은 시간을 투입해서 알고리듬 변화나 쇼핑몰의 정책까지 공부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농민은 농사에 전념하면서 온라인 유통 전문가와 협업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지역에서 하는 교육도 셀러를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리고 농가가 셀러와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지역 APC(농산물산지유통센터)를 온라인 유통 플랫폼으로 만드는 것이 온라인 유통을 활성화시키는 길이다.
이렇게 온라인 유통의 명明과 암暗을 살펴보았다. 이미 농산물은 온라인 유통 중심으로 변화했다. 소비자 대상 온라인 구매 관련 연구 자료들을 살펴보면 조만간에 농산물의 절반 이상이 온라인 유통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농가도, 농가의 온라인 유통을 지원하는 지자체 담당자도, 오프라인 유통과 전혀 다른 온라인 유통 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마련한다면, 온라인 유통은 농가와 소비자 모두에게 큰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양석준: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서울대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농산물 소매유통을 공부하고자 진학하여 경영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롯데마트 농산 MD 등 실무 경험을 가진 연구자로 소비자 행동, 농산물 마케팅과 소매유통 등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