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예슬 알알이거둠터 대표
가을당근을 한창 거두는 날이었다. 초록색 이파리가 무성한 당근밭에서 어디가 이랑이고 어디가 고랑인지 헤매고 있을 때, 송예슬 씨가 거침없이 흙바닥을 딛고 안쪽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보물을 찾듯이 땅을 뒤적이다가, 튼실하게 자란 당근을 쑤욱 뽑더니, 하나둘씩 모아 아름드리 한 다발을 만들었다. 수북한 당근 더미를 안고 나올 때, 그 넉넉한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흘렀다.
내가 귀농한 진짜 이유
청주역에서 차로 5분이면 도착하는 알알이거둠터. 송예슬 씨가 가족과 함께 케일, 신선초, 당근, 비트 등 20여 가지 유기농산물을 재배하고, 가공하는 곳이다.
“부모님은 농사를, 저는 가공과 판매를, 남동생은 홍보를 담당하고 있어요. 일이 바쁠 때는 같이 모여서 작업하고요. 농장을 분리할지 생각한 적도 있는데, 저희는 이렇게 도우면서 지내는 게 훨씬 잘 맞아요.”
스무 살부터 ‘취미 삼아서’ 농산물을 온라인으로 판매했다. 농민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메신저 역할이 점점 좋아지면서, 2014년에 본격적으로 귀농하게 되었다.
“그때 해독 주스가 한창 열풍이었거든요. 전국에 온갖 주스 매장이 생기면서, 녹즙용 채소를 찾는 거래처가 늘어났어요. 좋은 농산물을 고르는 법이나 관리하는 법을 알려주고, 같이 메뉴 개발을 하기도 했어요.”
그 과정에서 채소 소믈리에, 주스 마스터 자격을 획득하여 가공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었다.
“농사지으러 들어오면서 자존감이 되게 높아졌어요. 농촌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잖아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어서 좋아요.”
농민이 직접 만드는 착즙 주스
“엄마가 항상 녹즙을 짜서 줬어요. 이렇게 좋은 걸 우리만 먹기는 아깝다고 생각했죠. 녹즙을 팔아달라는 요청도 많았어요. 집에서 만들면 찌꺼기도 많이 나오고, 기계는 자꾸만 멈춰버린다고요.”
2018년, 결혼할 때 쓰려고 알뜰히 모은 돈으로 착즙주스 가공장을 세웠다. ‘당일 수확, 당일 착즙’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영양소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주스를 냉동해서 내보낸다.
“주문이 들어오면 밭에 가서 필요한 만큼 따오는 거예요. 제 손을 거쳐서 심고 키운 것들이니까, 소비자에게 모든 과정을 설명할 수 있어서 좋죠. 어떤 문제가 생겨도 바로바로 대처할 수 있고요.”
농장에서 키우지 않는 재료는 다른 유기농장에서 구입해서 사용한다.
“주스 종류만 10가지가 넘거든요. 메뉴에 없어도, 소비자가 원하는 재료가 있으면 맞춤형으로 만들어요. 다른 유기농가와 공생하면 좋으니까, 저희에게 부족한 채소나 과일은 따로 주문해서 써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
“착즙 주스가 농산물보다 더 잘 팔릴 때도 있어요. 그래도 1순위는 언제나 농산물이에요. 가공이 우선이 되는 순간, 저는 단가를 먼저 생각하게 될 거예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좋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거예요.”
스승이자 선배 농민인 아버지 곁에서 농사를 배우면 배울수록, 그는 건강한 농산물을 키우기 위한 노력과 그에 대한 가치를 크게 느낀다.
“처음에 들어와서 풀 뽑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음식점에서 일하면 설거지부터 시작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이 안 나와요. 저희 땅이 진짜 푹신푹신하거든요. 그 속에는 지렁이도 많고요. 이런 땅을 만들기 위해서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더라고요.”
농산물의 품질을 올리기 위한 노력은 끝이 없다. 토양에 골분, 칼슘, 게르마늄, 셀레늄과 같은 다양한 자재를 투입하는 등 기능성 농산물을 재배하기 위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 저희 남매가 유기농 인증을 전부 승계받았어요. 부모님만큼은 못하더라도 저희가 계속 농장을 운영할 힘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누고 싶은 행복
알알이거둠터를 알리기 위해, 송예슬 씨는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방송에도 수십 번 출연하고, 기업이나 쇼핑 플랫폼을 통해 도심에서 홍보 부스를 여는 일도 열심히 한다.
“지나가다가 잎 달린 당근을 보고 놀라는 분들도 많아요. 사람들이 먹을 것을 좋아해도 어떤 걸 먹는지 잘 모르는 거예요. 건강한 먹거리를 산지에서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저희 농장을 통해서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농산물 생산과 가공을 통해 그 가치를 알리는 일을 넘어서, 언젠가는 사람들이 농촌을 더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야무지다.
“귀농하고서 ‘아, 이게 사람 사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흙 밟고 햇빛 받으면서 일하면 마음이 편안해요. 행복한 감정이 마구 올라와요. 어른이든 아이든, 이렇게 자유롭게 자연을 접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요. 이것도 제가 꿈꾸는 미래겠죠?”
머지않은 날에, 알알이거둠터가 더욱 북적여질 것 같다. 송예슬 씨가 알알이 거두는 농農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누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글·사진 이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