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회복력’이 있는 농업을 위하여

임영아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기후변화 대응
  2023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개최되어, 화석연료 퇴출과 전환 논의로 당초 계획보다 하루 늦은 12월 13일에 폐막하였다. 비록 화석연료 퇴출에는 합의하지 못하였지만, 2015년 파리기후협정1) 이후 온실가스 감축의 진행 정도를 살펴보는 최초의 전 지구적 이행점검(Global Stocktake)이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진흥청 등이 참석하였다. COP28에서는 1.5℃ 목표2)를 재확인하면서 에너지 시스템에서의 화석연료 전환, 2030년까지 전 지구적으로 재생에너지 용량 3배 확충과 에너지 효율 2배 증대, 탄소포집 활용 및 저장 등 기술 촉진, 석탄발전의 단계적 감축 등에 합의하였다. 온실가스 감축은 여전히 우리 모두의 숙제다.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

  우리나라에서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 즉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흡수량을 제외한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농업뿐만 아니라 전 산업에서 달성해야 하는 목표다. 그러나 농업은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이러한 온실가스 감축뿐만 아니라 적응(Adaptation)의 노력이 필요한 산업이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의 발생을 감축하는 것은 ‘기후변화 완화(Mitigation)’라고 부르며, 기후변화 현상 자체를 완화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이미 기후변화의 영향이 가시화되는 요즘,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미래 위험에 대응하는 적응 또한 중요한 기후변화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1) 파리기후협정: 2020년 이후 전 지구적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한 국제협정.
2) 1.5℃ 목표: 2015년 파리기후협정을 통해 국제사회가 210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수준에 비하여 2℃ 이하로 유지하고 1.5℃까지 제한하도록 설정한 목표.

기후변화 적응이 필요한 이유
  기후변화는 토양, 물, 대기, 병충해와 같은 농업 생산환경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작물과 가축 생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환경부에서 발간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은 농업 분야 미래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작물생산 적지 이동, 잡초 및 병해충의 종류와 빈도 변화, 토양 비옥도 및 가뭄 발생 변화,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작물 생육 변화 등을 제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통계청에서도 주요 농작물의 주산지가 이동했음을 이미 보도한 바 있다.

주요 농작물 주산지 이동 지도.  (1970~2015년 농림어업총조사를 이용하여서 통계청에서 작성. 통계청 보도자료. 2018.4.10.)
주요 농작물 주산지 이동 지도.
(1970~2015년 농림어업총조사를 이용하여서 통계청에서 작성. 통계청 보도자료. 2018.4.10.)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기후변화 정책에서 기후위기(Climate Crisis) 개념을 사용하면서 완화와 적응이 시급함을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에서는 법명에서 ‘기후위기’를 포함하고 있으며, 법조문 안에서 기후위기를 “기후변화가 극단적인 날씨뿐만 아니라 물 부족, 식량 부족, 해양산성화, 해수면 상승, 생태계 붕괴 등 인류 문명에 회복할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하여 획기적인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한 상태”로 정의한다. 「탄소중립기본법」에서는 ‘기후위기 적응’을 “기후위기에 대한 취약성을 줄이고 기후위기로 인한 건강피해와 자연재해에 대한 적응 역량과 회복력을 높이는 등 현재 나타나고 있거나 미래에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기후위기의 파급효과와 영향을 최소화하거나 유익한 기회로 촉진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정부에서는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를 두어서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노력 중이다.
  국가에서는 5년마다 국가적응대책을 수립하고 있으며, 농업 분야의 적응대책도 함께 수립하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제3차 적응대책을 보완한 《제3차 국가 기후위기 적응 강화대책(2023~2025)》이 2023년 6월에, 세부시행계획이 9월에 발표되었다. 여기서 농업 분야에서는 기존의 내용을 수정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에너지 사용 증가, 병해충 및 질병 증가 위험, 이상기후로 인한 해외 농축산물 수급 안정 저하를 추가 기후위험으로 고려하여 더 실효성 있는 적응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국가기후위기적응정보포털(kaccc.kei.re.kr/portal) 화면 캡처.
국가기후위기적응정보포털(kaccc.kei.re.kr/portal) 화면 캡처.

기후회복력을 키우기 위한 역량 강화의 중요성
  온실가스 배출을 제어한다는 점에서 완화는 규제의 성격이 강하다면, 적응은 생산 주체의 실제 소득 및 생산성과 연계되므로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 영역이 될 수 있다. 여기서 국제사회에서 중요하게 보는 키워드가 ‘회복력(Resilience)’과 ‘역량 강화(Capacity Building)’다. 회복력이란 말 그대로 외부 충격이 가해졌을 때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는 능력을 이야기하며, 기후회복력은 기후변화로 인한 외부 변화 및 위험이 발생하더라도 발생 이전 상태로 돌아오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회복 능력을 키우는 것을 역량 개발 혹은 역량 강화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국가 적응대책의 경우 농업 분야 적응 관련 연구개발, 관련 기후 및 적응책 관련 정보 전달, 수리시설 및 온실과 같은 기반시설 투자, 해외 수급 안정성 부분에서는 다양한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에 대응해서 식량을 생산해야 하는 농업인의 역량 강화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 정책 실무자의 역량 강화 부분은 크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 역량은 단기적/중기적/장기적 대응 능력에 따라서 흡수적(Absorptive) 능력, 적응적(Adaptive) 능력, 전환적(Transformative) 능력으로 나눌 수 있다. 단기적 흡수 능력은 현행 생산시스템 구조를 변화하지 않고 계절적 위험이나 외부 충격에 대비한 계획을 개발하거나 위험 관리 투자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기적 적응 능력은 생산시스템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으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거나 기반시설에 투자하는 것, 인적 자본을 개발하는 것이 해당한다. 장기적 전환 능력은 현행 생산시스템을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기후스마트농업(온실가스 감축과 적응, 농가의 생계를 함께 달성하고자 하는 농업시스템)과 같은 새로운 생산방법을 활용하거나 새로운 거버넌스나 제도 개발, 대규모 기반시설 프로젝트 등을 포함한다.
  물론 이러한 능력의 구분이 항상 명확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가 농업 분야 적응대책을 수립할 때, 그중에서도 농업인과 농기업, 정책 실무자의 역량을 개발할 때 참고할 만하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 적응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을 한다면, 단기적으로 농업인 소득 안정화를 위한 재해보험을 강화하거나 가뭄 및 홍수 대비 기반시설을 보수하는 것을, 중기적 관점에서 농업인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신소득작물 발굴 및 재배 적지에 따른 작목 전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시스템(agmet.kr) 의 경우 현재 75개 시군 정보가 제공되고 화면 캡처.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시스템(agmet.kr) 화면 캡처.

기후정보서비스와 활용 역량 키우기
  앞서 이야기했듯이, 적응은 실제 농업인 또는 농기업의 이익과 연결되기 때문에 자발적인 적응 활동을 기대할 수 있다. 기후변화 적응 면에서 정부의 역할은 농업인 및 농기업이 스스로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을 돕고, 기후위험을 고려한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정보 제공과 관련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될 것이다. 특히 기후위험 관련 정보에 대한 농업인 및 농기업의 관심이 높은데, 현재 사용자 친화적인 기후정보 제공은 제한적이다. 정작 관련 정보가 주어지더라도, 이것을 실제 농업 생산과 농기업의 운영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또한 향후 정책 설계에서 반영할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실정이다.
  예를 들어, 이상기상에 관한 사전 정보를 제공하는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시스템’의 경우 현재 75개 시군 정보가 제공되고 있지만, 아직 전국적인 서비스가 되지 않아서 전국 단위 정보 제공이 되도록 경보시스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보가 제공되더라도 현재 시스템 담당을 국립농업과학원 기후변화평가과 농업기상실에서 담당하고 있어, 실제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후정보 활용 컨설팅이나 서비스 피드백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부처 간, 부서 간 칸막이가 높은 국내 정부기관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정책 실무자가 기후변화 관련 업무를 별도의 업무로 인식하고 본인의 업무와 연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경기도에서는 ‘탄소인지예산’ 제도를 시범적으로 도입하여서 기존의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면서 온실가스의 감축 여부와 추가 감축 가능성을 고민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서 기후변화 요소를 고려하는 것은 온실가스 감축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적응 측면에서도 중요하며, 이것은 ‘기후변화 적응 주류화’라고 볼 수 있다. 향후 정책 실무자가 정책 및 사업을 설계할 때 해당 사업이 농업의 기후회복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고민을 필수로 해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은 온실가스 감축뿐만 아니라 피할 수 없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적응 능력을 향상하는 것도 포함한다. 미래 기후변화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주어진 기후정보를 해석하고 응용하여서 의사결정 하는 것은 농업인과 농기업과 같은 민간 영역에서도, 정책을 설계해야 하는 공공 영역에서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에서 정부의 역할만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도 주체적으로 적응하고자 하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기후회복력이 있는 농업을 위한 대안을 농업인과 농기업, 기술자, 학계 전문가, 정책 실무자, 시민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함께 논의하여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임영아필자 임영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유기농업학회 이사와 OECD 농업환경공동작업반 부의장 활동을 하면서 농업환경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를 하고 있다. 농업 분야 국가 탄소중립 시나리오 작성에 참여하였으며, 현재 국가 적응대책 수립방안에 관한 과제를 진행 중이다.